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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2011/05/06 산다이바나시

2011.05.06 21:52

롤링주먹밥 조회 수:226

미소년 동전 학교



20시 47분 시작

-엄마, 난 왜 남자로 태어난거야?
-엄마, 난 왜 여자가 아니였던거야?
-엄마, 언제나 처럼 웃으면서 대답해줘요. 엄마....

어두 컴컴한 방. 쾌쾌한 곰팡이 냄새.
더이상 들릴리 없는 목소리가, 오늘도 내 마음을 채워나간다.
-응. 고마워요. 엄마. 나 조금만 더 힘낼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불단에 올려진 사진과 그 앞에서 타오르는 향 냄새가, 그 소년의 뒷모습을 배웅해주고 있었다.

학교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나는 학교가 싫었어.
내가 싫어도 남자임을 자각하게 되는 장소.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내 안에 있는 '남자'를 자각하게 해.
사내자식들과 체육시간에 앞서 옷을 갈아입을때.
출석번호가 여자랑 떨어져 있을때.
화장실엔 어김없이 파란색 남성표시가 붙여져 있을때.
그리고....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내 가슴이 두근거릴때.

난 어릴적부터 여자같은 녀석이라고 놀림 받고 자랐어.
곱상한 녀석. 기생오래비 같은 놈. 개중엔 미소년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건 나한테 있어서 언제나 있는 일이였지만, 어렸던 나는 부조리한 폭력과 모욕에 견딜수가 없었지.
그랬던 내가 무엇보다도 내 안의 '남자'를 증오하고, 여자가 되고싶게 된건 두명의 여자 때문이야.

한명은 우리 엄마.
내가 철들 무렵부터 아빠는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엄만 날 혼자서 키워주셨지.
단 한명의 가족. 상냥했어. 아름다웠어.
그리고 그 무엇보다, 엄마의 미소는 내 모든걸 감싸주는 듯 했지.
기집애라고 놀림받고, 얻어맞고 돌아온 날은 어김없이 나한테 그 자상한 미소를 보여줬었어.
울다 지쳐서 엄마품에서 잠드는 날이면, 싫은 일 따위 전부 잊을수 있을것 같았어.
하지만 그런 엄마는, 날 내버려두고 1년전에 하늘나라로 떠났어.
그 날은 내가 심하게 다친 날이였어. 단지 생긴게 여자 같다는 이유만으로 난 모두의 장난감 취급이였으니깐.
심심풀이로 계단에서 떠밀어진 난, 그대로 넘어져 머리를 다치게 되었어.
병원에서 눈을 뜬 날 기다리고 있었던건, 엄마의 자상한 웃는 얼굴이 아닌 경찰이였지.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하더라. 내가 있는 병원으로 오는길에.
경찰아저씨, 농담이죠? 
그럴리 없었어. 오늘도 엄만 나에게 미소지어 줄 거였거든. 그러면 내일도 싫은 일은 모두 잊고 살아갈 수 있었거든.
그래도 엄만 돌아오지 않았어.
불이꺼진 병실에서 몇일을 기다려도, 엄만 돌아오지 않았어.
엄마대신에 날 찾아온건 엄마가 남긴 유품이였지.
내가 여자였다면... 여자처럼 생긴 여자애였다면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을텐데.
내속에 남겨져 있는 '남자'가, 엄마를 죽인거나 마찬가지야.
엄마, 난 왜 여자가 아니였던거야?

또 다른 여자는 그녀야.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같은 반이 된 그녀.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밝은 성격인 그녀는, 나같은 녀석과는 달리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였지.
나 또한 그녀의 따스함에 이끌린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만난적도 없는 친척에게 거두어졌지.
돈은 많았지만 어디론가로 사라진 아버지의 친척인 그사람은, 나에게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 하나를 얻어줬지.
원래부터 여자같이 생겼다고 괴롭힘의 대상이였던 난, 더더욱 침울한 분위기의 인간이 되었고
학교에선 나에게 말 걸거나 신경쓰는 사람 하나 없었어. 괴롭힘을 지나 무관심의 대상이 된거야.
그런 나에게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대해줬어.
아니, 다른사람보다도 따뜻하게 대해준거 같아. 그게 동정이든, 연민이든 나에겐 둘도 없는 구원이였어.

- ....는, 정말로 여자애같이 귀엽구나? 음.. 뭐라고 하지? 미소년? 
  지금도 충분히 귀엽지만, 정말로 여자아이라면 얼마나 귀여웠을까? 그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텐데.
  둘이서 맛있는거 먹으러 가고, 옷도 구경하러 가고.. 응.  그림의 떡인가? 아, 조금 다르겠구나 히히.
  음. 남자인게 아깝단 말이지-

정말 유치한 이유였어.
엄마도 없고, 나에겐 단 한명의 친구였던 그녀가 어느날 나에게 건네준 그 말.
여자였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녀의 웃는 얼굴을 더 가까이서 볼 수만 있다면, 남자따위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를 볼때마다 두근거리는, 이 한심한 '남자'따윈 필요 없었는데...

나는 학교가 싫었어.
엄마를 나한테서 앗아간 그곳. 그녀를 만나는 기쁨과 괴로움을 동시에 주는 그곳...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엄마, 다녀왔습니다...
사진속의 엄마는, 오늘도 자상한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더이상 들릴리 없는 목소리가, 날 맞아주었어.

난 엄마의 유품을 찾아서 꺼내 보았어.
유럽의 어떤 나라인지, 언제 만들어진건지 알수도 없지만 양면으로 새겨진 오래된 동전 하나.
엄마가 남긴 편지엔 이런 말과 함께 이 동전이 들어 있었어.

- 언젠가 네가, 이 동전의 의미를 알아주었으면 한단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너에게.

엄마, 사실 난 어렴풋이 엄마가 말하고자 하는걸 알거 같아요.
매일같이 여자같은 '남자'라는 이유 만으로 괴롭힘 받아야 했던 내가,
그녀에게 있어서 '남자'보다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내가,
사실 누구보다도 '남자'로서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걸 깨달았을때 부터....

동전에는 언제나 양면이 새겨져있죠.
겉면과 뒷면. 앞과 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선 남자와 여자.
그렇지만 동전은 언제나 양면이 떨어지는 일도 없어요.
화려한 겉면과 수수한 뒷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그건 한개의 동전.
얼마만큼 떨어지고 싶어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건 한개의 동전.
내가 남자를 증오하고 여자가 되고싶다고 생각한다해도... 그건 한명의 인간.

사실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어요.
단지 난 두려웠던 거에요. 엄마를 앗아간 내안의 '남자'를 인정해버리면, 엄마가 내 안에서 사라지는게 아닐까...
그녀에게 솔직한 '남자'로서 다가간다면, 그녀가 날 피해버리고 마는게 아닐까...
엄마의 자상했던 미소와 그녀와의 따듯한 추억들을, 난 잃고 싶지 않았으니깐...
그래도 엄마. 
고마워요.
여기서 한걸음 내딛지 않으면, 물론 엄마와 그녀를 잃어버릴 일은 없겠죠.
하지만 그건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것과 같아요. 이런...이런 괴로운 날들이 영원히 지속되는거 같겠죠.
그러니깐 난 조금만 더 힘낼게요.
고마워요 엄마....


어두 컴컴한 방, 타오르는 향 냄새를 뒤로하고 소년은 집을 나선다.
학교를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그리고....
눈 앞에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한명의 소녀.

- .... 좋은 아침! 오늘은 평소랑 달라보이는걸?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 저기.. 있잖아... 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있어..? 

소년의 손에는, 단 한개의 동전.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그림은, 어쩌면 자상한 미소와도 닮아있는거 같았다.


21:52 종료





야호! 기병병병! 산다이바나시 쓰기 어렵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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