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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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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4월은 너의 거짓말 리뷰

2016.01.09 03:00

청록야광봉 조회 수:2302



 애니메이션을 본 지 대략 3년 정도 된 것 같다. 남들 갈 때 안 갔던 군대 탓도 있고 바쁘게 생활한 탓에 이전에 즐기던 취미가 모두 사라진 탓도 있었다. 꽂아둔 책머리는 누렇게 변색된 지 오래고, 매일 거울을 보며 흐뭇해 하던 일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어쩌면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취미보다는 좀 더 딱딱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금 무리를 했던 탓인지 병실에 며칠 입원해 있다 문득 '애니라도 한 편 볼까' 싶어 지금은 쓰지 않는, 소위 감상용 넷북을 가져와 펼쳐 보았다. 꾸욱, 부드럽게 눌려지는 타자는 평소 타닥거리던 키보드의 것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고, 펼친 넷북에서는 익숙한 매캐한 냄새가 났다.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은 들뜬 듯한 구동음과 편의성이 극대화된 얇은 두께와 무게감은 '오래간만' 이라는 덜컥거림을 곧장 잊게 해주었다.


 

 사실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본 것은 단연코 우연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것이 뭔지, 이전에 보던 것들은 진행이 어떠한지, 아니면 이미 완결이 나 버렸는지───.


 졸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 "요즘 애들은 모르겠다." 고 말하는 사회초년생처럼, 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몇 십 개나 되는 동영상 로고를 뻐끔뻐끔 쳐다볼 뿐이었다.


 이 작품은 작화가 마음에 안 들고, 이건 또 제목이 마음에 안 들고, '아무거나' 라고 말해놓고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라는 여자친구처럼, 나는 까탈스럽게 굴었다. 어느새 안경을 치켜 올리고 평가하는 깐깐이처럼 구는 것이, '아아, 난 3년 동안 전혀 변한 것이 없구나.' 싶어 여러 의미를 담아 깊이 숨을 내리깔았다.


 몇 번을 휘적거리고 나니,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달칵, 마우스를 클릭하자──업로드는 나중에 본다면 역순행이므로──샛노란 머리에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예쁜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색감도 예쁘고, 작화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들어 곧장 1화를 틀어 보았다.


 제품구입을 할 때에도, 자료를 내리 받을 때도, 생겨버린 미리 댓글창을 확인하는 습관 탓에──그리고 어느정도는 심한 버퍼링에 걸렸던 탓에──적힌 글을 하나 둘씩 읽어나가자 '광광 우럭따', '명작의 시작', '아 후유증 때문에 힘들다' 등절로 호오, 하는 소리가 나올만큼 멋스러운 선택이라고 생각하고서는 다음 페이지의 댓글을 읽었다.


 [마지막화에 여주인공 죽어요.]


 다소 시니컬하게 적어 놓은 그 한 줄이 강하게 내 가슴을 때렸다.

 '여주가 죽는다고?', '차에 치이나?', '정황상 저 바이올린 켜던 애가 히로인 아닌가?' 등등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탓에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응당 분노해야 할 스포일러에는 일말의 감정조차 들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오로지 '시발! 얘 죽으면 안 돼!'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때는 아직 한 장의 스크린샷이었지만 그런 단기간 내에 꽤나 마음을 뺐겼었는 듯 하다.


 부랴부랴 재생 버튼을 누르고 1화를 다 보았다.


 사실 공백기가 있었다고 해도, 어느 분야이든 햇수가 꽤 넘어가면 관록이 생기기 마련인지라 첫 화를 보고서 '아, 얘 병으로 죽겠구나.' 싶었다.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은 채였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인데, 결말을 미리 알고 나니 괜스레 허탈감이 들었다. 1화를 보고 나서 대강 어떻게 될 지 눈에 보였다. '모르고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곤히 자는 척을 하며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던 아이처럼, 익숙한 발소리에 실망하고야 만 아이처럼 괜히 침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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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토록 애달파 했던 이유는 '미야조노 카오리' 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탓이 무척 컸다.

 발랄한 모습과, '음악'이라는 장르의 생동감과, 다채로운 색감들사실 생긴 게 귀여운 것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조건 스트라이크, 완전 올백이었다.


 '아리마 코우세이' 라는 소년이 그랬듯, 나 역시 순식간에 화면 속의 여자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무미건조, 무채색, 모노톤.


 우연이지만 올려다 본 병원 천장 타일은, 무채색의 모노톤이었다.


 다음화, 다음화 그렇게 날밤을 꼴딱 세고서도, 해를 마주보려면 조금 목이 뻐근해질 각도가 되어서야 나는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래 화면을 들여다 본 탓에 사물이 번져보이기까지 했지만, 병실은 아주 옅지만 주홍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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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진부하지만 그래도 아주 예쁜 이야기.


 다만 마른 입을 다실 때 약간의 쌉싸름함은 꽤 오래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지금도 씀바귀를 입에 털어 널은 것처럼 입이 쓰다.


 

 나이를 먹다보니 무조건 해피엔딩이 좋다.


 

 본 직후, 여운에 몸이 젖어 팔조차 드는 게 무거울 때, 많은 생각을 했다.


 

 "나랑 같이 자살할래?"



 작중에서 가장 크게 내 가슴을 쳤던 말이다.


 7!!의 Orange가 흐르고 화면이 컴컴해지고나서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끼운 채로, 얼마간은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환하게 웃던 모습, 바이올린을 켜던 모습, 아이들과 합주하던 모습, 너무 세게 불었다며 눈물 짓던 모습…그간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감정을 빨아들인 말이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무겁다.

 

 죽는다, 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3.jpg

 

 

 

 사요나라, 도돌이표, 제 3장.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와 카오리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성장.


 끝말은 같다.


 '사요나라'


 직접 건네지 못했던 그 말이 더욱 애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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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아쉬운 점은 수도 없이 많다.


 일단 장르의 결합에 있어서 아쉬움이 크다. 제대로 된 음악물임에도 결국 카오리가 죽기까지 밖에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매력적이고 개성있는 조연들은 부각되지 못하고 작품이 끝나버린 셈이다. 주역 4인방을 제외하고서 '아이자 타케시' 나 '이가와 에미' 와 같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있음에도,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내쳐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물론 타케시는 나름 다 한 듯 싶다. 정신적 성장이라던가, 출연횟수라던가.)


 또한, 사실 '사와베 츠바키' 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클리셰에 충실했던 탓인지 소꿉친구로서 츠바키는 자기 역할에 너무도 충실했다. 그 점이 아쉽다. 단 3화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코우세이와 카오리의 비극적이면서 안타까운 사랑을 조금 더 표현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비중을 크게 차지한 탓에, 애꿎이 박정한 화 수의 노이타미나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결코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원작을 봤을 때 '요즘은 무척 드문 정석대로의 수작' 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애니메이션은 만화로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여러 요소들을 적절히 승화시킨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들리는 것 같은' 만화 보다 직접 들리는 애니메이션이 시청각적 효과가 강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주역인지 조연인지 비중이 애매한 '와타리 료타' 라는 캐릭터에 대해 원작에 있던 단 두 마디 대사를 없앤 것만으로 보다 어른스러움을 이끌어낸 것을 들 수 있다.


 "카오린…코우세이 좋아하지?" 사실 원작에 있어서도 료타의 어른스러움은 꽤나 눈에 띄는 편이다.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낸 것도 아니다. 시종일관 비춰진 모습은 가벼워 보이면서도 은근히 배어나오는 어른스러운 무게감. 다만 그뿐이다. 애니메이션의 료타는 보다 성숙하다. 카오리가 사실 코우세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 채고 은밀히 코우세이를 지원해 준다.        

  물론, 코우세이의 '나는 친구A' 라는 자기암시 덕에 길게도 돌아간 셈이 되어 버렸지만.

 

 또 하나는 마지막에 카오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심이었던 료타가 카오리와의 추억을 배경화면으로 띄워 놓고 있는 장면이다.


 개그성인지, 작게 "나의 카오리쨩"이라고 하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있다. 장르 특성상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소 경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원작에서의 '와타리 료타'의 역할이자 정체성이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저 휴대전화을 손에 쥔 채, 둘의 추억을 말 없이 보면서, 천천히 멀어져 간다.


 단순히 이것 하나만으로 료타가 가졌던, 결코 가볍지 않았던 카오리에 대한 연심과 슬픔이 배어나왔다. 정말 잘 만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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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장면에 있어서도 그렇다.


 편지에 꼭꼭 적어두었던 사랑고백과 가슴 아픈 사과, 그리고 코우세이의 답사가 ost와 어우러져 눈물샘을 자극한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그 표정까지도.



 원작과 비교해 보자면, 사실 별 다를 게 없는 장면인데도 둘의 결말에 있어서 각기 다른 인상을 받았다.

 이제 카오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원작에서 '이제는 없는' 카오리의 빈 자리를 강조했다면, 애니메이션에서는 마치 '훌쩍 어디론가 가버린' 카오리에 대해 끝인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와 만났었던 봄을 지나, 이제는 네가 없는 봄을 맞는다.



 오랫동안 회자될 말이자, <4월은 너의 거짓말> 이라는 작품의 아이덴티티로 남게 될 이 말은 작품 전체의 감성 그대로를 관통하여 가슴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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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일까, 수많은 명곡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ED곡인 '반짝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카오리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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