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어느 겨울 날의 이야기.
2013.03.10 22:15
어느 휴일 날, 약속도 없고 나갈 일도 없던 터라 대책없이 방을 뒹굴며 휴일을 만끽하고 있던 나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밖에 눈 오네! 지금 뭐하고 있어?'
한 친구의 문자. 대충 친구에게 답장을 하고서 창 밖을 내다보면 어느 샌가 쌓인 눈이 거리를 하얗게 수놓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눈이 오는 걸 보는 건 오랫만이구나. 눈이 올 때에는 보통 실내에 있었으니까.
가끔은 눈이나 맞아볼까 하는 생각에 주섬주섬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가보았다.
밖은 소리를 마치 내리는 눈으로 지운 것처럼 조용했다. 눈을 맞으며 가볍게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눈이 오는 때 산책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작은 공원에 다다라서 잠깐 쉬어갈 생각으로 벤치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앉았다.
고요함. 하얀 세상. 드문드문 보이는 발걸음. 눈 싸움하는 아이들.
너무나도 평온한 풍경이다. 나도 모르게 잠깐 눈을 붙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이렇게 추운데서 잠들었다가는 동태되기 딱 좋겠지. 9시 뉴스에 '공원에 앉아서 자던 사람 사망.' 이라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노숙자도 아니고….
'철퍼덕.'
이상한 소리에 정신이 들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그 곳엔 아마 나보다 조금 어린 듯한 여자애가 넘어져있었다.
아마 눈길에 넘어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보았다.
"괜찮아?"
갑작스런 말 소리에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하고는 놀랐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 여자애의 표정이 조금은 귀엽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넋놓고 있을 때는 아니겠지. 나는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손을 잡아 일으켜세워주었다.
"고마워요."
묘한 경계심과 고마움이 섞인 듯한 표정이다. 수상한 사람 취급 받는건 사절하고 싶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
"호오-."
괜시리 입김을 보려고 숨을 불어본다. 아까 그 여자애는 돌아갔지만,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숨. 마치 자신의 마음 속의 답답한 일들을 꺼내어 지워버리려는 듯이.
그러니까 나는 그 답답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을까, 나는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보고 회상에 잠겼다.
처음으로 그 사람을 안 게 언제였더라. 뭐어, 아무래도 좋겠지.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아무튼 지금 그 사람은 내 곁에 없다. 그것 뿐인 이야기로 별 의미는 없다. 다만 떠올리고 싶은 것은, 그 사람과 몇 가지 약속을 했을 터였다.
"있잖아."
"왜?"
"눈이 오는 날에, 함께 걷고 싶어."
당시엔 별 생각이 없는 얘기였다. 단지 그 사람이 몸이 약했던 터라 겨울에 밖에 나서는 것이 어려웠을 뿐. 그래도 잠깐 같이 걷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자."
"응. 약속."
그 사람과 했던 약속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약속. 지키지 못한 게 아쉬운 약속. 아마 나는 그 약속을 평생을 잊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그 날에 내가 고백을 했었으니까.
뺨에 차가운 감촉이 들어서 눈을 떴다. 잠깐 눈을 붙이고 회상에 잠긴다는게 이래서야 영락없이 잠든 모양이다. 조금 창피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까 했던 회상때문에,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일들. 그 사람과 함께 웃고, 내일 또 만나자며 인사하고, 어이없는 실수에 웃기도 하고. 그 정도 일이었지만 정말로 즐거운 나날이었다.
내게 행복이란 단어의 뜻을 알게 해준 사람. 함께 있는 것만으로 웃을 수 있었고, 그 정도로 즐겁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왜 그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집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이 전에, 그 사람과 함께 지냈던 곳.
집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들를 이유가 없어서 오지 않았던 곳이다.
오랫만에 이 곳에 눈이 쌓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 그리움을 쫒아, 그 사람과 함께 걸었던 길을 홀린 듯이 걸어갔다.
마치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는 듯이. 그렇게 걸어간 끝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 곳에 올 것을 어떻게 알고 그 사람이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상당히 놀란 표정의 그 사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 얼굴도 저 정도로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은 그동안 내 기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리운 얼굴을 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 그녀는 덥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두껍게 차려입고 있었다. 여전히 추위에 약한 모양이다.
만남.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람이 싱긋 웃으며 꺼낸 말은,
"어서 와."
였다. 그 말에 발이 저절로 그 사람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래도 제멋대로 끝났던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모양이다.
♪
가장 최근에 쓴 글입니다. 2시간만에 즉흥적으로 '일단 이 토대만 잡고 어떻게든 써보자' 해서 완성한 글이에요. 덕분에 모자란 부분이 많을 거에요. 제가 아직 글을 잘 못 쓰는 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어떤 느낌으로 읽으셨는지 감상을 기대하겠습니다.
댓글 8
-
레키
2013.03.10 22:25
-
미유
2013.03.10 22:27
제가 이름 정하는게 유독 약해서 저렇게 이름을 비우고 글을 써버려요.
댓글을 읽고 보니 제가 이걸 너무 소홀히 한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이름을 정해서 써놓는게 좋겠네요. -
나물
2013.03.10 22:30
어서와에서 이승철을 떠올리다니 난 글렀어.
유머없이 담백하게 쓰여진 글이라 그런지 자꾸 리얼리티를 생각하게 되네. 왜 헤어졌고 왜 저렇게 만나야만 했는지가. -
미유
2013.03.10 22:31
사실 그거 노린 거 맞습니다. 개그를 못 쓰다보니까 저런 식으로 개그 욕심을 내는데. 하나 얻어걸리긴 한걸까요.
전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독자에게 떠넘기는 나쁜 작가가 접니다.(...) -
청록야광봉
2013.03.10 22:40
열심히 노력해서 더 잘쓰게 되길 바래 -
미유
2013.03.10 22:41
네에. 더 노력해볼게요. -
무언가
2013.03.11 09:35
잘 쓰셨네요. 소설이길레 흠 잡고 꼰대질하러 들어왔는데 딱히 그럴 부분 없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미유
2013.03.11 11:34
부족한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 봐주셨다니 다행입니다.
봐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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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뭔가 이름같은게 없으니 읽기가 살짝 힘든 느낌이..
제가 글 잘 못읽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