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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자작단편소설 (밤하늘)

2011.12.07 00:32

모순나선 조회 수:195

잠에서 깨어나면 어째서 이렇게도 심장이 아플정도로 빠르게 뛰는 것 일까

히로미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듯이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에서는 어떤 핸드폰에서도 있을 법한 평범한 알람 벨이 울리고 있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는구나

짧은 한숨과도 같은 혼잣말을 하며 히로미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친구가 소개시켜준 이시카와라고 불리는 남자는 길을 가다 마주치면 한 번쯤은 뒤돌아볼만한 남자였다.

그렇다고 여자가 줄을 설 만큼 잘 생긴건 아니지만 첫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그는 레드 와인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 뒤 나에게 말했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아세요?”

거의 같은 것 아닌가요

글쎄요. 거의 비슷한 말이면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 말들이죠.”

어떤 의미인데요?”

좋아한다는 것은 제가 지금 히로미씨랑 만나고 있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밥을 먹고 헤어지는 거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한 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 남자 얼굴을 바라봤었다.

그 남자는 그런 내 표정이 맘에 들었는지 한참동안 나를 바라봤었다.

이 요리는 말이에요. 이 가게에서 밖에 못 먹는 요리에요. 집에서 해 먹으려면 여간 힘든일이 아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나는 점점 괜히 친구의 부탁으로 귀한 토요일 밤에 나온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서로 말 없이 요리를 다 먹어갈 즈음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 놓았다.

그 남자 옆으로 보이는 tv 에서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웃어재끼는 토크쇼가 나오고 있었다.

마침 이 남자가 슬슬 지루해져 갈 즈음이라서 난 한번씩 tv로 눈을 옮겼었다.

tv에선 뭐가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는 사람들이 여섯명이나 있었다.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 걸까. 나에게도 좀 알려줬으면 싶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귀한 요리라면서 남기는 것인가 라고 생각한 순간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오늘 저녁 언제까지 시간 있나요?”

대충 12시까지는 괜찮을 것 같아요

괜찮을 것 같아요 와 괜찮아요의 차이. 이런게 이 남자가 말했던 거의 비슷하면서 완전히 의미가 다른 말이라는 걸까.

그럼 괜찮으시다면 산책하실래요?”

어디서요?”

제가 잘 아는 산책로가 있거든요. 거기서 보는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자주 가는 곳이에요.”

그래요? 알겠어요.”

무미건조한 어투로 나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짜피 한 번 나왔으니 바람이나 쐬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 남자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이 싫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에는 보통 드러내서 부정하려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누구나 누군가가 자신을 싫어한 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 정상일테니.

하지만 그 때 어떤 어투로 어떤 대답을 했었더라도 결과는 아마 같았을 것이라고 히로미는 생각했다.

 

나는 27살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어떤 꿈을 가지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에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산다.

마치 그 시절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면서 말이다.

나도 꿈이 있었다.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어 평생 연주하며 살아가는 꿈.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 의해 현실에 의해 그런 꿈들이 하나씩 갈라지고 부셔지면서 결국엔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어쩔 수 없는 삶을 그저 그렇게 평범히 살아간다.

평범하다는 말 자체는 굉장히 의미가 불확실하다. 어떤 것이 평범한 것인가.

어떤 사람이 누구라도 듣고 인정할만한 정의를 내린다면 인류는 그에게 노벨상을 몇 개를 줘도 부족할 것이다.

 

마지막 연애를 한지 2년이 넘어갈 즈음. 나는 그 남자를 만났었다.

그 동안 사귈 수 있었던 남자는 여럿 있었지만 모두 내가 거절 했었다.

그 거절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싫었기 때문에. 남자가 싫고 내가 싫고 그런 관계가 싫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이시카와라고 하는 남자는 내 친구가 소개 시켜준 남자였다.

사실 그 때쯤 나도 슬슬 외로웠기 때문에 남자가 필요할 시기였다.

단순히 혼자인 잠자리가 외로웠다는 건 아니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그에게 끌렸던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이시카와라고 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히로미는 오늘도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곤 습관처럼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선다.

밖은 햇살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저마다 다른 음색으로 지져귀는 새들과 산뜻한 초가을의 바람

그리고 쉴 새 없이 물살에 휩쓸려가는 듯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

자연과 도시가 서로 모순되며 한 폭의 그림으로 결합되는 이 곳은

내가 사는 일본이다.

내가 사는 현실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다.

내가 사는 슬픔이다.

 

그 남자가 나를 데려간 곳은 정말 그의 말대로 야경이 아름다웠다.

밤 하늘을 눈부시게 수놓은 듯한 저마다 다른 밝기로 반짝이는 별들과 수줍은 듯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달.

그리고 그 아래 있는 나와 그 남자.

이렇게 멋진 밤하늘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히로미는 아까 저녁식사 때의 좋지 않았던 기분을 모두 잊어버린 채 밤 하늘 풍경에 완벽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 옆에만 있었다.

나와 같이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여 흘렀을까. 그는 슬슬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그가 만약 나를 보내주지 않았다 해도 순순히 응했을 것이다.

속으로 약간의 아쉬움을 숨기며 나는 그의 차에 탔다.

외로워 보여요

그는 침묵이 감돌던 차 속에서 그렇게 말했다.

히로미씨는 뭔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외로움이 느껴져요

“......”

그의 말에 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침 지하철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이 붐빈다.

출근 시간, rush hour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짜증나는건 숨길 수 없다.

그렇게 오늘도 직장에 도착한다.

나의 직장은 도쿄 번화가의 큰 빌딩 맨 위 꼭대기에 있다.

보통 층 수가 높을수록 더 높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진 않는다.

단지 직장에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

그렇게 히로미는 한 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사무실 문을 열면서 돌아본 엘리베이터 위에는 25이라는 숫자가 유난히도 오늘 따라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 네 번 정도 만나서 같이 술도 먹고 놀러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에게 안기지는 않았다.

왜일까. 그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나보다 3살 많은 30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다섯 번 째 만났던 날은 조금 멀리 갔었다.

어떤 이름 모를 바다에 도착해서 우리는 수영을 하며 재밌게 놀았다.

그리고 금새 찾아온 밤. 그 날 밤은 아마 내가 여태까지 봤었던 밤 하늘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했었다.

 

나에게서만 느껴진다는 외로움이 뭐에요?”

한참동안 말 없이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바라보던 나의 질문에 그는 잠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모닥불의 빛이 아른거려 더 슬퍼보였다.

히로미씨를 볼 때면 제 가슴 한편이 아려와요. 히로미씨를 볼 때에는 나를 보는 것 같아요.

찢겨져 버린 날개로 벼랑 끝에서 던져진 새끼 새 같아요 히로미씨는. 내가 그렇거든요.”

그의 그 말에 나는 한 동안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생각에 잠겼다.

눈물이 눈에 고여 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안겼다.

그리고 밤새 울다 그의 품속에서 잠이 들었다.

그가 나와 같은 고아라는 것을 안 것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때의 마지막 순간 이였다.

그가 왜 그 이후로 나를 떠났는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잊어버린게 아니라 기억하기 싫은게 아닐까

이젠 그녀도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지났다. 날이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옮긴다.

직장 동료들이 같이 술을 마시자고 권했었지만 나는 피곤하다는 말로 거절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어젯밤 내 꿈에 나타났던 그 남자의 생각으로 나는 일어서 있기조차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버렸는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시간을 체감하며 히로미는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지친 그녀 자신을 침대에 던졌다.

내일 아침도 시끄러운 핸드폰 알람으로 아침에 눈을 뜰 것이다.

그리고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직장으로 가기위해 집을 나설 것이다.

집을 나서 현실으로 슬픔으로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오늘 밤, 그녀는 다시 기억속의 그를 찾기 위해 마음으로 슬픔으로 그 밤처럼 눈물 흘릴 것이다.

 

그녀의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이다.

그녀의 핸드폰이 울린다.

진동으로 해 놓은 탓에 핸드폰은 잠자는 그녀를 깨우지 못한다.

그녀의 핸드폰 부재중 전화목록에는 이시카와라는 이름이 남았다.

오늘 아침도 히로미의 심장은 아프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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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써보네요 ㅋㅋㅋ 가끔은 이렇게 그냥 쓰는 글로도 행복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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