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글엮기 [마왕, 용사, 공주]
2012.01.28 18:26
안녕하세요. 마왕이라고 합니다. 마왕이라고는 하는데 아직 신입이라서 경험이 적어요. 1년밖에 안 되었거든요. 어쨌든 마왕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진짜 이름도 있지만 흔히들 그냥 '마왕님'이라고 부르니까 그냥 마왕이라고 해요.
음…무슨 일을 하냐면 말이죠. 간단히 말해서 CEO에요. 네. 회사 최고 경영자에요. 마왕성의 모든 업무들이 전부 저에게 들어온답니다. 뱀파이어들이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스켈레톤의 식량을 준비하는 것까지 모두 제 결정을 거쳐 간답니다.
네? 스켈레톤이 무슨 식량이 필요하냐고요? 아직도 그런 선입견에 쌓여있는 거에요? 스켈레톤도 먹을 것이 있고 보수가 있어야 일을 한답니다. 자세한 건 회사기밀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비밀로 할께요. 죄송하지만 그냥 모르는 채로 있어주세요.
어쨌든 그런 직책이에요. 마왕이라는 건. 마왕성은 주거지까지 제공하는 커다란 기업이고요. 아, 그렇다고 사원들이 마왕성에만 거주해야 한다는 건 아니랍니다. 퇴근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퇴근할 수 있어요. 다만 퇴근하고 싶어하지 않는 거죠.
뱀파이어는 밖으로 나가봤자 낮이 되면 다시 돌아와야 하고, 고블린들은 나가봤자 여행자들 레벨이나 올려줄 거고, 오크는 멍청해서 나갈 생각조차 못하고, 스켈레톤은 나가봤자 둥그런 해골머리가 꼬마애들 공놀이용 장난감이 되는 것 이외에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것 같지는 않아요.
구울들이요? 잘못 빈민가에 들어가면 구울이 사람을 먹는 게 아니라 구울이 사람들에게 식량이 될 거에요.
그나마 정상적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은 늑대인간들이네요. 보름달만 안 뜨면 정상적인 인간이랑 다를 게 없으니까요.
아, 참고로 저도 정상적인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진짜에요. 막 녹색 거칠고 딱딱하며 두꺼운 가죽피부에 갈색 수염이 러그처럼 바닥을 덮고 있고 붉은 눈에서 광채를 뿜으며 크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웃는 무서운 아저씨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사실 로봇이에요 로봇. 그럴 거라는 기대에 맞춰주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모험가가 열심히 마왕성 꼭대기까지 올라왔는데 마왕은 없고 왠 시시껄렁한 인간이 책상에 앉아서 '아, 축하합니다. 당신은 끝까지 도착하셨습니다. 나가시는 문은 저쪽입니다.'하면 세상아 멸망해버려라! 하고 외치면서 메테오를 지구에 떨어트리고 싶을 거 아니에요?
뭐, 그렇습니다.
저희 회사는 한 가지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방금 전에 말했다시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거죠.
모험가와 여행자, 초보자에게 레벨업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좋은 장비와 비싼 포션을 살 동기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거죠.
이런 구조이다 보니 저희 회사에 오는 이익은 상당히 적답니다. 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답니다. 아, 그러면 회사라기보다는 국책사업이고, 저는 그 국책사업총괄관리자가 되는 건가요? 상관없네요. 어차피 CEO인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닌가요? 똑똑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저희 회사는 두 가지 전략을 행하고 있답니다.
첫번째는 국가의 승인을 받지 않고 이 곳에 들어오는 다른 여행자들을 전력을 다해 무찌르는 거에요.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내가 도전해봐야지'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며, 실패한 사람이 다시 도전하도록 하는 거죠.
이게 쉬워보여도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에요. 너무 빨리 무찔러버리면 사람들이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 내요. 그렇다고 너무 늦게 무찔러버리면 마왕성으로서의 위신이 서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적절한 때에 무찔러야 한답니다.
두번째는 용사를 꼭대기층까지 올리는 거에요. 네. 용사요.
첫번째 전략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국가의 승인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용사가 국가의 승인을 받은 사람이에요. 국가는 사전에 이 사람이 승인을 받았다는 걸 보냅니다. 그리고 저희는 적당히 마왕성 꼭대기까지 열심히 싸우다가 결국 제가 쓰러진척을 한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은 진짜로 사람들에게 용사라는 칭호를 얻게 되어요.
보통 이 용사는 국가의 왕자가 된답니다. 그리고 명분은 공주를 구하러 간다는 것이 된답니다.
아, 이를 위해서 저희는 사전에 '납치'라는 명목으로 공주를 이곳으로 불러온답니다. 서비스는 그리 좋지 않아요. 왜냐하면 서비스가 너무 좋으면 공주가 이곳에서 계속 있고 싶어하거든요. 그렇게 된다면 저희 사업이 완전히 드러나버리고, 국가 경제가 망하게 될 거에요.
뭐,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국책사업을 실시하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요.
비밀인데 말이죠. 사실 이 사업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절대권력을 국가에 부여하는 거에요.
어째서 절대권력이냐고요? 용사가 공주와 결혼해서 왕이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마왕이 생겨나버렸죠. 이 왕에 대한 전설은 순식간에 그 왕에 대한 복종을 강화시킨답니다. 그렇게 시민들에게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에요.
이렇게 힘들다보니 입사자격은 굉장히 까다롭답니다. 체격조건이 주가 되죠. 그래도 보수가 후하다보니 많이 지원해요.
그러면 이만 바쁜 일이 있어서 이 정도로 인터뷰를 마칠게요.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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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척수반사적 개소리를 옮겼습니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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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Duet
2012.01.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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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룡
2012.01.28 21:54
마루데 자레고토. 처음 보는 상상이네요. 이걸 창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
수은중독
2012.01.29 00:33
요즘 쓰시는 건 다 맘에 드네요.
근데 아쉬운게 경제적 관점의 접근과 마왕의 어투가 2챤 스레 출신의 마왕, 용사 뭐시기 하던거랑 비슷하네요; -
수은중독
2012.01.29 13:04
그래도 좋은데 폐기하실거 까지야; -
무언가
2012.01.29 01:29
그런가요.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국가를 넘어서 있었군요. 젠장! 이 소설은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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