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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허위의 판타즈마

Fantazma of Fallacy



제로. 한 주인공의 사념 中


   ─숨이 멈출 듯 괴로운 순간에도 하늘은 투명하게 푸르고.

   인생이 끝이리라 절망할 때에도 육중한 세상은 끊임없는 일상의 순환을 할 때.

   옷깃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타인들에게도, 그림자 구석으로 소외되는 고독을 느낄 때.

   ...한 번 정도는,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을까.

   내가 의식하고 자각하지 않으면 가치없는 이 세상이, 오히려 나를 갖고 놀고 있나, 하는 생각.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조금 나아가보자.

   그 반대로, 스스로의 강한 의지와 신념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다룰 능숙한 논.리.적.도.구가 있다면 주위 환경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포장지로 소포를 절단한다고 하지 않던가.



제 1의 이야기


   나는 너덜해진 신문을 구겨서 옆 자리에 던졌다. 시간은 동녘이 푸르스름해 질 새벽, 주머니를 뒤져 천원짜리 지폐 하나를 꺼냈다. 여름이지만 입에서 서늘한 입김이 흩어진다.


   "제길....... 학교를 그만 두는 것이 아니었나....."


   이슬 젖은 머리칼을 훌훌 털고, 근처 편의점에서 카스테라 빵 하나와 우유를 샀다.

   돈이야, 내가 원한다면 침대도 이층 침대로 쌓을 정도로 대령할 수 있지만.

   괜한 돈은 화의 근원이다.

   그치만 돈만 믿고 고등학교를 그만뒀는 건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다는게 요 한달간 노숙 생활의 결론이다. 아무리 최악의 기숙사라도 역 냉바닥에 비하면 칠성호텔이지, 암.


   지하철 역 코인로커에서 가방 두 개를 꺼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첫차도 오지 않을 이른 시간이라서 나같은 노숙자 몇도 지금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왼쪽, 카키색의 평범한 학생용 가방 안에서 만원 화폐 두 다발을 꺼내서 일단 로커에 밀어놓고, 오른쪽 흰 종이백에서 교복을 꺼내 입었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라이트블루 톤의 하복이다. 주머니 양쪽 두툼하게 돈을 쑤셔넣고 가방을 로커에 꼭꼭 모셔놓은 뒤, 와이셔츠 포켓에서 꺼낸 휴대폰의 전원을 올렸다.




   정체불명의 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어제 낮.

   발진사 표시 제한이란 게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 통화 내용이란


   [─흥미로운 일이 있는데, 내일 정오, 구 서울역 광장까지 와. 옷은 튀지 않게 입고.]


   이런 일방적인 선언이 다였다. 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모르던 이 휴대폰의 전화번호를 알고 걸어준 것도 놀랬지만.

   장난전화에 장단을 맞춰서 진지하게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크게 놀랬다.

   약속시간은 다섯 시간 남았고, 약속 장소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 주체 못하게 엉성한 데일리 스케쥴에 연거푸 놀라면서 나는 유유히 인도를 걸었다. 여유는 그리 길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배짱 좋으신데?"


   땅바닥에 침 좀 뱉고 다닐 법한 아이들이 이 쪽을 겁나게 노려본다. 얼굴은 기껏해야 중3.

   토요일이니까 가벼운 기분으로 땡땡이를 친 거겠지.


   "이 교복, 촌스럽기는 해도 이렇게 어린 애송이들에게 무시당할 레벨은 아니다고 생각했는데─오산이었군."

   "무슨 헛소리야! 시끄럽고, 돈이나 내놓으셔!"


   앞은 막다른 길이고 뒤는 기역자로 꺾인 전형적인 골목길이다.

   그리고 그 코너에 불량학생 일당들 10명 가량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도망갈 수 없지만─반대로 이 놈들도 외부 세력의 조력을 기대하기는 힘든 조건이다.


   상황은 서로에게 플러스 마이너즈─제로.


   "좋아, 실력이 녹슬진 않았는지 테스트를 해야겠군, 더미(dummy)들."

   "잠이 덜 깼는거 아냐, 너? 돈 안 주면 개패듯이 패주겠어!"

   "으음─ 거기 시끄러운 녀석. 꺼'져'라' ."


   나는 여유있게, 리더인 듯한 아이에게 말을 내뱉었다. 자연스럽게 그 아이는 지뢰를 밟아버린 듯 튕겨지며 수 m 나가떨어졌다. 

   아암, 역시 이상 무.


  "그리고 너희들. 어떻게 해 줄까?"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전부터 멍하게 떠 있다. 

   시시하군, 이런 송사리들은 2차 성징기의 청소년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자기비하형」이다. 비뚤어진 분노의 발산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런 어린 녀석들은, 감추려고 한 자기(自己)의 숨겨진 내부를 보일 성 싶으면 오히려 약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강한 자의 「지배」를 갈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비친다.


   '내가 마치 할아버지라도 된 기분이야... 하하.'


   나름대로 구심점이던 리더가 무너지자, 아이들은 으와아- 외치면서 달려간다. 처음부터 쫓아갈 생각이 없던 나, 권교빈은 무료하게 막다른 벽을 향해 걸어가, 가만히 10초 정도 노려보다가─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열'려'라' "


  구르릉~


  2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매끈하게 앞뒤로 엇갈려졌다. 50cm 폭의 균열을 통로 삼아 지나갔다. 소동은 방금 전의 일로도 충분하니, 벽을 폭발시키거나 와장창 무너뜨리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다. 때마침 오늘은 토요일, 이 시간대에 '학생'은 특별히 주목받지 않겠지만


   지루하다.


   얽히고 설킨 전깃줄 아래에 펼쳐진 바둑판식 거리를 걸어간다. 예전이라면, 준법정신이란 녀석을 집에 두고 온 운전자들은 신호를 무시하며 직장으로, 일터로, 또는 저승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을 시간. 인도(人道)에는 사람(人)이 없고 정작 도시의 사람들은 차도(車道)에 있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길을 걸어간다.


   따분하다.


   능력이랄 것 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내 주위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 아까같이 눈에 거슬리면 치워버리고, 불필요하면 파괴할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ㄴ행위는 할 수 없지만 주어진 조건을 다루는 것이라는 한계선 안의 모든 행위가 가능하다. '뭐야, 그러면 엄청난 능력이잖아!'하고 화낼 사람도 있겠지, 만!


   어떤 것을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것에 흥미가 느껴지듯이, 소규모의 조작을 하는 나로선 지극히 심심하고 무력하다. 소행성을 동해에 떨어뜨린다던가 지구가 역자전을 한다던가는 가당치도 않다. 왜냐하면 환경토제는 내 '의식'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


   눈에 보이는 걸로 부족해, 뇌로 '인식한다(Understanding)'의 최저조건을 만족해야 하며, 나의 의지로 '이러이러한 것을 저러저러 한다'고 의식하지 않는 예상 외 행동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내 주위 2, 300m 반경 외에는 '사정거리 저 너머, 아득한 곳'이라느 것. 왠 사이코가 눈 앞에서 총을 난사해도 내가 그 총알을 인식할 재주가 없으니 꼼짝없이 세상 하직이다.


   "제길..."


   발 아래 돌을 툭 걷어찬다.

   이런 시시한 능력으로 뭘 하겠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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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정리하다가 중고딩 습작노트 발견해서 하나 옮겨봄


이건 질풍노도 고2때 쓴 건데 


이때 이미 타입문에 감염되어 있던 걸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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