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글엮기] 장난감, 비닐봉지, 우주전쟁
2012.03.19 00:54
2012 03 18 23:54 시작
“기다려 줄 수 있지?”
2080년, 인류는 지구에서 15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외계 생명체와 교신하는데 성공했다. 한번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데 각각 17년, 총 34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인류는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라는 제약보다 외계 생명체가 정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자체가 너무 기뻤으리라.
“물론 그건 아니지. 하지만 주위에 그런 커플이 워낙 많으니까……”
우주과학자들은 “이곳은 푸른 별 지구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라는 메시지를 수십 가지의 언어로 번역해 전송했다. 물론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 식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연하지. 내가 다른 여자들이랑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2114년, 4월 30일. 인류는 드디어 답장을 받았다. 인류의 단위로 6바이트 정도 되는 글귀였지만 많은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은 답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했다. 정치가들은 자신이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고 연설 했으며 직장인들은 이제 영어 일본어 중국어도 모자라 외계어도 해야 하는 거냐며 한숨을 내쉬었고 자영업자들은 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크게 한 몫 잡아볼 수 있을 거라 기뻐했다.
“그건 아니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불안해서 그러는 거야. 너밖에 없으니까.”
약 1년 후, 6바이트짜리 글귀의 해석을 마친 과학자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들이 번역한 글귀의 뜻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 글귀의 뜻은 갖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인류와 싸워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것을 의……”
“그 설마는 두 가지밖에 없을걸? 내가 죽거나 외계인에게 납치되거나.”
곧바로 모든 방송이 중단되었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다. 미디어와 관련된 부서에서 근무하던 각국의 장관들이 해임되었고 지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방송사 사장이 교체되었다. 사회 불안을 막는다며 모든 방송매체와 통신매체의 이용을 금지하는 특별법을 발효시킨 나라도 있었다.
“그런 소리 장난으로라도 하지 마! 사람 걱정하는 게 넌 지금 농담으로 보이니?”
혼란에 빠져있던 각국 정부였지만 높으신 분들이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계연합에 모인 각국 원수들은 지구 연합군을 창설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진짜 오빠까지 그러기야! 나도 사실은 엄청 불안한데…… 너무 무서운데 오빠 가는데 그런걸 말할 순 없잖아!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떨리는 줄 오빤 알아?”
“갑자기 화내서 오빠가 미안하다. 걱정되는 마음에…… 하지만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살아 돌아올 테니까. 일년이 걸릴지 백 년이 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어떻게든 돌아올 테니 넌 여기서 즐겁게 살고 있으면 돼.”
“진짜지? 정말로 돌아올 거지?”
“물론. 그래서 그때까지 맘 변하지 말라고 내가 선물 준비해 왔어.”
“아무리 급하다고 하지만 그게 뭐야. 선물이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니.”
“미안, 입대 준비 때문에 바빠서 포장까지 할 시간은 없었어. 그래도 받아 줄래?”
“당연하지. 누가 주는 건데. 우리 귀염둥이 오빠가 주는 거라면 뭐든지 좋아.”
“이 병 안에 들어 있는 건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매실 원액,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 그리고 이 사진첩 안에는 너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담긴 사진들이 들어있지.”
“시간 없다더니 준비 완전 열심히 했네!”
“이거 사고 만드느라 얼마나 바빴는데. 하여간 그 다음으로 이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내가 없을 동안 나 대신 밤을 책임져줄 장난감.”
“변태.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끝?”
“아니.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너무 커서 네 집 앞에 가져다 놨어.”
“그게 뭔데?”
“뱃속의 아이를 위한 침대랑 장난감. 그리고 아버지 사진.”
“……알고 있었어?”
“어머님한테 이야기 들었어. 왜 지금까지 말 안 한 거야.”
“오빠 걱정 할 것 같아서.”
“이건 당연히 내가 걱정 해야 하는 문제잖아.”
“하지만 오빠가 걱정한다고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지금은 나 혼자서 짊어져도 괜찮아. 오빠는 그냥 걱정 없이 지켜줬으면 했어.”
남자는 한동안 여자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여자를 끌어 안았다. 여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은 그렇게 끝났다.
2012 03 19 00:51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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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생환기를 써 볼까 했지만 그러면 대하소설 분량이 나올거같아서 포기.
한시간 정도 걸리긴 했는데 30분정도는 전화받느라 바빴으니 제대로 집중해서 쓴건 20분 정도인가…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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