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빛의 심판

2012.03.28 07:53

무언가 조회 수:281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서쪽에서 다가오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은 오래간만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동안 방 안에서 마르지 않는 빨래 때문에 고민하셨던 주부분들께 최적의 날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오늘도 그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깨어난다.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방에서 나와 서로를 본다. 그리고는 웃는다. 일렬 지어 한곳에 모인 후 아침을 먹으며 누가 사라졌는지 체크한다. 
 "몇 명 사라졌나." 모자를 쓰고 있는 그녀가 말한다. 
 "3명입니다." 다른 여자가 말한다. 
 가끔 하늘에서 해로운 비가 내릴 때가 있다. 그때면 그들의 반수 이상이 죽는다. 그때는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숭고한 그녀까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3명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숭고한 그녀를 위해 일한다. 그녀는 절대권력자이고, 신이다. 소수만이 그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녀는 대단한 존재이고, 그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으며, 그들은 그녀를 위해 태어났다는 걸. 
 그러므로 그들은 그녀를 위해 끝없이 일한다. 마치 기계처럼. 그들이 사는 이유이기 때문에. 
 불평은 없다. 오히려 모두 행복하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오래전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들은 빗물이 고이지 않는 곳으로 집을 옮겼었다. 그들은 하늘을 본다. 먹구름이 아니라 흰 구름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몸으로 느낀다. 앞으로 한동안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결국, 그들은 원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나긴 행군이 시작되었다. 앞사람을 따라 한 줄로 천천히. 가장 중요한 건 자신들의 안전이나 목숨이 아니라 숭고한 그녀를 지키는 것이다. 
 윙 하는 소리가 하늘 위에서 들린다. 숭고한 그녀의 남편 후보다.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다른 한 명이 날아간다. 
 멋있게 생겼다. 
 그들의 생각은 거기서 멈춘다. 그 이외나 그 이상의 감정을 가져봤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남편은 그들을 사랑해주지 않고, 사랑해주더라도 그들은 임신할 수 없다. 
 불임은 어릴 적부터 결정되어있던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건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그저 뜨거운 모랫바닥을 열심히 걷는다. 

 마침내 그들은 도착한다. 옛날 집은 아직도 상당히 습기 차있다. 그나마 아래로 물이 잘 빠지는 구조여서 이 정도인 듯했다.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의 사정은 어떨까. 
 그들은 각각 방에 들어간다. 달라진 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쉴 틈도 없이 강당에 모인다. 다시 몇 명이 줄었는지 체크한다. 5명이다. 이 정도도 상관없다. 묵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다시 일을 시작한다. 위로 올라가서 숭고한 그녀를 위한 식량을 구해오는 일이다. 
 그들은 동료와 함께 이곳저곳 찾기 시작한다. 숭고한 그녀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사랑과 존경의 경지를 넘어선 지 오래. 맹목적인 복종이다. 
 하나가 달콤한 수액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것을 알리기 위해 동료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그녀는 본다. 빛의 심판을 받아 새까맣게 타죽어 있는 그녀의 동료를. 빛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동료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전에 말했던 위험한 자연재해다. 잘못하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굳게 마음을 먹고 소리친다. 
 "동요하지 마라!"
 모두 그녀를 본다. 그녀는 다시 소리친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신민이다. 그녀는 이런 우리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뜨거운 빛이 그녀의 몸에 쏟아진다. 그녀의 온몸에서 수분이 사라져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말한다. 
 "숭고한 그녀를 위해. 두려워하지 말고 식량을 찾아라. 이 빛은 오래가지 않을 테니까."
 마침내 그녀의 몸이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공기를 채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그 독한 냄새를 맡지 못한다. 코까지 타버렸기 때문이다. 눈이 타서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그녀는 소리친다. 
 "모두 외쳐라. 숭고한 그녀를 위해!"
 "옳다! 숭고한 그녀를 위해!"
 모두가 팔을 올리며 그녀를 따라 외쳤다. 그녀는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안의 수분이 바짝 말라버리는 바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팔을 든다. 모두 알아챈다. 수액이 저기 있다는 것을. 
 마침내 그녀는 죽는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슬퍼하기에는 바쁘고, 그녀 하나 없어졌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액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자연재해의 단순한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기적이었는지, 빛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

 3교시는 과학 시간이었다. 다른 반은 날씨가 흐린 바람에 밖에 나와서 돋보기 실험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오늘 마침 맑은 덕택에 우리 반은 밖에 나와서 돋보기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에 돋보기를 가져다 대보았다. 글쎄. 몇 번 하니까 재미가 없다. 
 나는 돋보기를 눈에서 떼지 않은 채로 수민이가 뭘 하고 있나 보았다. 수민이는 거꾸로 매달린 채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보고 있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뭐해?"하고 나는 수민이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갑자기 나에게 짜증을 낸다. 
 "햇빛 가리고 있잖아. 저리 비켜."
 나는 화들짝 놀라서 옆으로 비켰다. 태양 빛이 다시 수민이의 손을 비춘다. 그 빛이 모여서 어딘가를 비추고 있었다. 
 "뭐해?" 나는 다시 물어봤다. 
 "개미 태우기." 수민이는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씩 웃는다. 
 "이러면 개미가 타서 죽는다고 오빠가 그랬어!"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나도 앉아서 돋보기를 개미에게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와. 진짜로 탄다."
 "그렇지?" 수민이는 자랑하듯 말한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반에 들어가자고 부르실 때까지 돋보기로 개미를 태우고 있었다. 

====

개미 태워 죽이지 마라.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