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1시간 쓱싹 습작

2012.07.14 06:19

무언가 조회 수:594



또다시 실수했다.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들려오는 건 내 상상 뿐이다. 이미 내 눈앞에는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손가락을 겨눈다. 눈으로 화살을 쏜다. 입에서는 커다란 대포알을 발사한다. 대포알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는 무너져내린다. 마침내 나는 혀를 깨문다. 

영상은 순식간에 나타나 눈을 뜨는 순간 사라졌다. 아니, 현실이 되어있었다. 심하게 왜곡된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다. 시야마저 비틀려버린다. 

우웩. 

토가 나올 것 같다. 결국 나는 허겁지겁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속을 게워냈다. 어젯밤 먹었던 나물이 눈앞에서 나를 비웃고 있었다. 구역질이 나서 다시 토했다. 또다시 그 비웃음이 들려오기 전에 나는 변기 뚜껑을 쾅 닫고는 물을 내렸다. 


처음 하는 건 언제나 실수한다. 

뭘 하든, 몇 번의 연습을 거쳐도 변하지 않는 징크스였다. 그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마치 자기들은 안 그랬다는 듯 그들은 나를 신기한 생명체 보듯 쳐다봤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붉게 물든 방에서 나는 거대한 도끼를 들었다. 이마를 찍었다. 순식간에 두개골이 반으로 갈라지고 피가 튀어나왔다. 따끈따끈한 피가 벽을 도배한다. 몇 번 더 찍는다. 아예 반원을 그리며 커다랗게 휘두른다. 사람들이 쓰러져나간다. 꼴 좋다. 나는 그것들을 발로 찬다. 힘없이 데구루루 굴러간다. 마침내 그것들은 커다란 산을 이루고 내게 쏟아진다. 나는 그것들에게 깔리며 미친듯이 웃는다. 

그렇게 상상했다. 벽지는 여전히 하얀색이었다. 나는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유일한 안식처로 도피한다. 


다음 날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침을 먹는 것보다 TV를 켜는 것이었다. TV에서는 전대미문의 운석충돌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운석을 피할 방법을 연구한다고 했다. 실패하면 그대로 세계가 멸망한다. 

세계가 멸망할 것인데 학교가 무슨 소용일까. 나는 그냥 내 방에 틀어박혔다. 


인터넷은 실시간으로 그들의 계획을 보여줬다. 철구를 위로 쏘아올려 궤도를 바꾼다고 했다. '오히려 미사일이 낫지 않나?'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과학자들이 알아서 생각할 일이다. 

그들의 준비는 차근차근 끝났다. 운석 충돌 10일 전, 철구는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돌덩어리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거대한 철구를 보고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다. 속으로 기도했다. 철구가 운석과 맞지 않기를. 

그 기도가 도움이 되었는지 철구는 운석을 비껴갔다. 모든 인류가 절망했다. 이제는 뭘 해도 늦는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미친듯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것 봐. 너희들도 처음에는 실패하잖아? 너희들은 나를 비웃을 자격이 없어. 

곧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 나는 편안한 죽음을 위해 수면제를 한꺼번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나는 꿈에서 깼다. 어라? 나는 죽지 않았던가?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자살시도는 처음이었다. 어째서 이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는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날짐승, 들짐승, 바다짐승 할 것 없이 죽어있었다. 머나먼 곳에서 고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시체로 쌓아올려진 섬 위를 올라가봤다. 사방이 바다였다. 물. 물. 물. 햇볕이 비치는 수면이 눈부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나는 최후의 인류로서 본 것이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는 그것에 뛰어들었다. 내 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창작게시판 사용안내 [12] 하레 2011.04.26 14472
395 하트캐치 프리큐어 48화 - 한심한 소리 하지 말아 주세요! 리카아메 2012.08.26 814
394 [패러디]SCP-XXX-J "발정시키는 남자" [2] starblazer 2012.08.22 673
393 베이가를 그려보았다 [1] 여랑 2012.08.22 394
392 중3떄 역작투척.JPG [5] CDP 2012.08.21 615
391 그림인증 하나 던지고 감 [7] 투아 2012.08.20 501
390 [자작 단편 소설] 1,60,3600 [2] 모순나선 2012.08.19 478
389 고전 논쟁 [7] 횃불남자 2012.08.18 468
388 큐어 다크, 문 프리큐어, 큐어 다크라이트 [3] 리카아메 2012.08.12 632
387 하이 간만이에여 [4] 시로 2012.08.12 569
386 예전에 만든 나갈없 배너.png [8] 모순나선 2012.08.07 632
385 여자들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의 직업 순위 [6] 횃불남자 2012.08.04 5026
384 라이트노벨 창작 노하우 [5] Novelic' 2012.07.26 759
383 도중에 그만둔 공모전용 글 초반부인데 평가좀 해주라 [13] file 하이웨이 2012.07.17 636
382 나노하 극장판 보고 너무 여운이 남아서 그려보았당 [4] 古戸ヱリカ 2012.07.17 506
381 (브금 자동재생) 하야테2가 요청하신 야설 나왔습니다 [18] Novelic' 2012.07.15 2300
» 1시간 쓱싹 습작 [2] 무언가 2012.07.14 594
379 마법소녀 마도카 데마시아 [5] 간길 2012.07.10 743
378 우날부 - 비키니 하얀 스캐치 [4] bump 2012.07.08 1290
377 전에 노블엔진 냈다가 떨어진 거 [3] 청록야광봉 2012.07.07 540
376 나갈없에 올리면 3년 차단당하는 짤.jpg [22] Novelic' 2012.07.04 126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