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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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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끝과 시작을 이어서

2012.05.26 05:00

무언가 조회 수:587

별의 끝과 시작을 이어서  by 하루카나

  
 에니트는 다시 피를 토해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을 옆에 두고 슈미츠에게 말했다. 
 "잠깐 얼굴 좀 씻고 올게요."
 그리고 에니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분이 흘렀을까, 깨끗해진 얼굴로 에니트는 다시 돌아왔다. 얼굴은 깨끗해졌지만, 씻던 도중 또다시 피를 토했는지 병원복에 못 보던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새 병원복 가져올게요." 슈미츠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지만 에니트는 그를 잡았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필요 없어요."
 에니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슈미츠는 할 수 없이 그대로 앉았다. 에니트는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가슴께까지 올렸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슈미츠에게 물어봤다. 
 "많이 놀랐어요?"
 슈미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에니트는 "그렇겠죠." 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반대편의 하얀 벽을 보고 있었다. 
 에니트는 천천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이야기에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할 수 없었어요. 말해봤자 믿지도 않았겠지만요. 그러니까 당신에게만 말할게요. 믿어주실 수 있나요? 아니,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어쨌든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는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죽은 후에 이렇게 되어 버린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당신뿐일 거에요. 
 논리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에요. 조금이라도 학교에 다닌 사람은 코웃음 치며 들을 만한 이야기에요. 심지어는 유치하기까지 하죠. 
 ……역시 당신이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게 간절하게 애원할게요. 믿어주세요. 
 믿어주실 건가요?
 ……고개를 끄덕이신 건 아마 믿어주시겠다는 뜻이겠죠? 그렇게 받아들일게요. 끝까지 그 마음 변치 말아 주세요.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할게요. 어릴 적부터 저는 어머니의 공연을 보고 자랐어요. 유명한 오페라 배우셨던 어머니께서는 항상 VIP석의 표를 가져오셨고, 저는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어머니가 출연하는 오페라를 보았어요. 아름다운 목소리로 무대를, 관객을 사로잡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화려했어요. 금색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 그 모습이 제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혔어요. 
 자연스레 저는 어머니처럼 뛰어난 오페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어머니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것. 그게 제 간절한 소원이 되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라서 개인 교습을 시작했어요. 제가 저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어요. 성악가 어머니와 피아니스트 아버지 사이에서 어쩜 이렇게 음악에 재능이 없는 딸이 태어나버린 걸까요? 선생님을 바꾸고, 연습시간을 늘려도 선생님의 한숨 소리는 끊이지 않았어요. 베개는 매일 밤 눈물바다였고, 제가 울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제 방에 들어와서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달콤한 목소리로 노력하면 성공할 거라고, 자기도 처음에는 그랬다고 저를 달래줬지만, 제 귀에는 한 선생님께서 앞머리를 쥐어뜯으시며 제게 했던 말만 떠돌았어요. 
 너는 가망이 없다. 그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소리를 지르며 그 선생님을 내쫓았지만, 사실이었는걸요. 저는 알고 있었어요. 
 10년을 배웠어요. 13세부터 23세까지. 자그마치 10년을 배웠어요. 실력이 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기간이죠. 실제로 제 실력도 늘긴 늘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오디션에서 줄줄이 떨어졌어요. 글쎄요, 이유는 여러 가지였어요. 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말도 들었고, 표정 연기가 어색하다는 말도,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도 들은 적 있어요. 단순히 실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도 들었고요. 10년 동안 연습을 했는데 실력이 없다고요! 진짜 그날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줄 알았어요. 
 겨우겨우 어떤 오디션에 붙었어요. 지원했던 것보다 훨씬 비중 없는 역을 제안하더라고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저는 냉큼 받아들였죠. 
 실제로 해봤을 때, 거의 배경이나 다름없는 역이었어요. 그럼에도 행복해서 전력을 쏟았어요.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펑펑 울었어요. 
 어머니의 모습이 머나먼 별처럼 보였어요. 아름다워서 손을 뻗어봐도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 10년 동안 해서 겨우 이 정도인데, 도대체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 언제쯤 어머니처럼 될 수 있을까. 그 족쇄가 매일 밤 저를 꽁꽁 묶었어요. 
 유명한 성악가가 쓴 책을 보니 이런 문장이 쓰여 있더라고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오지 못한다.]
 마치 절 놀리는 듯해서 순간 화가 치밀었어요. 책을 벽난로에 집어던져 넣었죠. 책에 불이 붙고,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그 악마가 나타난 건. 
 
 에니트는 갑자기 입을 막고 기침했다. 그녀는 입을 막았던 오른손을 보고 익숙한 듯 병원복 왼쪽 팔에 쓱쓱 닦았다. 소매가 피로 물들어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슈미츠는 에니트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도 신경 쓰이시려나요. 죄송해요."
 슈미츠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계속할게요. 
 그 악마는 제 앞에 나타나서 무릎을 꿇고 제게 달콤한 목소리로 마음에 안 드는 거나 원하는 게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걸까요, 아니면 제가 멍청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냥 졸렸을지도 몰라요. 저는 대뜸 악마에게 말했죠. 
 어머니처럼 되고 싶다고. 
 재능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환하게 웃으며 제 손에 약병을 꽉 쥐여줬어요. 그 약병을 보았어요. 손바닥보다 약간 커다란 병에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빛나는 신기한 약이 들어있었어요. 네, 지금 제 옆에 있는 약이에요. 
 그는 이 약이 제 소원을 이뤄줄 거라고 말하고 눈앞에서 사라졌어요. 손의 약은 그대로였어요. 그 약을 탁자에 두고 잊어버리려고 했더니, 그가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말하더군요. 하루에 한 방울씩만 마시라고.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말한 뒤 그는 다시 사라졌어요. 
 너무 지쳐서 환상이라도 봤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잠들었어요. 어차피 내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푹 자자 하고 말이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일이 모두 꿈인 듯 몽롱했어요. 흐릿한 눈으로 탁자를 보니 약이 그대로 있었어요.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죠. 
 다음 날에는 오디션이 있었어요.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묘하게 신경 쓰이는 거에요. 결국, 저는 물컵에 물을 가득 담고 약을 한 방울 톡 떨어트렸죠. 약 한 방울은 금세 물에 희석되어 사라졌어요. 저는 그 물을 마셨죠. 그리고 저는 그 오디션에 갔어요. 
 오디션을 보기 전에 모두 목을 풀잖아요? 저도 목을 풀기 위해 준비실에 들어갔어요. 그곳에는 이미 제 경쟁자들이 발성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목을 풀기 위해 천천히 목소리를 내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깜짝 놀랐어요. 목소리 자체가 달라진 거에요. 성대 구조 자체가 바뀐 듯. 사람들이 저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저는 그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고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있었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에 자연스레 모두 자기 연습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저 약, 진짜로 효험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저는 오디션장에 들어가서 가장 자신 있는 노래를 시작했어요. 저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요. 
 감독님이 조용히 듣고 계시더니 제게 주역이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넌 주역을 맡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미리 뽑은 주역 배우를 내치고 절 발탁한 거에요. 기뻐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어요. 
 그게 이 약물 한 방울의 힘이었어요. 
 네. 저의 화려한 주역 데뷔를 알린 그 연극이에요. 
 
 에니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슈미츠를 바라보았다. 슈미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믿는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러니까 끝까지 말해봐요."
 에니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를 물어보려던 게 아니에요. 당신이 그동안 제 노래가 너무 좋다고 해줘서, 혹시 진실을 알게 된 당신이 이제는 절 싫어하는 게 아닐까 겁나서 쳐다본 거였어요. 
 계속 이야기할게요. 
 순식간에 저는 전국을 휩쓸 정도의 인기 배우가 되었어요. 모두가 절 주역 배우로 쓰려고 했어요. 인제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갔어요. 어머니께서 저를 보시더니 손을 맞잡고 방방 뛰시는 거 있죠. 저도 어머니를 만나서 기뻤어요. 어머니께서 장난스럽게 물어보시더군요. 오페라의 유령이라도 만났느냐고. 저는 그냥 싱긋 웃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저를 꼭 안으시며 말씀하셨어요. 
 그것 봐. 노력하면 되잖아 하고 말이에요. 약간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았어요. 이틀간 부모님 저택에서 쉰 후, 저는 집에 돌아가 잔뜩 쌓인 편지를 하나하나 펼쳐보았어요. 그리고 가장 좋은 제안을 한 오페라에 나가기로 했어요. 
 그 오페라가 끝나면 다른 오페라, 그다음 오페라. 승승장구는 끝나지 않았어요. 물론 공연 전에는 항상 약을 한 방울씩 마시고 나갔어요.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니 절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조금 외로웠지만, 제 소원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 주역 데뷔작의 주역을 빼앗긴 그녀는 제가 싫다는 표현을 숨기지도 않더라고요. 아마 카밀라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나타나기 전에 주역에 뽑힐 정도인 만큼 카밀라는 실력이 대단했어요. 같은 오페라에 출연하게 될 때도 몇 번 있었죠. 카밀라는 같은 방에서 저를 볼 때마다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는 바로 그 방을 나갔어요. 그때마다 그녀가 높은 구두굽으로 쿵쾅쿵쾅 바닥을 찍는 소리가 들렸어요. 
 카밀라는 제가 진짜로 죽을 정도로 싫었나 봐요. 어느 날, 저는 납치를 당했어요. 언제나처럼 약을 한 방울 마시고 마차를 타고 공연장을 향해 가는데, 갑자기 괴한이 제 마차를 덮친 거에요. 그들은 제 입을 막고 저를 어딘가로 끌고 갔어요. 손을 뒤로 묶인 채 저는 어둑한 건물, 차가운 바닥에 내팽개쳐졌어요. 입안에는 재갈이 물려있어서 소리도 크게 지를 수 없었어요. 목 깊숙한 곳까지 재갈이 들어간 듯, 숨쉬기조차 힘들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익숙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고, 달빛에 얼굴이 비치자마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카밀라가 절 납치한 거에요. 카밀라는 저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일말의 자비도 없이 사람을 칼로 찌르는 듯한 잔혹한 시선으로요.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어요. 저를 칼로 찌르는 건가 하고 순간 등에 소름이 끼쳤어요. 카밀라는 제 목에 칼을 대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걱정 마. 바로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러더니 카밀라는 제 드레스를 칼로 거칠게 찢기 시작했어요. 칼이 가끔 제 살을 살짝 찌를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아파서 비명을 질렀어요.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죠. 
 드레스가 넝마조각이 되어 제 몸에 걸쳐져 있었어요. 그녀는 저를 보더니 깔깔깔 웃으면서 창녀 같다고 했어요. 
 "그래, 이게 본모습이지? 맞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날 재치고 주역이 될 수 있겠어? 몸을 팔아서 배역을 얻는 더러운 년."
 그리고 그녀는 구두굽으로 제 배를 찼어요. 순간 숨이 턱 막혀서 눈물이 나왔어요. 
 카밀라는 아직도 그때의 일에 원한을 품고 있었어요. 제 가슴을 밟고 있던 구두굽을 때더니 그녀는 제게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즐거운 시간 보내."
 그리고 카밀라는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리고 나타난 건 저를 납치했던 괴한들이었어요. 음흉한 표정으로 말이에요.
 덩치 큰 남자 세 명이 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한 저는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꿈틀꿈틀 그들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어요. 소용없는 짓이었죠. 그들은 더욱 흥분하는 듯 보였어요.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저는 두려워서 비명만 지르고 있었어요. 
 그때, 당신이 나타난 거에요. 당신이 제 앞을 막고 정장을 입은 채 괴한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렸을 때, 저는 당신에게 한눈에 반했답니다. 진짜로 멋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두근거려요. 고백이 많이 늦었지만, 그때부터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할게요. 고마워요. 
 당신에게 도움을 받아서 저는 드레스를 빌려 입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어요. 다음 날, 감독이 문을 쾅쾅 두드리며 어떻게 된 거냐고 제게 화를 내더라고요. 저는 사실대로 말했고, 감독은 그 말을 듣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군요. 어디였는지는 말 안 할게요. 그리고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제게 말했어요. 오늘은 괜찮겠냐고. 어제 심한 꼴 당했는데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감독님이 관객들에게 사정을 전부 설명하고, 공연을 뒤로 미룰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감독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오늘부터 나가겠다고 말했어요. 
 저에게는 이 약이 있었으니까요. 
 그날도 약을 한 방울 물에 타서 마시고 무대 위에 올라갔어요.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이 부분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이 약은 언제나 제게 최고의 공연을 보증해줬어요. 그런데 그 날은 그게 살짝 삐걱거린 거에요. 신문에는 [납치 후유증으로 인해서인지 평소의 그녀보다는 약간 부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우월했다.] 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이 현상을 저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절대로 납치 후유증 같은 게 아니었어요. 저는 약을 바라보았답니다. 약은 아직도 많았어요. 
 양을 늘려보면 어떨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날부터 저는 컵에 두 방울씩 약을 넣기 시작했어요. 희미하게 색이 보이는 듯했어요. 그날 공연은 완벽했어요. 원래대로 돌아온 거에요. 
 저는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카밀라가 보이는 일은 없었어요. 그것 빼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아니, 달라진 게 없는 줄 알았어요. 
 어느 날부터 유달리 기침이 많아졌다는 게 느껴졌어요. 공연에서 실수로 기침하게 된 이후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다행히 상대 배우의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기침을 참느라 고생했어요. 
 점점 기침이 늘어나 잠을 방해받을 정도가 되었어요. 덕분에 점점 피로가 쌓여갔죠. 눈 아래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고, 그걸 가리기 위해 점점 화장이 진해졌어요.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어요. 희미하게 떨린지라 목소리를 내는 저만 눈치챌 수 있었죠. 그때는 정확한 이유를 몰랐어요. 몰랐다기보다는 깊게 생각하지를 않았어요. 단순히 '나만 알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죠. 그리고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유는 말 안 해도 아실 거에요. 
 다시 양을 늘렸어요. 세 방울로요. 이게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에요. 
 공연하던 도중 관객석의 당신을 보았어요. 저는 공연이 끝나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당신에게 달려갔어요. 당신이 없어서 터덜터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니 당신이 저 멀리서 보이는 거에요. 그날, 저는 드디어 당신께 감사를 표할 기회를 잡은 거에요. 
 저는 제가 아는 한 최고로 좋은 레스토랑에 당신을 데리고 갔어요. 그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끊임없이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쩔 줄 몰랐어요. 혹시 그때 기억나세요? 당신은 어떠셨나요? 
 ……그냥 갑자기 물어보고 싶었어요. 
 당신은 제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당신은 슈미츠라는 이름을 제외하고 사는 곳도, 직업도 모두 웃는 얼굴로 비밀이라고 말했을 뿐이었어요.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도, 제 감정도 모두 신비로웠어요. 
 그 이후로 항상 우리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죠? 그때마다 그런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사랑일까?' 하고 고민은 해봤지만, 확신은 하지 못했어요. 그걸 확신하게 된 게 저의 집 앞에서 당신이 제게 입 맞췄을 때에요. 
 그때 제가 당신을 밀쳐냈었죠? 죄송해요.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용서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죠?
 그때는 당신과 연인이 되는 행복함보다 스캔들 때문에 인기가 떨어지는 불안감이 더 앞섰어요. 멍청하지 않나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고도 그렇게 빛났는데, 저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울고 싶어져요. 그런데 헛웃음만 나오네요. 하하하. 울다가 웃으면 안 된다는데…….
 
 에니트는 얼굴을 감싸 불쥐고 흐느꼈다. 아니, 웃었다. 슈미츠는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려다가 그 손을 거뒀다.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가? 없었다. 
 슈미츠는 이제 완전히 구겨진 얼굴로 에니트를 보고 있었다. '모두 내 탓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슈미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갔고, 피가 났다. 에니트는 또다시 기침으로 튀어나온 각혈을 병원복에 닦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사과할게요. 제 본심은 이랬답니다. 추하죠?" 에니트는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붉어진 눈으로 슈미츠를 보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시 사과할게요. 그 이후로도 염치없이 당신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을 먹었네요. 어쩌면 이런 벌을 받아도 싼 게 아닐까요. 
 저는 조금 더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있었던 아름다움이 아직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느새 성공과 아름다움을 동일시하게 된 거에요. 
 그렇게 저는 성공, 더 높은 자리에 혈안이 되어 있었어요. 혈안. 점점 눈이 붉어져 갔어요. 피부는 창백하게 변해서 화장이 필요 없어질 정도였는데, 눈 아래의 그늘만 점점 진해졌어요. 결국, 저는 필요도 없는 화장을 계속 진하게 했죠. 
 기침은 감기약을 먹어도 멈추지 않았고, 제 몸은 점점 망가져 갔어요.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서 무리했어요. 혹독한 일정을 계속해서 유지했어요. 
 멍청한 게 아니라 단단히 미친 수준이었어요. 
 평소의 목소리가 이상해졌어요. 점점 거칠어지고 투박해져 갔어요. 할머니 같은 목소리도 아니고, 괴물 같은 목소리였어요. 야수와 같은 목소리. 
 그 목소리는 약을 마시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동시에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이상해지는 주기도 점점 짧아져 갔어요. 이제는 약을 가지고 다녀야 했어요.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전에 저는 네 방울로 늘렸어요. 약은 3/4 정도 남아있었어요. 
 자고 일어나니 하얀 베개와 이불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어요. 손도 마찬가지였고, 제 상아색 잠옷도 마찬가지였어요. 하녀가 들어와서는 기겁하더라고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저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내려가 있으라고 했어요. 하녀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내려갔죠. 얼토당토않은 말이어도 집주인의 말인데, 따를 수밖에 없었겠죠. 
 욕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하녀가 기겁하는 것도 이해가 되더군요. 거울을 보니까 제 입가부터 귓가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어요. 제가 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서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어요. 
 저는 그때야 제 목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요. 평소에는 최대한 의식적으로 기침하지 않으려고 해서 몰랐지만, 기침할 때마다 피가 튀어나오더라고요. 뭔가가 목을 쓸어내리는 듯한 느낌이 끊임없이 목을 괴롭혔어요. 
 그 약 때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어요. 악마가 준 거에요. 당연하겠죠. 그럼에도 저는 그 약을 끊을 수 없었어요.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거든요. 
 다섯 방울, 여섯 방울. 독약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저는 그 약을 계속 들이켰어요. 그게 없으면 저는 그저 흉한 껍질이 되어버릴 뿐이니까요. 저는 급속도로 파멸해갔어요. 
 기침할 때 객혈을 토해내는 건 금세 피를 쏟는 걸로 바뀌었어요. 목에서, 코에서, 눈에서 피를 쏟아냈어요. 공연 전에는 항상 약을 먹었으니까 공연 도중에 그러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딱 한 번, 공연 도중 목에 피 거품이 올라왔던 때가 있어요. 당신도 알 거에요.
 그 평론가가 확실히 뛰어난 평론가인 듯해요. 그 평론가 혼자만 제 목이 순간적으로 막혔다는 걸 눈치챘으니까요. 그 평론가는 기다렸다는 듯 혹평을 써내렸고, 당신은 그 혹평을 보고 터무니없는 평이라고 제 앞에서 신문을 찢으며 화를 냈어요. 제가 그때 그런 평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었죠? 사실 맞는 말이라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 성공했을 때의 풋풋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평론가는 그렇게 적었어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렇게 돌아가기에는 이미 제 몸도 마음도 약에 물들어 버렸으니까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저는 그렇게 저 자신을 몰아붙였어요. 약은 어느새 반밖에 남아있지 않았어요. 같은 양을 쓰는데 그 절반의 시간이 걸린 거에요. 
 피를 토하고, 약을 먹고, 노래하고, 고통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다시 피를 토하고, 다시 약을 먹고……. 끝이 없는 악몽이었어요. 
 온몸이 말라가고, 얼굴은 초췌해졌어요. 눈은 퀭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듯했죠.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귀기까지 서린 듯 보였어요. 독을 잔뜩 머금고 곧 죽으려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럼에도 저는 멈추지 않았어요. 
 모두가 저를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어요. 
 결국, 저는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죠. 병원에 실려오게 되었고, 지금쯤 신문은 호외를 뿌리고 있지 않을까요? 드디어 모든 게 끝난 거에요. 
 
 "비극의 끝은 언제나 허무해요. 어리석은 자의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요. 가슴 속 소원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는데, 결국, 그 소원은 제가 어릴 적 바라던 소원과는 엄청나게 다른 가짜 소원이었어요. 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제 몸을 혹사시켰던 걸까요?"
 에니트는 손을 뻗어 약병을 잡았다. 대략 1/3 정도 남아있었다. 
 "오늘 밤, 이 약을 한꺼번에 들이켤 거에요. 약과 함께 저는 사라지겠죠. 이 약에 오염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겠죠?" 에니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나가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추한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기는 싫어요." 에니트는 그렇게 말하고 슈미츠에게 등을 돌렸다. 슈미츠는 손을 뻗으려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이윽고 에니트가 있는 병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그곳에는 에니트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음 지으며 약병 입구에 입을 맞췄다. 저 웃음은 악몽에서 탈출하는 것에 대한 기쁨인가,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자조인가. 
 
 
 EPILOGUE. 2년 후
 
 미안해요.
 당신은 제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진짜로 미안해해야 할 건 저에요. 당신의 고통은 전부 제 잘못이니까요. 비록 당신이 절 용서해주신다고 하더라도, 아마 저는 평생동안 이 죄책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죠. 
 당신을 좋아했어요. 당신이 절 알기 전부터 말이죠. 우연히 위로 올라갔다가 당신을 보고 첫눈에 반한 거에요. 그날 이후로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집에 있는 수정 구슬로 당신을 봐왔어요. 당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노래를 부른 뒤 침대를 눈물바다로 만드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저의 아버지는 위대한 악마였어요. 모두가 그렇게 불렀고, 아버지도 그런 호칭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저는 악마로서는 거의 가망이 없다시피 했어요. 묘하게 당신과 겹치는 부분이네요. 
 가망 없는 악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도 저 사람이 어째서 슬퍼하는 건지, 뭘 해야 할 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어요. 
 머릿속에 살짝 스쳐 지나가는 영상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당신이 원하는 걸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서 당신에게 직접 물어봤어요. 그리고 저는 오랜만에 아버지의 성을 찾아갔어요.
 위대한 악마였던 아버지는 언제나 바빴죠. 그날도 성에 아버지는 없었어요. 저는 맘대로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갔죠. 서재였지만, 동시에 실험장이기도 했어요. 그곳에는 온갖 것들이 가득했어요. 
 저는 찬장을 올려다보았어요. [목소리]라고 쓰인 칸에 약이 하나 들어있었어요. 저는 대뜸 그걸 집어서 가져왔죠. 덤으로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수정 구슬까지 가져왔어요. 저희 집에 있던 구식 수정 구슬은 창고에 박아뒀죠. 
 ……죄송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스토킹이었네요. 
 어쨌든, 저는 당신의 손에 그 약을 쥐여줬어요. 그 약이 당신의 소원을 이뤄주리라 믿고 있었어요. 
 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위대한 악마의 찬장에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 따위 없다는 걸 말이에요. 
 저는 당신을 보고 행복해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해한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이 된 듯 보였어요. 별처럼 빛나는 무대 위의 당신은 언제나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당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한 듯했어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해하기로 했어요. 당신이 원하는 건 당신이 가장 잘 알 테니까요. 
 어느 날, 당신의 비명을 듣게 되었어요. 깜짝 놀라 수정 구슬을 보았고, 저는 바로 위로 올라가서 당신을 구했어요. 늦어서 미안했어요. 어딘가에 나갔다 들어왔었거든요. 
 그 이후로 당신이 언제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인간의 감정을 연구해보고 오겠다.'고 편지를 써놓고 위로 가서 인간의 분장을 하고 집을 샀죠. 아버지는 아마 드디어 못난 아들이 악마가 될 마음이 들었나 보구나, 하고 좋아하셨을 거에요. 
 그리고 당신의 공연을 보러 갔고, 당신을 몰래 따라다녔어요. 중증 스토커네요. 지금 머리털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요. 과연 저는 당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두려워요. 
 아니, 그 희망은 포기할게요. 당신이 절 용서할 리가 없으니까요. 
 계속할게요. 당신은 저를 발견하고, 저는 당신과 매일 저녁을 먹게 되었어요. 당신과 함께 식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매일 밤이 엄청나게 기대됐어요. 
 이제 수정 구슬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창고에 박아뒀어요. 
 어느 날, 저는 당신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 번 의식하게 되니 온갖 징조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창백해진 피부가, 붉게 변한 눈이 보였어요. 
 설마 하고 저는 그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봤어요. 아버지의 답변은 간단했어요. 두 줄도 필요 없었죠. 
 그 날부터 당신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져 갔어요. 당신이 절 거절한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어요. 그것보다 저는 당신 자체가 더 걱정되었어요. 
 그렇게 금방 수정 구슬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당신의 소원은 더 강해져 있었어요. 동시에 당신의 몸은 점점 약해졌어요. 당신이 피를 토할 때마다 저도 피를 토하는 느낌이었어요. 
 평론가의 기사에 화를 냈던 이유는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조금이나마 당신을 위해서. 
 모르는 척.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마음을 찢어내는 것 같았어요. 단 하나의 실수가 당신을 파멸시켜버린 거에요. 그것마저도 당신을 위한 실수였어요. 당신을 위해 준비했던 건데…….
 당신은 제게 이야기를 믿어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믿고 싶지 않았어요. 
 믿기 싫었어요. 
 제가 당신의 인생을 이렇게 망쳐버렸다는 걸, 제가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는 걸 저는 부정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결국 잔혹한 형태로 찾아오고 말았어요. 당신이 얼마나 궁지에 몰려있었는지 아마 저는 상상도 하기 어렵겠죠. 
 모든 진실을 부정하려는 그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제게 고백해줬어요. 좋아한다고. 그것마저 부정하기는 싫었어요. 결국, 저는 그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당신의 눈앞에 서 있을 면목이 없는 제가 지금 이렇게 당신에게 사과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당신은 중간에 당신의 눈이 퀭해졌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눈은 절대로 퀭해진 일이 없어요. 당신의 눈은 언제나 당신의 목표를 향해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어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났어요. 저는 그 눈에 반했으니까,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어요. 그 눈은 변하지 않았고, 점점 강해져 갔어요.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원했던 그 소원은 가짜 소원이 아니었어요. 다만, 당신은 거대한 소원을 이뤄놓고 그 안에서 잠시 헤맸던 것뿐이에요. 
 당신은 저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추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요. 당신의 영혼은 언제나 깨끗했으니까요. 몸은 진짜로 껍질일 뿐이니까요. 제 눈에 당신은 언제나 어릴 적 그 모습대로였어요. 
 당신은 당신의 영혼이 오염되었다고 말했어요. 당신의 영혼은 오염된 적 없어요. 저 약은 몸을 오염시키는 약일 뿐이니까요. 거기다가 저는 무지해서 영혼을 오염시키는 방법조차 모르거든요. 당신의 영혼은 당신이 가장 밝았던 때처럼 빛날 거에요. 
 그렇기에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염치없이 당신이 절 따라 지옥으로 와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절대로 나쁘지만은 않을 거에요. 
 ……역시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어요. 
 제발, 저를 용서해주실 수 있나요? 절 따라와 줄 수 있나요? 
 부탁할게요. 
 
 갑자기 주변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슈미츠는 그 소리에 회상을 그만두고 눈을 떴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두꺼운 가죽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슈미츠는 옆에 있는 해골을 툭 쳤다. 해골은 텅 빈 고개를 돌려 슈미츠를 보았다. 아마 얼굴이 있었다면 도대체 뭐냐며 신경질 내는 표정이었으리라. 
 "예쁘지 않나요?" 슈미츠는 해골바가지에게 물어봤다. 해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슈미츠는 해골이 자기 말을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박수 치고 있는 해골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그는 단순히 그렇게 말해보고 싶었으리라. 
 "제 신부에요."
 에니트는 별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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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우수작 1.png


거울 우수작 선정된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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