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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데이트 어플: 실전편

2014.03.14 17:10

Winial 조회 수:827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역겨운 일이다.


사람의 몸에서는 특유의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는 아무리 코를 틀어 막아도 어쩔 수 없이 맡아지고는 한다. 한 때는 나도 이 냄새를 무시하고 사람들과 엮여 지내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내가 내는 사람 냄새가 싫어서 매일같이 방을 치우고 화장실에서 두 세시간 몸을 불려낸다. 그렇게 해도 풍기는 사람 냄새가 너무 싫어서 나는 나의 역겨움을 참고 살아남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우겨넣는다.


그런 내가 외출을 한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미치도록 많은 지하철 역으로. 그 빌어먹을 여자가 말한 '사람 없는 장소'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사람이 많은 곳을 거쳐가야 한다는 건 정말 화나는 일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겨우 견디던 역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만나기로한 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오지랖 넓은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본다면 괜찮냐고 물어볼 수준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중이었지만 그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서 말을 건다면 나는 '너 때문에 역겨워서 헛구역질 하는 중인 거다'라는 한 대 맞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물론 헛구역질은 헛구역질일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입을 휴지로 닦고 텅 빈 변기의 물을 내렸다. 세수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화장실 안에 가득찬 사람을 보고 있으니 다시 속이 울렁거려 황급히 화장실을 나왔다. 화장실 앞 콘돔 자판기 앞에 등을 기대고 숨을 돌리려니 바로 옆 여자 화장실에서 웬 여자가 뛰쳐나왔다. 그 여자는 치마를 입은 건 신경도 안 쓰이는지 바닥에 거의 엉덩이를 붙일 양으로 쭈그려 앉아 자신의 무릎을 끌어 안았다.


나는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여자가 약속의 그녀라는 건 잠시 스쳐 지나가며 본 얼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다가 나를 슬쩍 보고 다시 고개를 돌린 걸 보면 그녀 역시 내가 약속 상대라는 걸 알아챈 듯 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은 채 못본 척을 한 건, 그녀가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게 예쁘기 때문이었다.


나도 사진이 실물보다 못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 봤지만, 이 여자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평범한 기준에서 따지자면 지나가던 사람이 말을 걸 정도로 예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진으로 본 것에 비하면 두 배 세 배는 예쁜 얼굴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패션에 조예가 없는 내가 도저히 어떻게 묘사를 해야할지 모르겠는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이었다. 직장을 다니면 저런 옷을 입게 되는 것인가, 가택 근무니 뭐니 하던 말은 거짓말이었나,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그 한 켠에는 내가 어쩌다 이런 여자와 얼굴을 맞대게 된 걸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녀에 비해 나는 어떠했는가. 내 사진은 얼굴을 반 정도 가려 도저히 실물을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고, 그녀처럼 따로 사진을 보내 내 진짜 얼굴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옷차림 역시 엉망이었다. 이전에 어떤 사람에게 '너무 칙칙하게 입는다.' '네가 그렇게 입는 걸 참을 수 없다.' 같은 혹평을 받은 적이 있던 옷을 이제 더 이상 그 사람과 볼 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입고 나왔다.


그녀는 내가 이런 복장을 하고 이런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에 불만인 게 분명했다. 나만의 추측이었지만 단순한 추측이 아니었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도 말을 붙이지 못하는 건 분명 내가 상상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이라는 걸 거부하고 싶어서가 분명했다. 머릿속에서 지난번 대화가 어떤 식으로 펼쳐졌는지를 되뇌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런 문자로 이루어진 채팅과 얼굴을 맞대는 대화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다시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화장실을 오가는 남자들을 어색한 시선으로 살펴봤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나갔다.


내가 십여 분이라는 정확한 표현을 쓸 수 있었던 건 직접 휴대 전화로 확인을 해봤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그녀는 몸을 일으켜 자판기 옆구리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마 그런 자세로 한참을 있는다는 건 다리가 아프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여자는 그런 자세를 해도 다리가 안 아픈 게 아니었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마음에 안 들어도 말 좀 붙여봐. 여기 사람 너무 많아서 슬슬 한계야."

"마음에 안 들다니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의 반말이 마음에 안 들어 슬쩍 말을 놨다.

"보고 별로니까 계속 말 안 거는 거잖아. 나도 미안하니까 이제 사람 없는 곳 좀 가자."

그녀는 나의 반말이 신경 쓰이지 않는 듯 했다. 나 역시 그녀의 말에 당황해서 그런 걸 신경쓰지는 못했었다.

"별로라니? 내가 당신 보고 싫어서 이러고 있었다고 생각한 거야?"

"그러면 십 분 넘게 말 안 걸고 있는 이유가 뭔데? 내 얼굴 보고 별로라서 그런 거 같은데."

"난 당신이 날 보고 싫어서 말 안 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얼굴은 사진보다 훨씬 낫잖아. 난 사진도 그딴 거고 옷도 이따위잖아."

"상상했던 것 보다 평범해서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거 여자애들 언어로는 겁나 못생겼다는 뜻이잖아."

내 말에 그녀는 화를 내는 듯한 소리를 냈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보지 않고 있었다. 아마 그녀 역시 나를 보지 않고 있을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이상한 것만 쳐 배웠나본데, 딴 년들은 그런지 몰라도 나는 아니거든. 난 돌려 말하는 거 겁나 못해."

"당신 어째 말이 점점 거칠어진다? 조금만 더 말하면 욕도 하겠어."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있으니까 예민해져서 그러지! 너도 그래서 그따위로 말하는 거잖아. 잡담은 좀 어디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하면 안 될까?"

나의 빈정대는 말투에 그녀는 이를 물고 대답했다. 나는 손톱을 물어 뜯으며 알겠다고 말하고 그녀를 앞장세웠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룸 카페였다. 이곳이 룸 카페라는 걸 아는 이유는 일전에 한 번 와봤던 것도 있지만 대문짝만하게 적은 룸 카페라는 광고 때문이었다.

"진짜? 여기가 사람 없고 조용한 곳이야?"

화장실을 갔다 돌아온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바로 쏘아붙였다. 그녀가 화장실로 도망치기 전 왔다 간 점원 때문에 나는 여전히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어쨌든 사람은 안 보이잖아? 점원이랑 말을 해야 한다는 건 거슬리지만."

"사람이 안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내 자리 앞 뒤 옆으로 온통 사람으로 가득한 게 여기란 말야. 여긴 사방이 사람으로 꽉 찬 곳이라고."

그녀의 별 일 없다는 듯한 말투에 나는 더욱 날카로운 말을 쏟아냈다. 그건 어떤 계산 때문에 한 행동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난 사람 많아도 안 보이면 그만이거든. 인기척을 잘 못 느껴서. 네가 나보다 예민할 거라는 걸 생각 못 했네."

그녀의 사과에 나는 마음이 약간 누그러져 예민하게 굴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해한다고 대답하고 창 밖을 보려다 황급히 반대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왜 바보같이 창문이 보이는 자리를 선택한 건가를 화내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게 인기척 잘 느끼고 그런 식으로 예민한 건 아니야. 그냥, 냄새를 잘 맡아서."

"아, 그거 알 거 같아. 사람한테서 역겨운 냄새 나잖아. 이럴 땐 비염이라 냄새 잘 못 맡는 게 좋은 거 같네."

내 말에 이런 식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헛웃음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그녀는 내 웃음에 어이가 없었는지 똑같이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결혼 얘기 해야지?"

그녀의 말에 나는 우리가 만난 이유가 무엇이었나를 겨우 떠올렸다. 미리 들었더라고 그런 직접적인 말에 놀라는 건 마찬가지여서, 주문도 하지 않으면서 메뉴에 얼굴을 파묻던 나는 메뉴를 내려놓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손바닥에 턱을 괴고 손톱으로 벽을 긁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 돈도 없고 일 하는 것도 없어."

"그래서 내가 먹여 살리겠다고 했는데."

"대체 왜? 어떻게 몇 분 잠깐 대화만 했으면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지금 봤잖아?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곁눈질로 나를 찬찬히 살펴봤다. 

"마음에 들어. 같이 살아도 괜찮을 거 같아."

"대체 내가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정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모든 말을 솔직하게 하기로 했다.

"마음에 들면 우리의 결혼을 위해서 다음 계획을 세우고, 별로 마음에 안 들고 결혼 생각도 없고 그러면 관두고. 억지부릴 생각은 없는데."

나는 말없이 그녀가 했던 것처럼 내 앞에 있는 여자를 찬찬히 살펴봤다. 당연히 그저 겉모습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는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앉기 까지 걸린 시간을 다 합쳐도 그녀와 마주한 시간은 한 시간을 겨우 넘겼다.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할 말이 있었다.

"결혼은 싫어. 당신은 나이가 어떻고 주변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직 어린, 아니, 무턱대고 결혼할 나이는 아니잖아."

"아, 그래."

그녀의 목소리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갑작스런 존댓말을 빼면 그런 실망한 기색과 좌절이 느껴지는 표정은 내 의도대로였다.

"그러니까, 우선 연인부터 시작하죠. 한 달 정도라도 사귀어 보고 정해요."

내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동그래진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당황스러움과 기쁨이 동시에 뭍어나왔다. 딱딱한 말투에 비해 그녀는 얼굴에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여자였다.


"손님 이제 주문을 하셔야…죄송합니다."

그녀가 입을 열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눈치없는 종업원이 나타났다. 나와 그녀가 동시에 종업원을 째려보자 종업원은 황급히 사과를 하고 사라졌다. 종업원이 나간 자리를 한참동안 째려보던 우리는 다시 서로를 마주보고 제일 비싼 음식을 주문한 다음 우리가 째려본 종업원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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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마구잡이로 썼습니다. 전에 그게 말이 툭 끊긴 거지 그냥 그렇게 쓴 건데 역시 툭 끊기게 보이긴 했죠. 막 쓰면 이렇다니까요.

뭐 다음 이야기가 어쩌구 한 걸 보면 원래 다른 내용이 있었던 거 같긴 한데, 그거랑 이거랑 별 차이 없을 거에요. 어차피 같은 손에서 나온 이야기인 걸.


막 썼다고 맞춤법도 교정 안 한건 미안합니다. 지난번에는 댓글이 세개나 달려서 하악하악 했어요. 부끄럽다고 대답도 안 하는데 관심 고맙습니다. 조횟수는 낮지만. 읽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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