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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오슬로의 한 아파트

"....얼마 전 북부지방으로부터 시작된 예년보다 훨씬 심한 극저온 현상으로 인해 많은 피해가 예상되고.."

침묵이 지배하던 아담한 방에서는 오직 42인치 티비만이 침묵을 밀어내려하고 있었다

세상 모른 듯 자고 있는 그의 곁에는 서류가 잔뜩 쌓인 목재 캐비넷이 여기저기 열린채 방치되어 먼지를 내뿜고 있었으며, 수 많은 모니터들은 계속 변화하는 그래프들을 끊임없이 전시하고있었다.

오직 작은 순록 미니어처만이 지극히 학구적인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희석시키고있을 뿐이었다.

"...이로 인하여 정부는 국제사회와 극저온 현상에 대해 공동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을 시작하기로..."

띵동

조용한 방에 울려퍼지는 초인종 소리에 쇼파에 누워있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머리는 이미 산발이다.

'드디어 왔구나..'

부시시 일어난 그 남자는 문 앞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누구시죠..?"

" 아, 안녕하세요. 오큰 교수님 소개로 왔는데요."

'아이구 이 사기꾼같은 양반이 이거...'

예상외의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세어나오자 그는 '역시나'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오큰 교수는 그의 큰 조력자 중 하나였지만 그러한 도움은 때때로 , 아니 열에 다섯 정도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써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론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과정의 고생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아....예....연락 받았습니다. 들어오시죠"

말과 동시에 문을 여니 그곳엔 붉은 머리의 댕기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자료를 잔뜩 든 채 두꺼운 패딩을 입고 서 있었다.

"아유 춥다. 여기가 노르웨이는 맞나보네요! 프들프들...생각보다 더 춥네요!"


'아이구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구만'

실물을 보니 예상보다 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오큰 이양반 또 사기치는구만!.. 연구는 커녕 펜대한번 잡아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보내주다니. 아이구 저 건강미를 보게! 연구에 연자도 모르는거 아닌가?? 컴퓨터는 다룰 수 있을까? 식사하고오니 툴바만 5개가 깔려있을라나?..아이구 또 고생하겠네..

"저기..들어가도 될까요??"

"아 예. 추우신데 죄송합니다. 들어오시죠. 커피 괜찮으시죠??"

이윽고 두 사람의 형체는 문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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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을 시작한 그는 갑자기 목이 막혔는지 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성함이...아...아나스타샤??였었던가요??"

"안나요 안나 아렌델. 그냥 안나라고 불러주세요."

"아..맞다 그랬지..안나. 저는 크리스톺.."

"알고 있어요. 다 조사를 해봤죠."

하..이 맹랑한 꼬맹이좀 보게. 풋 내기가.. 라고 크리스토프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아 예 그렇군요.. 그럼 무엇을 하게 될지 설명을 드릴게요. 뭐냐면 음..최근에 있지요.."

"크리스토프씨!"

"예?"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강한 어투에 당황하는 그였다.

"아까부터 거슬리는데 자꾸 절 풋내기 취급하지 말아주실래요? 아까 초인종을 눌렀을 때는 완전 실망하는 말투더만요. 문을 열었을때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더 확신 할 수 있었죠. 당황한 표정! 멀리 갈 것 없이 눈을 봐도 알 수 있어요. 게다가 이젠 업무적 질문도 무슨 어린애한테 놀이방 장난감 설명하듯이 하질않나..제가 사전조사도 안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안나, 그게 아니구요..그러니까말이죠..."

"애초에 생활도 불규칙해서 잠자다가 일어나가지곤 손님오는데 수염은 덥수룩하질않나. 방은 하나도 정리 안되있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그래프는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어 알아먹기도 힘들겠고. 더 웃긴건 뭔 줄알아요? 순록 미니어쳐 주위만 깨끗해. 이거 순록이랑 우애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푸....헉..혹시 둘이 사귀는거아냐? 하여간 손님 맞이하는 예가 너무 없으시네!"

비록 순록과 사귀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리스토프는 끄끔했다. 그래프는 언젠가 정리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자꾸미루었지만.

"아니 무슨 순록이랑 사귀어요! 순록보면 그냥 마음이 평안해져서 그런거지..."

하지만 다른 점은 정확했기에 크리스토츠는 말을 아끼기로 결심했다.

"의외로 당신이 뛰어난 사람 임을 인정해야겠어요. 솔직히 초면엔 약간 실망을 하긴 했었는데..제 오산이군요. 항상 그렇듯이 오큰 교수님은 절 실망시키지않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되네요."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음미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 살며시 눈을 뜬 뒤 입을 열었다.

"다시한번 소개할게요. 전 안나 아렌델, 국제기이현상 연구회 기상연구원입니다. 안나라고 불러주세요."

'아이구 맙소사'
국제기이현상연구회라니. 머리가 아찔했다. 이 연구회와 엮였던, 몇년 전의 지독한 태양의 꽃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오큰 그 사기꾼 같은 양반이 그를 태양의 꽃 사건에 끌여들였는지 크리스토프 자신조차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그를 끌어들이다니..당시 유진이란 양반이 아니었으면 그는 쥐도새도 모른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뒷 골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그렇군요...저도 다시한번 말하지만 크리스토프입니다. 극지학자죠."

당황스러워서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분위기를 쇄신하려 아무말이나 둘러댄 그 였다.

오슬로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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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자정이 넘은 시간


아파트에서 한 남자는 태블릿 피씨를 이리 저리 훑고있었다. 그의 옆에 있는 한 여자는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묘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학문에 대한 감탄일지, 아니면 전형적인 지저분한 학자의 숙소에 대한 더러움에 감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눈빛이었다.

'흠...역시 순록인형이랑 사귄다고 밖에는...'

태블릿 피씨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홈버튼을 누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나씨 이거 흥미롭군요. 하지만 동시에 터무니 없다는 점도 인정을 할 수 밖에는 없겠군요. 이런일은 아마도 지구의 기상현상으론 불가능한 수준이라구요. 해왕성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수치는 모두 한 답을 가르키고 있는걸요! 극저온현상은 국지적인 어느 지점에서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어요. 요새 북극 빙하가 계속 늘어나 과학자들을 당황시키고 있다는건 아시잖아요??"

"그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는데요..."

무언가를 생각해내려는 듯 크리스토프는 눈을 질끈 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안나는 '코가 참 크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혹자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없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태양의 에너지가 줄어드는 시기라 당연한 일이라고 하는데...잘 모르겠네요. 요즘 과학을 믿을 수가 없어서."

자신이 생각해도 잠시 유사과학적 이야기를 한 크리스토프는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마도 쪽팔림 덕분이었으리라.

"당연히 기본적인 자료만 보시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라구요!"

안나는 가져온 가방을 뒤적뒤적 헤집더니 곧 한 장치를 꺼내었다. 마치 usb처럼 생긴 그 장치는 평범한 usb와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단지..

"여기에 광학 센서가 있잖아요? 여기에 홍채를 대면...."

무엇인가가 크리스토프의 머리에 불현 듯 떠올랐다.

"어...안나?? 저기..."

"네? 왜그러시죠?"

"저도 아는 친구가 있어서 그거에 대해서 좀 아는데...거기있는 자료 안읽고 그냥 사는게 훨씬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그러니까 제가 하고자하는 말은..."

잠시 숨을 고르고 커피를 홀짝들이마신 그가 이내 입을 열였다.

"제 말은....기이한일을 찾아다니면 어느순간 기이한일이 당신을 따라다닌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이제 그만하고 그냥 오큰 교수님한테 돌아가 주시면 안될까요??? 그게 당신한테 좋아요. 정말로."

"걱정마세요! 저도 현장요원 테스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끝마쳤으니. 그쪽걱정이나 하시죠? 히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센서에 눈을 댄다. Usb에서는 푸른색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긴...자료를 들고 왔으면 다 안다는 소리아냐...이미 늦은거네 뭐..오늘따라 커피가 쓰다..'

크리스토프는 번쩍이는 usb가 그의 컴퓨터에 꽂히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커피컵에 입을 갖다 데었다.

-쭈르릅-

이젠 마실 커피도 다 떨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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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가 수많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위성사진, 기압계, 기압고도 자료 풍향풍속......

'어...??'

'눈치채신거같네요. 그러니까 여길 보시면...'

안나가 모니터를 확대했다.

"2년 전의 위성 기상자료인데요. 현재와 유사하지만 크기가 작은 극저온현상이 노르웨이 북부에서 발견되었었어요...당시엔 워낙 소규모라 별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근데말이죠.."

"주위의 기상과 상관없이 움직이는군요. 바람도 기압도 구름도 무시하고."

"그거죠! 다음자료가 더 신기한데..."

크리스토프는 '신기하다'는 말에 작은 웃음을 지었다. 저런 말툴 쓰는 사람이 이런걸 분석하는구나.

"이 자료가 그 이후의 극저온현상을 나열해본 자룐데, 보시면 극저온현상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눈폭풍의 강도도 점점 강해진다는 분석이 나오지요."

"근데 이 정도는 저도 알고있었는데요."

"여기서 저희 장비가 등장합니다! 초 고밀도 온도 측정위성에서 찍은건데..."

"음...어디 봅시다."

자료를 살펴본 크리스토프는 흠칫 놀랐다. 위성의 자료는 극저온현상의 중심에 인간형의 물체가 있다는 것을 화면에 전시해주고 있었다.

"아이구 맙소사 이건....흠...뭐죠...저도 산전수전 다겪었는데 이런 상황은...흠...."

크리스토프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 안나는 크게 외쳤다.

"이게 저희가 규명하고 해결해야할 기이한 문제인거죠!"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얼이 빠진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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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안정을 찾은 것은 1시간 뒤였다. 허나 아직도 완전한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러니까...각국정부가 협력까지 하여 규명하려는 위험천만한 극저온 현상의 원인이...어느 한 사람에 불과하다?...."

"정확히 짚으셨네요."

어안이 벙벙한 크리스토프는 아무말이나 던졌다.

"이런건 망치든 북구 신같은 양반에게 맞겨야 되는거 아닌가요?"

"런던에서 행방불명됐어요."

"예??...그런게 진짜 있었어요?"

황당해하는 그의 앞에서 안나는 아무렇지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문제는 일주일여 전부터 이 극저온 현상의 규모가 굉장히 커지고 있단 거에요. 저희 분석으로는 한 이주일이면 금새 북유럽 전체를 덮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그 뭐서기 단체에선 뭐하고있던거에요.. 원인파악도 대충 끝났던 것 같구만."

"중동에 램프 찾으러 갈일이 있었어요. 어...여튼 요지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나의 눈동자가 위를 향한다.

"지금 떠나야한다는거죠!!"

"내일. 벌써 세시가 다 되었어요. 잠을 못자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구요. 졸리기도 하..."

크리스토프는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니까.....잠.....잠을...."

"크리스토프씨, 사람을 가장 잘 속게 만드려면 무엇이 중요한 지 아세요??"

흐려져가는 정신 속에서 대답을 하려는 그였으나 혀가 꼬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보다 아래에 있다고 믿게 만드는거죠. 잘자요. 깨어나면 이미 작전지역일거에요 아마. 아참...당근으로 만근 마취제니 너무 몸 걱정하시진 마세요~."


'어쩐지 내가 전에 본 사람들과는 다르게 능숙하지 못 한 부분이 많이 보이더니..'

크리스토프는 시야가 흐려지더니 이내 픽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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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크리스토프의 아파트 상공

"이 남자 덩치가 장난 아니라는 것을 빼먹었네...무거워 미치겠구나..
하지만 움직여야 할 시간이야. 하늘도 깨어났으니."

거대한 덩치를 부축한 그녀의 머리위로 북구의 푸른 오로라가 희미하고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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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니 이런 걸 쓰고 있더군요
죄다 팬픽이 레즈물밖에 없길래 자급자족.

나..왜이러나 멈출수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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