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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피관찰자

2013.09.03 15:56

다루루 조회 수:842

한강철교가 폭파된 지 50년이 되던 날, 광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러니까 모두들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에 넓은 집 안에 복닥복닥하던 식구들은 모두들 어디로 외출을 한 상태였고, 때문에 집 안에는 그 날 직장인 구로역에 나가지 않고 연차를 써서 집에서 쉬던 나와 할아버지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묘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 또한 나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나를 불러서 앉히시더니, 가장 처음으로, 사실 자신은 미치지 않았으며, 미친 척을 하고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물론 이 때는 할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며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곧이어 당신이 광인 연기를 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틀림없이 세상에 나올 일이 없을 이 글은, 할아버지가 광인 연기를 했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전쟁도 훨씬 이전, 숙종 시절부터 우리 일가의 본가는 이 곳, 성저십리 중에도 용산방의 이 낡은 저택이었다. 용산역이 개설되어 집 앞이 번화가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우리 집은 이 곳에 알박기라도 하듯이 단단히 붙어 있었으며, 할아버지 또한 이 저택에서 나고 자라, 결혼한 후에도 이 집에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미쳤을 때(또는 그런 연기를 시작했을 때)도 우리 가족은 이 곳에 살았다.
아버지가 3살 정도 되던 해의 어느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있는 강가로 향했다. 그 때에 이미 버릇 수준이 된 할아버지의 일상사였고, 당신이 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던 날 아침까지도 계속하던 일과였다. 
묘하게도, 그 날 아침에는 거리에 나가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분명 연천이나 철원 등지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복닥이곤 하는 거리였는데, 쥐 죽는 소리도 들릴 듯이 고요하였다. 거기에 안개도 매우 짙어서, 거리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론 이상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도 이런 일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강가로 발을 향했다. 늘상 다니던 길이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대단히 짙은 안개에도 강가로 곧장 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강가에서 “설명하기 어려운(할아버지는 그렇게 설명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실 다시 생각해 보자면, 그리로 가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할아버지가 미친 척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둔치에 다다르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늘상 보던 한강의 강변에, 무언가 기괴한 것이 강물 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였다.
강가에서 올라온 사람 형태의 그것을 자세히 묘사하자면, 피부는 미묘한 녹색이 돌며 점막 같은 것으로 번들번들하면서, 근육이 울룩불룩하여 대단히 강한 완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고, 몇몇은 팔이나 다리에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것이 달려 있었으며, 눈두덩을 커다란 조개 껍데기 같은 것이 덮고 있었다. 그 중에는 눈을 조개 대신 수많은 따개비가 덮은 것도 있었다. 그런 것이 스물 정도 강가에서 구물대고 있으니 공포스러울 뿐이다.
할아버지는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 한강 강변에서 멀리 떨어진 둔치였음에도 그 괴상한 것이 움직이는 데 대하여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야말로 발이 땅에서 자라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조차 돌리지도,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마치 세상이 그에게 그 광경을 보라며 강요하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그 뿌리치지도 거부하지도 못할 강요로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서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 무언가들은 할아버지가 있는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강변을 따라 하류 방향으로 어슬렁거리며 움직였다. 그 방향에는 당인리 발전소나 기지창 등이 있었고, 무엇보다 한강철교가 있다. 그것들은 그 불쾌한 발을 들었다가 놓으며, 희번득거리는 눈알을 굴리고 온몸에 묻은 점액질을 바닥에 질질 흘리며 철교로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그런 식으로 철교를 향해 끔찍한 행진을 진행한 끝에 철교의 기둥이 다가갔을 때, 그것들이 한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그것들은 각자 따게비나 겟지렁이 따위가 기어다니는 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그것을 기둥에 가져다 댔다. 때리는 시늉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인데, 단순히 그들이 철교 기둥으로 손을 지압하는 정도였다면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의 손이 느릿하게 기둥의 콘크리트에 닿을 때마다, 기둥이 움푹 패였다. 단순히 그것들이 두드리는 기둥만이 아니라, 이 기둥을 치니 저 기둥이 금이 가고, 저 침목들이 부러지고, 저 선로가 휘어지는 괴상한 현상이었다. 그들은 이상한 주먹질 시늉만으로 한강철교를 부수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렇게 대여섯번 기둥을 두드리고 있자니, 마침내 철교 한가운데에서 새빨간 화염이 일었다. 그야말로 폭발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것들은 끊임없이 기둥을 두들겼고, 그 때마다 폭발은 거듭되었다. 끝내 철교가 폭발의 열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녹아내렸다.
그러고 나자, 그것들은 방향을 강 쪽으로 틀어 강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들은 정수리가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물 속을 향해 계속 걸었다.
그것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야 했다. 왜인지는 할아버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뿌리박힌 듯흔 깊은 공포에서 눈을 돌려, 할아버지는 아까 그들이 올라온 둔치를 보았다. 그 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 그것이, 하나 남아있었다. 
그것은 무리의 다른 것들과는 달리, 근육은 없어 앙상한 몸이었고, 반대로 점액질은 다른 것들보다 두 배는 많았다. 더구나 한 쪽 눈이 조개 따위로 덮여있지 않고 열려있었다. 그 작은 쇠구슬같은 눈동자가 보고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였다. 그것은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를 구사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입을 뻐끔거리자, 꽤 떨어진 곳임에도 바로 앞에서 말하는 듯이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인지 여자의 것인지를 구분하기 이전에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이 소름끼치는 깊은 목소리였다. 지켜보겠다. 그것은 그렇게 말했다. 눈도 깜빡이지 못할 새에 그것은 마치 필름을 잘라낸 것처럼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목격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그 날의 폭발이 육군이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폭파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지금도 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 날 이 때까지 그 이야기를 속에 봉해두고 미친 것처럼 하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완전히 정신을 빼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무엇보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할아버지의 불안과 공포에 찬 표정 탓이었다. 나는 그 날 그 때까지 할아버지가 한 미치광이 연기 중에서도 그런 연기는 보지 못했다. 아마 그것은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할아버지는 잠자리에 누워 그대로 돌아가셨다. 
왜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노인들은 자신이 죽을 때를 직감한다는데, 할아버지의 경우는 죽음을 앞두고 젊은 시절 목격한 물 속의 그것에 대한 공포를 혼자서 짊어지기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물론, 난 지금도 할아버지의 진의를 알 수 없다. 솔직히, 원망스럽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신 것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로 인해서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물 속으로부터의 시선을 느껴야 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글을 쓰는 바람에 그것이 지금 내 등 뒤에까지 다가와 있는 상황에 처해야 하는 것이었는지. 그런 부분이 원망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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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서울예대 입시때 쓴 글입니다. 지금 기억을 되살려서 써 봤는데 왜 떨어졌는지 알 만 합니다. 하지만 주제가 난해했던 것도 사실임.
저는 원래 문장기호 꼬박꼬박 붙여쓰는 사람입니다. 마침표라던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러브크래프트 선생의 단편 '다곤'에 대한 오마주가 좀 들어간 거 같습니다. 질 떨어지는 오마주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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