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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자작 단편 소설 - 별

2012.03.24 20:49

모순나선 조회 수:253

꿈에서 보았던 너의 그 손을 나는 지금 잡고 있다.
내 옆에 네가 있다.
나는 여기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오직 단 한명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만나고 싶은 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이 작고 작은 마음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나는 너무나도 보고 싶어, 그 사람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오늘도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하고 살아간다.
설령 그것이 나의 마음을 송두리채 흔들어놓을 일 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괴로움과 고통에서 행복으로 바뀐다.
세상은 이런 현상을 기적 이라고 정의한다.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시작되는 일상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매일 다르지 않은 일들을 하며 매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 처럼 같은 일상속에서도 마음 속 한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까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인연으로 이어진 두 사람.
얼마나 적은 확률 가운데서 알게된 것일까.
이것 또한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매일 마다 기적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이름은 사카모토 겐지.
나이 24세의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며 얼굴이 잘 생긴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벌이 좋은 것도아니다.
그저 평범함 그 자체의 인간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 사카모토 겐지를 일반인들과 구별할 수 있는 조건은 마음 속 한 명을 위해서 살아간 다는 것이다.
과연 세상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가끔 궁금했다.

아마 내 기억속에 맨 처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2년전 이였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속에 질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던 나는 마침 한창 관심이 있던 한국을 더 알고 싶어
한국인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모임에 나갔었다.
처음에는 외로운 싱글들을 위한 저급한 모임이라 생각하고 별 기대 하지 않고 나갔었지만 막상 나가보니 남녀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
아닌 단지 순수한 한국인 친구를 만들기 위한 모임이였다.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옆을 지나가는 웨이터에게서 샴페인 한 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여기 저기를 살펴 보던중 소란스러운 무리와 떨어져 혼자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무리에 끼지 않고 혼자 있는 모습이 웬지 모르게 너무나 끌려 나도 모르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카모토 겐지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나의 말에 짧은 인사로 대답을 한 후 그녀는 다시 창 밖의 도쿄의 야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도쿄의 야경속에서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읽어나갔다.
아무말 없이 나도 그녀 옆에서 도쿄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잠을 자지 않을 것 같은 도쿄라는 도시.
밤이 되어도 줄어들기는 커녕 어둠속에서 더 밝게 빛을 내는 발광체들의 움직임.
콘크리트의 건축물들이 마치 밤하늘에 흩뿌려 놓은 별 빛처럼 빛나는 그 모습.
마치 도쿄라는 도시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호흡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 모습
끝없이 흘러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빛들.
끝없이 들리는 차들의 엔진소리 가게들의 호객소리 도시의 거리에 흘러나오는 최신 음악들
높은 호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풍경은
노출 시간을 길게 잡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나도 도쿄의 야경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둔 밤 속에서 밝은 빛들이 눈을 피곤하게 만들 즈음 하늘에 밝게 뜬 초승달을 올려다 보았다.
지구에서 달은 얼마나 떨어져 있었더라.
저 달빛은 태양의 빛을 반사한 빛인데 그렇다면 태양은 얼마나 크고 밝은 별인가.
오늘 따라 초승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주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빛도, 공기도,끝도 없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 혼자 남겨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우주 속에서 흩날리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되버린 나라는 한명의 사람.
그것이 요즘 이 작디 작은 지구에서 느끼는 나란 존재의 정의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즈음 이번에는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늘 밤은 참 아름답네요"
"그렇네요. 도쿄의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저도에요. 여기에 산지 3년이 넘어가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은 처음이에요"
"저도 그쪽도 다행이네요. 지금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됬으니까요"
"그렇네요. 아, 저는 지연이라고해요. 김지연이요"
"지연씨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 후로도 여러가지 처음 만난 사람과 주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얼마동안 한 다음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왜일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치 알고 있던 사람처럼 너무나 편안하고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였다.
내 인생에서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번이 처음이였다. 순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
그녀의 연락처로 데이트 신청을 보냈다.
답장은 만 삼일만에 도착했고 대답은 yes였다.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우리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식사를 다 마칠 즈음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저는 지금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졸업하려면 6개월 정도 남았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취직하려고 해요."
그녀가 어째서 첫 만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는 식사를 다 마치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 갓길에 차를 잠시 세워두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름답지만 대도시의 공해때문에 그렇게 잘 보이지는 않는 별들.
하지만 그녀가 옆에 있었기에 그 별들은 나에게 가장 빛나는 별들이였다.
왜 그땐 깨닫지 못했을까.
처음 모임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이미 그녀라는 별에게 빠졌다는 것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녀가 말했던 6개월이 다 되어 갈 즈음 내 손을 잡고있던 그녀는 말했다.
"나는 겐지씨를 사랑하지만 한국에 가지 않을 수는 없어요. 나의 인생을 꼭 한국에서 펼치고 싶어요."
"그래, 그렇다면 한국을 꼭 가야하겠네"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이 현실로 찾아온다는 것을 인식할 즈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과 슬픔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곧 이제 그녀가 떠나가면 그녀가 없던 무의미한 내 삶으로, 끝없는 어둠뿐인 우주 속의 정말 작은 존재로 돌아가는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에 그 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는 날, 나는 도쿄 나리타 공항에 그녀의 비행기 시간 30분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갑자기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처럼 공허하고 슬픔이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웃음기 있는 얼굴로 그녀와 대화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마지막 만남을 마치고 비행기 출입구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끝까지 참으려 했던 눈물이 작아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나에게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존재였을까.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은  꿈이였을까.
끝이 보였던 결말이다.
더 이상 후회하고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날 밤 나는 눈물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녀가 떠난 후 1개월 쯤 지났을까
나는 거래처 접대라는 이유로 도쿄 한 복판의 큰 호텔 라운지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호텔이 그녀와 맨 처음 만났던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바라보던 아름다웠던 도쿄의 야경.
하지만 이젠 그녀가 옆에 없다는 사실에 도쿄의 야경은 단지 의미없는 빛과 어둠, 무채색들과 유채색들의 나열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아름답던 초승달도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인천행 비행기 티켓을 들고 나리타 공항으로 출발했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 하늘에는 별 빛을 잃은 별들이 희미하지만 빛나고 있었다.

비행기안에서 곧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흘러나오자 나는 마음의 두근거림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짧은 꿈 같았던 그녀라는 인생을 운명을 나는 이제 현실로 만들려고 한다.
비행기는 얼마 뒤 도착하였다.

공항 출구로 나오던 나에게 이제는 나의 인생이 되어버린,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그녀의 웃는 모습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에게만 맺힌

함께 바라보았던 밤 하늘의 가장 밝은 별이 되어

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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