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에 노블엔진 냈다가 떨어진 거
2012.07.07 00:18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다.
생생한 한여름 밤의 꿈을 꾼 이후로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 이 순간마저 그 꿈의 연장인 것처럼 느껴진다.
달콤하면서도 포근한─잡을 수 없을 만큼 붕 떠 있는 저 구름을 닮은─솜사탕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꿈.(솜사탕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온기'가 있다는 것 정도)
아직도 그 꿈같은 일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내가 아직도 그 포근한 온기에 취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단 며칠간의─꿈같은─일이었지만 그 때 느꼈던 그 따스하고 정다운 느낌을 난 아직 잊을 수 없다.
돌아보면 그것은 너무 서두르고 서투른 헤어짐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그런 헤어짐이었기에 여태껏 그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을 살며시 감아보면─아직 채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처럼 남아있는─여운의 잔류가 느껴진다. 그 추억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살아,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는 것이다.
평생 잊지 못할 그 4일간의 추억은 내 안에, 내 삶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조금 과장해보자면 먼 훗날 침상에 누워 모든 것이 희미해지기 시작할 때의 그 마지막까지 잊히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목적도, 꿈도 없이.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나에게 그 4일간의 합숙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변화의 계기, 우연을 가장한 운명 등 그 어떤 문학적 표현을 가져와 쓴대도 그것을 채 표현하지 못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을 정도다.
정말 그것에 걸맞은 표현을 찾는다면─음, 그것은 『오고가며 그저 스쳐 지나간, 그렇게 끝나야 했고 그렇게 끝난 이야기』정도랄까?
고심 끝에 적어내린 표현이지만 막상 쓰고 보니 진부하기 짝이 없고 소박하며 창의성 제로인 표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지만 그래도 나는 이 표현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지금부터 들려줄 그 꿈같은 이야기가, 듣기에 진부하며 소박하고 어쩌면 어딘가에서 본 이야기일 수도 있을 만큼 창의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녹아버릴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 내 가슴에 물결치고 있기에 그것이 나의 소중한 기억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후~, 한숨을 내쉬고.
이제부터, 정말로 그 꿈같은 이야기를 한 치의 과장도 없이─쓰려고 노력하나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크고 소중했던 시간들이라 그것을 남들에게 들려줄 때만큼은 무척 조심스럽다─들려줄 것을 미리 다짐해본다.
♀
꿈의 시작은 무더운 여름날(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찌는 태양이 이글거리던 날이다.
덥다, 이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하늘 저 높이 떠있는 태양의 열기는 아스팔트마저도 흐물흐물하게 만들만큼 비현실적이고 괘씸하게 느껴진다. 어쩐지 태양이 우리가 축 늘어져 생기를 빼앗기는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주위의 사람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엔 불쾌한 빛이 가득하다.
셔츠의 넥을 만지작거리며 후 하고 뜨거운 입김을 내쉬는가 하면 아예 티셔츠가 올려 상체가 드러나 보일만큼 옷을 펄럭이는 사람도 있었다. 더워서 그런 거겠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그 광경마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라는 생각으로 태양을 한 번 흘겨보았지만 태양은 열기를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불쾌한 빛을 내비치며 추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흘겨보던 나였지만 어느새 나 역시 긴 치맛자락을 들어 펄럭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치마를 아랫배까지 들어올려─얼마 불지 않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주위의 눈이 신경 쓰여 참기로 했다.
창이 넓은 모자와 가벼운 수가 놓인 원피스.
보는 이마저 시원한 정통 여름 패션이건만, 그것은 보는 이만 시원할 뿐 당사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 했다.
어쩐지 배신당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한층 더 나빠졌다.
거기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는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인지 아님 이 무더운 열기를 이기지 못해 녹아버린 것인지 오지 않았다.
그 잔인한 사실이 내 불쾌지수를 더욱 높이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예의 그…건드리기만 해도 살인이 일어난다는, 정말로 지금 누군가 나에게 치근덕대거나 이 이상 짜증지수를 높인다면 나는 분명 그대로 경찰아저씨에게 연행되어 감옥으로 끌려갈 판이다.
물론 느낌만 그렇고 나에게 그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배짱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애꿎은 돌멩이만 걷어찰 뿐이었다.
그렇게 주위의 돌멩이가 모두 사라져, 의미 없이 구두 끝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쯤,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는 버스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터인 버스가 그렇게 늦장을 부리며 다가오니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무 힘준 나머지 애써 한 화장이 갈라진 것 같은(뭐 이미 땀에 지워졌을 테지만) 느낌이 들었다. 좌석에 앉은 뒤에 고쳐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버스를 마중 나갔다.
버스의 앞문이 열리고, 기분 나쁜 더운 공기가 안면을 강타했다.
불쾌해,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요금을 지불한 뒤 자리에 앉았다.
물론 버스기사를 한 번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라는 느낌으로 햇볕이 비교적 적은 자리를 찾아 앉은 뒤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여행가방을 몸에 밀착시켰다. 이미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른 여행 가방이 몸에 닿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역시 통행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몸을 옆으로 기울여 뒤편의 좌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몸을 기울이는 데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그런 불편함보다 일단 편하게 앉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인 듯하다.
하기야 나 역시 물불 안 가리고 냅다 자리에 앉아버린 데다가 그 때에 앉는다, 라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묘하게 공감이 갔다.
부릉, 하는 시동소리와 함께 몸이 뒤편으로 쏠린다. 예고도 없는 출발이었기에 버스 내부 곳곳에서 신음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한껏 축적된 짜증을 십분 발휘하고 싶었으나 메말라 버린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올 리 없다. 애초에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많은 군중 속에서도 나는 묻혀 함성을 지르지도 못하는 것이다.
버스 특유의 시트냄새와 여름철 인파의 땀 냄새, 울적해진 기분이 뒤섞여 한층 업그레이드된 불쾌감이 몸을 적셨다. 참패한 기분은 달래기 위해 창문을 열기로 했다. 관리가 잘 되지 않는지 뻑뻑한 창문을 열기 위해서는 조금 더 힘을 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힘을 들이는 이유는 조금 열린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정말 기분 좋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이라면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감안하기로 했다.
창문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안면에 강타한 상쾌함과 함께 체크 포인트에 꾸준히 적립해 왔던 짜증과 분노가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부여잡고서 흥겨운 감탄사를 내뱉는다.
정겨운 시골 내음과 연이은 초록색의 정경, 양옆으로 배치된 가로수의 바코드.
한적한 시골길 도로의 풍경이다.
──햇살은 따듯한 것을 넘어서 무덥고, 초목은 정말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인 벌목이 정말로 행해지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로 무성한,
한 눈에 보기에도 여름날, 이라는 그런 광경.
그것이 의외로 자연의 솔직함이라고 느껴져서인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이 타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이다.
first memory
새로 선크림을 바르는 것을 잊어버린 것도, 창밖의 풍경에 정신이 팔린 것도 분명 내 잘못이지만 왜인지 살결이 자외선의 공격을 받아 푸석푸석해지고 조금 타버린 것이 저 태양의 탓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름날이 되면 모든 것이 태양 탓이라고 해버리는 것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물론 정말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단순히 내가 남 탓하기를 좋아하는 것뿐일 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아서 조금, 후회했다.
조심스럽게 지워진 화장을 다시 고치고서 목적지가 그려진 약도를 꺼내 다시 한 번 확인한다.(선크림을 바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나무로 추정되는 막대와 도로인 듯 그려진 일자선로를 따라 올라간다면 친절하게 표시된 집 하나가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집 주위에 친절하게 화살표 세 개가 집중포격하고 있는 것도 포착할 수 있었다. ‘이런 것보다 좀 더 성의 있게 그려줄 것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푹 내쉰다.
언뜻 보기에 어린애 그린 것 같은 형편없는 낙서처럼 보이지만(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 녹음의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적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약도대로라면 이대로 머지않아 다시 이 찌는 태양아래 던져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지금 내가 가야할 곳은 어느 시골 마을의 어떤 산골에 있는 무슨 민박집. 상당히 추상적이고 재미없는 소개지만 이 여름날의 합숙을 소개해준 언니에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알 수 없는 여행을 시도하는 나나 엉터리로 가르쳐 준 언니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씩, 웃고 있는 언니의 얼굴이 클로즈 업 돼서 조금 한숨이 나왔다.
자유로운 일탈.
누구나 한 번쯤 꿈꿀 법한 그런 것이지만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세상이 흉흉한 것도 있고.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곳에 가느냐고 묻는다면 꽤나 할 말이 많다.
한 3페이지 정도……?
♀
고백하자면, 사실 난 사람을 대하기가 서툴다.
대인기피증이나 사람 자체를 거부한다는 건 아니어서, 그저 조금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나 할까. 다르게 말하자면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그 이상 넘어오는가 싶으면 뒤로 몸을 빼게 된다고나 할까, 여하튼 나는 타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이 서로에게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서로 닿기만 해도 짜증이 이는 여름날 뿐만 아니라 한 사람분의 체온으로는 채 달구지 못할 정도로 추운 겨울날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던─사실에 회의를 느끼게 된 계기는 의외로 소소한 일상에서였다.
학교에서의 나는 반 내에서 따로 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어울려 놀지도 않는 그런 위치다. 특별히 친한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유독 사이가 나쁜 친구도 없다.
말 그대로‘아웃사이더’하지만 그렇다고 따돌림 당하거나 하는 건 아니어서 내가 원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이런 인간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된 그 날도 특별히 상황이 나쁘진 않았다.
나로서는 드물게─제의를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순전히 내가 거절했기 때문이다─반 아이들과 놀러 다니게 되었는데 저마다 친한 친구끼리 자연스럽게 무리를 짓게 된 것이다. 정말로 따돌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말이다.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는 정말 유연한 현상이었다. 마치 파도가 친 뒤 백사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돌멩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런 내 자신에게서 관조적인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나, 갈래.”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모처럼의(나의 기준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파도를 맞은 듯했다. 다행인지 유감인지, 썰물의 때는 빨라서 상황파악이 빠른 애들은 허겁지겁 다운되어버린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듯 말하지도 않은 사정을 만들어가며 나의 공백을 지우려 했다. 그 여세를 몰아 아이들은 나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고 헐레벌떡 자리를 떠버렸다.
그렇게 아이들의 실루엣이 더 이상 보이지도, 왁자지껄한 하이톤도 들리지 않게 되자 비로소 혼자가 되어다는 것을 실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상황임에도 왜인지 파도가 친 뒤의 쎄─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물론 박힌 돌멩이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나는 파도에 쓸려가지 않은 걸까.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 잠시 눈을 감았다. 괜스레 핸드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의식될 만큼 힘이 들어간 발걸음을 삐걱대며 옮기면서, 조금 후회했다.
──여기까지가 계기.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가 이 일탈을 감행하게 된 사정에 관한 이야기.
그 뒤 곧장 집으로 향한 나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던져둔 뒤 거실로 향해 걸어가 풀썩, 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화장이 번지는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이 생소한 감정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만이 초유의 관심사였다.
우우....하고 신음을 내며 화장이 번진 얼굴을 돌린다. 울상에다 흐른 땀 때문인지 얼굴을 비벼댄 탓인지 번져버린 화장 때문에 모습은 가관이었다. 더욱 설워져서 당장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마음 놓고 펑펑 울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나를 주시하는 눈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슬쩍 슬쩍 곁눈질로 본다고 하지만, 그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한다면 「둔감녀」라는 별호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질 정도로 의식적이다.
캔 음료를 입에 갖다 댄 채 ‘저는 지금 TV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이 매니큐어가 곱게 발라진 손으로 리모컨을 휙휙 돌리고 있는 사람.
────우리 언니.
남의 눈은 아랑곳 하지 않고서 어깨가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늘어진 민소매 티를 입고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은 차마 싸구려 폴리에스테르 따위로는 가릴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배어 나온다.
“……왜 보는데”
축 늘어진 모습에 축 늘어진 모습으로 대응하며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냥……귀여운 척 하는 게 짜증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내뱉고서 후루룩, 소리가 나게 캔 음료를 들이마셨다. 꿀꺽, 꿀꺽 하고 음료가 식도를 타고 수직하강 하는 소리가 들린다. 술도 아닌데 캬아, 하는 추임새를 넣는 모습에서도 그녀의 외향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
나도 조금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언니를 주시한다.
짧은 반바지 사이로 드러난 길게 쭉 뻗은 매끈한 다리가 보인다. 발끝으로 슬리퍼를 까딱거리면서 흔드는 모습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적당히 붙은 살집이나 예쁘게 발린 매니큐어에서도‘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친족 간에 그것도 자매간에 이런 평가가 내려지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지만 동생인 내가 봐도 언니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성격이 조금 왈가닥이긴 하지만…….
“어? 평소 같으면 이미 뭐가 날아와야 할 타이밍인데. 너 무슨 일 있구나?”
참 빨리도 알아챈다, 라고 작게 읊조리고서 언니가 앉아 있는 소파로 몸을 날렸다. 샤워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베고 누운 허벅지에서 비누향이 난다.
“무슨 일로 어리광일까아~? 나 용돈 다 썼는데.”
“그런 거 아냐…….”
언니는 내가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이다. 타인에게 가지는 거리감 따위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어리광을 맘껏 부릴 수 있다.
“나……조금 외로워.”
응? 하는 목소리와 함께 내 머리칼을 정리하던 손이 멈춘다. TV를 주시하던 갈색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는 것과 거의 동시다.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조금 무서워 나도 맞서서 눈을 부릅뜬다. 그게 웃겼는지 언니는 나를 일으켜 세운 뒤 깔깔 웃기 시작한다.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구!”항의하듯이 인상을 찌푸린 뒤 몸을 언니의 팔에 밀착시킨다. 언니와의 얼굴이 가깝다.
“그래? 뭐가 그렇게 외로운데?”
언니는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는 나의 팔을 뒤로 쳐낸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나를 언니는 그대로 품에 안는다. 부드러운 가슴의 촉감이 느껴진다. 쭉 짜낸 클리너처럼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난다.
“친구가……없다고나 할까. 가까워지지 못한다고나 할까.”유동하는 맨틀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는다. 머리 위에서는 흐음, 하는 감탄사가 들려온다.
“너 혼자 있는 거 좋아하지 않았니?”자연스럽게 정곡을 찌른 듯 가심이 아파온다. 역시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비춰진 것일까. 그 애들도 그런 인상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어, 맞아. 그랬었어.”
“었어? 지금은 아니니?”
아니야, 라고 작게 말하고서 조심스럽게 몸을 빼낸다. 치맛단이 구겨지는 것 따위는 상관없이 무릎을 오므려 얼굴을 파묻었다. 주름이 져버리는 치맛자락 같이 마음속마저 구겨지는 것 같다.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니마저 가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울적해졌다.
다행히도 고개를 들었을 때 언니는 내 앞에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동생의 비애를 기뻐하기라도 하는 건가 싶어─조금 퉁명스럽게─“뭔데, 뭐가 그렇게 즐거운데?”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눈가가 상당히 팽팽해진 게 느껴지는 걸로 봐선 상당히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다소 삐딱한 내 자세에 언니는 어른으로서의 넘치는 포용력을 발휘한다는 듯이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앙다문 내 입술 사이에 끼워 넣는다. 염소냐, 반항의 외마디를 날리고서 입술에 붙은 종이를 떼어내 읽었다.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여름 농촌 합숙?”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눈이 빛난다.
“응 매년 아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건데 서로 아는 지인을 데려와서 다 함께 노는 거야. 사교성을 기르기엔 괜찮지 않니?”
휙, 하고 머리 위로 텅 빈 음료용기가 날아오른다. 시선은 어느새 그 비행물체를 뒤좇고 있다. 유명 상표가 붙은 UFO는 그대로 날아서 쓰레기통을 목표로 한다. 무사히 착륙했는지 알루미늄 특유의 파공음이 들린다.
퍼뜩, 제 정신으로 돌아와 저 짧고도 긴 비행 간에 품었던 말을 꺼낸다. “이거……이상한 거 아냐?”
세상은 위험하다, 그런 메시지를 주려는 듯 TV에서는 매일 범죄와 테러에 대한 소식을 전해준다. 그런 뉴스에 노출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은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사는 B.N(Bad News)의 단골손님이다. 설령 수차례 이 행사를 다녀온 친언니의 말이라고 해서 쫄래쫄래 갔다 오기에 이 세상은 너무 험하다, 고 매체들은 말하고 있다.
아니, 매체는 핑계고 사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친구들(친하진 않다)도 꺼리는데 이런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생활한다고 남과 거리를 두는 이 나쁜 습관이 나아질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갈 거야 말거야. B.N(Badly notion)에 빠진 외톨이 양?”
외톨이라는 말에 힐끗 눈에 힘을 주어 노려보고서, 한숨을 한 번 푹 내 쉬고 말했다.
“생각해 보고.”
♀
트렁크를 내림과 동시에 버스가 출발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메스꺼운 매연을 마셔야 했다. 도시에서는 익숙했던 그 케케묵은 냄새가 이 허허벌판에서는 왜 이리도 애석한지, 불어오는 시골 바람을 맘껏 들이마셨다.
“하아~ 좋다~.”
어쩌면 못 이기는 척 언니의 제안에 동의한 것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양 옆으로 산림이 우거진 시골길을 거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탈이며 낭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길은 나에게 있어서 활로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짱짱한 태양 아래서 그 시골의 정겨움을 더 느끼기 위해 쓰고 있던 창이 넓은 모자를 손에 쥐고서──이제 조금 남은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언뜻 들려오는 매미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꽤나 잘 어울리는 하모니인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조금……기대하고 있는 걸까나~♪”
모처럼 들뜬 기분과는 다르게 「자외선」이라고 하는 직사광선이 내 얼굴을 집중포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난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라는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이번에도 역시나 후반 시간 없어서 조루처럼 끝내버렸음
저번과는 다르게 수정도 별로고 표현도 난잡했어서 흠 아무래도 극초반이고 주인공의 성격이 명확하지 못해서 떨어진 듯함
중반 언니 나오기 전 부분부터 날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