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향 짭소설
2011.05.12 10:29
노란서(盧蘭西)는 투박하게 생긴 검붉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콧 속을 후벼파는 비린내가 훅 끼쳐온다. 뱃속에서 욕지기가 훅 솟구치지만, 이 정도를 표정 관리하지 못하면 상인 자격이 없다.
"이것이 젓갈이라는 겁니까?
태연하게 항아리에서 한 발짝 물러서면서 노란서는 허리가 굽은 상인에게 물었다. 손등에 하얀 소금기가 앉은 초로의 상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내륙 지방까지 날생선들을 운반하면 사흘도 지나지 않아 못쓰게 되어버린다네. 그러기에 이렇게 소금물에 절여서 나르는 거지. 장마철만 넘긴다면 상품가치는 어지간해서 떨어지지 않으니까."
"호오. 그렇군요."라고 짧게 대답하며 노란서는 머릿속으로 젓갈을 이용해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필시 젓갈의 원가격은 아주 헐값일 것이다.
바닷가에 가면 팔아봤자 수지가 남지 않아서 해안가 주민들이 보존 식량으로 해산물을 말리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겨울철에 짚과 얼음을 섞은 이동틀로 운반하여 한양에 팔리는 신선한 생선은 그야말로 그 가격이 하늘을 찌르지만, 주위에 넘치는게 날생선인 해안지역에서는 지나치게 값이 저평가되어 있다.
하물며 생선이 싸게 팔리는 지역인데, 갯벌에서 돌처럼 흔하게 굴러다니는 해산물의 값이야 말할 것도 없다.
비록 젓갈에 들어가는 소금의 가격에 따라서 부르는게 값이 될 수도 있지만, 금전 순환이 느린 호남지방에서 굳이 황해의 비싼 천일염을 이용해 젓갈을 만들 리는 없다. 아마도 바닷물을 항아리에 담은 뒤 자연증발을 시킬 것이다.
어느 정도의 불순물은, 눈물이 핑 돌 만큼 짜디짠 소금기에 가려진다.
"이 항아리 하나 가격은 얼마인가요?"
"하나에 석 냥. 둘에 다섯 냥으로 쳐주지."
"너무 비싼데요."
충청내륙으로 가면 필시 남는 장사일 것이다. 이득이 보는 장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노란서는 짐짓 뜸을 들인다.
"두 항아리를 살 테니 넉 냥 세 전으로 해주시죠."
"넉 냥 닷 전"
"석 전 오 푼."
손가락을 세 개 펼쳐보이며 노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의식중에 상인은 덩달아 고개를 상하로 흔든 뒤, 마치 주막에 깜작 짐보따리를 놔두고 온 장돌뱅이 표정을 짓는다.
그로서는 넉 냥에 타협을 볼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란서의 조건에 이미 동의해버린 뒤였다.
사농공상 중 가장 천히 여겨지는 상인이라고 할 지라도, 간단한 구두약속의 신뢰는 어지간한 사대부 문서계약을 뛰어넘는다.
별 생각없는 행동이라도 장사치로서의 자존심이 용서치 않는 것이다.
"크읏…. 알겠네."
새파란 외지인과 거래를 쉽게 하리라 생각하던 그에게는 예상치 못한 낭패이겠지. 노란서는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상인이 거래 상대방의 행동을 별 생각없이 따라한다는 습관을 이용한 비장의 무기이다.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할 만큼 조선의 장사치는 만만하지 않다는게 단점이지만.
"그렇다면 대금은 건륭통보로."
"그 쪽이 좋겠지."
청국에서 거래되는 건륭통보는 전국 어딜 가더라도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폐일수록 위폐일 가능성이 큰 만큼, 단순 소매라면 모를까 상인끼리의 거래에서는 은근히 당일전을 무시하는 분위기다.
눈치있는 노란서의 태도에 젓갈 상인의 표정은 조금 밝아진다. 노란서 역시 합당한 가격에 매매했으니 얼굴의 긴장이 다소나마 풀어진다.
바로 옆에서 김호로가 자신의 발등을 짓눌러밟기 전에는.
"아아, 죄송하옵니다. 나으리."
마치 현기증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김호로의 허리가 무너져내렸다. 막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던 노란서는 급히 호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젓갈 상인은 혀를 끌끌 찬다.
"거 처자가 너무 무리한 듯 한데, 저기 나무 그늘에 앉히고 오시구려."
"거래 중에 이거 죄송합니다."
노란서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몹시 기분이 안좋은 양 고개를 푹 숙인 호로를 부축하였다. 젓갈 수레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봐, 당신."
풀바람 소리에 묻힌 김호로의 목소리가 옆에서 어깨를 빌려주는 노란서의 귀에 겨우 들려온다.
"저걸 정말로 그 가격에 살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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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로렌스와 호로의 싱나는 호남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