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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2011/04/27 산다이바나시

2011.04.27 12:46

롤링주먹밥 조회 수:540

유괴 수학 초콜렛

11:25분 시작


난 어렸을 적 부터 수학을 잘했어. 숫자만 보면 어째서인지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부모님이 바쁘셔서 홀로 유년기를 지낸 나에겐, 수학책들이 장난감이였고 내 친구였어.
어느새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난 학교에서도 손꼽히는 수학영재로 떠받들여 졌고,
한 가지 일 밖엔 모르는 나에게 세상은 기회를 주는 듯 했지.
우리나라 최대의 영재학교에 들어가게 된 나는, 마음껏 수학을 공부하려 했어.
그래. 그랬었어.
이대로 꿈을 이루면 난 수학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
응. 그래. 그럴것만 같았어.
꼬마야,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니?

-아니요.
  아저씨이야기는 됐으니깐 제 이야기 좀 하면 안될까요?

안돼. 아직 '나'란 존재를 너에게 '증명'하지 못했거든.
정의1. 성급한 녀석은 좋은 수학자가 되지 못한단다 꼬마야.
그럼 조금 더 '정의'를 내려 줄까 꼬마야?

-아니요. 저 수학은 싫어하는 편이라 됐으니깐 제 이야기좀 할게요.

안된다고 했잖아 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새끼가!
너도 내 '증명'을 방해 하려는거지?
나한테서 '수학'을 뺏어가려는 거지?
방해하게 놔두진 않을거야... 가증스러운 놈들! 네놈들은 다 낙오자라고! 
낙오자.... 나 처럼....

-아..알았으니깐 조용히 할게요 아저씨. 

후... 그래. 나같이 고귀한 수학자가 이런 간단한 문제에 열을 받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법칙'에 어긋나. '증명'할 필요성이 있어...
그래. 지금 너를 가지고 그 놈에게 나를 '증명'하는거 처럼 말이야... 히히..

-- 난 어쩌다 이런 괴상한 아저씨한테 유괴된걸까.
단지 난 집에 돌아가는 길이였는데. 오늘도 평범한 하루 였는데.
머리는 벗겨지고 이 추운날에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너덜너덜한 백의만 입은 이 괴상한 아저씨 한테 잡혀버리고 만 걸까.
집에 가고싶어.

그럼 문제(가)로 돌아가서 내 증명을 계속하도록 하지.
난 그 치열한 영재학교의 경쟁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어.
나에겐 수학이 있었고, 그것만 있다면 어떤 역경도 해쳐 나갈 수 있었으니깐.
내가 사랑하는 수학에 몸을 맡기면, 나머지 놈들은 전부 낙오자가 되어 나가 떨어졌거든.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난 학회놈들을 전부 낙오시킬 수학자가 될 예정이였어.
그 졸업논문 발표회 날 까지는...
니놈의 애비를 만나기 전 까지는 말이야! 

-- 아빠?

그 날도 나는 아름다운 내 수학의 정수를 가지고 강단에 섰지.
멍청한 낙오자 놈들은 내 공식이 움직일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때리기만 하더군!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난 이곳을 졸업하고 녀석들을 전원 낙오자로 만들 수 있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나타난거야. 그는 마치 수학 그 자체를 그림으로 그린듯한 사람이였어.
그는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공식들을 부정해 나갔지.
거기있던 낙오자들과 다를바 없이, 난 멍청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어.
그날 나는 수학에게 버림 받았어.
그 남자는 마치 오늘을 위해서 준비해왔다는 듯이 내가 여태까지 세워온 정리들을
하나하나 부숴버리더군.
난 낙오자가 되었어.
학회 녀석들은 그날 이후로 내 말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
나에겐 수학말곤 아무것도 없는데... 내 수학이 잘못된 거라면 내 인생도 잘못되었다는거야?
난 수학을 되찾아야만 했어. 녀석을 낙오시키면 분명히 내 인생은 돌아올 거라고!
난 느낄 수 있었어.  
그 사람을 낙오시키면 난 다시 수학에게 사랑 받겠지...?
친구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수학에게 보답받을 수 있겠지?
그래서 널 유괴한거야. 
니 애비가 나에게 한 거 처럼, 녀석의 인생을 낙오시키는거야...

-- 이 아저씨 말은 두서가 없는데다 정신이 없네.
    좀 무섭긴 하지만 아빠랑 아는 사람이였구나.

- 아저씨 말은 잘 알겠어요. 그치만 우리 아빤 이런 일로 낙오자가 될 사람이 아니에요.
  아까부터 말하려고 했지만, 아저씨 저기 있는 제 가방에서 초콜릿좀 꺼내 주실래요?

난 너그러운 수학자니깐 반론을 용서하지. 그리고 쓸데없는 공식으로 장식하는것도 싫어하지만
그정도는 서비스해 줄 수 있어. 난 너그러운 수학자니깐.

- 고마워요 아저씨. 확실히 우리아빤 유명한 수학자 였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도 벌써 옛날이야기라구요.
   내가 태어나고 7살이 되던 해, 난 갑자기 저혈당이 지속되는 병에 걸렸어요.
   난 매일매일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고, 가족들에게 짜증내는일은 당연했었죠.
   결국 내 병을 고치는 약은 나오지 않았고, 난 주기적으로 단걸 먹는 수 밖엔 없었어요.
   그런 나를 위해서 아빤 수학을 그만 뒀어요. 그리고는 지금은 자그마한 초콜렛 가게의 주인일 뿐이죠.
   아저씨가 원하는 '낙오'라는거,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빠는 나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죠.
   그건 분명히 괴로운 일이였을 거에요. 아저씨처럼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을 위해서 꿈을 버렸어야 했을 테니깐.
   사실 난 병에 걸리기 전까지 단걸 먹는게 너무나도 싫었어요.
   입은 텁텁하지. 이빨엔 들러붙지... 그래도 아빠가 날 위해서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매일 거르지 않고 아빠가 만든 초콜렛을 먹어요. 내가 살아가기 위한 거고, 아빠의 삶을 이어받기 위한 거니깐.
   그러니 제 가방에서 초콜릿좀 꺼내 주실래요?

헛소리 하지마... 그 사람이 수학을 버렸다고? 수학이 날 버리게 만든 그사람이 이번엔 수학을 버려?
그럴리 없잖아... 나보다 수학에게 사랑받은 사람이 수학을 버릴리 없잖아!

- 세상엔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있지만, 누군가를 지탱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있어요.
  아저씨는 수학에게 버림받았다고 했지만, 그건 아닐거에요. 
  아빠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도 새로운 행복을 찾은 거 처럼,
  아저씨도 분명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꼬마자식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난 버림 받았어! 낙오되었다고!
내가 살아온 날들은 더이상 보답받지 못한다고!

- 아니에요 아저씨. 아저씨가 살아온 날들은 아직도 아저씨 안에 남아있을 거에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요. 다시 아저씨의 꿈을 쫒으면, 언젠가는 분명히 보답받을 수 있을거에요.
   지금 손에 들려있는 초콜렛, 속는 셈 치고 조금만 먹어보세요.

음... 이게 뭐야? 쓰기만 하고 맛으...음? 점점 달아지는데? 신기한 초콜릿이군. 이건 증명이 필요하겠어.

- 그거. 아빠가 고심해서 만든 초콜렛이에요. 아무리 지금이 쓰고 힘들어도 언젠가는 달콤한 나날이 찾아올거라는 걸
  나타낸 초콜렛이라나. 고진감래라고 이름 붙이려고 했는데 내가 촌스럽다고 그냥 함정카드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 인생이 너무나도 씁쓸한거죠? 아빤 나때문에 꿈을 포기해야만 했지만, 아저씨라면 
  언젠가 다시 달콤한 나날을 맛볼수 있을거에요. 그건, 절대로 낙오자가 아닌걸요.
  쓴 맛만 느끼고 아무것도 안한 채, 포기하고 도망치는 사람이야말로 낙오자 인걸요.

그 사람이 만든 초콜렛...
쓴 현실을 이겨내면 언젠가 달콤한 나날이 온다...
그래, 그 사람이 해내지 못한 꿈을 내가 이루면 결국 내가 더 수학에게 사랑받겠지?
난 다시 수학에게 보답받는 나날이 다가 오겠지?
꼬마야, 이 초콜렛은 '증명'이 필요하겠구나. 
내 인생을 걸고 '증명'해주마.
난 너그러운 수학자이니깐.

- 아저씨라면 그 초콜렛, 드려도 좋아요. 음.. 저혈당은 조금 오겠지만.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지. 얼른 '증명'을 시작하지 않으면!
꼬마야, 이 초콜렛은 증명이 끝날때까지 내가 맡아 놓으마. 

- 그래요 아저씨. 그땐 유괴가 아니라 우리 가게에 와서 초콜렛이라도 하나 사주세요.
   아저씨한텐 잔뜩 서비스해줄 테니깐.
   그리고 한가지만 부탁드릴게요.

뭐니 꼬마야?

- 다음부터는, 꼬마가 아니라 꼬마 아가씨라고 불러주세요.
   수학 아저씨.

건방진 아가씨구만... 
초콜렛이나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12시 45분 종료.




으익 기병병병이라 미안타. 산다이 바나시 처음 해봤는데 이거 어렵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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