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가면-4(2)
2012.02.24 17:49
-4(2)
째깍째깍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 그녀는 매우 더디게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보아하니 꽤나 오래 걸릴 듯이 뜸을 들이고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정말로 그때 무슨일이 일어난것일까. 가울아는 자꾸만 초조해지기만한다.
그래도 식후에 바로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자신도 일단 시간 죽일 겸으로 오늘 아침의 일을 회상하기로했다.
헉헉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안구는 녹아내릴 것 같이 달아오른다. 머리에 피가 모자람에 불구하고 온몸의 피가 눈앞으로 모이고 있다.
헉헉
단지 직면한 상황을 위해. 아니, 그 두려움을 피하기위해서 가울아는 두 눈을 찔끔 감고 뒤도 안돌아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었다. 그런데 그 계단의 끝을 코앞에 두고 신체는 정지하고 말았다.
불가능 그 자체에 닿은 것처럼 뼈저리게 느껴지는 위압감.
무릎은 당장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 같지만 발이 좀처럼 바닥에서 떼어지지가 않는다. 온 몸이 단지 두려움에 묶여 있다. 본능적으로 가속됐던 팔다리는 오히려 불안으로 봉쇄당해버렸다.
“……괜찮아, 그녀는 괜찮아.”
아직 눈 주위가 밝아지지 않았는데 가울아는 청각만으로 이 상황을 판단해갔다.
이것은 이상하다. 아니 말도 안 된다. 허풍이다.
가울아는 짧은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역설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진짜가 아니다 라고 머릿속으로 결론 맺었을 터였다.
그래, 이건 불가능하다. 어째서 건물 밖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3층까지 내달려온 사람의 귓가에 들리겠는가? 거짓말이다. 자신의 귀는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몸은 움직여 주지 않는다. 자기 암시를 통한 이성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목 아래의 신체는 움직여 주지 않는다. 동떨어진 별개의 개체처럼 끝까지 스스로의 육감을 관철하고 있다. 움직여서는 안 된다며 머리에 반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해되지 않는 모순에 묵묵히 얼어 붙어버렸다.
헉헉. 헉헉. 하아. 하아.
숨이 골라진다. 점점 몸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시야가 밝아지고 시상이 또렷해진다. 그리고 눈앞에는 한 여자가 서있다. 처음엔 올려다봤기에 구두와 짙은 하늘색 정장, 그리고 묶은 주황 머리를 차례차례 인식했다. 본래라면 이런 사람이 가울아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이상한 일이건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고 단지 특이하다는 감상이 들어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눈이 완전히 재기능을 찾아 그녀의 표정을 읽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간에 주름을 짓는 불쾌함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와 드는 생각이지만, 그 얼굴이 왠지 굳세게 보이는 이유는 표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 창피했다. 우연이라고 할지어도 초면인 상대의 얼굴을 그것도 여성을 빤히 쳐다본다는 것이 조금 어색했다. 마음속에서는 긴장감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몸은 푹 고개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어 보려고 했으나. 안되겠다 싶어 중간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상태로 일단 계단에서 한발자국 물러서 거리를 두었다.
그래도 그 여자는 미동도 않는다.
‘……괜찮아, 그녀는 괜찮아.’ 하고 가울아를 달래는 듯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울아는 그 말을 되새기며 “예?”하고 얼빠지게 되물으려고 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래도 도통 이해가 안 돼는 말이기에 침묵하는 대신 입을 열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괜찮다니요?”
심장은 엄청나게 고동치고 있어 버럭 화를 낼 뻔했지만 자제하고 그런대로 약간 온화한 말투.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아서 말끝을 흐리고 바로 따지려 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네가 본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대답해온 당연하다는 말투.
왠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던 말이어서 울컥했지만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해 네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단지 우연치 않게 환각 같은 걸 본거야. 정말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야.”
“…….”
그래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네가 운이 나빴을 뿐인 걸?”
그 말은 바로 옆에 있는 창을 활짝 열면서.
“다시 봐봐 아무것도 없어.”
확인을 재촉했다.
가울아는 일단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자신 스스로도 약간 이상하게 느껴진 징후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로 내려갔던 계단을 다시 올라 섰다.
이전의 그 광경을 보고 충격에 빠진 이후 가울아는 스스로가 생각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닥에 웅크리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자신이 본 것은 혼란에 의한 환각일 지도 모른다.
몸을 창가로 기울였다.
그런데 아직 불안 한 것이 있다면 그녀의 말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창가를 연 그녀의 눈치를 보며 건물 밖을 바라봤다.
그녀는 내가 봤다는 환각에 대해 알고 있다.
눈앞이 하얘진다. 창밖은 너무나 환해서 눈이 부시다.
환각은 혼자 보는 것, 제3자가 같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한사람의 정신적인 착란에 의해 생기는 마술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가울아가 가본 환각을 자신도 봤다는 말을 한다.
거리의 모습이 보이고 머릿속은 피웅덩이 위에 놓여 있던 시체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수챗구멍의 위치같이 세세한 것 까지도 차례차례로.
정말로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거리는 비어 있었다. 그건 즉, 가울아 자신이 헛것을 봤다는 것.
사람은 판단의 80%이상을 시각에 의존한다. 이걸 약간 다르게 해석해서 판단을 시각에 의존하는 것을 우둔하다고 여길지도 몰라도. 적어도 우리가 가진 5가지 감각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이 시각이기 때문에 판단에 대부분의 영향을 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80%이상의, 그것도 과반수이상의 감각적 정보를 두 눈으로 받아 들였다. 그렇다. 가울아 본 것은 아마 착각일 것이리라.
약간 안심이 됐다.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전력투구해왔던 자신은 알고 보니 그런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 봤던 시체는 환각이고 그 얼굴은 단지 가울아가 앨범에서 봤던 얼굴이 연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이걸로 이 사건에 일단락이 마무리 됐다 싶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말 자체에 오류가 있다. 신뢰가 가지않는다.
다시 옆에 서있는 여자를 본다.
내쉬려던 한숨은 경직되고 만다.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은 남아있다. 이것이 환각이라는 것은 증명됐다. 그러나 환각이라는 것은 한사람만 볼 수 있는 것, 절대 다른 사람이 시상을 공유할 수 없다.
그런 의문이 당연할 터인데 그걸 알고 있을 당사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역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의 말 자체에 오류가 있다. 그녀는 어떻게 남이 본 환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인가?
다시 창가를 슬쩍 곁눈질한다. 역시나 그곳은 비어있다. 역시 판단의 80%의 영향을 끼치는 눈으로 본 사실은 진실이다.
그러나 겨우 십 수 퍼센트 밖에 되지 않을, 아니 그 불온한 십 몇 퍼센트가 이 판단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하나, 그 말의 주인을 심문하는 것이다.
“…….”
스스로가 만든 의문에 표정하나 흩트리지 않고 가만히 서있다.
그녀가 신고 있는 구두에 눈이 간다. 그녀는 그 피웅덩이가 흘러내리던 수챗구멍 바로 왼편에 서있었다. 그때의 감각이 온몸에 전율로 소름이 끼친다. 그 구두는 그때 봤던 그 시야각 그 위치 그대로 서있다. 수챗구멍을 감싸는 둑이 계단의 높낮이와 매우 흡사하다.
그래. 그 구두는 그곳에 서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 '서있다.'
순간 팔 언저리 까지 올라오던 소름이 뒷목을 타고 정수리로 치솟는다.
잠깐, 내가 본 사실이 왜곡된 사실이라면?
그때 본 광경이 환각이 아니라 사실이고 지금 창밖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눈이 환각을 일으킨 것이라면?
갑자기 주위가 어두컴컴해진다.
창밖의 유리가 햇빛을 읽고 투명한 잿빛으로 변한다.
그때,
그때 봤던,
그때 집에서 창밖을 먼저 지나쳐간 검은 그림자.
화사한 아침 햇살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하고 검은 구름.
그것이 성가신 태양을 가리고 있다.
얼마안가 사라질 태양의 끄트머리 빛이 창가 쪽을 향해 반각으로 흘러나온다.
전율은 몸속깊이 심장을 때리고 있다.
짙게 낀 구름을 앞에 두고 남은 틈으로 새어나오는 가는 빛이 내 몸의 일부를 비춘다.
허리춤에 비춰진 그것도 연약하게 실랑이는 가는 햇살,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잠깐 몸을 비켜줘 그 빛이 향하는 곳을 눈으로 따라간다.
반짝반짝, 수분기가 빛을 반사하며 빛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그 빛은 결코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니다. 붉다. 시뻘건 빛을 반사하고 있다. 너무나 선명한 빛깔이라서 거부감이 들지만, 지금 보는 선혈은 결코 환각이 아니다.
가울아가 올라왔던 계단에 피 발자국이 나있다. 그것은 가울아 자신이 찍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신발을 본다.
“역시.”
쾌활하게 읊조렸다.
스스로가 낸 목소리에 섬뜩할 만도 했지만 그것이 공포의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의 신발에 핏물이 고여 있다.
가울아는 그 상황을 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착각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결론 맺으며 전율 했다.
계단 중간을 가로지르는 햇살은 그때 바로 사라졌다.
눈앞에 서있는 이 여자를 볼 필요도 없다.
‘이 창으로 본 것이 환각이라면.’
거칠게 그녀의 어깨를 밀어 밀치고 올라서 복도를 가로질러 아까 봤던 창문의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반대쪽의 창으로 본것은 ....”
달린다. 단지 반대 쪽의 창을 향해 달린다. 그녀가 하는 말은 더이상 믿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그 사실을 정확히 파헤치기 전까지는.
헉헉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인데도 숨이 차오르고 있다.
헥헥
아마도 이 감각은…….
이 정신없이 이 계단을 차오를 때와 같은 느낌.
안도감이나 해방감보다, 지금의 모순의 일단락을 바라는 분노하는 몸체
육감.
바로 저곳에 마지막이 있다.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시각은 80%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것은 온몸의 감각. 5개인 경우에 한해서일 뿐.
제 6의 감각. 육감이 발현된 상황에서는 아무런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어떤 논리라도 이것을 막을 수 없다.
쿵쾅 쿵쾅
복도의 차디찬 바닥에 피가 문드러져 미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그리고 한 점을 향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는 시야.
주변의 쾌쾌한 공기를 휘젓는 비명을 지르는 몸둥아리.
단지 눈앞의 상황의 해결만을 바라며 점멸하는 시야는 끝없이 그것을 갈망했다.
그리고 종착역,
달아오른 심장은 다시금 산소를 원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에 아랑곳하지않고 일부로 무리하며 창을 활짝열어 재낀다.
깜박거리고 불안정한 안구를 그곳에 치밀어 넣는다.
그리고,
예상대로 반대쪽의 창문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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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필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