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
2011.10.18 04:00
소년은 어디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기나긴 회랑을 보며 앉아있었다. 소년이 무심코 내뱉은 한숨은 회랑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때였다. 그가 걸어왔던 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도 오늘 아침에 보았던, 딱딱한 비서같아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 곳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한 소녀만을 이곳에 남기고 다시 돌아갔다. 소녀는 소년의 옆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싸구려 옷을 유난히 야하게 입은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그녀를 아래에서 위에서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손에 꽉 쥐고 있는 돈과 갈색의 뱃지를 보고 그녀가 어째서 그런 복장을 입고 있는지 눈치챘다.
"어떻게 이곳에 왔어?"
그는 그녀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깨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차..."
"아무도 안 도와줬어?"
"나같은 걸 누가..."
소년은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꾹꾹 눌러담고 그녀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 갈색 뱃지..."
소녀는 흠칫하며 그 갈색 뱃지를 양 손으로 꼭 가렸다.
"가릴 필요 없어. 네 작은 손으로는 다 못 가릴 테니까."
"......."
"왜 그 일을 한거야?"
"가족들이 밥을 굶고 있어서..."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푹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을 거야. 배가 고파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빨리 가족들에게 가야 하는데. 엄마, 아빠에게 이 돈을 줘야 하는데..."
그녀는 손에 들려있던 돈을 꽉 쥐었다. 이미 주름이 많던 돈에 주름이 더 생겼다.
"너는..."
겨우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소년은 소녀에게 다시 물어봤다.
"...가족을 위해 너를 희생해놓고 너 자신을 '나같은 걸'이라고 표현한 거야?"
"하지만 이런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더럽다고 하지 않아."
성인이라고 하지 라고 그는 끝에 덧붙였다.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 너 같은 사람. 남을 위해서 열심히 자신을 더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면은 보지 못하고 '더럽다'라는 면만을 보고 그 면만을 기억하지."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처음과는 무서울 정도로 달라진 그의 목소리와 과격한 행동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 역경을 겪고서도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색 눈에 눈물이 고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어깨를 놓았다.
"나는 총에 맞아 죽었어."
소년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총에 맞아 죽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거야.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거든."
그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을 그의 손을 보았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붉은 피.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붉은 피가 그의 눈에만 보였다. 소녀는 그 손을 쳐다보고 있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성인이라고 부르는 그가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나는 돈을 받았지. 그 피비린내나는 돈으로는 밥 한 끼밖에 살 수 없었어. 하지만 고아였던 나는 그런 돈이라도 필요했지."
그는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조소하듯이 말했다.
"사람의 영혼을 한 끼 밥으로 먹으며 나는 그렇게 살다가 죽어왔어. 그렇게 나는 일생을 죄를 지으며 살아왔어."
그는 피묻은 손으로 꽉 쥐었던 그녀의 어깨를 보았다. 남을 위해 살아온 성녀의 어깨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손에 감싸여진 자신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그는 갑자기 소리높여 웃기 시작했다. 회랑이 온통 광기가 가득찬 웃음으로 물들어갔다.
"신이라는 자는 터무니없이 잔인한 것 같아.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만들어놓고서는, 죄를 지으면 지옥으로 보내버리잖아?"
그리고 그는 다시 그녀를 살짝 쳐다보았다. 그녀는 겁에 질린 듯 꼼짝않고 얼어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죽여버린 너마저 죄인 취급받지. 원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었는데."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 세상은 불공평해."
"당신은..."
그녀는 겨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네요."
그는 그녀를 보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 두 분. 이 쪽으로 따라오세요."
소년과 소녀는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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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이외에 지옥과 천국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사실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곳이 지옥의 가장 밑바닥 중 하나인 것이다. 끝없이 고통받는 구조. 그곳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모두 치른 후에야 그들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지옥의 최하층에서 행복한 사람은 두가지 종류의 사람 뿐이다. 죄값을 모두 치렀으나 죽지 못한 사람 또는 원래 세계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 진짜 인간이든 가짜 인간이든 모든 죄인들이 더욱 고통받게 하는 존재라는 건 확실하다. 어쨌든, 그 죗값을 모두 치른 자만이 용서받고 올라올 수 있다.
소년과 소녀가 재판관에게 들은 이야기는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소년이 생각하던 불공평한 세계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였던 것이다. 소년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일부러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놨다는 것에 화가 나기보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는 구원받을 수도 있다.
왠지 모르게 소녀에게 사랑에 빠진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했다.
그렇게 소년은 다시 지옥으로 가는 것을, 소녀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소녀는 소년을 위해서 열심히 재판관을 설득했다. 하지만 재판관들은 결과를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소년이 그녀를 진정시킨 뒤에야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결과를 납득했다.
왠지 모르게 소년에게 사랑에 빠진 소녀는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흰색 긴 수염에 망토를 쓴 재판관들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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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이 없어보이는 검은 통로를 걷고 있었다. 얼마쯤 지나왔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앞에는 소녀가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그녀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잡고 숨을 고른 뒤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기다릴께요."
하늘색 눈이 흔들림 없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반드시 기다릴 테니까, 꼭 돌아오세요."
"늦을지도 모른다고."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되어있을 지도 몰라."
"괜찮아요."
"영원히 못 돌아온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말이 나오자마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그의 품 속에 파고들어 그를 꽉 안았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다가 그녀를 꼭 안았다.
"다시 돌아올 테니까.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말고, 웃는 얼굴로,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기다려줘."
"기다릴께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떨어졌다. 그리고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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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빛으로 가득찬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커다란 문이 보였다. 그는 문을 열었다. 끝이 없는 화원이 펼쳐졌다. 문 뒤에서 부는 바람에 꽃잎들이 휘날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흰 옷을 입고 가운데 석상에 기대어 졸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는 살금살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눈을 떴다. 푸른색 눈이 그를 보자마자 기쁨에 가득찼다.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도 그녀를 끌어안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돌아왔어.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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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건 이거 키워드로 "밥" 받고 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