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의 소나무 - 두 번째 그루
2012.02.21 02:58
#4. 연기 속의 그대
당황스러웠지만, 난 그녀에게 담배를 하나 건넸다.
“고마워요.”
눈물 때문인지 망가진 얼굴의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
연기를 뱉는 그녀의 옆 모습을 바라본다.
생각보다 예쁘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 이런 곳에서 울고 있었던 걸까?
“궁금하세요?”
“네? 아니 뭐...”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가 날 바라보며 묻는다.
이럴 땐 모른 척 하는게 예의겠지만, 왠지 궁금한건 참기 힘들단 말이지.
“끝났어요. 3년의 기억이. 모두 다. 한 순간에.”
중간중간 입에서 담배를 떼어내며 그녀가 한 마디씩 꺼낸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나보군.
“힘드시겠어요.. 힘내세요.”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것 밖에.
“네. 뭐 힘 내야죠. 이러면 안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진 않아요.”
쓸쓸한 목소리.
그 심정, 나도 잘 알고있다.
#5. 2006년 2월.
그 날은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에 거리는 온통 백색으로 가득 차있었고,
사람들은 한번쯤 하늘에서 내리는 그 것을 보고 짜증 가득한 시선을 보내주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미안해... 이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나 1년 동안이나 기다릴 자신이 없어.. 공부 열심히하고..”
내가 사랑했던 그녀.
그녀는 우리나라 여학생들이 가장 가고싶어한다는 여대에 합격했고,
나는 주제를 넘은 죄로 대학 입시에서 좌절을 맛본 겨울이었다.
붙잡고 싶었지만, 그때의 난 너무 초라했었기에, 이제 막 날개를 펴는 그녀에게 짐이 되고싶지 않아 묵묵히 이별을 받아들였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마감했다.
#6. 2007년 봄. 대학가의 어두운 거리.
“이런 경험. 있으신가봐요?”
그녀. 다시 작게 웃는다.
잠시 예전 생각을 하는 동안 내 표정에서 많은 것을 읽은 모양이다.
“네.. 뭐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으니까요.”
나도 그냥 가볍게 대답하며 웃어준다.
“사람이라는게 참 웃겨요.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더니,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하잖아요.”
그녀의 말이 맞다.
나와 그녀도 그땐 참 많이 사랑했었는데.
만나지 못한 날이면, 그녀는 종일 나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보고싶다고.
“첫 마음을 그대로 가져간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죠.”
내 말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를 바라본다.
한 쌍의 남녀가 지나간다.
여자가 술을 많이 먹었는지,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서 남자가 여자를 부축하며 큰 길로 나가려 애쓰고있다.
한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랑한다는건, 큰 것을 바라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비를 맞을때엔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라고.
그 사람을 이해하며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생각만큼 그녀와 나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어나가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요.. 처음처럼.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면. 노래에 많이 나오잖아요. 쉬운 일이라면 그런 말을 노래하진 않겠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 어디에요! 2차 갈건데 빨리 와요!ㅋ]
진동이 느껴져 핸드폰을 꺼내보니 동기 동생녀석의 문자가 와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음.. 빨리 털어내고 기운내세요. 그럼 저는 이만.”
“네. 고마웠어요. 그 쪽도 너무 예전 일을 생각하진 마세요.”
나는 다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일 후.
그때엔 그저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와 난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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