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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자작 단편 소설] 1,60,3600

2012.08.19 22:17

모순나선 조회 수:478

1,60,3600

 

긴급 출동 상황 발생! 모든 대원들은 긴급 소집 후 출동 대기 하라!’

 

방의 잔잔한 침묵을 깨고 감고 있던 눈을 뜨게 하는 사이렌이 울렸다.

듣고 있던 헤드폰을 벗은 뒤 옷장에 가서 폭발물 처리반용 특수제작복으로 갈아입었다.

대원들 옷장 밑 작은 상자 안에는 흰 종이 한 장씩이 놓여 있었다.

직업상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유언을 적어놓는다.

옷장의 문을 열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간절히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은 이젠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마음속 작은 바람하나를 그 종이 안에 담은 뒤 옷장의 문을 닫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옷장을 닫는 소리가 크게 느껴 진 건 기분 탓 일까

옷을 갈아입은 나는 대원소집장소로 뛰어갔다.

 

소집장소에는 나 이외의 대원 다섯 명이 이미 모여 있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대장의 사건 상황설명을 듣고 출동 준비를 마쳤다.

상황은 간단했다.

테러리스트는 시민 10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상황중이였다.

우리들의 임무는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발물을 해체하는 것.

언제나 우리들의 임무는 정해져있지만 이번만은 특별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지키고 있는 대강당을 돌격대와 함께 돌파 한 후 해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우리들은 평소보다 더욱 긴장된 분위기였다.

작전 브리핑을 듣고 우리는 바로 투입되었다.

돌격대는 숙련된 사격술로 테러리스트를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하였고 다행히 인질들을 데리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들키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우리가 투입되었다.

설치된 폭탄을 본 나와 동료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단순히 폭발 장치만 있는 폭탄들과 달리 폭발시간이 정해져있는 시한폭탄 이였다.

남은 시간은 60.

이런 종류의 폭탄을 만든 목적은 자신들의 의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살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벌인 놈들이다.

하지만 이미 전에도 여러 번 시한폭탄 해체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던 우리 콤비는 심호흡을 깊게 한 뒤 폭탄 해체에 돌입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은 꽤나 복잡한 폭탄 이였다.

폭탄제조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만든 느낌이 들었다.

쉽지 않겠는걸.’

속으로 조금은 긴장하게 되었지만 나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내 옆에 있는 동료도 마찬가지일 테니

 

폭탄 연결 회로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던 중 갑자기 강당 문 출입구 쪽에서 굉음이 났다.

강당에 들어오면서 설치했던 바리케이드가 박살나는 소리였다.

우리를 보호하던 돌격대는 방어위치를 잡았다.

테러리스트들이였다.

테러리스트들의 숫자는 대략 10명쯤 이였고 모두 중무장한 상태였다.

그들의 몸에는 폭탄들이 둘러져 있었고 죽음을 불사한 비장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얼마나 흘렀을까 그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들은 우리 부대를 발견 한 뒤 우리 쪽 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총탄이 튀기 시작했다. 수류탄도 여러 개 날아왔다.

옆에서 친했던 돌격대 대원이 총탄에 맞고 피를 흘리며 고꾸라졌다.

폭탄 해체는 아직 30프로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었다.

돌격대원들이 필사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을 막아냈다.

돌격대원의 반절이 전사했지만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시한폭탄의 빨간 표시판에는 지금 막 바뀐 35:00이라는 숫자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한 번의 격렬한 전투가 끝난 뒤 나와 동료는 다시 폭탄 해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폭탄 해체가 반절쯤 지났을 무렵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내 옆의 동료가 중심을 잃고 쓰려졌다.

대강당 옥상으로 침입한 저격수였다.

돌격대는 즉시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한 뒤 그 방향으로 집중사격을 했고 얼마 뒤 나는 옥상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한 덩이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워낙 평소에도 죽음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동료가 눈앞에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폭탄을 해체하는 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사라져갔다.

사람의 죽음이란 해를 맨눈으로 바라보면 자연스레 감기는 눈꺼풀만큼이나 쉬운 것이고 흔한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평소 죽음이라는 하나의 현실을 인식은 하지만 의식은 하지 않고 산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의식 속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고스트 안에서 자의든 타의든 의식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제 해체는 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5분여.

나를 제외한 열 명 정도의 대원들은 모두 나의 해체 완료를 기다리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느낌이다.

폭탄의 시간이 2분여 쯤 남았을 때 나는 폭탄 해체를 완료했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빠르게 강당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우리를 조준 하고 있는 바주카포와 마주쳤다.

바주카를 들고 있는 사람은 테러리스트의 리더로 보였다.

한 쪽 눈이 없는 그는 우리에게 말했었다.

너희들에게 죽음은 어떤 것이냐? 우리들을 막는 너의 들의 죽음은 어떤 것으로 기억될거라고 생각하나? 너희들이 방금 죽인 나의 동료들은 피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나를 위해 기꺼이 죽어 줄 수 있고 나 또한 그들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 나라는 무엇인가 잘못 되도 단단히 잘못되어 뿌리까지 썩어곪아 이젠 치료할 수 없는 상처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제 내가 그 상처에 소독약이 되겠다. 나와 내 동료들로 인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돌격대의 선발 사격으로 적을 사살하거나 적을 말로 먼저 설득하는 사이에 방심할 때를 노려 사살하는 것.

하지만 상황으로 볼 때 적은 설득당할 만한 적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결국 돌격대는 선발 사격을 결정하고 서로 눈을 맞췄다.

하지만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이미 바주카의 포탄은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사람이 죽기 직전 가장 마지막 그 순간에 어떤 것을 생각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혹자들은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지만 그렇게 주마등처럼 지나갈 평범한 인생사도 없는 인생을 살았다면?

답은 우습게도 살아있던 동안 자신이 가장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뇌는 그렇게 까지 감정적이지 못하다.

뇌는 육체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빛같이 빠른 신경 전달 속도로 인식 한 뒤에야 다음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 상황에서 육체의 주인인 나 자신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굉장히 희귀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곧 육체는 사라져 영혼만 남을 존재에게 생전에 얼마나 누군가를 사랑했던지 누군가에게 사랑 받았던 지를 기억할 이유는 없다.

그 기억의 이유조차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간은 이유를 가지고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단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한 없이 덧없는 그 존재 의미 자체로 짧으면 40~50년에서 길면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분명 살아가는 사람에 따라서 각 각 다른 의미로 느껴지겠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죽음과 항상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자 진리이다.

종이의 앞면과 뒷면,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 죽음과 삶의 관계인 것이다.

 

포탄이 날아오는 1초를 조금 넘는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결국 떠오른 건

우습게도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전 손을 잡았을 때 내게 보여준 그녀의 웃는 얼굴 이였다.


지금쯤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가족들과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남편을 위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저녁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이 세상의 평범한 주부로

그녀의 기억 속에 나 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있다 해도 잠깐 기억하고는 금방 잊혀질 존재 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억 속에서 다행히도 작은 보석을 발견했다.

죽음 앞에서 그런 부질없는 것 이외의 좀 더 가치 있는 것들이 생각나면 좋았을 것이라고, 차라리 자신이 이 세상이 존재했다 라는 증거를 찾기 시작하는 게 훨씬 논리적이고 이성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일순간도 걸리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 내가 웃고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내 눈에서 흐른 눈물이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세상 어딘가에 숨 쉬며 살아있을

그녀에게

 

나에게 지어줬던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 미소가

나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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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이번에도 예전과 같이 역시 삘이 올때 한번에 끝냈습니다.

조금씩 조금식 쓰는건 제 체질이 아닌가봅니다

오랜만에 쓰는거라서 잘 써진건지 어쩐지 감도 잘 안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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