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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자작 단편 소설 - 목소리

2012.03.24 20:48

모순나선 조회 수:183

출근 준비를 하던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는 머뭇거리면서 나의 이름을 찾았다.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작년 그 날 밤의 기억이 떠올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다행이도 정신을 차리고 평범하게 대답했고 대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선 끝없는 대화가, 끝없는 혼자만의 독백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첫사랑의 목소리였다.
분명 그 사람의 목소리였다.
너무 놀라 멍하는 것도 잠시 오늘 하루는 정상적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어버렸다.

그 날 이후로 나의 일상은 이미 정상인의 그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가슴 깊은 속에서의 이야기일뿐 겉으로 보기엔 일반 사람과 전혀
다른점을 찾아 볼 수 없다.
그 증거로 오늘 밤도 다른 회사 직원들과의 미팅 약속이 잡혀있다.
머리가 터져버릴 듯한 생각들로 인해 시간이 흘러가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 쯤
토스트기에 넣어놨던 식빵이 튀어올라 나의 정신이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오늘 하루도 누가 봐도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깊은 한숨을 쉬며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섰다.

일이 끝나 갈 때 쯤, 직장 동료와 함께 미팅 자리에 나갔다.
그렇게 평소처럼 미팅에서 만나 밥 먹고 서로 연락 주고 받고 집에 데려다 준 뒤 헤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그 사람의 기억으로 가득 차버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속에의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격동하고 있었다.

그 날 밤을, 그녀의 손을, 그녀의 품에 안긴 나를,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앞으로도 없을 그런 기억들
그런 의미없는 기억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만든다.
기억을 지워버리는 기계가 있다면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어떻게든 구해 기억을 지우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겠지, 기억은 지워지는게 아니라 옅어지는거니까.
그런 혼잣말을 속으로 하며 나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매일 하루에 한번 씩 꼭 보던 그녀의 편지를 꺼냈다.
이미 손때묻고 낡아 잉크도 지워지고 그 위에 흘린 눈물로 번질만큼 오랜 시간과
오랜 슬픔, 오랜 눈물들이 담겨진 유일한 그녀의 조각이였다.
나는 그 편지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함께했었던 마치 꿈 과 같았던 기억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줄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살던 중 그녀는 필연같은 우연으로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되었고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 시절엔 슬픔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슬픔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정도의 크기까지 자라버렸다.
내가 이렇게 슬퍼한다 해도 세상은 ,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범하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변하지 않은 건 나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너무 싫다.
그녀의 목소리가 수도 없이 내 귀에 재생된다.
나는 오늘도 그녀의 추억 속에 산다.
나는 오늘밤도 그녀와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 밤 속에서 잠을 잔다.
꿈을 꾼다.
그녀를 본다.
그녀를 느낀다.
사랑을 느낀다.
슬픔을 느낀다.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편지위 그녀 이름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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