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숨바꼭질, 손님) 영희 찾았다!
2012.03.05 06:53
가위바위보를 한다. 한 아이가 술래가 된다. 그는 눈을 감고 어딘가에 얼굴을 댄 채 외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나, 둘, 셋……."
다른 아이는 숨는다. 술래는 그 아이를 찾는다.
잠깐. 술래가 도망가면 어떻게 해?
그러면 술래가 벌칙을 받는 거지!
*
나는 언제나 집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놀이터에서 혼자 모래성을 쌓거나 그네를 타며 놀았다. 회전무대는 혼자서 돌리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거의 타지 않았다.
그날도 혼자서 놀고 있었다. 모래에 물을 살짝 섞어 성을 만들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툭툭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영희라고 소개했다. 그때부터 우리 둘은 같이 놀았다. 주로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사실은 회전무대를 가장 타고 싶었는데, 자기는 여자랍시고 나한테만 회전무대를 돌리게 하는 바람에 차라리 숨바꼭질을 선택했다.
가위바위보를 했다. 영희가 술래가 됐다. 나는 분명히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하는 곳에 숨었다. 하지만 영희는 날 찾았다.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술래가 됐다. 분명히 여기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곳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영희를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그제야 영희는 덤불 속에서 나왔다.
숨바꼭질을 계속할 때마다 반복되었다. 영희가 술래일 때, 놀이터 밖을 벗어난 적도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숨어도, 다른 사람 집 담벼락 뒤쪽에 숨어도, 아파트 옥상 문을 몰래 열고 나가 있어도 영희는 나를 찾아냈다. 어디에 숨던 마찬가지였다. 영희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안다는 듯 날 찾아냈다.
반대로 내가 술래일 때는 항상 영희를 찾지 못했다. 나로서는 숨을만한 곳은 쥐구멍까지 다 찾아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찾지 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그리고 영희는 언제나 덤불 속에서 나왔다.
어느 날, 내가 놀이터에 갔을 때 뚱뚱하고 덩치 큰 아이가 친구들과 놀이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모래밭에 가서 성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무시했다. 그러자 내가 아니꼽다는 듯 내가 만드는 모래성을 발로 찼다. 눈에 모래가 들어갔다. 머리를 모래 속에 박았다. 따가웠다. 발로 내 배를 찼다. 그리고는 웃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적군을 물리친 개선장군처럼 주먹 쥔 손을 위로 치켜들고 노래를 부르며 놀이터를 떠났다. 나는 계속 모래밭에 쓰러진 채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날, 영희는 놀이터에 오지 않았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채로 터벅터벅 집으로 갔다.
다음날은 그들이 오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을 때 영희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영희는 웃으며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멀리서 보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영희는 그 뚱뚱한 애가 앞으로 나를 괴롭히는 일도, 이 놀이터에 오는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죽였거든."
"널 괴롭히는 사람은 전부 내가 없애줄게."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영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는 피에 젖은 노란 티셔츠를 입은 채 산에 버려져 있는 그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놀이터에 가지 못했다. 어른들이 짐을 부치는 마지막 날에야 시간이 살짝 남아서 놀이터에 갔다. 모래성을 쌓고 있으니 영희가 등을 툭툭 건드렸다. 이사를 한다고 말하자 괜찮다고 했다.
"이사하더라도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일 테니까. 매일매일 숨바꼭질할 수 있을 거야!"
가위바위보를 했다. 영희가 이겼다. 나는 미끄럼틀 기둥에 머리를 대고 1부터 50까지 샜다. 30까지 샜을 즈음, 어머니께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나는 숨은 영희를 찾기도 전에 어머니를 따라갔다.
나는 멀리 이사 갔다. 집에 도착해서 이사하기 전에 있던 집에 지하철을 통해 가려면 역을 몇 개 지나야 하는지 새어보았다. 대략 14개였다.
그럼에도 나는 영희와 헤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숨바꼭질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가는 중학교는 10분쯤 되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교복은 하나만 샀다. 와이셔츠 하나로 월화수목금 5일을 전부 버텼다. 그렇다 보니 금요일에는 항상 와이셔츠가 더러워져 있었다. 또한, 중학교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 동네는 가난뱅이 동네로 중학교 전체에 잘 알려졌었다.
그런 걸 보고 날 놀리는 애들도 있었다. 놀리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비웃으며 내 책상을 차고 책을 찢는 애들도 있었다. 그 애들은 약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반에서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만큼 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던 도중,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얼굴을 살짝 보았다. 언제나 나를 비웃는 그 애 중 하나였다.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까끌까끌한 모래가 살갗을 벗겨 냈다. 쓰라렸다. 그 순간 귀에 영희의 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빨개진 팔을 감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희는 보이지 않았다.
"널 괴롭히는 사람은 전부 내가 없애줄게."
그날 밤, 창문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창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영희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찾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교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교사와 그들의 부모는 이제 실종신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가출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영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희를 찾으러 나갔던 밤, 나는 영희 대신 죽어있는 그를 발견했다. 노란 티셔츠의 아이가 그랬듯이 목에 칼을 찔린 채 죽어있었다. 붉은 셔츠는 흙이 잔뜩 묻어서 내 셔츠보다 더러웠다. 지금쯤은 아마 개미 밥이 되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주인에게 칭찬받기 위해 자기가 먹지도 않을 쥐를 잡아서는 물어온다고 한다. 영희는 집을 나간 고양이와 같았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쥐를 잡아온 것이 틀림없다.
"널 괴롭히는 사람은 전부 내가 없애줄게."
창문 밖에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창문 밖을 보았다. 다른 반 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영희는 없었다.
등교하던 도중, 빵집 창문에 영희가 살짝 비쳤다. 놀라서 빵집을 들여다보았다. 빵집 안에는 없었다. 반대편 도로를 돌아보았다. 저 빌딩 뒤에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영희를 찾기 위해 반대편 도로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분명히 있을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해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더 찾아보았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그녀는 꼭꼭 숨어버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녀를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터벅터벅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이미 수업은 시작한 뒤였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선생이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려고 했다. 하기 싫다고 했다. 차라리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계속해서 나에게 반협박식으로 이야기했고, 결국 맘대로 리스트 위에 올려놓았다.
그날, 야간자율학습에 빠졌다. 나는 분명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잘못이었다.
다음날, 선생님은 나를 미친개처럼 다른 학생들 앞에서 혼냈다.
선생을 무시. 교권붕괴. 어린 것. 무조건. 웃긴다. 고개 숙여. 뭘 쳐다봐. 이딴 새끼. 쓰레기. 학교 질. 나빠진다. 병신.
문장이 파편이 되어 내 귀에 들어왔다. 이윽고 선생님의 손이 볼을 강타했다. 얼얼했다. 아팠다.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내 고개를 숙인 채로 손으로 목 등을 세 번 강타했다. 이를 꽉 깨물었다. 고개를 들라고 해서 고개를 들었다.
"오늘도 야자 빼먹으면 진짜로 죽는 줄 알아라. 들어가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들어갔다. 그날부터 나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차가운 학교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가끔 영희가 보였지만, 그곳에 가보면 정작 영희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갔다.
나는 시간을 내서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가봤다. 거의 모든 게 바뀌어있었다. 딱 하나 바뀌지 않은 게 있었다면 어릴 적 종종 어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갔던 가락국수집이었다.
들어가 보았다. 내부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인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가락국수를 하나 시켰다. 5,000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놀이터에 관해서 물어봤다.
"그 놀이터요? 거기 갔던 애 중 하나가 없어진 이후로 아무도 그 놀이터에 보내려고 하지 않아서 철거됐어요. 땅값 떨어진다고 쉬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소문은 퍼지죠. 그 애는 아직도 못 찾았데요. 그런데 손님은 예전에 여기 사신 적 있으신가요? 용케 그 놀이터를 알고 계시네."
가락국수값을 내고 놀이터가 있던 곳으로 가보았다.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영희가 그네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모습도, 회전무대를 돌리는 모습도, 멀리 숨으러 도망치는 모습도 눈에 선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미 덤불이 있었다.
이번에도 여기 숨어있나? 하고 나는 장미 덤불 속을 들여다보았다. 장미를 들춰봤지만, 영희는 그곳에 없었다. 순간 따끔하고 손가락이 아파져 왔다. 장미 가시에 찔렸다. 덤불 속은 가시로 가득했다.
장미 덤불? 어째서…….
아하, 여기도 바뀌었구나. 우연히 같은 곳에 덤불이 있었을 뿐이구나. 결국 바뀌지 않은 건 방금 전 가락국수집밖에 없구나.
나는 피가 묻은 손가락을 빨며 놀이터, 아니, 놀이터였던 곳을 나왔다.
1주일 후, 학교는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나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독방에서 질문을 퍼부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시간이 3배는 더 걸린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질문 중 딱 하나 빼고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
"실종되기 이전에 선생에게 폭력적인 체벌을 당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다고 대답했다.
"3월 4일 무엇을 했습니까?" 이사하기 전에 살던 곳에 가봤다고 대답했다.
"그걸 증언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그곳의 가락국수집 이름을 말했다.
"이 범행과 관련해서 무언가 짐작 가는 바 있습니까?" 없다고 대답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모른다고 대답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저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말했나요?" 이번에는 내가 질문했다. 그들은 당황스러운 듯 서로 눈을 맞췄다. 이윽고 그들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응……. 아무래도 네가 그 선생이랑 가장 사이가 안 좋았을 테니까." 거기에 나는 대답했다.
"저는 아니에요."
그들은 아무런 설득력 없는 내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그들은 선생의 집을 조사하고, 내 자택을 조사했다. 학교에 갈 때는 등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나를 피했다. 그들이 증거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짜증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없어졌다. 그리고 다시 경찰 두 명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들은 나를 미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말했다.
"경관 한 명이 사라졌다. 네가 아니란 건 알았어. 미안하다."
나는 정중히 괜찮다고 말했다. 그들은 진짜로 아무것도 짐작 가는 게 없느냐고 물어봤다. 그 질문에서 아직도 나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다시 한 번 거짓말했다.
"없어요."
그 귀에는 영희의 목소리가 윙윙대고 있었다.
그 이후로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굳이 영희를 찾아야 할 만한 필요성을 이제는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영희를 찾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 영희는 내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을 모두 죽여줄 테니까. 찾으면 관련될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놀랄만치 쉽게 영희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점점 나는 영희를 잊었다. 점점 그녀가 희미해져 갔다.
숨바꼭질은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영희는 그저 내가 어릴 적 같이 놀았던 환상일 뿐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영위했다. 주말에 친구들과 PC방을 가고, 주중에는 학교에 남았다. 시험기간에는 자습서를 사다 풀었고, 점심시간에는 농구를 했다. 4월 6일, 8반의 김미아가 나에게 고백했다. 아무런 호감도 없었지만, 싫지 않았기에 그녀와 사귀기 시작했다.
처음 100일까지는 순탄했다고 생각한다. 8월부터 나도 그녀도 수험준비 때문에 바빠졌다. 나는 일단 수험준비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점점 나와 만날 수 있는 날이 적어진다고 전화로 짜증을 냈다. 그만큼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나는 참았다.
수업시간에 모르는 게 있어서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여자아이에게 가서 물어봤다. 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친절하게 그 개념을 가르쳐주었다. 막 그녀가 답을 적을 무렵, 누군가 내 넥타이를 잡고 날 반 밖으로 끌고 나왔다. 나는 개처럼 끌려갔다. 계단에 다다를 즘에 겨우 그 손을 치워냈다. 미아였다. 나는 화를 꾹 참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도 화가 났다는 표정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나 말고 다른 여자랑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날 점심시간을 모두 해명하는 데 썼다.
집에 가서 휴대전화를 켰다. 문자가 쌓여있었다. 짜증이 나서 문자를 모두 지워버렸다. 잠시 귀찮다고 생각했다. 너무 집착이 심한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정도로 집착이 심한 사람을 한 명 더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내려다가 포기했다. 하려던 공부도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그녀가 날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사랑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잠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변명할 지도 생각해뒀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기 전에 그녀는 죽었다. 그녀의 죽음을 가장 먼저 목격한 건 역시 나였다.
어제 싸웠던 그곳에서, 그녀는 죽어있었다. 목이 꺾이고, 배와 등을 잇는 구멍이 난 채로. 방금 죽은 듯 입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에서 영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널 괴롭히는 사람은 전부 내가 없애줄게."
그리고 숨바꼭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느꼈다.
이제는 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직접적인 적은 없었다. 잠시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 사람이 죽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끝내야 했다. 살면서 잠시 짜증난다고 생각할 때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숨바꼭질을 끝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영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희라는 이름은 너무 흔했다. 초등학교 국어책에만 해도 수십 번은 나오는 이름 아닌가. 최대한 그 모습을 기억해서 그림으로 그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십몇 년이 지났다. 똑같은 얼굴일 리가 없었다.
나는 경찰서로 달려갔다. 모든 걸 말했다. 꼬인 혀로 말했다. 그들은 웃었다. 비웃었다. 피식하고 웃곤 말했다. 장난치지 말라고. 바쁘다고. 몇 번을 말했다. 제발 믿어달라고. 그들은 믿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동시에 이해가 갔다. 장미 덤불에서 나오는 여자애 이야기를 믿을 리 없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장미 덤불? 진짜로 거기서 나왔었구나. 바뀐 게 아니었어. 어떻게? 도대체 영희는 뭘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슬슬 짜증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믿어주지 않는 그들이 괴로웠다. 어째서 믿어주지 않지?
그 때, 따뜻한 것이 온몸에 튀었다. 고개를 들었다. 경찰서가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바로 눈앞에는,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진 경관이 보였다. 펌프 잃은 호스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놀라서 뒤로 쓰러졌다. 미끈거렸다. 소리를 지르며 시체투성이 경찰서를 나왔다. 귓속은 영희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쿵.
도중에 누군가와 부딪혔다. 신경 쓰지 않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재빨리 일어나서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어깨를 잡았다. 제발 방해하지 마!
쾅.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잡은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입술 위쪽으로 아예 날아가 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사람이 쓰러지고, 퍽 소리가 나자마자 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을 시작으로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거리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 비명이 모두 영희의 웃음처럼 들렸다. 눈앞의 시체만 보였다. 시야가 점점 일그러졌다. 제발 조용히 해. 닥쳐. 닥쳐달라고!
조용해졌다. 적어도 비명은 사라졌다. 그 대신 비가 내렸다.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피로 젖었다.
"널 괴롭히는 사람은 전부 내가 없애줄게."
집에 돌아왔다. TV가 켜져 있었다. 뉴스가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거리가 화면으로 나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방안 전체가 영희의 그 말로 가득 찬 듯했다.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문밖에서 택배기사가 어머니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초인종 소리는 계속 들렸다. 어느 순간 초인종 소리는 단말마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화면에는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피바다의 거리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
아, 다 나 때문인가?
그렇구나. 나 때문이구나.
전부 나 때문이구나.
나를 증오했다. 눈앞에는 영희가 있었다. 어릴 적에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영희 찾았다.
영희는 웃으면서 날카로운 칼을 내 목에 꽂았다.
술래가 벌칙을 받음으로써 게임은 끝났다.
====
학교 쉬는 시간 빠른 퇴고.
댓글 8
-
수은중독
2012.03.05 10:36
좀 더 레뮈틱해졌어요. -
브라질
2012.03.05 11:14
좀 바꿨네 이게 더 낳은듯ㅎㅎ
다음 작품은 러브코미디죠? -
무언가
2012.03.05 19:54
네. 브라질님이 말하는 러브코미디의 정의와는 다를지 모르겠지만요. -
Yuno
2012.03.05 15:44
비웃음 치며-> 비웃으며 or 코웃음 치며
찣는->찢는 -
무언가
2012.03.05 15:54
맞춤법 검사도 안 하고 올린 거 들켰네. -
여랑
2012.03.05 16:28
아 이게 더 좋네여 ㅎㅎ 재밋게 읽엇슴다 -
무언가
2012.03.06 04:29
1. 술래잡기와 살인의 관계가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2. 도망친 술래의 벌이 모호하다.
3. 일상어에서 괴리된 표현이 있는 것 같다. -
달룡
2012.03.09 19:35
심리물에서 전기물이 되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창작게시판 사용안내 [12] | 하레 | 2011.04.26 | 14472 |
315 | 야요이 트위터 아이콘을 크게 새로 만들었음 [3] | Novelic' | 2012.04.02 | 267 |
314 | 인피니트 스트라토스 01화 자막 . SMI [1] | 라즈베리 | 2012.04.01 | 295 |
313 | 빛의 심판 [2] | 무언가 | 2012.03.28 | 281 |
312 | 그녀를 담는 렌즈 [7] | 무언가 | 2012.03.26 | 246 |
311 | 자작 단편 소설 - 선율 [2] | 모순나선 | 2012.03.24 | 242 |
310 | 자작 단편 소설 - 별 [2] | 모순나선 | 2012.03.24 | 253 |
309 | 자작 단편 소설 - 목소리 [2] | 모순나선 | 2012.03.24 | 183 |
308 | 마도 갓 타이터스 [1] | 비레폴 | 2012.03.21 | 371 |
307 | 강림하는 마도터스 [2] | 비레폴 | 2012.03.21 | 463 |
306 | 짚신 [5] | NGC1432 | 2012.03.21 | 257 |
305 | 온기 [10] | 무언가 | 2012.03.19 | 230 |
304 | [세글엮기] 장난감, 비닐봉지, 우주전쟁 [3] | 하레 | 2012.03.19 | 219 |
303 | 제주도로 전학갔는데 짝이 사투리를 써서 곤란하다 [14] | 시로 | 2012.03.18 | 541 |
302 | 와 오늘이 무슨 날? [11] | 시로 | 2012.03.14 | 260 |
301 | 갈 곳이 없어서 왔습니다 [19] | Motiv_ity | 2012.03.13 | 440 |
300 | 아, 내가 마도터스를 만들었다! [5] | 비레폴 | 2012.03.13 | 440 |
299 | 가식가면-4(3)---------열외중 | 주절꾼 | 2012.03.13 | 238 |
» | (장미, 숨바꼭질, 손님) 영희 찾았다! [8] | 무언가 | 2012.03.05 | 234 |
297 | 푸른 들판의 소나무 - 세 번째 그루 [3] | BRyun | 2012.02.29 | 199 |
296 | 가식가면-4(2) [1] | 주절꾼 | 2012.02.24 | 1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