메뉴 건너뛰기

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7 

다음 날 아침, 도전장은 히토미 쪽에서 보내어졌다. 시간은 일요일 오후 7시. 장소는 학교 옥상. 입회인立會人은 토모에 마미, 카나메 마도카, 사쿠라 쿄코, 아케미 호무라. 룰은 발리투도Valitudo, 무기 사용 가능. 승리조건은 그때 봐서 임의적으로 정함. 이 정도라면 거의 미치지 않고서야 낼 수 없는 사생결단이었다. 


“뭐, 가장 적절하구먼.” 


옥상은 7시까지 열려져 있었다. 옥상이 경음부의 부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둑해지기 시작할 때에서도 사야카와 마도카가 갈 수 있었다. 가장자리에 어른 남성 키의 두 배 정도로 높은 철창이 새워져 있었으며 모서리마다 백열전구를 낀 감시등이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미타기하라 중학교가 교도소에서 세워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던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도카는 아직까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사야카의 복장은 검고 칙칙한 검도복이었다. 정확히는 검은색이라기보다는 남색에 가깝게 물감이 빠졌으며 실오라기가 삐져 나온 것이 꽤나 많이 입고 빨은 헌 도복이라는 티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갑상甲裳을 두르고 갑을 메어 끈을 꽉꽉 묶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이라도 대화로 해결하면 안 될까?”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그러고 싶지도 않고.”


사야카는 호완護腕을 끼고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손에 너무 잘 맞는지 헐렁하지도 않고 손의 움직임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이렇게 싸우지 않고선 해결하지 못할 일도 있다고 생각해. 히토미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 현피 신청.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걸?”


“사야카 쨩....”


마도카는 결국 할 수 없다는 마음에 한숨을 놓았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남자를 이성으로써 좋아해본 적은 없는 지라 그 둘의 마음을 몰랐다. 하지만 울분이 풀려질 대로 싸우다 보면 결국 화해하지 않을까 기대도 걸어보았다. 항상 친하게 지내는 ‘패밀리‘라서 알고 있었다. 히토미와 사야카는 고작 싸움 하나로 찢어질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그렇고. 히토미가 올 때까지 몸을 좀 풀어야 하겠어.”


사야카는 바닥에 곱게 높아둔 죽도를 잡았다. 왼손에는 보통 길이의 죽도, 오른손에는 짦은 길이의 죽도였다. 왼손의 대도大刀를 상단이 두고 오른손의 소도小刀를 중단에 둔다. 검도에서 전형적인 역이도逆二刀의 자세였다. 보통 이도류의 자세가 오른손에 대도를 들고 왼발을 앞으로 드는 것에 반해 역이도는 보통 일도류와 같이 오른발을 앞으로 드는 자세이다.


“동전을 몇 개 던져 봐라 마도카.”


“!” 머릿속에 느낌표가 뜬 마도카는 거두절미하고 주머니에서 10엔짜리 동전을 몇 개 손을 쥐어 사야카 앞에 던졌다. 동전은 허공에 빙글빙글 돌아 날아왔다.


그러던 찰나. 사야카의 일갈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앙!”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당!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도카도 보지 못했다. 사야카의 손이 잠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쇠가 부딪치는 소리에 묻혀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순간 바닥이 빛나고 있어서 밑을 바라보니 마도카가 던졌던 동전은 10개, 그리고 사야카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동전은 10개. 죽도에 맞아 멀리 날아갔을 것 같은 동전이 발밑에서 바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 동전을 전부 다 밑으로 찍어 내려친 것이었다.


“대단해.. 방금 어떻게 한거야?!”


마도카의 감탄에 사야카는 쑥스럽게 웃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주말마다 매일 검도를 배우고 있어. 이거야 보통 검도의 기술이 아니라.. 내가 배우고 있는 고류검술古流劍術의 기술이지만.”


“나.. 그거 처음 봤어. 대체 무슨 검술이야?”


“면허개전免許皆傳이 아니라, 밝힐 수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그 웃음도 밝지만은 않았다. 마도카는 사야카의 그 미소에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사야카가 검도를 배우고 있는 것도, 그리고 이런 실력의 소유자인 것도 마도카로서는 처음 안 사실이었다. 사실 마도카는 친구들의 사생활 중 일편만 알고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가는 평일을 빼고 이 세 사람이 서로 만날 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원래 경찰이 되고 싶었어.”


“...” 마도카는 사야카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짐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정의의 사도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 그 중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게 경찰이라서, 거기에 조금 도움 되지 않을까 싶어 검도를 배웠었어.”


“하지만 사야카 쨩. 이 싸움은 정의도 뭣도 아닌 그냥 현피에 불과하잖아.”


“알아.” 사야카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현피에 불과하지. 그것이 병림픽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첫 실전이 이런 거라는걸 꿈에도 상상했을지... 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리고 히토미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해.”


“사야카 쨩의 실력이면 히토미 쨩이 무사하지 못한다고!”


마도카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가며, 입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사야카는 마도카가 이렇게 화를 낼 줄 몰랐다. 두 눈이 떨렸다. 하지만 그 말을 부정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응. 그렇지 않을 거야. 히토미는 바로 싸움을 걸지 않았고 시간을 두어 도전장을 내밀었어. 그 녀석에게도 나만큼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해.”


“사야카 쨩. 그래도 이 싸움은 서로 병신이 될 뿐이야.”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승리한 병신이 되어라. 엘빈 토플러라는 경제학자가 말했다지.”


“.....그거 순 억지잖아.”


“걱정 마. 모든 게 괜찮아 질 거야.”


그때, 한 줌의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아래에 입은 하카마가 바람에 펄럭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그 가운데 흐르는 달빛이 비추어주는 사야카의 얼굴은 세상 어느 무엇보다도 진지하였다. 사야카가 저렇게 미인이었나. 마도카의 눈에는, 그 사야카가 시릴 듯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 순간. 녹슨 쇠가 부대끼는 소리가 흘렀다. 사야카의 뒤에 옥상 문이 열리면서 수 명의 발자국이 들어왔다. 사야카와 마도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미와 호무라와 쿄코, 그리고 히토미였다.


히토미가 입고 있는 옷은 사야카와 같은 검도복이었다. 그러나 사야카의 그것과는 대조되는 순수히 하얀 색깔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입은 호구는 그와 대조되게 상처투성이었다. 호완과 갑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흠집투성이었고 오른팔에 품고 있는 호면은 정수리 부분이 새하얗다. 단지 갑상에 씌운 ‘미타기하라. 시즈키 見滝原. 志筑’라고 새겨진 이름판만 멀쩡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건 한 자루의 나기나타薙刀였다. 진검이 아닌 대련용으로, 1미터 넘는 긴 나무 막대기에 죽도를 1/3 정도 잘라놓은 듯한 길이의 휜 대나무를 붙여놓았다. 다만 복장만은 나기나타 대련에 쓰이는 바지와 정강이받이가 아닌, 사야카의 것과 똑같은 하카마를 입고 있었다.


“늦게 와서 죄송하군요.”


“그래도 올 줄 알았어.”


두 사람은 서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자리에 섰다. 동쪽에 사야카, 서쪽에 히토미. 먼 거리에 마주보는 위치에 무릎 꿇으며 호완을 벗었다. 머리수건을 접고 머리에 씌운 다음, 호면을 쓰고 고정하는 줄을 팽팽하게 조아 묶었다.


“승리 조건은?”


“3포인트입니다.”


“합리적이군.”


검도의 규칙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렇게 임의적으로 정한 하우스 룰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야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현피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북쪽에 호무라는 왼손에 붉은 깃발, 오른손에 하얀 깃발을 들고 심판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미는 캠코더로 녹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미 선배, 왜 캠코더를..” 마도카는 마미의 행동이 이해가 안간 듯 물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찍는 것이지.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될거야.”


마도카는 마미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 사야카와 히토미의 사이에 뿜어오는 살벌한 분위기로 봐서는 좋은 추억은 커녕 끔찍한 흑역사가 되어도 모자랄 지경으로 보였다. 마미 선배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웃으면서 캠코더까지 찍을까. 마도카는 마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미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싸우고 정든다. 그건 남자애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야.”


“그래그래 맞아. 저 퍼랭이년도 좀 싸우고 친해졌지.”


쿄코는 앞에 미스터 도넛 한 상자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놓고 열심히 처먹고 있었다. 그리고 치킨을 뜯어먹다가 마도카에게 닭다리 하나 내밀었다.


“먹을래?”


“됐어. 그것보다 쿄코 쨩은 그렇게 먹어도 살 안 쪄?”


“난 살 안찌는 체질이니까. 먹기 싫음 말고.”


“그런 개사기가 어디 있어!” 마도카는 부러워 죽겠다는 듯 항의했다.


“여기 있지.”


쿄코는 들고 있는 닭다리를 입으로 뜯어 먹으며 즐겁게 앞을 감상하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된 모양이다. 마미의 고성능 캠코더는 설정을 다 마쳤는지 레이더에 붉은 빛이 떴다. 캠코더가 비추는 사야카와 히토미의 사이엔 고요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준비.”


호무라가 외치자 둘다 같이 목례하며 걸음을 옳기기 시작했다. 한 보, 두 보, 세보. 그리고 중단으로 칼을 뽑아서 쪼그려 앉아 서로 노려보았다. 칼날의 끝이 서로 맞부딪칠 것 같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ㅡ


콰쾅!


“아앗!”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벼락의 끝이 둘 사이에 내려쳤다. 하늘이 알고 있던 것인가. 모두가 이 벽력霹靂에 놀라 비명치는 사이에서도 사야카와 히토미는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깃발을 떨어뜨릴 뻔했던 호무라는 ㅡ내색은 하지 않았지만ㅡ 마음속으로 점점 이 둘이 무섭게 느껴졌다.


“시작!”


목소리에 맞춰 둘은 접었던 다리를 펴고 일어서 자세를 갖추었다. 대도로 상단, 소도로 중단. 사야카의 발은 앞으로 11자로 하여 점점 다가오고 있으며. 히토미는 옆으로 서서 칼날을 중단으로 취해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전형적인 이도류와 나기나타의 형세였다. 그리고 외치는 기합소리.


“하이이이이이잇!”


“하아아아아아앗!”


입회인 네 명은 기합소리에 벌써 공격이 들어오는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아직도 두 칼끝이 상하로 흔들리며 계속 마주 닿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부위로 칠 것인지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호무라는 무표정하게 관조하고, 쿄코와 마미는 재미있다는 듯 감상하고 있으며, 마도카는 떨리는 눈으로 이 둘을 불안하게 조마조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이런 건 너무해. 이상하다구. 그냥 병림픽에 지나지 않는데! 정말로 이럴 수밖에 없는 거야? 사야카 쨩! 히토미 쨩!’


그때였다. 사야카의 신형이 돌연 몸을 날리며 큰 칼로 히토미의 머리를 노렸다.


“머리!”


그런 찰나에, 히토미는 좌측으로 한 발자국 뒷걸음을 하는 동시, 몸을 반 바퀴 돌아 칼을 휘둘러 원심력으로 사야카의 정강이를 쳤다.


“발목!”


딱! 나기나타의 대나무 칼날이 펄럭거리는 하카마를 밀치고 정강이에 부딪치니 단단한 것을 치는 소리가 튀었다. 그 다음엔 제 자세로 돌아와 존심存心을 잡았다. 호무라는 즉시 백기를 들어 “발목!”이라고 외쳤다. 히토미의 1점이었다.


“크...”


“사야카 쨩!“


사야카의 신음도 잠시. 그녀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듯 자세가 건재했다. 히토미는 이상함을 느꼈다. 이 나기나타 죽도는 날과 막대기 사이에 완전히 고정하는게 아니라 약간 느슨하게 고정해서 흔들린다. 게다가 구조상 특유의 긴 리치가 있기 때문에 이런 두 특징에서 원심력까지 더해져 죽도보다 더 아프다. 하지만 사야카는 전혀 아프지 않은 듯한 상태였다.


“정강이받이를 차고 있군요.”


“뭐. 그렇지.”


“어쩐지 때리는 소리가 찰지다 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사야카의 하카마 안에는 정강이받이를 차고 있었다. 흔히 정강이받이는 바지 위에 차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굳이 안에 차는 이유는 통이 넓어 발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 하카마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하카마에 익숙해진 발놀림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미리 알고 그런 것일까. 마도카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어 즉시 부정했다. 그렇기라기보단 그저 방어력을 올리는 듯, 할 수 있는 대로 입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정답에 더 가까웠다. 가능한 준비는 다 한다. 결투를 준비하는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그렇다, 이 현피는 더 이상 병림픽의 범주를 넘어서 진짜 ‘현실 PvP‘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잡담 다 됐으면 시작할게. 시작!”


호무라의 신호에, 둘은 다시 칼을 잡고 대결에 임하기 시작했다. 양쪽의 칼끝은 상하로 천천히 저어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의 일회전은 맛보기 탐색전이었다는 듯, 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중압감은 아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제야 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한치의 여유조차도 파도에 쏠리듯이 흩어지고 말았다. 심지어 계속 무언가 처먹고 있던 쿄코도 입에 빼빼로를 문 채 가만히 대결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몇십 초의 시간이 흘러도 서로 공격하지 않았다. 이제 칼끝을 떨어 약점을 찾는 짓도 하지 않았다. 곧게 잡은 칼은 한치의 떨림도 없었다. 그때, 히토미의 나기나타가 또 한번 다리를 노렸다.


“발목!”


그러나 아까와 같은 발목치기가 아니었다. 중단에서 바로 정강이를 향해 후려치는 것이었다. 나기나타는 일반 검도처럼 머리, 손목, 허리, 찌름을 할 수 있지만 발목도 타격 부위다. 바로 이런 발목치기가 나기나타의 대표적인 공격중 하나다. 히토미는 이런 이점을 이용해서 아래를 향해 사선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사야카의 소도가 히토미의 칼을 막았다.


딱!


‘.......아차!!’ 히토미 자신이 실수했다고 느끼는 순간. 사야카의 대도가 완전히 머리가 비어버린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머리!“


팟!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호면을 때리는 소리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섞였다. 죽도가 얼마나 빠른지 잔상도 보이지 않아, 심판을 보는 호무라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사야카의 몸이 히토미를 지나 존심을 잡았을때, 호무라는 급히 홍기를 올려 외쳤다.


“머.. 머.. 머리!”


좀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았던 호무라가 황당을 담아 소리쳤다. 이로서 사야카의 1포인트. 전세는 동점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둘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히토미는 씹은 듯이 말을 뱉어냈다.


“제 실수로군요.. 사야카 상이 이도류인걸 간과하다니.”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


승부는 지금부터니까. 사야카는 그렇게 뇌까리며 중단을 잡았다. 오른손엔 소도. 왼손엔 대도. 소태도는 비록 칼이지만 일반 검도에선 좀처럼 공격에 쓰는 경우는 없었다. 그야말로 방패로 쓰는 칼이다. 하지만 사야카의 소도는 충실히 방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세. 이것이 이도류이다.


“시작!” 호무라가 냉정함을 되찾고 다시 소리치자 둘은 거리낌 없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들은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타탁. 탁! 타다팟! 칼과 나기나타가 계속해서 부딪쳤다. 히토미의 나기나타는 머리부터 발목까지 계속 노렸지만 그때마다 사야카는 대도와 소도로 막아내면서 반격을 꾀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히토미는 휘두르는 칼을 옆으로 막아 몸을 재빨리 움직여 거리를 벌렸다.


특히 사야카는 히토미의 머리를 자주 노렸다. 나기나타의 기본 자세는 그냥 칼로 봤을 때는 어깨칼脇勢에 가까웠기 때문이 기본적으로 머리가 비게 되어 있었다. 사야카가 기회 있을 때마다 머리를 치려는 때 히토미의 칼날이 대도의 진로를 막아세웠다. 그리고 뒤로 발을 빼는 동시에 퇴격槌擊으로 허리를 노리지만 사야카의 소도에 막히고 말았다.


다가오려는 사야카와 멀리서 휘두르려는 히토미, 나기나타의 우월한 리치에도 불구하고 사야카는 계속해서 막고 쫓아왔다. 히토미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사야카의 검세가 너무나 적극적이고 자신만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리가 어느정도 벌려진 찰나, 히토미가 공격하려고 칼을 드는 사이에-


“손목!”


탁! 사야카 신형이 빠르고 멀리 뛰면서 대도가 히토미의 손목을 내려쳤다. 호무라도 그대로 홍기를 들고 판정했다. 사야카의 연속 2포인트. 이제 히토미는 초조함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이도류가 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세라고 해도 뭔가 약점이 있을 거다. 뭔가... 그걸 찾아야 해.’


“시작!” 호무라가 외치자 사야카는 자신만만하게 뛰어들어와 머리를 노렸다. “머리!”라고 소리치는 순간, 히토미의 머릿속에서 한 줄기 스파크가 튀며 시야가 한 곳을 노렸다.


‘그래. 목이 비었어!’


팟! 히토미의 나기나타가 길게 뻗어지며 칼끝으로 호면의 목 보호대를 찔렀다. 이어걷기로 뛰어들었던 사야카의 목 보호대에서 강하게 들어오는 찌름은 나기나타의 죽도 날을 휘게 만들 정도였다.


“찌름!” 찰나 간에 터져 나온 기합과 함께 사야카의 몸은 반동으로 튕겨나와 벽에 부딪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강하게 찔렸던지 사야카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면서도 호완으로 목을 잡고 계속 기침을 해대었다.


“콜록콜록.. 쿨럭.. 크어윽.. 커헉..”


“사야카 쨩!”


마도카가 나서서 사야카 호면의 목 보호구를 들어 목을 살펴보았다. 목은 조그만하지만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만약 호면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뻔할 정도였다. 마도카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현실 PvP 정도가 아니였다. 그야말로 현실 PK였던 것이다. 이대로 둔다면 둘 중 하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 그만둬 사야카 쨩! 히토미 쨩도! 더 이상 둘이 다치는거 보기 싫어!”


“...스..” 사야카는 마도카의 어깨를 잡고 일어나 칼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듀스Duece야!”


그녀의 고함에,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승패를 결정하는 마지막 한 점을 남겨 놓고 동점을 이루는 경우, 새로 두 점을 잇따라 얻는 쪽이 이기는 룰. 테니스나 배구, 탁구에서 볼만한 룰을 이 검도 대결에서 적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히토미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을 알고 있군요. 사야카 상.”


“고작 포인트에 연연해서는 둘 다 아쉬우니까.”


“그렇죠. 우리의 현피는 이보다 더 치열해야 하는데.”


“잠깐!” 호무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들에게 외쳤다. “처음부터 3포인트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듀스라니. 이거 어디서 나온 개념이야? 이런 현피, 누구도 납득하지 못해. 카나메 마도카도 질색하고 있어. 미키 사야카. 시즈키 히토미. 너희들은 정말 피를 볼려고 여기에 온거야?”


“방해하지마!” 
“방해하지 마세요!”


사야카와 히토미는 서로 같은 소리를 외치며 호무라를 째려보았다. 그때 호무라는 이 둘의 살기를 느꼈다. 방해하면 죽여버린다. 방해하면 죽여버린다. 방해하면 죽여버린다. 살기는 호무라를 세뇌시켜 머릿속을 분탕질했다. 영압靈壓이나 패기霸氣 같은 것이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호무라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다리가 풀리고, 얼굴의 핏기가 가시며, 눈동자가 흰자위 위에 떠버렸다. 입에 거품을 물고 상체마저 쓰러졌다. 그럼에도 온 몸이 감전된듯 미묘하게 후덜덜 떨리고 있었다.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호무라는 이 둘의 살기에 눌려 졸도한 것이었다.


“호무라 쨩!”


마도카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쓰러진 호무라를 안았다. 하지만 의식이 없는지 마도카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럴수가... 너무해.. 너무해.. 너무하다고.. 어째서.. 이런 거..”


마도카는 그동안 쌓아왔던 눈물이 방울지어 흘렸다.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마미는 쓴 표정을 지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호무라를 등에 업었다.


“마미 선배..”


“잠시 녹화 좀 부탁할게. 이 아이를 숙직실로 데리고 가야 하겠어.”


“네..” 마도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호실에 데려가야 했지만 휴일에 그곳이 문을 여는 때는 운동부가 여기서 특훈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드물었다. 그래서 마미는 숙직실을 생각했던 것이다. 아침 숙직하고 있는 교사는 사오토메 카즈코. 마도카네 반의 담임이었다.


마미가 호무라를 업고 나가자 마도카는 캠코더로 다가갔다. 하지만 캠코더는 이미 쿄코가 잡고 사야카와 히토미를 찍기 시작했다. 심판도 없고 선배도 없겠다. 이들의 싸움은 이제 검도가 아니라 칼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야아아아압!!”


“흐아아아아앗!!”


이제 칼끝이 타격부위와 상관하지 않고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사야카의 대도가 히토미의 무릎을 노렸다. 그리고 히토미의 나기나타가 사야카의 어깨를 쳤다. 비록 검도복은 다른 무도복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 실수로 칼을 맞아도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제대로 세게 때렸을 경우엔 달랐다.


히토미의 팔뚝에 사야카의 소도가 내려치자 여린 팔뚝에서 시퍼런 멍이 찍혀버렸다. 사야카가 대도로 히토미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히토미의 발이 배를 밀어 차버리고 말았다.


“크앗!”


사야카는 발에 차밀려 멋지게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히토미는 이를 가만히 두지 않고 쓰러진 사야카의 몸을 계속 내리쳤다. 이에 질세라 사야카가 두 칼을 십자로 쥐고 계속 막아대면서 땅을 차고 일어섰다.


“제법이로군..”


히토미는 존대말을 버리고 피식 웃어버렸다. 마도카의 눈에선 침착하고 조용했던 히토미의 눈매에 귀기鬼氣가 흐를 것 같아 보였다. 이제까지 싸웠는데도 히토미의 몸은 전혀 지치지 않은 듯 건재했다. 그에 비해 사야카는 계속 거친 숨을 쉬면서, 몸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증거였다.


“하지만 이제 너도 한계야. 이제 결착을 맺도록 하지. 사야카.”


그리고 나기나타가 사야카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그녀는 소도로 머리를 막았다. 하지만 막히자마자 이미 칼끝이 허리를 쳐대었다. 탁! 칼끝이 허리를 치더니 이번에는 허벅지, 그리고 왼쪽 팔뚝을 동시에 내려친다.


“크윽..”


자연스럽게 흐르는 히토미의 동작에 사야카는 막을 기운도 없었는지 무방비 상태로 계속 처맞고 있었다. 그리고 나기나타의 칼날이 옆목와 어깨를 보호하는 면포단面布團을 교묘하게 지나처 사야카의 목을 갈기자 입에서 끓는 비명이 솟아나왔다.


“크악..!”


사야카는 당장이라도 쓰러질것 같았다. 하지만 넘어지려 할때마다 히토미의 칼날은 쓰러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교묘하게 쳐서 일으키게 한다.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는 사야카의 눈앞에 보이는건 10개의 칼날이었다. 나기나타의 칼날이 온몸을 훑고 찰나의 순간에서 동시에ㅡ


“하아아아아앗!! 받아라!!!”


파파파파파파파파파아앗- 마지막 목찌르기에 사야카는 비명을 지를 여유도 없이 다시 쓰러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모 사무라이 만화에 나오는 구두룡섬九頭龍閃을 실제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될까. 10번의 공격을 동시에 맞은 사야카는 더 이상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았다.


“히토미 짱...”


정말로 히토미의 승리가 아닐까. 히토미가 사야카를 쓰러뜨린 것인가. 마도카는 누가 이겨도 좋으니까 하루빨리 이 끔찍한 현피를 그만두길 바랬다. 하지만 히토미는 두 손에 나기나타를 꽉 쥔체 자세를 풀지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을까. 히토미가 예상한 대로였는지 사야카는 다시 일어서 칼을 잡았다.


“훌륭한 공격이었어.. 진검이었다면 처참하게 몸이 분리되었을 거야.”


“....” 사야카의 재기에 모두다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맞았는데 일어설만한 체력과 근성이 있는 것인가. 도복과 호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살이 보이는 여러 군데에 피멍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히토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히토미는, 아니 마도카와 쿄코도 히토미의 마지막 피니쉬에 승부가 결착날 줄 알았다.


“히토미. 너에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난 알아내고야 말았어. 벌써 네년에게 맞은 횟수가 꽤 되니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히토미는 불안한 눈으로 사야카를 바라보았다. 호면에 가려져 있어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사야카의 말이, 히토미의 온 몸이 겁에 질린 듯 떨리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야카는, 거침없이 말했다.


“네년의 공격 패턴. 강약약강강강약강중약!”


“!!” 히토미는 충격을 먹고 손에 나기나타를 떨어뜨릴 뻔했다. 떨어지려는 것을 다시 잡아 애써 자세를 잡아 보지만 사야카의 눈에는 히토미의 눈동자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도카와 쿄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야카의 말에, 그리고 그녀가 알아낸 의미불명의 공격 패턴이 뭐라고 히토미를 겁에 질리게 만든 것일까.


“자. 잠깐. 이거 너무 어이없는거 아냐?” 쿄코가 처먹다 만 도넛을 입에 때고 손가락질하며 따졌지만 이 둘은 듣지 않았다. 떨리고 있는 칼끝도 진정을 되찾았다. 마도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할려는 것도 포기하고 있었다. 마도카와 쿄코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 쪽이 끝날 때 까지 이 현피를 지켜보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히토미의 나기나타가 사야카의 머리를 노렸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런거.. 소용 없다니까!”


사야카의 두 칼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도카는 그녀의 이 초식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바로 현피가 시작하기 전에 마도카의 동전을 쳐내었던 바로 그 초식이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팟!!! 사야카의 칼이 무차별하게 히토미의 온 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진검이었다면 아마 몸을 난자해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흉폭한 칼놀림. 하지만 히토미는 계속 맞으면서 이를 악다물고 고통을 이겨내면서 사야카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려고 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압!!!”


“이걸로 끝이다!!!”


꽈직! 사야카의 대도가 즉시 히토미의 창대를 내리쳤다. 창대는 죽도에 맞아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나기나타를 박살낸 대도는 히토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빠악! 그리고 그 죽도 조차도 호면에 부딪치고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혼신을 다한 머리치기에, 히토미는 아픈 부위를 잡은 체 두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완전이 져버렸군요.”


히토미는 다시 일어섰다. 둘은 다시 제 거리를 맞추는가 싶더니, 서로 칼을 거두고 목례를 하며 각자 다섯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호구를 풀었다. 호면을 벗은 사야카의 목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었다. 앞쪽 뿐만 아니라 옆쪽도 멍이 든 것이 이제까지 제대로 말한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히토미 쪽은 더 처참했다. 아까 필살의 일격 때문인지, 히토미의 머릿수건은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피가 머리에서 이마를 타고 흐르는 것이었다.


“샤아캬 쨩.. 히토미 쨩..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사랑 때문에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마도카는 차마 그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차마 눈으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서 울었다. 방울같은 눈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쿄코는 그런 마도카를 품에 안고 둘을 바라보았다. 사야카는 무릎을 꿇고 있던 히토미의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모든게 제 불찰이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끄덕. 사야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만은 밝지 않았다.


“...미안할 것 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사야카는 부러진 대도를 땅에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나머지 소도도 이미 끝과 대나무 옆면이 다 빠지면서 더 이상 쓸 수도 없었다. 그녀는 마도카가 있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마도카는 여전히 쿄코의 품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폐를 끼쳤구나...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때였다. 히토미가 발바닥을 세워 땅을 지지하더니. 두 다리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사야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 소리에 사야카 뿐만 아니라 울고 있던 마도카도, 마도카를 끌어안던 쿄코도 놀라고 말았다.


“아.. 아니!?”


“바보야! 내가 무릎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바로ㅡ”


퍽! 히토미의 보디 블로가 몸에 힘을 받아 사야카의 명치에 꽃아졌다.


“이 일격을 위해서!”


“크읏..!”


경악의 한 순간이었다. 사야카 뿐만 아니라 마도카와 쿄코도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야카의 입끝에 핏물이 흘렀다. 그리고 히토미의 입에는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일격을.. 위해서는 추진력이 필요한 법.. 서서 튀어나가는 것과, 움츠려서 발 앞꿈치를 축으로 튀어나가는 것은.. 속도에서 확연히 틀린 법이지..”


“크..으윽.. 아악..“


“100m 육상 선수들이 앉아서 뛰어나가는 원리... 넌 제대로 당한 거야. 미키 사야카.. 이제 그만..”


그만 죽어라. 그 말은 숨긴 체 히토미는 두 손으로 사야카의 등짝을 잡은 채 살짝 떽다.


“허.. 억”


“깊은 산속 옹달샘...”


퍽! 히토미의 무릎이 사야카의 옆구리를 쳐버렸다.


“으아아악..!”


“누가와서 먹나요ㅡ”


퍽! 퍽! 퍽! 히토미는 계속 사야카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옆구리 뿐만 아니라 배와 심지어 가랑이에 영 안좋은 곳 까지도 찍어버렸다. 마도카와 쿄코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두 눈으로 가리고 벌벌 떨었다. 아주 지릴것만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아무리 히토미가 니킥을 갈겨도 사야카의 두 손은 히토미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치면 칠수록 옷자락을 더 세게 잡는 것이었다. 히토미는 이상함을 느꼈다. 비명도 더 이상 지르지 않았다.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미소짓고 있는 것이었다.


“너.. 사야카 상.. 너.. 마조였나..?”


“......마조는 아냐.”


그때, 사야카의 소도가 오른손에서 꽉 쥐어지더니 하늘 높게 뻗어 병혁兵革 끝으로 히토미의 정수리를 치고 말았다.

빡!


“크헉!”


내 옆구리를 주고 네 목을 가져가는 전략일 뿐이야!”


“으아아아악..” 히토미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야카도 데미지가 심한지 몸이 술렁이듯 흔들리고 있었다.


“히토미 쨩.. 사야카 짱!” 마도카는 놀라서 눈물을 닦고 둘 사이로 다가갔다. 그때 사야카는 무릎을 꿇은 채 마도카에게 미소를 지었다.


“헤헤.. 마도카.. 미안해.. 명치를.. 너무 깊게.. 찔렀어..”


그리고 사야카도 쓰러지고 말았다. 더블 K.O가 된 셈이었다.


“어.. 어떡하지? 이런 일은... 너무해. 너무하다고.”





#.8


마미가 옥상에 돌아올 때는 호무라를 숙직실로 데려온 지 1시간 후였다. 마미는 카즈코에게 자초지롱을 설명한 뒤, 호무라를 간호하고 있었고 곧이어 쿄스케를 폰으로 불렀었다. 이 끔찍한 현피 사건의 전모를 토모에 마미는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카즈코는 공연한 이유로 사야카와 히토미의 싸움을 막지 못하고, 상급생으로써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미를 계속 꾸짖었다. 쿄스케가 학교로 도착할 때까지 그녀의 설교가 계속 이어졌다. 이미 의식을 되찾은 호무라도 카즈코의 설교를 듣으면서 지겨워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다 같이 옥상으로 올라가자, 사야카와 히토미는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이번엔 죽도와 대련용 나기나타가 아닌 두 주먹으로 신나게 격투를 벌이던 것이었다.


“이제부턴 내 공격을 막는데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좋아!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지!”


히토미가 달려들자 사야카는 얼굴과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주먹을 마구 내질렀다. 그리고 히토미도 같은 수법으로 응수했다. 둘다 얼마나 빠르게, 많이 내지르는지 주먹이 여러개로 보일 지경이었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


“오라앗ㅡ!”


“무다앗ㅡ!”


뻐억! 양 주먹이 서로의 얼굴에 명중하였다.


“크.. 크로스 카운터!”


모두가 놀라는 사이, 둘은 쓰러진 몸을 일으키고 다시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그래.. 누가 죽는가 한번 해볼까..”


“이제 그만둬!”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둘, 돌아보니 쿄스케가 화난 얼굴로 째려보고 있었다.


“사야카.. 그리고 히토미! 제발 그만둬. 이렇게 병신같이 계속 싸울거야!?”


“쿄.. 쿄스케..!?”


“카미죠 군..”


둘은 깜짝 놀랐다. 설마 쿄스케가 올 줄이야. 쿄스케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사야카와 히토미의 머릿속을 이미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다. 그런데 그 화난 얼굴도 잠시, 쿄스케의 양 볼이 제법 홍조를 띄었다. 눈이 어디 둘지 몰라 막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일단.. 옷부터 제대로 입어..”


“어..?!” 둘은 자기가 입은 옷 상태를 보았다. 그렇다. 검도복은 남자든 여자든 기본적으로 속옷 하나도 없이 알몸인 채로 입는게 정석이었다. 지금 둘 다 상의의 끈이 다 풀려져 있고 하카마까지 풀릴 듯 말 듯한 상황이라 사야카와 히토미는 얼굴을 붉히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바.. 바보 쿄스케! 이쪽을 보지 마!”


마미는 즉시 쿄스케의 두 눈을 가렸다. 사야카와 히토미는 허겁지겁 옷을 고쳐 입었고 마미가 눈에서 손을 치우자 쿄스케는 애서 진정한 척 헛기침을 몇 번 하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야카.. 히토미.. 둘 다 나를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어.”


“!” 둘이 동시 머릿속에서 느낌표가 떴다. 자신을 좋아한다는걸 알고 있다니. 하지만 계속 쿄스케의 입이 계속 입을 열어서 차마 어찌 말을 못했다.


“...하지만 그 마음.. 고맙지만 둘 다 받아줄 수 없어.


쿄스케는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미안 사야카! 히토미! 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미안!”


충격과 공포가 따로 없었다. 특히 사야카와 히토미는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하고 말았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미죠 쿄스케가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니. 마도카는 떨리는 입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 저기.. 쿄스케 쨩.. 그러면 그 좋아하는 사람은..”


“그래. 나는. 나는...” 카미죠는 저 별빛에 쌓인 먼산을 바라보다가 한쪽을 돌아보았다. 바로 카즈코의 방향이었다.


사오토메 카즈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뭐어어어어어어엇?!!?!?”


모두가 동시에 같은 목소리로 놀랬다. 곧이어, 사야카와 히토미 대결의 당사자는 머리가 제대로 빡쳐 둘 다 이마를 잡다가 입에 거품물고 쓰러지고 말았다.


“사.. 사야카 짱! 히토미 쨩!”


마도카와 호무라가 먼저 달려와 이 둘을 부축해보았다. 하지만 히토미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라고 같은 소리만 하고 있었으며, 샤아카는 “헤헤헤.. 헤헤헤.. 헤헤..” 웃음소리만 계속 흘리고 있었다. 완전히 혼줄을 놓아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고백을 받은 카즈코. 이제 30대를 넘어가기 일보직전인 노처녀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이런 고백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쿄스케의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집안도 좀 부유하고, 유망있는 바이올리스트이기도 하다. 이런 스팩인데다가 나이가 무척 적은 영계남에게 고백받았으니, 보통 여자라면 아싸 좋구나 하고 낚았을 것이다.

하지만 카즈코의 반응은 달랐다.


“미쳤니? 카미죠 군.”


“네..!?” 카미죠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하지만 카즈코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불순이성교제라구. 교칙 위반이야.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서로 분수를 지켜주었으면 좋겠구나.”


“하.. 하지만..”


“미안하지만 나. 제자에게 애정을 품을 정도였다면 선생 따윈 하지 않았단다.”


카즈코의 이러한 거절은 그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쿄스케는 자신이 완전히 버려진 헌신짝처럼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 아드레날린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씨발...”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안에서 욕설과 함께 온 몸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해지려는 순간ㅡ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쿄스케는 갑자기 뛰면서 철창살을 붙들어 매달렸다. 그리고 손과 발로 급하게 기어가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카미죠 군!” 마미가 잡으려고 했지만 급하게 철창살을 올라타니 이미 순식간에 위로 올라서고 말았다. 모두 다 쿄스케가 무엇을 하는지 눈치채고 말았다.


몇 초 후면 그는 뛰어내릴 것이었다.


“사랑 다 X까라 그래!”


그리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카미죠 군!” “쿄스케 쨩!” “쿄스케!”


하지만 이미 쿄스케는 뛰어내리고 있었다. 마치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는 현실 속에 살 수 없다던 45세의 모 한국인 처럼, 쿄스케는 손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체 아래로 떨어지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차마 눈을 뜰 수 없는 장면이 예상되어서 모두 다 눈을 가리고 있는 때.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털석. 쿄스케는 커다란 벚나무 줄기에 매달려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미타기하라 중학교의 잔혹사는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결착되고 말았다.





#.9


“사야카 쨩.” “응.”


“히토미 쨩.” “아.. 예..”


둘 다 전치 2주였다. 아주 만신창이가 되어서 온몸이 붕대와 반창고 투성이지만 눈을 부릅뜨고 볼을 부풀리며 분노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마도카를 차마 볼 낮이 없었기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그 잔혹한 현피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모두가 병신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나 정말 화났어. 이게 누구 때문인지 알아?”


“그야... 나 때문에..” “아니 저 때문이죠..”


“사야카 쨩.” 마도카가 사야카를 부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제야 앞을 바라보았다.


“나.. 나?”


“그래 너 말고 어떤 사야카가 있겠니?”


“으.. 응.”


“이빨 꽉 다물어!”


짝! 마도카의 작은 손바닥이 사야카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목이 홱 돌아갈 정도로 세게.


“사.. 사야카 상.!” “히토미 쨩 너도 마찬가지야!”


짝! 사야카를 쳤던 손바닥이 히토미의 뺨을 쳐버렸다. 얼마나 아픈지 맞아 바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마도카는 금세 표정을 풀고 울기 시작했다.


“싫어.. 이제 이런 건 싫다고.. 흐윽.. 윽.. 으아아아아아..”


“마도카..” 사야카와 히토미는 마도카를 품에 끌어안았다. 마도카는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마구 오열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앙... 정말 죽을 줄 알았다구..! 사야카 쨩도.. 히토미 쨩도..!”


“미안.. 정말로 미안..” 사야카는 마도카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쓰게 웃었다. 히토미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정말 사과했으니까.. 더 이상 싸울 일은 없을 거에요.”


“그래 맞아. 우린 맹세했어. 사오토메 선생님에게 지지 않기로!”


“정말..?” 마도카는 울음을 그치고 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 응하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로 둘 다 싸우지 않을 거지?”


“으응.” “정말이라니까. 그렇지?”


“물른이죠.“ 히토미는 사야카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마도카도 눈가에 묻은 닭똥같은 눈물을 손으로 지우면서 밝게 웃었다.


“다행이다.. 계속 싸울 것 같았거든. 헤헷.”


“훈훈하게 끝난 모양이네.” 쿄코의 목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아보자 호무라와 마미도 같이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두 사람 화해 기념으로 우리 집에서 조그만한 파티를 열 생각이야.”


“마미의 케익과 홍차는 둘이 죽어 하나 먹어도 모를 정도라니깐.” 쿄코가 마미의 말에 받아치자 호무라가 손등으로 쿄코의 어깨를 치며 츳코미를 걸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겠지. 사쿠라 쿄코. 네녀석은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에 불구하지?”


“아니라니깐!” 놀림받은 쿄코가 성을 내자 모두가 폭소를 내고 말았다.


“그럼 우리 집에 놀러가는걸로 하자. 마침 [시스칼리EX5]도 장만한 참이었거든.”


원제는 [진매대섬眞妹大殲 시스칼립스]. 주인공이 전부 여동생 캐릭터이며 각기 개성이 있는 여동생 캐릭으로 대전을 벌이는 대전게임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인기가 있는지라 최고급 언리얼 엔진을 탑재한 EX버전으로 5편까지 나온 참이었다.

하지만 그때. 마미는 몰랐었다. 대전 게임은 아주 훌륭한 우정 파괴 게임이라는 것을.


“#!%@#^@#&*##^@#^@$@!@!!!!!!”


“^#&$%&@#%@^%@#^#$^&#$^@!!!”


콰당! 쾅! 와장창!

"이제 그만해에에에에엣!!!"





그렇게 마미의 집은 멸망했다.


ㅡ후기ㅡ
이런 막장 소설을 쓴 계기는 다른게 아니고 NTR 당해버린 사야카가 하도 애처로워서 썼는데..

어찌 쓰다 보니 김화백 패러디에 온갖 인터넷 패러디가 섞인 괴작이 되어버렸음.

사실 배틀에 대해서 할말이 있다면, 나는 검도만 한 4년정도 했었을 뿐이지만 이도류도, 나기나타도 배운 적은 없어.

이도류 같은 경우에야 전국대학연맹전에 많이 봤지만 나기나타는 한국에서 부리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인터넷 검색해서 동영상으로 보고 참고했을 뿐이다.

왜 굳이 이도류와 나기나타냐면.. 글쎄. 히토미야 야마토나데시코니까 나기나타가 절대적으로 어울렸지.

하지만 사야카에게는 이상하게 양손무기가 어울리지 않더라구. 그래서 어찌 생각해보다가 이도류를 쓴거고..



여튼, 여러모로 부족하기만 한 내 잉여스러운 막장 소설을 읽어주셔서 고맙다. 질질 쌀 것 같다.

배고프니까 일단 밥좀 먹고, 다음 소설을 써야 할것 같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창작게시판 사용안내 [12] 하레 2011.04.26 14474
35 저도 창작물 하나 올립니다. [6] 하히루 2011.05.08 433
34 이 새끼들이! 창작게를 활성화시키 위해서 내가 나서겠다! [3] 리카아메 2011.05.08 297
33 엑박 기념으로 한 장 더 [3] 古戸ヱリカ 2011.05.07 199
32 일상 방영 4시간전 설렌다. [5] 하히루 2011.05.07 366
31 창작갤을 밝히는 그림하나 [11] 古戸ヱリカ 2011.05.07 263
30 [자작 매드 무비] 아노하나 - Color of Happiness [8] 오보에 2011.05.07 1411
29 [자작 매드 무비] Puella Magi Madoka Magica Mad movie - Canon D [15] 오보에 2011.05.07 289
28 2011/05/06 산다이바나시:눈,무음,창가에서 [2] 세인트윈터러 2011.05.07 277
27 2011/05/06 산다이바나시 - 다리털 겨털 항문털 [9] 쿠로누마사와코 2011.05.07 449
26 유키아츠 성 정체성을 깨달은 기념 한컷 [4] 리카아메 2011.05.07 356
25 2011/05/06 산다이바나시 [5] 롤링주먹밥 2011.05.06 226
24 자작 매드무비 초속 5cm 『Time to say it』 [10] 모순나선 2011.05.06 225
23 나갈없사람들은 다들 인재들이라 그림 올리기가 무서워져 [14] 커티샥 2011.05.06 297
22 아바.swf [2] 쓰르 2011.05.06 270
21 SD잘그려서 만화그리고싶다 [1] 요리밍 2011.05.06 334
» [마마마 일상 시리즈] 미타기중 잔혹사 見滝中殘酷史 ㅡ下ㅡ [6] 세인트윈터러 2011.05.05 215
19 1년 반 전 쯤 그린 그림 [4] 밀레이유 2011.05.05 261
18 자작 공의경계 매드무비 『Not nothing heart』 [4] 모순나선 2011.05.02 422
17 전투 와중에도 호무라는 호무호무스러워. [5] 古戸ヱリカ 2011.05.02 430
16 [마마마 일상 시리즈] 미타기중 잔혹사 見滝中殘酷史 ㅡ上ㅡ [26] 세인트윈터러 2011.05.02 35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