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소원)
2011.05.2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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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 지망하는 대학에 입학했으면 좋겠네."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돈이나 많이 있었으면 좋겠네."
이루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글쎄, 세계정복?"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바라는데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죽을 만큼...아픈데, 죽을 수 없어."
그러니까 죽고 싶다고 한 소년이 말했다.
'낫고 싶다'가 아닌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살고 싶어'가 아닌 '죽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 쉬고...싶어."
소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소년은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병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대부분 소년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부모의, 혹은 병원의 일정대로 휘둘리는 것뿐이라 정작 소년 자신이 무언가를 원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빠듯한 일정을 보내면서도 정작 소년의 병세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현상유지가 고작인 듯하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소년의 병세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단지 그것이 더디게 진행될 뿐인 것으로 현상유지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병세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 1년이고 2년이고 소년은 병원에서 지내왔다고 한다. 조금도 나아질 기미도 없이 서서히 악화되는 병세와 싸워가며,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싸워왔고 그걸로 좋았다고 말했던 소년이었지만 결국 이 싸움에도 끝은 찾아왔다. 소년의 패배라는 당연하고도 당연한 결말인 것이다.
소년은 지쳐버렸다. 나는 소년이 여태껏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하는 병과 싸워왔던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병과 싸워왔을 뿐 이길 수 있을 리 없는 싸움이었고, 무모하고 쓸데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희망이라는 녀석을 놓고 살 수 없었다고 한다. 희망을 포기한 순간부터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소년의 병세는 더욱 더 심각해졌는지,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생활 할 수 없게 되었다. 너무 힘들고 지친나머지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일까.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걱정해주고 있다는 걸 소년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소년은 여태까지 이를 악물고 노력해왔던 소년이었지만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픔조차 없을 그것이 너무나도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소년이 만들어온 철옹성 같은 벽이 모래성 허물듯이 무너져 버린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소년의 몸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고 마음아파하고 있지만, 소년도 그만큼 아파하고 있다. 자신이 여태껏 상처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괴로운 것이리라. 그래서 소년은 하루빨리 죽기를 소망하지 않았나 싶다. 더 이상 병이 나을 기미도 없이 그런 식으로 주변에 피해만 끼칠 거라면 하루빨리 죽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소년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나보다.
"내 몸이라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중 하나가 나라는 존재와 만나게 된 것이라고 작고 힘없이 중얼거리는 소년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네가 천사인지 무엇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네. 그래도 말이지. 나는 네가 와서 좋다고 생각해.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어주잖아?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고 소년은 작게 웃는다. 작은 병실에서 그 웃음만이 허공에 떠돈다.
소년에게 있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날.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그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던지 소년은 아무런 말없이 듣고만 있을 뿐이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밤이 되자, 누워있던 소년은 조용히 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 많이 생각해봤어."
지친 표정으로
"너무 힘들어서 죽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두 눈동자로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젠 쉬고 싶어...그래도."
나를 향해 말한다.
"나...그래도 역시 죽는 건 무서운가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니...우는 얼굴로 소년은 말한다.
"나 살고 싶어. 금방 나아서 이곳저곳 가보고 싶었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어."
눈물과 콧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흘러내려, 볼품없는 얼굴이 되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말한다. 언제까지고 말한다.
말은 어느새 울음소리와 섞여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소년이 어떤 기분으로 저 절규와 같은 소리를 내지르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걱정과 슬픔, 절망, 누군가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와 증오가 절규로 변하여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살고 싶다는 애원의 목소리가 병실을 매워간다. 그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나는 한 번 더 입을 연다. 이번에는 피곤이나 좌절감, 타성 따위에 젖어서 내는 소리가 아닌, 소년의 솔직한 마음을 듣기위해 입을 연다.
"소원이 있나요."
작고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소년은 그 목소리를 듣고 간절히 바란다.
"나는, 나는 살고 싶어! 건강하게 지내고 싶어! 가고 싶은 곳을 마, 마음껏 돌아다녀보고 싶어!"
그러니까, 소년은 애원한다. 죽고 싶다던 소년이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나에게 얘기한다. 얼마 안 있어 죽을 터였던, 그래도 죽고 싶다고 말했던 소년이 살고 싶다고 내게 말한다. 나에게 애원한다. 아무런 꾸밈없는 솔직한 마음으로 나에게 부탁하고 있다. 그러니,
"그 소원. 내가 이루어 줄게."
소년에게 말한다. 조금의 가식도, 거짓도 없이 내게 부탁해준 소년에게 진실 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내가 대려가 줄게, 라고 말한다. 팔을 뻗는다. 그리고는 가녀린 두 팔로 소년을 끌어안는다. 끌어안은 소년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해준다. 나와 같이 가자고 몇 번이고, 목이 쉬도록 이야기해준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동이 틀 때까지 소년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아침이 되서야 소년은 미소 띤 얼굴로 편안하게 잠이 든다. 그 모습에 나도 이제는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음에 눈을 뜨게 되면 누군가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기대감과 함께 나도 이만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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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을 부탁합니다. 쓴소리까지는 받는데 욕은 자체필터링 되니 이상한데서 힘쓰지 마세요.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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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씨
2011.05.24 10:57
나는 잘 썼다는 말 밖에 못하겠다 -
에일리언
2011.05.24 14:19
잘썼다는 한마디면 좋습네다. -
갱뱅컬렉터
2011.05.24 14:04
엔터키를 사랑합시다. 엔터키는 착하니까요. -
에일리언
2011.05.24 14:19
감사합니다. 고갱님. 접수된 의견이 반영되었습니다. -
AugustGrad
2011.05.24 21:29
내가 독해력이 딸려서 그런가. '나' 가 누구인거야 결국? 초월적 존재 같은대. 얘의 역할을 좀더 부각했으면 어땟을까 한다. 이해 못한거면 설명좀 부탁해 -
에일리언
2011.05.25 18:41
'나'는...뭐랄까, 이세상 사람이 아닌 존재입니당. 소원을 들어주지요. 단, 말하는대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소원을 들어줍니당.
...원래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연재를 생각했지만 그냥 포기하고 적당히 끊은겁니다. -
청록야광봉
2011.05.25 00:42
그냥 소설이라기보다는 그냥 크게 산문형식이 뒤섞인 것 같네 내용은 뭐 간단하니 그냥 완성작이라기엔 그렇고 습작의 느낌이 강해 힘내라
....보통 때보다 좀 악랄하게 썼다 아 다크함을 되찾아야 해;; -
에일리언
2011.05.25 18:42
힘내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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