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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동전]을 주제로 쓴 글

2012.01.16 02:02

무언가 조회 수:285

"오빠! 오빠!"
막 현관을 나가려다 뒤에서 여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왜."
"짜잔."
내 여동생은 무언가 대단한 걸 보여줄 때 들어가는 효과음을 입으로 직접 내며 손에 쥐고 있던 걸 보여줬다.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진 동전이 평범하게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뭐 어쩌라고."
"나랑 게임하자."
히히 하고 웃으며 내 여동생은 나한테 뜬금없이 게임을 제안했다. 
"500원을 걸고?"
"아니. 오늘 하루동안 상대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권리를 걸고."
순식간에 베팅이 올라갔다. 그만큼 리스크가 커졌다. 하지만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을 믿고 그동안 게임이란 게임은 계속해서 져왔던 동생이 자신만만하게 나에게 덤비는 걸까. 
"좋아. 무슨 게임인데."
내 여동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하루의 운명을 결정할 게임의 이름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동전 앞뒤 맞추기."
어떠한 두뇌싸움도 필요없는 게임이 나왔다. 


"어…룰이 어떤데?"
나는 혹시 이름만 같은 다른 게임이 아닐까 해서 여동생에게 물어봤다. 
"뭐야, 동전 던져서 앞뒤 맞추는 거 한번도 안해봤어?"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다. 
"도대체 그게 무슨 게임이야. 그건 도박이잖아."
"그 대신."
여동생이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내가 세 번 연속 이겨야만 내가 이기는 거야."
그리고 여동생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서 불안한 기운이 우러나왔다. 뭐지? 이 확신에 차있는 웃음은? 
"세 번 연속?"
"응."
여동생은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은 1/8의 확률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할 수 있다는 듯 자신있게. 
"필승법을 알아냈거든."
"필승…법…?"
그럴 리가 없다. 순전히 운에 달려있는 게임에 필승법이 있을 리가 없다. 수학적 지식이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몰랐다. 무슨 수작을 부릴 지. 
"동전에 무슨 짓 했지?"
"확인해볼래?"
그러면서 여동생은 순순히 동전을 넘겨주었다. 나는 동전에 기름칠을 해놨는지, 앞뒤가 같은 동전인지, 학의 다리털까지 확인할 기세로 꼼꼼히 살펴봤다. 하지만 동전은 멀쩡했다. 아니,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설마 이 속에 뭔가 장치를 해놓은건가? 21세기 신기술을 이용해서 내 여동생의 음성을 인식해서 앞뒤가 바뀌는 동전?
…그럴 리는 없겠지. 
"좋아. 아무 이상 없네."
"그래? 그러면 시작해볼까?"
허세다. 분명히 허세일 것이다.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을 받아들인다. 내가 이길 것이기 때문에. 
"응."
여동생은 동전을 주먹 위에 올려놓고 엄지를 퉁겼다. 동전이 하늘 높이 떴다. 아마 영화였다면 동전이 클로즈업되면서 화면이 천천히 가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동전은 포물선을 그리고 여동생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여동생은 그걸 휙 잡아서 손등 위에 올렸다. 물론 손은 덮은 채다. 나도 여동생도 무슨 면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아니, 모를 것이다. 
"자, 결정해."
"…내가 결정해도 되는거야?"
"해봐."
"앞면."
"싫어. 내가 앞면 할거야."
"선택권을 준 이유가 뭔데!"
커다랗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위층에서 여동생이랑 싸우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뿐인 말이 들려왔다. 
"좋아. 특별히 내가 뒷면을 골라주지."
"후회하지 마."
"…안 해."
왠지 할 것 같다. 엄청 불안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자신감을 보이는 건 분명히 뭔가 있다는 거다. 그걸 빨리 밝혀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순간 여동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가리고 있는 손을 들어올린다.]라는 동작이 아니었다. [손을 그대로 둔 채 뒤집는다.]라는 동작이었다. 
"잠깐잠깐. 뭐하는거야."
"왜?"
"그렇게 하면…"
"아무 상관 없잖아? 어차피 나올 확률은 1/2니까."
"……."
그 말은 맞다. 오히려 바꾼 게 여동생에게 나쁠 수도 있다. 그건 확실하다. 여동생은 이제서야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동전의 앞면이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절망했다. 도대체 어째서?
"너 몰래 본 거 아냐?"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여동생을 째려보았다. 여동생은 크지도 않은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그런 치사한 짓은 하지 않거든."
"이거 네가 손바닥 뒤집었으니까 무효야! 다시 해!"
"수긍한 뒤에 그렇게 말해봤자 패배자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나는 내 여동생의 눈을 보았다.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반짝임은 그대로였다. 그 무엇도 속이고 있지 않다는 듯.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여동생은 하하하하하하하하 하며 웃었다. 
"이제 2번 남았지? 빨리 하자고."
그리고 여동생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동전을 엄지로 퉁겼다. 토크를 받은 동전은 휘리릭 돌아가며 하늘을 향했다. 그 동전을 여동생은 갑자기 점프하더니 팍 잡아서는 다시 손등 위에 옮겨놓고는 그 손을 다시 뒤집었다. 
"골라."
"……."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앞인가, 뒤인가. 머리인가 꼬리인가. 어느 쪽인가. 
"…뒷면."
결국 나는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여동생은 여전히 씩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학의 다리가 보였다. 아는가? 사실 학의 다리가 보이는 쪽이 앞면이다. 
나는 다시 절망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번에는 높이서 잡느라 보지도 못했을 텐데…….
"이제 한 번 남았네?"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여동생은 나를 비웃었다. 비밀이 뭐지? 도대체 비밀이 뭐지? 뭘 숨기고 있는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뭔가를 관찰할 여지도 없이 여동생은 마지막 토스를 시행했다. 그리고 그걸 잡고 다시 뒤집었다. 
"골라봐."
여동생은 다시 비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여동생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달라졌다. 
……이겼다. 
나는 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을. 동전의 학이 손등으로 가는 그 장면을. 결론은 앞면이라는 거다. 앞이다. 무조건 앞이다. 
"앞면."
"싫어. 이번에는 내가 앞면 할거야."
"방금 내가 양보했으니까 이번만큼은 양보 못해."
"…좋아."
여동생은 말했다. 걸렸다! 이 승부는 나의 승리다! 내 여동생은 손을 확 들었다. 학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겼다! 그 때 여동생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빠가 내 노예."
"…뭐? 내가 이겼잖아."
"아니지. 내가 이겼지."
"뭔 소리야. 이거 앞면이잖아."
"앞면이지. 그런데 만약 내가 뒤집지 않았으면 뒷면이었을 거 아냐? 그러니까 내가 이겼어."
……
"이해 못하겠어? 만약 지금 앞면이 나왔으면 뒤집기 전에는 당연히 뒷면이었을 거 아냐. 그러니까 내가 이겼지."
"……그러면 방금까지는?"
"그때는 내가 말한 게 나왔으니까 내가 이겼지."
"……규칙은 언제 바뀌었는데?"
"원래 이런 게 규칙이잖아?"
나는 내 여동생의 머리를 강타했다. 진지하게. 다행히 얼굴이 아니라 검은색 머리카락이 자라는 부분이었다. 
내 여동생의 자신감은 똑똑해서 나온 게 아니었다. 바보여서 나온 거였다. 여동생은 500원을 떨어트리고 울먹거리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맞는데 왜 때려!"
"틀렸으니까."
나는 500원을 들고 말했다. 
"벌로 500원은 내가 들고 간다. 그리고 오늘동안 넌 내 노예 맞지?"
"뭔 소리야! 내가 이겼잖아! 잠깐만! 잠ㄲ…"
나는 문을 닫고 나왔다. 뒤쪽에서 뭐라고 화가 나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저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 내 동생도 바보였고, 그런 것에 어처구니없이 겁을 먹은 나도 바보였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더 바보였다. 왜냐하면 나는 내 동생을 쳐버렸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아마 어머니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행동하다니, 나는 정말 바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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