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하라 쿠니히코 님에 관하여
2011.07.07 18:15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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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의 대표작으로【소녀혁명 우테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모든 애니메이션 작품이 대표작이죠.
1. 개요
사실 그의 모든 애니메이션 작품이 대표작이죠.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1964년 12월 21일 출생) 씨는 도쿠시마현 코마츠시마시 출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음악 프로듀서이자, 소설가이자, 만화 원작자입니다. 참 많죠...?
또한 일본 영화 감독 협회의 회원이시기도 합니다. 별명으로 "이쿠니(イクニ)"가 있고, 아마 그 때문인지 트위터 아이디도 @ikuni_noise입니다.
2. 작풍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는 독특한 정지화면과 뱅크샷의 까다로운 사용, 개그 연출, 연극의 기법을 본뜬 영상 표현에 정평이 나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또한 연출가로서는 "셀화의 매수나 작화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재미있는 물건을 만든다"는 말을 포인트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어느 요소와 어느 정도 묶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은 태양계 행성, 무기물, 자연.【소녀혁명 우테나】같은 경우는 식물,【천민과 신부】같은 경우는 이름이 동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만【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시리즈】는 우연에 의한 것들이 많고, 원래 적을 위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가끔씩 굉장히 느끼한 측면도 있습니다.【소녀혁명 우테나】는 그게 폭발했던 작품이죠(...)
3. 인물
굉장히 독특한 머리염색을 하고 계시죠?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인물로, 이처럼 "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과 "원색을 살린 복장"과 같은 화려한 차림새 덕분에 "애니메이션계의 비주얼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가끔씩 "애니메이션계의 코무로 테츠야 (일본 가요계의 전설적 프로듀서)"라고 불리기도 하시죠.) 또한 이러한 모습은 "작품에 흥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 제작하는 측을 주목하게 만드는 데 불필요한 방법은 없다."는 그의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는 모자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는 나빴으며, 학교에서도 동급생을 경멸하며 "빨리 어른이 되어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있었다고 합니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여자와 「チュー」 하는 것보다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나 그림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TV에서 방영하고 있던 데즈카 오사무의 아니메라마【슬픔의 벨라돈나】를 우연히 보고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오신 이유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실사 영화 감독도 겸임하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조감독까지 20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고 합니다.
또한 학창시절, 테라야마 슈지의 연극실험실◎ 텐죠사지키에 심취한 이후로 연극에 조예가 깊습니다. 또한 이쿠하라 감독은 이 텐죠사지키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던 J.A.시저와 친분이 있었고, 이는 J.A.시저를【소녀혁명 우테나】에 기용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안노 히데아키 씨가 에반게리온 이후에 갑자기 연극에 눈을 뜨고 연극적 연출을 하게 된 이유도 이쿠하라 감독의 조언에 의해서입니다. 또한 호소다 마모루, 오오코우치 이치로, 나가하마 히로시 등 많은 애니메이션 업계인들이 이쿠하라 감독에게서의 영향에 관해서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이쿠하라 감독에 의해 발견된 업계 사람도 많습니다. 이쿠하라 감독과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에노키도 요지 씨는 이쿠하라 감독의 소개로 아마추어에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오오코우치 이치로 씨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최초의 업무가 이쿠하라 감독과의 업무였습니다. 애니메이터 나카무라 유타카 씨는 커리어 초기에 이쿠하라 감독의 연출로 인상깊은 작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 씨는 가끔씩 이쿠하라 감독의 말을 자신의 의견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즈마 히로키 씨는 "최근의 젊은 사람들은 너무 가까운 것과 몹시 먼 것밖에 모릅니다. 연애문제와 가정 문제 같은 매우 친근한 화제와 세계의 파멸같은 매우 추상적인 이야기라든지, 그들의 감각은 페타로 붙어버린 것이다." (원문: 最近の若い人はすごく近いことと、すごく遠いことしかわからない。恋愛問題や家族問題のようなきわめて身近な話題と、世界の破滅のようなきわめて抽象的な話とが、彼らの感覚ではペタっとくっついてしまっている) 라는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의 말을 통해 세카이계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텐죠 우테나 역을 맡은 카와카미 토모코하고는 오랜 친구 사이이며,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때 깊은 상실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2. 작풍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는 독특한 정지화면과 뱅크샷의 까다로운 사용, 개그 연출, 연극의 기법을 본뜬 영상 표현에 정평이 나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또한 연출가로서는 "셀화의 매수나 작화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재미있는 물건을 만든다"는 말을 포인트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어느 요소와 어느 정도 묶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은 태양계 행성, 무기물, 자연.【소녀혁명 우테나】같은 경우는 식물,【천민과 신부】같은 경우는 이름이 동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만【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시리즈】는 우연에 의한 것들이 많고, 원래 적을 위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가끔씩 굉장히 느끼한 측면도 있습니다.【소녀혁명 우테나】는 그게 폭발했던 작품이죠(...)
3. 인물
굉장히 독특한 머리염색을 하고 계시죠?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인물로, 이처럼 "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과 "원색을 살린 복장"과 같은 화려한 차림새 덕분에 "애니메이션계의 비주얼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가끔씩 "애니메이션계의 코무로 테츠야 (일본 가요계의 전설적 프로듀서)"라고 불리기도 하시죠.) 또한 이러한 모습은 "작품에 흥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 제작하는 측을 주목하게 만드는 데 불필요한 방법은 없다."는 그의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는 모자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는 나빴으며, 학교에서도 동급생을 경멸하며 "빨리 어른이 되어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있었다고 합니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여자와 「チュー」 하는 것보다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나 그림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TV에서 방영하고 있던 데즈카 오사무의 아니메라마【슬픔의 벨라돈나】를 우연히 보고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오신 이유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실사 영화 감독도 겸임하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조감독까지 20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고 합니다.
또한 학창시절, 테라야마 슈지의 연극실험실◎ 텐죠사지키에 심취한 이후로 연극에 조예가 깊습니다. 또한 이쿠하라 감독은 이 텐죠사지키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던 J.A.시저와 친분이 있었고, 이는 J.A.시저를【소녀혁명 우테나】에 기용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때 연극에 심취한 덕분에 애니메이션에서도 연극적인 연출을 많이 하십니다.
대표적인 예가【소녀혁명 우테나】의 그림자소녀.
안노 히데아키 씨가 에반게리온 이후에 갑자기 연극에 눈을 뜨고 연극적 연출을 하게 된 이유도 이쿠하라 감독의 조언에 의해서입니다. 또한 호소다 마모루, 오오코우치 이치로, 나가하마 히로시 등 많은 애니메이션 업계인들이 이쿠하라 감독에게서의 영향에 관해서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이쿠하라 감독에 의해 발견된 업계 사람도 많습니다. 이쿠하라 감독과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에노키도 요지 씨는 이쿠하라 감독의 소개로 아마추어에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오오코우치 이치로 씨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최초의 업무가 이쿠하라 감독과의 업무였습니다. 애니메이터 나카무라 유타카 씨는 커리어 초기에 이쿠하라 감독의 연출로 인상깊은 작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 씨는 가끔씩 이쿠하라 감독의 말을 자신의 의견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즈마 히로키 씨는 "최근의 젊은 사람들은 너무 가까운 것과 몹시 먼 것밖에 모릅니다. 연애문제와 가정 문제 같은 매우 친근한 화제와 세계의 파멸같은 매우 추상적인 이야기라든지, 그들의 감각은 페타로 붙어버린 것이다." (원문: 最近の若い人はすごく近いことと、すごく遠いことしかわからない。恋愛問題や家族問題のようなきわめて身近な話題と、世界の破滅のようなきわめて抽象的な話とが、彼らの感覚ではペタっとくっついてしまっている) 라는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의 말을 통해 세카이계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텐죠 우테나 역을 맡은 카와카미 토모코하고는 오랜 친구 사이이며,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때 깊은 상실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4. 약력
1985년 교토 예술 단기 대학(현 교토 조형 예술 대학) 졸업
1985년 교토 예술 단기 대학(현 교토 조형 예술 대학) 졸업
1986년『토에이 동화(현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 스승 격인 사토 쥰이치 아래에서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종사
1990년【모레츠아타로(もーれつア太郎)】1990년판 제 18화 "왕자와 계란, 어느 쪽이 대단한 마음!?"으로 연출 데뷔.이후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시리즈"의 시리즈 디렉터 등을 맡는다.
1993년 "극장판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R"로 최초 극장용 작품을 다루어, 팬 이외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얻습니다.
1996년『토에이 동화』를 퇴사,【소녀혁명 우테나】의 기획과 제작을 하는 크리에이터 집단 "비파파스"를 결성, 주재.
1997년 TV애니메이션【소녀혁명 우테나】를 감독.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고베 97"에서 고베 상을 수상합니다. 또한 이 작품의 종료 이후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설, 만화 원작의 집필, 애니메이션 관련 심포지엄의 패널리스트, 학교 강사활동에 주축을 둡니다.
2001년 헤이세이 13년 문화청 파견 예술가 재외 연수원(미디어 예술) 으로서 1년간 로스 앤젤레스에 파견됩니다.
2006년【천민과 신부】를 기획, 제작하는 창작 집단 "크리에이터즈 모이"를 결성합니다.
2006년 패션 잡지 KERA에【천민과 신부】를 연재. 캐릭터의 패션을 영화【불량공주 모모코】의 BABY, THE STARS SHINE BRIGH과 콜라보레이트합니다.
2007년 후지 TV의 노이타미나 계열에서 방영된【노다메 칸타빌레】의 오프닝 영상의 연출을 다루어 그 세련된 영상표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1993년 "극장판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R"로 최초 극장용 작품을 다루어, 팬 이외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얻습니다.
1996년『토에이 동화』를 퇴사,【소녀혁명 우테나】의 기획과 제작을 하는 크리에이터 집단 "비파파스"를 결성, 주재.
1997년 TV애니메이션【소녀혁명 우테나】를 감독.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고베 97"에서 고베 상을 수상합니다. 또한 이 작품의 종료 이후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설, 만화 원작의 집필, 애니메이션 관련 심포지엄의 패널리스트, 학교 강사활동에 주축을 둡니다.
2001년 헤이세이 13년 문화청 파견 예술가 재외 연수원(미디어 예술) 으로서 1년간 로스 앤젤레스에 파견됩니다.
2006년【천민과 신부】를 기획, 제작하는 창작 집단 "크리에이터즈 모이"를 결성합니다.
2006년 패션 잡지 KERA에【천민과 신부】를 연재. 캐릭터의 패션을 영화【불량공주 모모코】의 BABY, THE STARS SHINE BRIGH과 콜라보레이트합니다.
2007년 후지 TV의 노이타미나 계열에서 방영된【노다메 칸타빌레】의 오프닝 영상의 연출을 다루어 그 세련된 영상표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