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생회 임원들이 유난히 좋은 걸까
2013.10.02 18:27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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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엄청난 영상을 보여주는 이 만화는, 내가 찬양한다고 손에 꼽는 만화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만화입니다.
아무래도 학생회 임원들 얘기를 하기 전에 손에 꼽는 애니메이션의 공통적인 특징을 먼저 말해야 겠네요.
하나, 스토리가 강렬해요. 물론 PSG에 중심 스토리가 어딨냐고 비판하면 살짝 뜨끔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PSG 감상을 쓰면서 네타 표시를 안 하면 분명 왜 스포일러 하냐고 화낼 분들이 많을 거잖아요? 내용 누설이 있다고 경고는 날려야 할 수준의 내용은 있는 거죠. 난 그 부분에도 충분히 매력을 느끼는 중이고요.
둘, 이런 쪽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추천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파녀와 청춘남을 어떻게 일반인에게 추천하느냐, 사람들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스즈미' 까지만 들어도 어휴 오타쿠 냄새 이러는 거 모르냐고 하면 역시 뜨끔 합니다. 하지만, 난 저것들을 진지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최대한 그 소위 말하는 '덕내'를 담백하게 빼내고, 왜 이게 그렇게 멋있고 좋은 작품인가 침튀기며 찬양할 자신이 있다고요.
그런 면에서, 학생회 임원들은 내가 손에 꼽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면서도 굉장히 이질적인 겁니다.
이건 감상을 쓰면서 네타 표시를 해야 할 만한 중심이 되고 획기적인 내용이 없는 만화에요. 내용 네타를 하려고 해도 못하는 부류인 거죠. 1화만으로 전체적인 배경 설명과 등장인물 설명, 심지어는 앞으로 펼쳐질 내용 전개까지 파악할 수 있어요.
학생회 임원들의 재미를 설명하면서 '덕내'를 지운다, 나는 못해요. 당연하다는 듯이 학생들이 학생회를 따르고, 체육 대회와 문화제는 기억에 남는 커다란 추억이고, 학교의 부활동은 즐겁고 즐거운 거라고 이렇게 부풀려져 있는데, 이걸 어떻게 덕네 안 내고 설명하나요. 게다가 다루는 소재도 온통 변태같은 섹드립인데.
등장 인물을 봐도, 이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독특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뭐 그렇게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발전 과정을 함께하고 그런 건 아니라서, '일상물'이라고 부르는 장르가 얼마나 비슷하게 전개 되었는가 하는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요.
그래도 아즈망가 대왕과 다른 작품을 보고 방영된 시기를 확인하면, 다른 작품들이 아즈망가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가는 쉽게 알 수 있었죠. 못난 선생, 부자, 천재, 키 작은 소녀, 사차원 등등의 요소는 학생회 임원들 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 있습니다.
동시에, 이건 남자 한 명에게 여자 여러명이 호감을 보이는 종류의 만화입니다. 왜 그 '하렘물'이라고 하는 부류 말이에요. 나오는 여자들의 태도가 너무 명확해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시트콤 방청객 마냥 꺄하하 야유를 보내게 되는데, 주인공인 남자는 둔해 빠진지라 에휴 답답한 새끼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거죠.
종합해보면, 내가 이걸 유난히 좋아하고 찬양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에요. 위에 말한 아즈망가도 있고, 파니포니 라던가, 그밖에 재밌게 본 비슷한 종류의 만화가 넘치는데, 왜 하필이면 나는 학생회 임원들을 꼽는 걸까요? 대체 학생회 임원들이 다른 작품이랑 비교되는 특별함이 뭘까요?
우선, 섹드립이 있어요. 학생회 임원들은 대놓고 여자애들 벗겨서 팔아먹는 만화가 아니에요. 전혀 아니죠. 여자 애들이 목욕하는 씬이 대놓고 나와도 그게 야하다는 기분은 안 들어요. 이건 조금은 가려야 에로가 살아나지 같은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아마 바람이 불어서 팬티가 보이는 장면이 나와도 야하다는 느낌은 안 들 거 같아요. 내 기억이 맞다면 학생회 임원들에 치마 노출 같은 건 한 번도 안 나올 걸요. 나올 필요도 없고요.
왜냐하면, 어차피 여기에는 야한 농담이 넘쳐나거든요. 아예 이야기를 진행하는 기본 뼈대가 섹드립입니다. 굉장히 단순한 구조죠. 변태인 등장인물이 섹드립을 친다, 정신이 비교적 멀쩡한 쪽에서 츳코미를 한다, 이 한가지 패턴이 여타 일상물과 하렘물에서 보여지는 그것과 겹쳐서 계속 반복됩니다. 말로 하니까 되게 지루할 거 같은데, 실제로 보면 이 단순한 내용이 진짜 미치도록 웃겨요. 직접 보여줘서 웃기는 게 없는 건 아닌데 내가 웃은 개그는 절반 이상이 말로 웃기는 거였어요. 나머지는 인터넷 문화의 패러디였고요.
그리고 음악이 있죠. 만약 제작진이 이 음악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이 오프닝과 엔딩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티브이 시리즈 방영을 포기한 거라고 변명하면, 난 믿을 거에요. 이 작품에 이것보다 어울리는 음악, 이보다 어울리는 오프닝과 엔딩은 상상이 안 가거든요.
PSG의 엔딩을 '미친 만화에 안 어울리는 너무나 서정적인 음악.'이라는 말로 표현한 분이 있던데 학생회 임원들은 모든 배경 음악이 그렇습니다. 그건 집중해서 들을 필요 없이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알 수 있어요. 여기서 사용되는 음악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못해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죠.
세상에 어떤 변태 개그 만화가 아름다운 색소폰 소리와 함께 학생이 떠난 빈 교실을 천천히 보여주고, 다음 장면에서 돌고래 모양 딜도를 여고생 두명이 흥미롭게 바라보는 장면을 집어 넣겠어요. 학생회 임원들이 그걸 합니다.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거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아직까지 이정도로 아름답고 웃긴 장면은 본 적이 없어요.
일전에 썼던 글에서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댔습니다. 하나는 그냥 재밌어서. 나머지 하나는 이런 부류의 대표라는 의미로.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보면서 고민을 좀 해봤는데, 내가 이걸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재밌어서에요.
비슷한 변태 같은 내용이 넘치는 만화를 봤었고, 비슷한 잘 꾸며진 일상이 나오는 만화를 봤었고, 비슷하게 둔감한 남자 주변에 여자들이 둘러쌓이는 내용의 만화를 봤고, 비슷한 아주 좋은 음악이 있는 만화를 봤었지만, 그것들이 학생회 임원들을 뛰어넘는 재미를 주진 못했어요. 이걸 특별히 좋아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은 비슷한 작품 중에 이것만큼 재미를 준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쉽게 넘어갑니다.
결국, 학생회 임원들은 내가 꼽는 '대단히 재밌어서 자꾸 칭찬하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작품.' 목록에 들어갈 작품이에요. 누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성심성의껏 반박할 가치가 있습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PS.
[글쓰기 프로젝트 1]내 마음속 명작을 찾아서 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네요. "누가 뭐래도 나한텐 이게 최고의 명작이야!" 라는 문장에서 '누가 뭐래도 나한텐' 부분에는 딱 들어맞을 거 같은데, '이게 최고의 명작이야!'는 그 최고에 해당하는 작품이 다섯개나 더 있으니까요. 뭐, 일단 쓰면 어떻게든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