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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어젯밤 꿈에 키리노가 나왔어."

"키리노? 설마 내여귀의 코우사카 키리노?"

"응"

"뭐야 그게… 키모오타 돋네…"

"너무하네. 오타쿠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좋아하는 캐릭터 꿈 꿔보는 거 잖아?
 첫 째로 좋아하는 캐릭터랑 둘 째로 좋아하는 캐릭터와 함께 작품을 넘나드는 3P를 꿈 꿔 보는 거잖아?
 왜 그래. 좋아하는 피규어로 자위 한 번 안해본 사람처럼."

"진심이냐… 나 지금 소름 돋았거든? 진짜로 기분 나빠졌거든?"

"당연히 개드립이지."

부응- 부으으응-

"아, 커피 나왔나 보다. 내가 가져올 게."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 분의 커피를 가져온다. 아메리카노와 캬라멜 마끼야또.
단 걸 좋아하고 쓴 것은 싫어하는 나로서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취향이니까 존중해 줘야 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구태여 묻고 만다.

"아메리카노 커피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응?"

"그거 엄청 쓰잖아. 저번에 한 번 먹어봤더니 맛이 꼭 보약 먹는 것 같던데. 너무 써서 설탕을 네 봉지나 부웠는데도 쓰더라."

"네 봉지나 부웠다고?! 으이구, 넌 그냥 앞으로도 캬라멜 마끼야또나 먹어라."

"말하지 않아도 두 번 다시 아메리카노 따윈 마시지 않을 생각이다. 넌 그 보약 같은 국물이 안 쓴거야?"

"그야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쓰지."

"엑, 그런데도 먹는 거야?"

"조금 쓰긴 해도 맛있다고. 네 입맛이 초딩인 거야."

"그래그래. 난 앞으로도 핫초코나 이 캬라멜 마끼야또나 마시겠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생을 살고 싶어. 그냥 초딩 입맛으로 살래."

"으이구…"

유동인구가 특히나 많은 이 번화가도 평일의 아침에는 과연 한산하다. 주말이라면 커플로 북적였을 이 카페도 지금은 자리가 텅텅 비어있다.

"모닝커피를 마시니까 좋네."

"왜? 뉴요커가 된 기분이야?"

"그래.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니 뉴요커가… 된 기분일리가 없잖아 멍청아. 맨날 개드립이나 치고."

"널 즐겁게 해주기 위한 나의 소소한 배려야."

"어이구- 감사합니다.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아니, 무릎은 됐고. 그냥 자살해. 유서에 감사하다고 내 이름 쓰고."

"너 말이야… 개드립인 건 알지만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미안하다. 사랑한다."

"됐다됐어."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이런 식이다. 가벼운 우스갯 소리를 주고 받는, 위스퍼 처럼 가벼운 그런 느낌.

"새, 생리대로 비유하지 말라고 멍청아!"

"으아니 왜 멋대로 남의 생각을 읽고 그래요!?"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기 보다는 만담 커플이란 느낌이랄까. 친구처럼, 연인처럼, 남매처럼.

"아까 꿈에서 키리노가 나왔다고 했지?"

"응?"

"어떤 꿈이었어?"

이미 끝났을 화제를 다시 꺼내는 그녀. 시선을 슬쩍 피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수상 쩍었다.

"그건 왜?"

"왜냐니. 니가 궁금하게 만들었잖아? 제대로 얘기를 해보라고."

태연한 척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와의 오랜 사귐은 겉치레가 아니다. 이 녀석, 지금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

"그렇게 궁금해?"

"별로. 어짜피 별 것도 아닌 개꿈이겠지만 이대로는 좀 찝찝하니까."

"흐음~~"

"뭐야! 잔말 말고 그래서 무슨 꿈이었는데?"

이봐, 엄청나게 티나잖아. 신경 쓰고 있는 거. 은근히 다혈질인 녀석이니 어쩔 수 없겠지.
별로 숨길 일도 뭣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솔직하게 말한다.

"키리노랑 섹스하는 꿈이었어."

"자, 잠깐!! 뭘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 거야 멍청아! 조용히 말하라고!"

"아니, 니가 말하라고 해서 말한 것 뿐인데…"

행여나 주변 테이블에서 들었을 까봐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그녀. 여중딩도 아니고 뭘 그런 걸 가지고 부끄러워 하고 있어. 귀엽게 시리.

"으이구… 물어본 내가 바보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냐!"

"헤헤. 뭘 그렇게까지야~"

"칭찬하고 있는 거 아니거든!"

물론 칭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일부로 태클을 걸 수 있도록 바보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바보 짓을 하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그녀가 태클을 걸어온다. 얼핏 티격태격 하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
하지만 그렇기에 이토록 친구 처럼, 가족 처럼 편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사귈 수 있었던 것이다.

"키리노도 좋지만. 역시 난 네가 제일 좋아."

"뭐, 뭐…"

조금 전까지 장난쳤던 것을 잊었다는 듯 급 진지하게 정색하며 그렇게 말하자
이번 것은 예상치 못했는지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고 만다.

"네가 연기한 캐릭터들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너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타케타츠 아야나야."

"다, 당연하잖아 그런 건! 여자친구니까!"

뭘 세삼스럽게 아침부터 낯부끄러운 소리르 하는 거야 이 녀석은 하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던 아야나는
이내 무리하게 관리하던 표정을 무너트리며 웃고 만다. 그 모습에 나도 웃는다.

"뭐, 처음에는 키리노가 좋아서 담당성우도 팠다는 느낌이었지만 말이야."

"최악이야…"

"나 말이야. 자신이 오타쿠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 왔었지만,
 오타쿠였기에 널 알게 되고, 만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해. 오타쿠여서 다행이였단 생각이 들어."

"흐응… 그렇구나…"

"넌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얼굴도 귀엽고, 성격도 좋고, 감사하게도 취미도 맞지.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목소리라고 생각해. 너의 목소리는 정말 최고야."

"프로 성우니까 당연하잖아."

"그래서 이번에 프로성우님을 좀 캐스팅 하고 싶은데 어때?"

"캐스팅? 너 이쪽 업계에서 일하지 않잖아? 무슨 캐스팅?"

"나 핸들네임 키리린님의 요메 역 성우로 부디 꼭 좀 캐스팅하고 싶은데. 어때?"

그렇게 말하며 어젯 밤 부터 주머니 속에 고히 모셔두었던 반지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몇 달 분의 월급을 모아 산 비싼 녀석이다. 사이즈도 그녀의 네 번 째 손가락에 딱 맞춘.

"제 부인 역 성우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도라에몽 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작품입니다만 어떠신지요?"

마지막까지 어디까지나 장난스럽게, 그러나 눈만은 진지하게.

"………"

놀란 눈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
음… 설마 싶지만 거절 당하는 것은 아니겠지?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어젯 밤 부터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얼마나 계속 되었던 것일까? 10초? 1분?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긴장이 커져만 갔을 때 돌연 정적을 꺠며 그녀가 말한다.

"제 성우 랭크는 좀 비싼데요~ 제대로 지불하실 수 있으신가요?"

"으음~ 얼마나 비싼가요?"


"그쪽 분 능력으로는 아마 일생 절 위해 일해야 될 듯 하네요."

장난스러운 고백에는 장난스러운 답변이라 이건가.
고르고 고른 그녀에게 어울리는 예쁜 반지를 그녀의 왼손 넷 째 손가락에 끼워주며 말한다.

"물론이지요. 아야나님. 부족한 돈은 몸으로 지불하겠습니다. S라도! E라도! X라도!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싫다- 뭐니 그게."

태연한 척 마지막까지 농담을 내뱉는 나였지만, 가슴은 긴장으로 터질 것 같고, 목은 1분 사이에 벌써 말라버려서,
다시 목을 적시려고 커피를 집어 단번에 쭈욱 하고 들이마신다.

"아- 그거 내 아메리카노…"

"응? 아, 아아 미안."

"으아… 뭘 한 번에 이렇게나 마시는 거야. 써서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게 말이지…"

설탕 네 봉지를 넣어도 써서 못 마시던 커피가 지금은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져 버렸다고는… 쑥스러우니까 말 할 수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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