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내가 살아가고 있던 곳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하늘에 빛나던 별은 달밖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거지에는 평범한 주택과 아파트, 상업지에는 오륙 층짜리 빌딩이 늘어선 평범한 중소도시는 이제 마천루가 빽빽이 늘어선 대도시가 되었다. 대체 어떻게 변해버린 것일까. 잠에 깨어났을 때 60평짜리 넓은 방의 침상에 누운 채로 창문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일 뿐, 만약 꿈이었다면 오감으로 느낄 정도로 생생할 리가 없었다.
달력은 시간이 80년 후를 달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으며 내 몸은 17살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었다. 80년이면 사람이 살아가고 죽을 만한 시간이다. 그런 세월이 지났는데도 나는 전혀 늙지 않았다. 쓰러진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이율배반에 나는 황당했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다 결국 참을 수 없었다. 두 눈에 물기가 흐르며 입은 한탄을 부르짖었다. 80년 동안 잠들었던 시간은 나에게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랑했던 사이까지 앗아가고 말았던 것이었기에.
슬픔은 눈물로 일부나마 씻겨졌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외로움과 불안감이 차지하고 말았다. 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될까. 누굴 위하여 살아가야 할 것인가,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80년 전이었다면 아마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며 내가 사랑했던 그녀와 같이 즐겁게 지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지금의 나에겐 전혀 허락하지 않았다. 전부 죽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다. 나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인가였다.
마음 깊숙히 느끼는 충격을 추스르기 위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몸을 움직여서 몸의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고, 과거에 즐거웠던 시간을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머리의 이상을 체크해봤다. 하지만 몇 번이나 되풀이해도 나는 여전히 17살의 모습 그대로라는 결론은 계속해서 나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에 서서 창문에 비치는 풍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깨어난 순간만 해도 나는 다른 도시로 끌려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밖에 보이는 산과 강과 호수들은 내가 태어나 살고 있었던 그곳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방에는 침상과 심박을 측정하는 의료기구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사실 달력이 가리키는 80년 후가 별로 믿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이곳이 먼 미래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고개를 끄덕일 이성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납득할 수 있었다. 주위에 흐르는 공기가 이곳이 80년 후란 걸 피부 속으로 깨우치게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도 확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완전히 우라시마 타로군."
다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 잠도 오래 걸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시계는 30분 후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 앞에는 밤색 머릿결의 미남자가 있었다.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으며 목에 청진기를 걸고 있고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아하니 의사인 것 같았으며, 가슴 쪽의 호주머니에서 박아놓은 한자로 보아 성은 쿠사나기(草薙)인 모앙이었다.
닥터 쿠사나기. 그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웃으면서 이렇게 인사했다.
"안녕. 우라시마 군."
참고로 내 성은 우라시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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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나온 정체(停滯)는 오네가이 티쳐에 나오는 그 정체다.
그러니까 의식불명으로 쓰러지면서 사람의 성장마저도 멈추는 트라우마성 희귀병인데
짧게는 1-2시간, 그러나 길게는 6년.. 그리고 이 위의 글처럼 80년까지 쓰러지는 그런 병임.
그래서 이 정체를 소재로 삼아 쓴 소설이지.
비밥의 페이 발렌타이 관련 에피소드가 더욱 연관되는 소재인데
기간이 너무 오래되서 콜드슬립 관련 SF가 되버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