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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시작:2011 5월 25일

주제:[달,그녀,라디오]

시작

 

20xx710

 

끝이 보이지 않는 고시생 생활.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생각과 무력감에 애꿎은 라디오 주파수만을 조절하고 있었다.

유명한 지상파 방송들의 라디오. 짐짓 쾌활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BJ, 속보를 보내고 있는 뉴스 라디오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추억속에 묻힌 추억의 노래들.

저마다 가지각색의 내용을 풀어나가며 청취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지루해.’

 

결국, 원하는 라디오 방송을 찾지 못한 나는 방바닥으로 MP3를 던져버렸다.

순간, 바닥에 떨어지면 MP3가 고장 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불안감도 어느새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지루함에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조용한 실내.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적막한 집안.

주위 모든 사물이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그때, 바닥에 떨어졌던 MP3가 눈에 들어왔다. 96.7Mhz. 한 번도 잡힌 적 없는 주파수였다.

하지만, 그런 내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mp3에 꽂힌 이어폰에선 라디오의 방송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 방송을 시작하지 않은 것 일까? BJ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만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분명히, 주파수는 아무것도 없는 빈 주파수 일 텐...”

 

이해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머리만을 긁적거리던 나는 더 이상의 고민을 접은 채 이어폰을 귀에 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간대에는 할 만한 일도, 들을만한 다른 라디오 방송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귀에 꼽힌 이어폰에서는 흘러나오던 월광 소나타가 끝이 나고, 방송을 시작하는 BJ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나이는 15, 16쯤 되었을까? 변성기가 아직 채 시작되지도 않은 듯한 높은 목소리는 빈말으로라도 고등학생 이상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생도 되지 않은 듯 한 여자애가 어떻게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일까?

머릿속에선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갔지만, 내 정신은 어느새 이어폰 속에서 들려오는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오늘도 달밤의 라디오 시작합니다! 물론 지금 들으시는 청취자 분들 중 밤이신 분들도 있으실 것이, 낮이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말이죠.]

BJ의 약간은 들뜬 듯한 오프닝 멘트와 함께 방송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비구름 때문에 달이 보이지 않는 밤이네요. 하지만 이런 우울한 날씨에도 방송은 계속 돼야 하겠죠. 여러분과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기껏 들을만한 라디오 방송을 찾았다 했더니흥은 깨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이런 내 생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BJ는 방송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내 기억이 BJ에게 까지 전달된다던가 하는걸 기대한건 아니지만 말이지.

 

[오늘은 비가 오고 날씨도 꿀꿀하니 바로 청취자 사연으로 넘어가도록 할게요. 그럼, 첫 번째 사연입니다.]

 

잠시간의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 사연이라니, 예전 추억이 생각나 나쁘진 않지만 말이야.

 

[저는 미대 입시생입니다. 저희 입시 학원에선 취미반과 입시 반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취미 반에서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그림은 뭐라고 해야 할까오른쪽 귀퉁이엔 1이란 숫자가 적혀져 있고, 무엇인가 터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누굴까요? 그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처음 사연부터 정상이 아니잖아! 물론, 이런 방송도 기묘하고 좋긴 하지만.’

 

[흐응. 귀퉁이에 1이란 숫자와 무엇인가 터지는 그림이라. 혹시 그런 그림을 그린 당사자는 욕구불만이었고, 자신이 첫 번째로 싫어하는 대상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 게 아닐까요? 히히. 아니면, 그 당사자가 첫 번째로 한 실험의 결과가 그렇게 돼버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두 번째 사연으로 넘어가도록 할게요.]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함께 잠시간의 적막함. 사라진 주전자 끓는 소리와 이따금 들리는 무엇인가를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주전자로 끓인 커피나 차 같은걸 마시고 있는 거겠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로 인해서 진행이 늦춰진 것 같네요. 그럼, 두 번째 사연입니다. 이번 사연은 좀 기묘하기도 하고 으스스 하기도 하네요.]

 

다시금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까 모두 정리한 게 아니었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무렵, BJ가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름과 성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 예전 달밤의 라디오 사연 중에도 익명 사연이 많았으니 별로 상관없겠죠?

저는 어릴 적 곧 잘 우는 성격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제일 막둥이로 태어나 부모님들이 어리광쟁이로 키우셨기 때문이었죠. 저는 울음이 나올 때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울곤 했어요. 이런 어머니는 저를 위해, 울음이 나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진정하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도움에도 제 나약하고 겁쟁이 같은 성격은 그다지 고쳐지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밤, 저희 집엔 어떤 남자가 숨어 들어왔고, 제가 방에서 창문으로 달을 바라보는 동안, 어머니를 난도질 해버렸어요. 저는 겁이 났지만, 달을 보며 울음을 참았어요.

그 뒤로, 새어머니가 오시자 제 버릇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저는 제 겁쟁이 같은 성격을 어머니를 잃은 충격에 고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BE는 꽤나 긴 사연에 숨이 차는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간간히 무엇인가를 마시는 소리로 유추해 보건데,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BE 목소리와 매치가 되지 않는 이런 기묘한 사연들은 누가 보내는 것일까?

 

[죄송합니다. 사연이 생각보다 길어서 말이죠. , 이번 사연은 꽤나 기묘하지 않나요? 달을 보며 성격을 이겨낸 주인공이라마치, 어렸을 때 읽은 동화의 주인공 같네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세 번째 사연으로 넘어갈게요.]

 

다시금 종이 넘기는 소리. 아마, 이 방송은 모든 사연을 편지로만 받는 것 같았다.

 

[이번 사연은 일기형식이긴 한데저도 뭘 의미하는 진 잘 모르겠네요.

 

07.19

 

저희 연구팀은 이 실험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전혀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한 걸음 발을 내딛게 됩니다.

 

07.20

 

저희 연구팀은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실험 키워드: 독수리, 11, 고요의 바다]

 

사연이 끝난 뒤, 어느 노래인지 모를 경쾌한 가락이 흐리기 시작한다.

BE도 사연을 정리하는 중인지, 경쾌한 노랫가락 사이사이로 종이 부스럭대는 소리와 컵 옮기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3분여의 시간이 흐르고, 경쾌한 가락이 끝남과 동시에 BE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했다.

 

[, 오늘 사연 어떠셨나요? 제가 방송하는 이 사연들은 진실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파라노아야 환자들의 거짓말일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우리는 바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방송매체들에 기대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곳의 일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 제 방송으로 사연을 듣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들처럼 말이죠. 시간이 다 돼버렸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BE의 인사 뒤로 길게 끌리는 경쾌한 음악소리. 그 음악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주파수는 예전에 내가 아는 것처럼 침묵 속에 잠겨버렸다.

마치, 내가 오늘 들었던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20xx79

 

오늘은 어제와 다리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정규 지상파 라디오 방송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일 규칙적인 방송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고시 공부를 집어 던진 채 침대를 뒹굴 거리던 나의 머릿속에 문득 BJ의 마지막 멘트가 떠올랐다.

 

[이따금 망원경을 통해 달을 바라보세요. 그럼, 어느새 주변의 일들을 관찰하고 있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주변의 일들?

BJ의 말을 한참동안 곱씹던 나는 더 이상의 추리를 포기한 채,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힌트도 없이 머리를 굴리는 건 시간낭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창고에 박혀있던 천체 망원경을 꺼내 옥상에 설치, 몸체에 쌓여있던 먼지 제거, 렌즈 확인 등을 끝낸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천체 망원경을 꺼내야겠단 생각을 실행에 옮긴지 2시간여만의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참 푸르구나.’

 

어제의 장대비 때문이었는지, 오늘은 구름하나 없는 깨끗한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하늘 안에 박힌 듯 푸르게 빛나고 있는 보름달.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마음에 품은 채, 망원경을 통해 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리도록 푸르고 사람을 잡아끌게 만드는 울퉁불퉁한 표면.

찌들만큼 찌든 나의 마음속에 빛을 불어 넣어줄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지만, 나에겐 어렸을 적 관찰했던 보름달의 모습 그 이상의 느낌을 받을수 없었다.

내가 무슨 기대를 하고 달을 관찰했었던 것일까? 사람? 아니면 지금 이 생활을 정리 시켜줄 구세주?

헛된 희망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망원경에서 눈을 뗀다.

 

내가 이렇게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했었던 것일까?”

 

나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줄것이란 마지막 희망을 떨쳐 보내며 망원경을 접으려 하던 그 순간 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전화올 사람이? 아니, 그보다 나에게 전화를 해줄 사람 자체가 없을 텐데

.

이건 분명히 다른 사람의 핸드폰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핸드폰 벨소리는 내 주머니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여보세요?”

 

거기에서는 달이 보이시나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여성의 목소리.

하지만, 이 목소리는 오랜만에 들어봤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였다.

14, 15쯤 된 듯한 낭랑한 목소리.

 

여보세요, 누구신데요?”

 

거기에서는 달이 보이시나요?”

 

?”

 

이상할 정도로 나지막한 목소리. 왜 전화 걸었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 분명히 이 목소리는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내 머리는 이상하리만치 회전이 되지 않고 있었다.

누군지는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상태. 매우 불쾌한 감정이었다.

 

, 여기서 달은 잘 보입니다만.”

 

휴대폰을 귀에 바싹 밀착 시킨 뒤, 떼었던 망원경으로 다시 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리도록 푸른 보름달. 첫날밤 새색시처럼 자신의 몸을 가리며 부끄러움을 타지만, 오늘 만큼은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기를 꺼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제가 있는 곳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아요. 달은 아름다운가요?”

 

당신은 어디시죠? 그쪽은 지금 낮인가요?”

 

어제까지가 낮이었으니밤까지는 27일 하고도 8시간이 남았네요.”

 

27.3시간? 나는 그제야 익숙했던 목소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달밤의 라디오. 27.3. 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

에서는 자체를 볼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달에 있나요?”

 

. 방송을 들어주셨군요.”

 

장난기 어린 그녀의 대답.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방송을 들어주었다는 데에 대한 고마움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대답에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을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듣던, 달에 연결되어 있는 누구인지 모를 그녀와 도시전설처럼 대화를 할 수 있다니.

 

당신은 저를 보고 싶지 않나요?”

 

보고 싶습니다, 무척이요.”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보면 저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어디, 어디 있어요?”

 

달은 넓다. 망원경으로 특정한 인물을 찾기에는 무척이나 넓었다.

 

고요의 바다를 찾아보세요. 저는 거기에 있어요.”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litatis)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 N.A 암스트롱이 처음 월면에 발을 디딘 그 곳. 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바다 중에 한 곳 이었다.

물론, 물이 없고 파도 소리는 더더욱 들릴 수 없었기 때문에 sea라는 단어는 붙지 못했지만

.

 

보입니다. 당신이 보여요.”

 

고요의 바다, 그 넓은 평야 한가운데에 태초부터 존재 했던 듯이 굳건히 서 있는 전화박스 안에 그녀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만지면 흘러내릴 것 같은 아름다운 바닷빛 머릿결. 새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이 그녀를 더욱 어리게 보이도록 하고 있었다.

수화기를 든 채,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있는 그녀.

 

거짓말.”

 

정말입니다. 정말 당신이 보여요.”

 

여전히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왜 그런 것일까?

 

당신은 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흘러가버린 저의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이죠.”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내 말을 막아서고 도리어 질문을 던져오는 그녀. 그녀의 표정에는 전에 없던 쓸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나는 가슴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쓸쓸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오늘은.”

 

, 이제 동전이 다 되었어요. 이제 그만 끊을게요.”

 

, 잠시 만요!”

 

이 날이 오기 전에 .라디오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고마워요.”

 

오늘 이후로 다시 라디오를 들을 수.”

 

[찰칵]

 

, 여보세요?”

 

.”

 

그녀와의 전화가 끊겼다. 동전이 떨어졌다는 것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와의 전화가 끊긴 후, 전화박스에 쭈그려 앉아 버렸다. 어깨가 간간히 들썩이는 것을 보니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물론 이것도 현재가 아닌 과거의 그녀의 모습이겠지만.-

그녀는 전화박스를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

 

불안한 마음과 슬픈 마음이 뒤섞이고 있던 그때, 한 가지가 불연 듯 뇌리를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말했던 오늘의 의미. 720, 암스트롱, 고요의 바다, 아폴로 11,

 

, 조심해!”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던 내 두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보았다. 전화 박스에 앉아 울고 있는 그녀의 뒤로 새하얀, 그리고 등 뒤로 꽂혀 있는 성조기가 달린 우주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가 다가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피해요, 피해!”

 

하지만 내 목소리가 달까지 들릴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계속해서 울고만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주위까지 다가온 거구의 우주복 사내의 오른손에는 시퍼런 빛이 번뜩이는 대검이 들려 있었다.

 

피하라니까요, 어서 피해요 제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느끼지 못한 채, 흐느낌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알려 줄수 없는 상황에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새 그녀도 인기척을 느끼고 무엇인가 앞에 있다는 느꼈을 때, 사내가 들고 있던 대검은 이미 그녀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시퍼런 검신에서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는 액체, 가느다랗게 경련을 일으키는 그녀의 팔, 다리. 뒤를 돌아보며,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동자. 나는 그녀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쓰러진 채 구토를 하고 말았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구토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겨우 몸을 추스른 나는 그녀가 있는 고요의 바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느다랗게 경련하던 그녀의 모습도, 그녀의 가슴에 대검을 박아 넣는 사내의 모습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공중전화 박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치, 공연을 끝내고 텅 비어버린 무대 위처럼. 단지, 그 자리엔 철봉으로 된 성조기 하나가 굳게 박혀 있었다.

 

그 이후, 모든 잡념을 털어버린 나는 고시 생활에 열중할 수 있었고 그 해 고시생 생활을 청산할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생 생활을 청산 한 뒤에도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라디오 방송, 그녀와의 목소리, 그녀의 존재.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다만 꿈과 다른 것은 그녀의 라디오 방송 녹화본과 문자 메시지 한통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증거의 유무라고 해야 할까?

 

그녀와의 전화 통화 후, 망원경을 정리하던 내 핸드폰으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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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쓴 글이고 내가 그냥 꼴리고 손가는데로 쓴거라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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