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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세글엮기 - 핑크, 입장, 퇴장

2012.02.11 04:16

하레 조회 수:287

2012 02 11 03:13 시작.  핑크, 입장, 퇴장


아아, 마이크테스트. 하나 하나 하나.”

인생의 목표 몇 가지 중 하나를 달성하기 직전이다. 30분 후면 나는 2년간 사귀어온 P양과 백년가약을 맺게 된다. 먼저 결혼한 회사나 대학 선배들은 후회하기 싫으면 식이 끝나기 전까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맘껏 누리라고 입을 모았지만 난 그들의 충고를 따를 생각이 없었고, 실제로 따르지 않았다. 배우자가 제대로 된 사람인지 어떤지조차 판별하지 못하고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충고 따위 유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청첩장을 돌리고 나서 식까지 한달, 마음 같아서는 한시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런 충고를 하던 사람들 앞에서 알콩달콩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웃음을 날릴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신랑 입장!”

잠시 즐거운 상상에 빠져있는 동안 식이 벌써 시작한 모양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간다. 내 외모에 감탄한 여자들의 시선, 날 질투하는 남자들의 시선이 사방에서 느껴진다. 그래, 나 같은 남자와 P양 같은 여자가 결혼하는 건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종합 우승했을 때보다, GDP가 세계 1위에 올라섰을 때보다 더 기쁘고 축하해야 할 경사가 아니겠는가. 당연한 시선을 받으며 속마음을 숨긴 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하객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신부 입장!”

순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P양이 장인어른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걸어 들어온다. 아아 신이시여. 어떻게 저런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P양에게 내려주셨단 말입니까? 덕분에 이렇게나 완벽한 저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P양은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장인어른께 P양의 손을 건네 받는다. 손이 어쩜 이렇게 곱담…… 비록 장갑을 끼고 있지만 몸 하나하나에 박혀있는 매력은 이 사람이 나의 신부임을 증명하는 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신랑 신부 맞절!”

나와 P양이 마주보고 서서 맞절을 한다. 드레스를 맞출 때는 몰랐는데 오늘 P양이 입은 드레스는 보통 웨딩드레스와는 다르게 가슴노출이 심한 드레스다. 이런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것도 수술이 아닌 태어난 그대로의 가슴으로 웬만한 한국 여성을 압도하는 가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입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역시 내 아내가 될 사람이다.

신랑 Y군과 신부 P양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며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

신부?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 하객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다시 크게 이야기 해 줘요.”

주례 따위가 내 신부에게 명령이라니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딴에는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일 테니 참아주기로 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P양의 대답이 없다는 것. 나와 결혼하는 것이 너무 기뻐서 목이 메이기라도 한 걸까.

“……겠어요?”

?”

P양의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있었다. 나와 가정을 이룬다는 기쁜 감정과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두려움이 섞인 것이겠지.

나 같은…… 이런 사람이라도 괜찮겠어요?”

물론, 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알고 있으니까.”

사실 얼굴은 성형이에요.”

괜찮아.”

몸에는 칼댄 적 없다고 했지만 없다고 했지만 사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칼 댄거에요.”

괜찮아. 지금의 넌 아름다운걸.”

당신만큼 집안이 좋지도, 돈이 많지도 않아요.”

괜찮아. 나에게 돈은 넘쳐나서 주체하지 못하는 물질인걸.”

신부의 이런 고백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보며, 하객들은 감동한 눈치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큰 그릇을 가진 인물인지 똑똑히 보고 기억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런 감정을 가져야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요.”

물을 필요 없어. 네가 어떤 질문을 던진대도 내 답은 한결같으니까. 괜찮아.”

그럼…… .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어서 지루한 주례사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매우 맘에 안 드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P양과 내가 이어지는 순간이 아니던가. 주례사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P양 생각으로만 버틴지 10분. 정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랑 신부, 퇴장."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식장을 나선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첫날밤.

자기, 내가 유일하게 칼 안댄 부분이 딱 한군데 있거든. 그게 어디게?”

…… 글쎄, 마음씨?”

잘 봐봐~”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며 P양은 자신의 분홍색 스커트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웨딩드레스보다 더 새하얀 속옷을 천천히 아래로 잡아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분명 저 면 쪼가리가 내려가면 음란한 분홍색의 구멍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녀가 마저 내리면 침대에 바로 쓰러트릴 생각으로 자세를 잡고 있는데……

달려있어

분홍색의 조개 하나가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는 조개가 아닌 카마보코가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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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뭘 쓴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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