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단편

2011.12.08 09:25

무언가 조회 수:194

 "안녕하세요."

 나는 90도로 인사하고 그 자리에 들어갔다. 회사의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보니 귀찮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남자 아이들이 왼쪽, 여자 아이들이 오른쪽, 어른들이 가운데에 앉게 되었고, 남자 어른인지 남자 아이인지 구분하기 힘든 나는 그 중간에 앉게 되었다. 그렇게 구분하기 힘든 만큼, 나는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그저 내 앞에 나온 스테이크를 조용히 썰고 있을 뿐이었다. 나 이외에도 겉도는 존재가 있다는 걸 느꼈을 때는, 그리고 그녀가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내가 스테이크를 반쯤 먹었을 때였다. 

 대략 3달 전에 직업체험으로서 우리 아버지가 일하는 장소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배운 적이 있다. 물론 아버지의 직업은 물려받을 수 있는 종류의 직업도 아니었고, 내가 물려받고 싶은 직업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회사 분위기를 배우는 데는 적합했고, 딱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나에게 직업체험의 기회를 줄 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결국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 가서 직업을 체험했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그 중에 그녀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젊었다. 물론 젊다고는 해도 아버지 회사에 들어올 정도면 기본적으로 대학교는 졸업했을 터니 적어도 25세 이상일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다른 사원들에 비해 굉장히 젊었다. 그리고 그만큼 회사에서 낮은 자리였다. 

 그 때는 별로 그녀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밖에 모른다. 굳이 더 아는 걸 말하라고 하면, 그 때 그녀가 나에게 흑설탕 캔디를 줬다는 것 뿐이다. 그것 뿐. 아예 모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였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 나와서 다른 사람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녀가 굉장히 예뻐 보였다. 내가 마신 건 콜라였다. 아버지가 마시고 있는 생맥주도, 지점장님이 마시고 있는 포도주도 아니었다. 결국 취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뻐 보였다. 첫 인상과는 다르니까 실제로 예쁜지는 모르겠다. 

 나는 문득 그녀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보고 싶어졌다. 그걸 위해서 내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작은 부채였다. 그걸 내 오른쪽에 슬쩍 놓았다. 아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녀는 분명히 그 부채를 궁금해하리라는 예상이었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녀는 빈 접시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그리고 부채를 발견했다. 그녀는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물어봤다. 

 "이거 잠깐 봐도 돼?"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 부채를 펴보았다. 작은 부채에는 붗으로 그린 듯한 꽃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진짜로 그려진 건 아니고 인쇄일 뿐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그녀의 오른손도, 왼손도 깨끗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평소의 얼굴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녀는 그 부채를 접어서 나에게 다시 돌려줬다. 

 "고마워."

 그리고 다시 그녀와 나의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무언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 무슨 말을 건내도 어색할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적당한 주제로 말을 거는 건 힘든 일이다. 특히나 나에게는 그렇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 9시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기에 나도 의자에 걸려있는 외투를 입었다. 외투 주머니에 들어있는 묵직한 휴대폰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알려줄 리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만뒀다. 

 "오늘 즐거웠어요."

 그녀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 악수를 받았다. 부드러운 느낌과 따뜻한 온기가 내 오른손으로 옮겨져왔다. 영원히 그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모두들 헤어져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밤 내 방에 누워서 그 오른손으로 멍하니 휴대폰을 이리저리 조작했다. 나이도, 신분도 잊어버리고 이유도 없이 그녀에게 마법과 같이 사랑에 빠진 날이었다. 


==


은 고딩과 직딩의 사랑(=범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