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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가식가면-4(1)

2012.02.12 00:39

MurMurer 조회 수:291

가식가면4 섭화.png : 가식가면-4(1)


 ‘때구루루’


 그녀의 손에는 작은 주사위 같은 게 돌고 있다. 가로, 세로, 높이가 일정한 정사각형의 빨간 큐빅. 책상과 부딪혀 흡사 플라스틱 같은 소리가 난다. 


‘……’


 가울아가 빤히 그것을 보고 있음에도 그녀는 숨기거나 하지 않는다. 마치 그 시선을 즐기는 것처럼 자유스레 손을 놀리고 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나는 진절머리가나서 일단 말문을 열었다.


“저기……”


“아! 미안해. 미안.”


 그녀는 급히 깨닫고 사과했다. 생판 본 적 없는 남을 이런 곳까지, 그것도 좀 전의 사건에 대해 아무런 설명 없이 이끈 것이 무례하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인지. 상당히 굼뜬 태도였지만 그것보다 그 사건의 전말이 문제이다. 아마 분위기적으로 이제 곧 그녀가 실토를 할 것 같았기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의 데시벨은 설명조라고하기엔 많이 부적합했던것 같다.


  "저기요!”


 그녀는 크게 목청을 내질렸다. 그 방향은 가울아의 눈길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이미 가울아의 예상은 빗나간 듯 했다.


 “여기 수제 돈가스 2개요!”


  “-?”


 그녀는 수제돈가스 2개를 주문했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 ‘나 잘했지?’ 하고 싱긋 웃는다. 뭔가 모자라 보이지만 가울아에게 그 활기찬 모습에 딴죽을 걸 만큼 내게 용기는 없었다. 그래도 잘 추스려 그녀를 만나고나서 처음 보는 따뜻한 웃음이었기에 그걸로 퉁쳤다고 생각했다.


 덧붙이건데 아마 그녀가 일부로 내말을 가로막으려고 식사를 주문했더라면 나는 가만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버린 이런 상황을 내가 수궁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쇠 그녀의 순수함을 이해하기 때문이리라.




 그 행색이 요란했던 탓일까. 신경이 쓰여 힐끗 그녀의 얼굴을 본다. 

 오뚝한 콧날과 약간 날카롭지만 큰 눈과 계란형 얼굴형 그리고 뒤로 묶은 주황색 머리. 요즘 유행하는 오렌지 브라운색인가? 그녀의 머리카락은 뿌리부분이 검은색이고 곳곳에 새치를 연상시키는 검은 모발이 듬성듬성 있는 걸로 보아 염색한지 꽤나 된 머리이지만 관리는 잘했는지 꽤나 윤기가 있다. 동양적이지만 약간 혼혈 같은 얼굴일까.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울아였다.


 갑자기 오한과 함께 등골에 소름이 끼치며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뭐 때문에 눈앞에 있는 여자의 생김새를 주의 깊게, 그것도 요조모조 추측도 해가며 본 거지?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저 운이 나빠 마주친 상대다. 겨우 한 사건을 어쩔 수 없게 공유해 버린 목격자로서 적어도 가울아에게 그녀의 외모를 따져볼 그런 이유는 없다. 


 나는 되새겼다. 그녀의 외모는 피차 눈에 뜨일 만큼 요란스러운 것이기에 눈에 뜨였던 것뿐이고. 나는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그녀가 애써 자기소개를 해온다고 한들 나는 귀를 틀어막고 그걸 무시 할 것이라는 각오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 그녀에게 내가 볼일이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사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기분이 들었던 나는 그것을 만회하고자 그녀를 향해 있는 싫은 내색은 다 내려고 노렸했다. 아니 가만히 있으려고해도 몸밖으로 그것들이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잠깐의 정적과 함께 발산한 수많은 독기.


 그 누가 이런 얄궃은 행동을 따라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경질적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한숨을 연거푸 내쉬는 등 할 수있는 갖가지 농성은 다벌였다. 아마도 이쯤이면 보통사람은 먼저 사죄하고도 남겠지.


 아무튼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갑자기 요란했던 분위기가 가라앉고 이윽고 반대편에서 사과조가 들린다.


 “아! 정말 미안해…….”


 아아 그녀도 이제 눈치 챈 것 같다. 나를 이런 상황까지 끌고 가놓고 아무런 설명 없이 버텨 겨우 이시점이 돼서야 죄책감이 드는 것인가. 배려는 무슨 무례하기 짝이 없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부로 못마땅하게 그 말을 곱씹었다. 마치 무언의 시위를 하듯이 침묵을 일관했다.


  그녀는 미안한 모양새로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말을 잇는다. 


 “…….똑같은 걸 시켜도 될까?”


 그러나 전혀 이쪽의 복잡한 마음따윈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 결국 그런 시선에 가울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신 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 


  이미 그녀가 식사 주문을 할 때부터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이제는 앞으로도 다른 말을 입 밖에 말을 내뱉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순간 울컥하며 치밀어 오른 화 때문에 그런 걸 왜 주문이 끝나고 나서 내게 묻는 건지 따져보려 했으나, 그녀의 당당함은 오히려 위압감으로 작용해 충동을 저지했다. 


 망연자실. 그 말이 참 어울리는 상황일까. 결국 밥을 다 먹고 그녀가 식후 커피를 마실 때 까지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인간적인 행동은 내 기분엔 아랑곳 하지 않고 벽걸이 TV를 보며 홀짝거리며 가끔 비시시 웃기나 하는 정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때구루루’


 그녀는 마치 나의 우울을 즐기는 것처럼 자유스레 말을 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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