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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마왕의 우울

2012.12.31 23:04

전자요정 조회 수:523

 "마왕을 물리쳐 주게."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성기사는 수락했다. 

01. 

 "오오, 그대도 마왕을 쓰러트리러 왔는가."
 등 뒤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린다. 안 봐도 다 알지, 분명히 정의감 넘치는 5인 파티다. 파티 구성원은 성기사, 마법사, 성녀, 드워프 전사, 엘프 궁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뒤를 돌아봤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림이 없다. 성기사가 입을 열었다. 
 "먼저 우리 소개를 하겠네."
 어이구, 사교성도 좋아. 
 "우선 나는 성기사, >0<라는 이름이네. 그리고 이 쪽은 마법사고, 이름은 똥. 드워프 전사 뺤쇸, 성녀 마히메, 궁수 하앜하앜이라네."
 등장인물마다 마음대로 이름을 짓게 하면 나타나게 되는 폐해다. 발음하기도 곤혹스러운 이름을 애써 발음해야 할 사람들에게 애도를.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몇달 전, 사악한 마법사가 비탄의 해안에 소환한 크라켄을 무찌른 파티가 우리라네! 물론 소문은 들었겠지?"
 아하, 그러셨어요. 물론 그런 적 없지만, 그냥 "예."라고 대답했다. 
 "그것 참 고마운 이야기군! 이 성에 마왕이 산다는 말을 듣고, 국왕에게 퀘스트를 받아 하루빨리 근심에 젖은 시민들을 사악한 마수로부터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네. 그런데 자네는 혼자인가?"
 "그런데요……?"
 "이런! 마왕성에 홀로 뛰어들려 하다니,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네! 위험하니,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나? 우리가 자네를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네. 또한, 자네가 파티에 참여한다면 우리에게도 분명히 커다란 도움이 될 거야.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손이 많으면 일도 쉽다고 하지 않나!"
 "그러죠."
 갑자기 흥미가 동하기에 나는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다. 
 "네 이놈들!" 
 갑자기 뒤쪽에서 할아버지가 큰소리를 치며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 
 "이크, 빨리 올라가자고!"
 그들이 갑자기 마왕성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며 물어봤다. 
 "도대체 저 분은 누구신가요?"
 "아니, 왜. 마을에 도착하면 인자한 할아버지가 있는 가정집 같은 곳에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유익한 아이템이나 돈같은 것을 꺼내오는 게 RPG 상식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똑같이 했는데, 갑자기 유순하시던 할아버지가 돌변하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의 인내심에 감탄을. 흙발로 맘대로 자기 집에 들어왔는데도 웃으며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아무리 사람 좋은 할아버지라도 자기 집 재산을 가져가겠다는 데 화를 안 낼 리가 없다. 
 무단가택침입죄에 절도, 거기다 상습범. 이놈들 경찰에다 넘기면 얼마나 징역을 살까?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마왕성에 들어왔다. 

02. 

 우리는 한 시간째, 커다란 복도를 꾸불꾸불 걷고 있다. 
 "도대체 어째서 복잡하기만 하고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는 것인가! 던전에는 몬스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용사들이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리면, 마왕으로서는 대적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화근을 마왕이 그대로 둘 리가 없다. 거기다가 성에 몬스터가 살면, 그 엄청난 양의 몬스터를 먹여 살려야 하고, 주거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조금만 생각을 해도 알 수 있을 텐데.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성기사는 화가 나는지 벽을 쾅 쳤다. 너무 안쓰러워 보였기에, 나는 그에게 살짝 귀띔해줬다. 
 "복도가 아니라 방에 들어가야 몬스터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 커다란 복도에 방조차 없지 않은가!"
 "저기 하나 있잖아요."
 나는 손가락으로 문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기사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좋아! 진짜 전투의 시작이네. 전우들, 모두 돌격!"
 그 말과 함께, 성기사가 앞장서서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있게 문을 발로 차서 부쉈다. 좀 얌전하게 열면 안되나. 
 그 뒤를 다른 파티원들이 따라갔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은 방 한가운데까지 들어가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트랩이 발동했고, 바닥이 푹 꺼졌다. 성녀를 뺀 전원이 아래까지 떨어졌다. 나는 그 아래에다 대고 외쳤다. 
 "괜찮으세요?"
 "괜찮다네!"
 어둠 속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목숨도 참 질겨. 
 이어서 얍 푹 찍 퍽 핑 화르륵 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몬스터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몬스터가 아니라 애완용 악어지만. 
 "방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당연히 트랩이라고 의심해야지."
 성녀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비정상인들 가운데 상식인이 있는 것 같다. 
 "그렇죠?"
 성녀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의외로 예쁘다. 

 그들은 반쯤 만신창이가 된 채 돌아왔다. 
 "괜찮으세요?"
 "우리는 괜찮네. 자네는 어땠나? 혹시 우리 없는 사이에 몬스터의 습격이라든지 받지 않았나?"
 "아니오."
 "다행이네! 그렇다면 가세."
 우리는 다시 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03. 

 기나긴 복도의 끝에는, 나선형 계단이 존재했다. 성기사가 앞장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먼저 올라가세요."
 엘프 궁수가 드워프 전사에게 말했다. 드워프 전사는 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먼저 올라갔다. 그 다음으로는 엘프 궁수가 올라갔고, 성녀, 나, 마법사 순서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쯤 올라갔을까,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꺄악!"
 엘프 궁수가 비명을 지르며 치마를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휙 돌아보더니 나를 향해 말한다. 
 "봤어요?"
 "아니."
 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애초에 앞에 성녀가 있었는데 어떻게 봐, 그걸.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차라리 바지를 입거나, 적어도 속바지를 입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싸울 때는 신경쓰여서 어떻게 싸우려고? 불편하더라도 코디에는 신경쓰겠다는, 불굴의 의지인가. 
 "으악!"
 이번에는 뒤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마법사가 계단을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또 로브에 걸려 넘어졌나 보네.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올라오게!"
 그리고 그냥 봐도 무거워 보이는 은갑옷을 입은 성기사는 계단에 털썩 앉았다. 
 "조금 쉬세. 안 그래도 갑옷이 무거워서 힘들었다네."
 복장 때문에 계단 올라가다 전멸할 기세다. 계단 올라가는 것도 이리 힘들면 도대체 격렬하게 싸울 때는 어떻게 하려고?

 마침내 계단을 다 오르니, 커다란 문이 있었다. 
 "모두들 준비하게!"
 성기사가 외쳤다. 나는 물어봤다. 
 "어째서죠?"
 "이런 커다란 문 너머에는 언제나 중간보스가 있다네.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네."
 성녀가 한숨을 쉬며 버프를 걸고 있었다. 모두들 온갖 버프를 통해 자신들의 능력치를 높인 후, 성기사는 자신있게 문을 열었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인가! 보통 7인의 XX라든지, 9XX, 11기둥같은 중간보스가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후후, 그는 우리 사천왕 중에서 가장 약한 놈이었지.'같은 대사를 날리는 놈이라든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클리셰로 박혀버린 그런 거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지루해하니까, 없는 게 클리어 시간도 단축되고, 훨씬 낫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앞으로는 중간보스 정도는 준비해 둘까. 

 커다란 방 안에 세 개의 문이 있었다. 
 "한 쪽은 트랩, 한 쪽은 세이브 포인트, 한 쪽은 마왕에게 가는 길이겠지."
 성기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파티원 만장일치로 제일 왼쪽 문을 열어보기로 결정했다. 문을 여니, 금으로 된 상자와 은으로 된 상자, 청동으로 된 상자가 있었다. 
 "오오, 상자군!"
 "아이템이 있을지도 몰라!"
 드워프 전사와 엘프 궁수가 눈을 반짝였다. 어쩌면 저 둘이 성격 참 잘 맞을지도 모른다. 
 "조심하세요. 트랩일 지도 몰라요."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성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떤 상자가 올바른 상자인지 안다네!"
 성기사는 자신있게 말하고는, 청동 상자를 향해 걸어갔다. 
 "동화나 여러 문학을 보면 나오지 않는가? 언제나 욕심 많은 부자가 커다란 상자, 가장 좋아 보이는 상자를 고르고 벌을 받는다네. 또한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이 가장 작은 상자, 가장 허름해보이고 나빠보이는 상자를 고르고 상을 받지. 똑같다네. 이럴 때는 언제나 가장 안 좋아 보이는 상자를 골라야 한다네! 그렇기에, 이 상자가……."
 그렇게 말하며 성기사는 청동 상자를 열었다. 청동 상자에서 용수철 달린 피에로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으악, 이게 뭐야!"
 피에로가 성기사를 놀리듯 혀를 내밀고 있었다. 마왕도 그 동화나 문학을 읽어봤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드워프 전사는 그걸 보고 한심하다는 듯, 일어섰다. 
 "하하하! 그것 보라고! 마왕이 그런 허름한 상자에 자신의 보물을 보관해 둘 리가 없지. 저 황금 상자에 보물이 들어 있을 거라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드워프 전사가 그렇게 소리치며 금 상자를 과격하게 열었다. 금 상자는 열자마자 폭발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폭탄 머리가 되었다. 
 "젠장, 옷이 이게 뭐야! 전부 탔잖아!" 
 엘프 궁수는 막 성을 냈다. 
 "하여튼, 둘 다 쓸모 없기는."
 그렇게 툭 내뱉고, 엘프 궁수는 남은 상자, 은 상자를 열었다. 은 상자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 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입을 가리고 밖으로 나온 후, 독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문을 닫았다. 마왕이 새대가리가 아닌 이상, 당연히 귀중한 아이템이나 돈은 자신 이외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 창고에 소중히 보관해 놓지, 이렇게 허술하게 보관해 놓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성녀에게 해독 스킬이 있었던 게 그들에게는 다행이었다. 

04. 

 가장 오른쪽 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째서 세이브 포인트가 없는 거지?"
 마왕이 자기 나쁜 일을 하겠냐. 
 "그렇다면……저곳에……."
 그들은 모두 중앙의 문을 보았다. 그리고 허둥지둥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마침내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들은 중앙의 문을 열었다. 기다란 방, 입구부터 저 끝까지 쭉 깔린 레드 카펫. 그들은 그 레드 카펫을 밟으며,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천천히 걸어갔다. 
 레드 카펫의 끝에는 커다란 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 안에는 레드 카펫과 커다란 의자를 제외하고, 호위병은 커녕 마왕도 존재하지 않았다. 성기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도대체 우리가 받은 퀘스트는 뭐였던 거야!"
 성기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한 채, 천천히 레드 카펫을 밟고 의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뒤,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마왕입니다."
 성기사가 알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장난치지 마. 네 마음은 알겠는데……."
 "다시 말씀드릴게요. 제가 마왕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방 안에서 촉수가 자라나, 그들을 휘감았다. 모두들 무방비 상태였기에 아무런 무리 없이 그들을 결박할 수 있었다. 이윽고 상황을 파악한 그들이 저항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온 몸이 감싸인 후에 저항해 봐야 소용 없었다. 
 엘프 궁수가 비명을 질렀다. 
 "이제 믿겠어요?"
 "날 속였구나, 마왕!" 
 "그렇네요."
 "진짜 모습을 드러내라!"
 "이게 진짜 모습이에요."
 마왕이 꼭 기괴하고 거대하며 흉측한 모습일 필요는 없다. 
 "이 자식! 우리를 어떻게 할 속셈이지?"
 "당연히 죽여야죠?"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걸 보니, 역시 너는 사악한 마왕이 맞구나!"
 "아니, 어차피 죽어도 세이브 포인트에서 부활하잖아요. 세이브 안 해뒀어도 마을로 돌아가면서. 경험치 조금하고 아이템 몇 개 잃고 끝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만……."
 "안 돼!"
 드워프 전사와 엘프가 소리쳤다. 역시 저 두 사람, 잘 맞을지도 모른다니까?
 "내 레어 아이템!"
 "내 옷!"
 응? 내 옷?
 "죽어서 마을로 소환되면 지금 입고 있는 옷 다 없어진단 말이에요! 아아, 싫어. 사람들이 음란한 눈빛으로 쳐다본단 말이에요!"
 "둘 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닥쳐!"
 성기사가 화를 냈다. 갑작스러운 정적을 틈타 성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이 성에 혼자 사는 건가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이?"
 "……응."
 "외롭지 않나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인데, 마을 사람들한테 아무런 피해도 준 적 없는데, 모두들 나를 마왕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쫓아냈다. 나도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하고 싶었는데……. 나는 애써 내 감정을 감춘 채 말했다. 
 "나도 이 성에 혼자 있는 거 싫어. 이 성 팔아버리고 다른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왜, 요즘 경기 불황이잖아? 이 성이 너무 비싸서 살 엄두를 내는 사람이 없더라고. 그런데, 그렇다고 이 좋은 성을 헐값에 내버릴 수는 없거든.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살고 있어. 왜, 내 대화 상대가 되어줄 의향이 있어?"
 "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왕인데?"
 "그런 거, 상관 없어요. 저는 성녀에요. 구원하는 자에요."
 "타락하는 건가, 성녀!"
 성기사가 성녀를 향해 일갈했다. 
 "타락? 타락이고 자시고가 어딨어. 내가 악이야?"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내가 마을을 부수기를 했어, 뭘 했어? 아무것도 피해준 것 없는데, 그저 커다란 성에 사는 마왕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왕의 명을 받아 너희들이 쳐들어오는 것 뿐이잖아. 어째서? 왜 너희 맘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절대악을 규정시켜 놓고, 그걸 짓밟으려 하는 건데? 너희들이 이유없는 증오를 품으며 쳐들어오는 데는 진절머리가 나거든. 그저 너희들 마음에 안 맞는 듯하면 악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거야? 타락? 네, 너 잘나셨네요. 한 번 마을로 돌아가서 열심히 생각해 보세요. 바이바이. 나중에 운 좋으면 만납시다."
 촉수가 성녀를 제외한 나머지 넷을 꽉 조였다. 그들은 죽어서, 흰 가루가 되어 마을로 날아갔다. 나는 성녀를 조이고 있는 촉수를 전부 풀었다. 
 "그래서."
 나는 성녀에게 말했다. 
 "나의 뭘, 어떻게 바꿔줄 건데?"
 성녀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나를 꽉 안아줬다. 
 "그동안 외롭고 서러웠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이런 마음 안 알아주고."
 성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보듬어주며 말했다. 
 "저는 이해해요. 이제부터는, 제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따스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성녀의 품에서 맘껏 울었다. 

epilogue. 

 그렇게 마왕은 성녀의 품에서 위로받았다. 며칠 후, 마왕과 성녀는 연인이 되었고, 성녀는 내심 환호의 쾌재를 불렀다. 
 '이제 점잖은 척하는 성녀일 필요도 없고, 다른 파티원들 뒷바라지 하면서 졸졸 쫓아다닐 필요도 없고, 쥐꼬리만한 퀘스트 보상이나 몬스터가 떨어트리는 아이템으로 근근히 연명할 필요도 없어! 이렇게 부자인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혹시 뭐 원하는 거 있어?"
 "음, 이거하고, 이거하고, 이거하고, 이거."
 "좋아. 뭐든지 말해. 다 사줄 테니까."
 마왕은 웃으며 말했다. 성녀도 (다른 의미로) 미소를 지었다. 
 최후의 승자는 성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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