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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마무리만 하면 완벽해!


한글 파일 : 그가 원하는 세상.hwp


그가 원하는 세상(world that he want)

세계 최고수준의 안전과 신속성을 자랑 하는 서울 지하철, 오늘도 아침 저녁으로 서울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있어야하는 장소이니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고 점잖은 척을 하기 마련이어서, 덕분에 서울메트로 2호선 전철 안은 이보다 더 라는 것은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그런 사람들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합류해있는 나(나이 29세 여 직장1년차)는 잠깐 오늘의 괴로웠던 일을 생각하니 한숨이 푹 나온다. 그러나 나의 한숨에 눈살을 찌뿌리는 옆사람을 발견하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는다.

오늘도 정말 살벌한 하루였다. 방송통신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서 2년 정도 백조 생활 하다가 모든 방통대 졸업생의 로망인 국민신문사에 기자로 취업에 성공했다. 당당히 대기업에 취직성공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며 입사했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대학입시를 방불케하는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살벌한 회사였다. 결국 나는 그런 살벌한 사내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입사 이래 특종을 하나도 못 건져서 졸지에 정리해고 1순위인 처지이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이대로 몇 년 직장생활 버티다가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다! 라고 하시지만 과연 그 몇 년까지 직장에 내 목이 남아있을까? 그렇다고 적당한 남자가 있는것도 아닌데 ..... 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한숨을 푹 쉰다.

옆의 사람이 또 인상을 찡그린다.

어쩌라고 ......

나도 이에 맞서서 인상을 찡그려본다.

옆 사람과 쓸모없는 신경전을 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역인 일원역이 한정거장 남았다. 도착역이 가까워지자 내 기분은 한결 풀린다. 이제부터 하루를 마무리 짓는 유쾌한 유희가 하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같은 직장을 1년 다니면서 나한테 생긴 능력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감고 귀가하기이다. 전철에 내려서부터 역 개찰구까지를 눈을 감고 이동하는 조금 유치한(?) 놀이이다. 마침 전철에서 여기는 일원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드디어 시작할때가 됏군!'

우선 눈을 꾹 감고 오른쪽으로 내리라는 문 앞에 선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그대로 3걸음 나아가서 오른쪽으로 10걸음 왼쪽으로 2걸음 그리고 앞으로 가다보면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편안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탑승해주시고 구두 앞에 라인이 탁! 하고 걸리면 윗층 도착!

여기까지는 무사도착이다.

자 이제 2걸음? 3걸음? 정도를 걷고 오른쪽으로 열 걸음만 가면 출입구 도착 일텐데???

" 꺅!!!!!!!!!!!!!!!!!!!!!!!!!!!!!!!!!! "

꽈당-

하이힐을 신고 한 마리의 학처럼 우아하게 걷던 나의 다리에 갑자기 뭉클 한게 걸려서 나는 그만 화려하게 넘어져 버렸다. 아 어떻게 나 너무 쪽팔려!!!!!

"아 뭐야 !!!!!!!!!!!!!!!!!!!!"

무지하게 쪽팔려서 얼굴에 스멀스멀 열이 올라오지만 일단 성질부터 내고 본다. 나 너무 비겁한거 아냐?

"아가씨야말로 뭐야? 앞에 안보고 다녀? 지금 한창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아가씨 때문에 중간에 멈춰졌잖아? 이거 어떻게 할거야?"

부딪힌 엉덩이를 부비면서 목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거기에는 한 무리의 노숙자들이 앉아있었다. 척봐도 노숙자라는게 보이는 꾀죄죄한 노인 한명, 그리고 학교 과 점퍼로 추정되는 새빨간 야구점퍼를 입고 있는 학생, 그리고 내가 하이힐로 뭉게버린 걸로 추정되는 20대 청년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내가 밟은 사람은 지저분해보이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마치 정장을 입고 노숙한듯 정장 이곳저곳에 먼지가 묻어있다.

" 아저씨야말로 뭐에요!!!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목에 누워있으면 어떡해요!! 위험하잖아요!!"

"뭐 아저씨? 나는 아가씨한테 아저씨소리 들을 정도로 나이 안먹었어 !!! 취소해!! 그리고 안누워 있었어!!"

"뭐가 아저씨가 아니에요! 척 봐도 얼굴에 수염 덥수룩한게 아저씨구만!!"

"으앗 나 상처받았어!! 영문도 모르고 등을 걷어 차인데다가 파릇파릇한 20대를 아저씨라고 욕하고 있어!! 고소할거야!!"

"킥킥 우리 존 스미스가 아저씨 같게 생기긴 했지"

"뭐야 존 스미스가 나랑 같은 20대 였어? 말도 안돼!!!"

"뭐야! 그러는 너야말로 20대 였어? "

옆에서 내가 부딪힌 노숙자와 회의(?)하는 중 이였던 것 같은 두 남자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대화에 끼여든다.

이틈이다.

"어이 아가씨 어딜가!, 남을 상처 입혀놓고 어딜 그냥 가려고!!"

들켯다.

"아이고 다리야 내다리!!!!!!! 아파서 죽을거 같애!!!!!!!!!!!! 이 여자가 사람치고 도망간다!!! 뺑소니야!!!!!!"

"아, 알았으니까 제발 소리 지르지 말아요!!!!"

"뭘 어떻게 해줄껀데?"

"만원 정도로 어떻게.. 안됄까요?"

"뺑소니야!!!!!!!!!!!!!!!!!!!!!!!!!!!!!!!!!!!!!!!!!!!!!!!!!!"

"아, 알았어요!! 어떻게 해주면 돼는데요!!"

"음....... 글쎄 어떻게 할까?"

"아 아까 하던 얘기 있잖아.. 소곤소곤"

.......................................................................

이 사람들, 여자를 앞에 놔두고 남자들끼리 무슨 귓속말이야

"흠흠 그러니까"

뭔가 자기들끼리 정리가 됏는지 귓속말을 그만두고 다시 나를 향해 돌아본다. 그리고는 자세를 가다듬더니 헛기침을 몇 번하고 말을 한다.

"제 질문에 한번만 대답해줄래요?"

"예? 무슨질문인데요?"

"영화같은거 보면 그............ 남자랑 여자랑 서로 섹O하는 장면 같은게 있잖아요. 그거 진짜로 하는걸까요? 아니면..... 하는척만.... 퍽!!!!!"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 버렸다. 나는 잘못한거 없다. XX염색체를 가진 여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반응해야 한다.

"잠깐 그렇다고 때릴꺼까진 없잖아? 어?어? 알았으니까, 나를 후려치면 굉장히 아플거 같은 핸드백 내려놔. 어?어? 아니 잘못했어요. 제발 때리지마세요"

"죽어요 이 여자의 적, 이 모서리가 철제로 처리된 샤넬 핸드백으로 단시간에 저승으로 보내줄게요"

"어?어? 잠깐 그렇게 다가오지마. 잘못했다고 ..... 쿵!"

바보다. 이남자 진짜 바보다. 남자는 내 핸드백 위협에 급하게 뒤로 물러가다가 벽에 머리를 격하게 부딪혔다. 남자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인다. 얼마까지 싸구려가 된거냐. 남자의 눈물.

"아야... 머리에 혹났어!! 이거 어떡할거야!!"

"알았으니까 울지 말아요"

"누가 운다고 그래!! 우에에에엥"

당황스럽다. 이미 울음 직전에서 울음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되면 주변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겟다.

"이 사람..... 어떻게 해요?"

"글쎄? 먹을 거라도 쥐어주면 되지 않겟어? 젊은 아가씨?"

"아니, 무슨 애도 아니고...."

"아니, 우리가 겪어본 바로는 완전히 애 인데?"

빨간 점퍼의 사내도 지지 않게 말한다.

어떡해...................................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는 노숙자일당을 데리고 지하철 편의점에 들어갔다.

"와 되게 좋은 사람이다. 누나 이름이 뭐에요?"

정장 노숙자가 물건을 고르면서 내 이름을 물어본다. 누나라고 하는거 보니 나보다 나이가 어린건가?

"남의 이름을 물을때는 자기 이름 먼저 대는게 예의라고 못 배웠냐?"

"음, 일단 제 이름은 존 스미스이고, 직업은 일단 노숙자 에요. 그리고 저기 빨간 점퍼를 입고 있는 사람은 아인슈타인 아마도 여기 근처 공대에 다니는 대학생일꺼에요. 그리고 저 나이 든 할아버지는 슈바이처인데 여기 지하철에만 10년 째 노숙하고 있는 여기 토박이에요. 아 그리고 여기 근처에 사는............"

"그렇게 자세히는 안 말해도 되거든? 그리고 이름이 이상하잖아!"

너무 티나는 거짓말이다! 한국이 아무리 국제화 돼있어도 외국인들이 노숙자로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게다가 너희는 척 봐도 순수 혈통 한국인이잖아!!!

"뭐 가명같은거에요. 보통 사람들도 다 하나씩 쯤은 있잖아요."

"없어!!!"

"헤에~"

보통사람들은 이름을 댄답시고 가명을 대지않아!!!

"너희가 존 스미스고, 아인슈타인이면 나는 엠마 왓슨이다!!"

"헤~에?"

존 스미스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아... 예........"

"뭐야 그 의미심장한 표정은!!!"

"이름은.... 개인의 자유죠"

"그러면 그 눈빛은 뭐냐고 !!!"

"이름은.... 개인의 자유.. 겟죠?"

의문형으로 바꾸지 마!!!

"언니? 나도 이거 사도 돼?"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가명 알버트 아이슈타인이 묻는다.

"언니라고 부르지마요.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아저씨들이.. 뭔데요? 휴대용 버너세트 4만5천원? 안돼요 절대 안돼! 그러고보니 당신은 피해자도 아닌데 내가 왜 사줘야돼요?"

"아니 혼자 자취하는데 자취방에 버너가 고장나서 4일째 컵라면만 먹고 있어"

"내가 알 바가 아니에요!!!"

머리 긁적거리며 쑥스러운 듯이 얘기해도 안돼!

"언니 그냥 사줘. 쟤 불쌍하잖아"

"너는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아 머리 아파!!! 두개골에 금간거 같애!!"

..................................................

결국 버너세트 사줘버렸다..... 버너세트 외에도 과자, 컵라면, 삼각 김밥 등등 가게에서 먹을수있는 것들은 다 쓸어온 거 같다. 총 20만 4천 8백 원. 젠장 이렇게 된 이상 그냥은 못 간다. 나도 먹고 가겠어!

"뭐야 왓슨도 같이 먹으려고?"ㅡ

"....... (끄덕, 끄덕).."

"우리 저기에서 먹을 건데?"

존 스미스는 손가락으로 온풍기 앞을 가르켯다. 확실히 따뜻하긴 하겠지만 저긴 좀..... 사람들이 잔뜩 지나다니잖아!

"겨울에는 따뜻한 게 최고지 응차~"

앉았어!!!!, 게다가 돗자리는 어디서 생긴거야!!!!!!

"아까 편의점에 있길래, 슈바이처랑 나 잠자리 만들 때 쓸려고 두 개정도 사왔는데?"

.......졸지에 남의 잠자리까지 사주는 꼴이 됐다

아 ..... 못 버티겠어 그냥 집에 갈래.......

"잠깐만!"

"엑?"

존 스미스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아까 그 질문.... 답변 안했잖아요..."

이게 덜 맞았나......

"으~~ 아~~ 그러면.... 그게 아니라 다른 질문을.... "

"뭔데?"

"여자들은....."

"안돼!!"

"아직 말도 안꺼냈는데 !!!"

"여자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안돼!!!"

"음 그럼 왓슨 씨는 어디 회사에 다니고 있으세요는 어때?"

아인슈타인(가명)이 삼각 김밥을 입에 문채로 대화에 끼어든다.

"음...... 일단 국민일보에서 일하고 있어요."

"오! 그런 대기업에! 왓슨은 대단한데!!"

"그런데 일단 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에요? 왓슨씨?"

................ 아인슈타인이 아픈 곳을 찌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할까,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까..."

"해고 직전 이라는 거구먼"

아... 슈바이처 영감님

"헤? 그렇게 큰 기업에도 정리해고 라는게 있는거야?"

"입사 한 이래로, 특종 하나 못 잡아서, ...솔직히 말해서 조금 위태위태해"

"헤에~ 와작와작"

아... 이 순진한 표정, 분명 진짜로 몰랐던거겟지.... 아아 나는 왜 지하철 온풍기 앞에서 노숙자들에게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걸까.....

"입사한지 몇 년 정도 됐는감?"

"예, 한 1년정도"

"1년이나 됐는데 특종을 하나도 못 잡았더라, 미안허지만 변호 해줄 여지가 없구먼"

아니, 별로 변호해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

"뭐에요, 슈바이처? 국민일보 사장님이랑도 아는 사이 였어요?"

"음....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거든.... 그 후에도 가끔 진료 받으러 온 적도 있지만"

"그러면 마지막으로 만난게 최소한 10년 전이라는 거네요. 이제 와서 아는 척 하기도 좀 그러겠네요."

어? 우리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고?

"아무튼 그녀석도 질겨~, 20년은 사장직을 해먹었으니까"

"자.. 잠깐만요? 정말 우리 사장님 하고 아는 사이세요?"

"아마도? 슈바이처는 노숙자가 되기 전에 큰 병원 원장님이셨거든"

"아니 그래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고, 얼굴이나 아는 사이라네"

우와... 뭐지 이 엄청난 스케일의 노숙자는?

"그래도 지금의 슈바이처는 노숙자신세니까 아마 찾아가도 바로 쫒아내 버릴걸?"

"그렇게 낙심하지 말고.... 그냥 왓슨이 특종을 하나 잡으면 되는 거잖아?"

"그게 마음대로 되면, 벌써 편집장 자리에 있겠지"

벌컥벌컥

"왓슨씨, 소주 너무 많이 마시지 마세요."

"으...으 아직 괜찮아요."

"우리가 마실게 없어지잖아요."

"................"

아이슈타인. 밉상이다.

"그럼 우리가 특종거리를 하나 알려줄까?"

"뭐? 참고로 20년 전의 병원 원장이 지금 노숙자가 됐다는 정도로는 특종이라고 할 수 없어"

"헤? 진짜로?"

"그래, 특종거리라고 하기엔 화제성이랑 돌발성 같은 게 부족해"

"그런데 왓슨은 내일도 여기 올 꺼야?"

"뭐 여기로 출퇴근 하니까 올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지금 이시간이 왓슨의 퇴근시간대인가?"

"뭐 그렇지. 그런데 그게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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