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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그녀를 담는 렌즈

2012.03.26 06:35

무언가 조회 수:246

 찰칵. 
 가볍게 버튼을 눌렀다. 언제나 셔터가 닫히는 소리는 경쾌했다. 사진기에 담기는 것들의 모습도 언제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사진을 찍는 자의 마음은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나는 더러운 존재이다. 언제나 이것저것 억지 논리를 덕지덕지 가져다 붙여서 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지만, 결국 내가 하는 행동은 도둑촬영, 스토킹에 불과했다. 죄책감은 언제나 흙 묻은 눈덩이처럼 검고 커다랗게 불어난다. 
 그때 그녀의 어깨 위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찰칵.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모습은 사진기에 찍혀 들어가 디지털 화면에 나왔다. 흰 블라우스 위에 노란 나비가 올라앉은 모습이 마치 태양과 같았다. 그 모습은 내 마음속 눈덩이들을 사르르 녹였다. 그래. 아름다운 그녀를 찍을 수 있다면 어떻든 상관없어. 
 어느새 나는 사진기에 눈을 대고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끔 버튼을 눌렀고, 그녀는 디지털 화면 속으로 찍혀 들어갔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집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집까지 쳐들어가서 그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영원히 그녀의 사진을 찍지 못한다.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나도 그녀의 집을 등진 채 내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기 전원을 끄지 않고,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을 하나하나 돌려보았다.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계속해서 화살표를 누르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의 어깨에 나비가 앉았을 때. 그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자기 어깨에 앉은 나비를 살짝 보는 듯한 그 시선. 검은색 눈동자. 살짝 벌린 입. 목 아래까지 내려오는 고동색 머리카락. 살짝 보이는 흰 목. 흰 와이셔츠. 가녀린 팔로 들고 있는 청록색 교복 상의. 그대로 완만하게 떨어지는 듯한 곡선. 베이지색 치마. 검은색 타이츠. 검은색 구……
 순간 풍경이 바뀌어 푸른 하늘이 보였다. 바닥에 머리를 쾅 부딪치고, 세상이 빙빙 돌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사진기였다. 다행히 사진기는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종료 버튼을 누른 모양인지, 화면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진기를 목에 건 채로 일어나서는 옷을 털었다. 도대체 뭐지? 하고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무언가가 햇빛을 받으며 데구루루 굴러다니고 있었다. 망원경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짧았다. 나는 그것을 주워서 자세히 보았다. 
 "사진기 렌즈?"
 나는 그 사진기 렌즈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겉면에는 흠이 꽤 많았지만, 렌즈에는 티 하나 없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당히 좋아 보였다.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보았지만,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 알만한 정보는 없었다. 
 크기가 내 사진기와 비슷한 것 같아서 내 사진기에 끼워보았다. 맞았다. 나는 그 사진기 렌즈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사진기를 켰다. 화면에 그녀의 모습이 가득 찼다. 다시 봐도 아름다웠다. 

 우선 샤워부터 한 후, 옷을 갈아입기 위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골라서 입어보고서 거울을 보았다. 괜찮아 보였다. 문득 거울에 비친 사진기와 렌즈에 눈이 갔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렌즈, 정말로 괜찮은 걸까?
 나는 렌즈를 낀 후 사진기를 켜서 화면을 확인해보았다. 딱히 화면이 흐리거나 뭔가 거슬리는 건 없는 듯했다. 나는 내 방 사진을 찍어보았다. 
 찰칵. 
 나는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사진기를 던졌다. 
 사람. 사람이 찍혀있었다. 이상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방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는 카메라만이 홀로 던져진 채 놓여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쫙 빠져서 쿵 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게 뭘까? 심령사진? 아니야. 이 세상에 유령 같은 게 어딨어. 그러면 저건 뭘까? 흠집인가? 아니야. 흠집은 없었는데. 혹시 내가 제대로 보지 않아서 중요한 부분을 놓쳤나? 그래. 다시 확인하자.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뻗어 사진기를 잡았다. 그리고 렌즈를 확인했다. 다시 확인해도 여전했다. 흠집 같은 건 없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사진기 화면을 다시 보았다. 그 사람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갔다. 다리, 허벅지, 골반, 허리, 가슴, 어깨, 목, 입술, 인중, 코, 코끝, 미간, 눈동자……
 나는 또다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사진에 찍힌 건 그녀였다. 확실했다. 그녀가 교복을 입은 채 요염하게 옆으로 누워서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이 사진에 나온 걸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바뀐 게 뭐지?
 나는 렌즈로 눈을 돌렸다. 

 렌즈를 바꿔 끼고 그녀를 찍으러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그 신기한 렌즈는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화면을 돌려서 그 사진을 다시 찾아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손등을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현실이었다. 
 나는 조용히 사진기를 보았다. 논리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빨리 현관으로 내려가서 현관문 사진을 찍어보았다. 
 찰칵. 
 평소의 렌즈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화면에는 텅 빈 현관문만이 나타날 뿐이었다. 나는 다시 방으로 올라가서 그 렌즈를 끼고 내려왔다. 사진을 찍었다. 
 찰칵. 
 화면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꽃무늬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귀신이나 초자연적 현상 같은 건 논리적이지 않다고 믿지 않았지만, 그 생각을 철회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렌즈의 존재를 납득했다. 단순히 항상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딱딱하고 똑같은 루트를 반복할 뿐이었다. 학교, 집, 학원, 집, 다시 학교. 그런 그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장소로 점찍어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이제는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찰칵. 
 어디서 찍어도 그녀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나 다른 복장, 다른 자세, 다른 표정으로 화면에 나왔다. 꽃밭 위를 찍었을 때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채, 손을 벌리고 환하게 웃는 모습. 분수대를 찍었을 때는 꽉 끼는 붉은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분수대 물에 손을 살짝 담근 모습. 강가를 찍었을 때는 연주황색 긴 치마에 흰색 상의를 입은 채 물에 빠져서 엉덩방아를 찧은 채 엉거주춤 머쓱해하는 모습. 언제나 달랐다. 
 무슨 원리로 장소마다 다른 모습이 나오는 걸까? 뭔가 규칙이 있는 걸까? 사실 어찌 되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으니 상관없었지만, 궁금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느 날, 나는 커다란 판을 하나 샀다. 그 판을 내 방에 놓고,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그녀를 찍은 사진을 붙였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예뻤다. 
 나는 그 판을 내 방에 가져다 놓은 기념으로 내 방을 다시 한 번 찍었다. 
 찰칵. 
 그녀는 이번에 다른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긴 와이셔츠만 입은 채 그걸 앞으로 끌어내리며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끌어내리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속옷은 보였다. 흰색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 사진을 바로 출력해서 판에 붙였다. 언제쯤 이 판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1년에 걸쳐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멀리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도 있었고, 집안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복장이 바뀌었고, 그녀의 사진은 점차 커다란 판을 채워갔다.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도 몇 개 있었다. 현관문에서 찍은 사진은 두 개였다. 하나는 시험용으로 찍었던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에 다시 한 번 찍었던 사진이었다. 붉은 머플러를 두르고 코트와 벙어리장갑으로 중무장한 그녀였다. 히히 하고 웃고 있었으며, 그 하얀 이빨 사이에서 김이 살짝 나왔다. 
 눈을 돌려서 다른 곳을 보았다. 호텔 샤워부스를 찍은 사진이 보였다. 막 수건을 걸친 채였다. 몸에서 수분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채. 다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우리 집 욕조가 보였다. 일부러 물을 가득 채우고 찍었었다. 그녀는 욕조에 들어가 있었다. 투명한 피부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고, 욕조에 담긴 물은 그런 그녀의 알몸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판이 거의 다 찬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 몇 장만 찍으면 될 것 같았다. 

 며칠 후,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쾅쾅쾅 현관문을 두드렸다. 나는 잘 때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앞에 경찰이 서 있었다. 경찰들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혹시 이런 사람을 어디선가 목격한 적이 없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네줬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가 사라졌었나? 그것보다 이 사람들이 내 방을 수색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내 방에 있는 커다란 판을 보면 난 끝장 아닌가? 아니야. 갑자기 수색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야. 증거도 없고, 지금은 단지 물어보러 온 것뿐이잖아? 괜찮아. 그래. 침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조심스레…누군지 모르는 척하자. 모른다고 하자. 모른다고…
 "모르겠는데요."
 목소리가 떨린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지? 경찰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할 거 아니야. 눈치챘나? 아니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어. 오히려 이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면 이상한 표정을 짓게 되잖아? 자연스럽게 하자.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짜로 모르는 듯…….
 나는 경찰들을 쳐다보았다. 경찰들은 서로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알았다고 말했다. 난 내 손에 있는 사진을 건네주었다. 경찰은 그 사진을 받더니 협조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문을 닫았다.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내 방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진짜 그녀에 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무 곳에나 사진만 찍으면 그녀가 나왔으니까. 그 사이에 진짜 그녀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 솔직히 상관없다. 이 렌즈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그녀는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렇지? 
 이 렌즈가 그녀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나의 것이었다. 
 마치 나는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충동적으로 사진기를 들어 내 방을 다시 한 번 찍었다. 
 찰칵. 
 그녀가 화면에 나왔다. 그녀는 온몸을 쪼그린 채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마치 엄청나게 부끄럽다는 듯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출력해서 판에다 가져다 붙였다. 
 그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그 사진을 끝으로 판이 끝까지 모두 채워졌다. 
 나는 그 판에 붙어있는 이미지를 하나하나 보았다. 하나하나가 그녀로 가득 차 있었다. 아름다웠다. 예뻤다. 하나하나 걸작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구조, 어떤 규칙으로 매번 다른 자세, 표정, 옷을 선정하는지는 아직도 알아채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규칙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 사진을 좀 더 멀리서 보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사진이 하나 보였다. 판 전체가 하나의 사진인 듯, 사진들이 모두 모여 뭔가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자세히 보았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건 점점 확실한 형태를 띄어갔다. 
 그녀였다. 
 그녀가 피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그 사진들 속에서 꺼내달라는 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잡았다. 흰 손은 피에 젖은 채, 나를 사진 속으로 강제로 끌어들였다. 지금까지 내가 그녀를 강제로 사진 속에 넣었던 것처럼. 
 들어가지 않기 위해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겨우 손을 뿌리치니 판에 붙어있던 수백 개의 사진에서 손이 뻗어 나와 나를 감쌌다. 비명을 지를 입조차 막힌 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피눈물이 나왔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pilogue]

 여자에 이어서 웬 남자도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들은 조사를 위해 그 남자의 집에 들어가 봤다. 평범한 집이었다. 이윽고 경찰들은 실종된 남자의 방 안에 들어가 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커다란 판이었다. 그 커다란 판은 그 남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들은 이 남자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가설을 세웠지만, 그건 금방 무너졌다. 마치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레 찍힌 듯한 사진도 있었을뿐더러, 정말로 남자가 이런 포즈를 취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기묘한 포즈도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들은 이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중점으로 수사 노선을 잡았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 방을 나갔다. 
 어두운 방 안에는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책상 위에서는 카메라 렌즈가 킥킥킥 웃고 있었다. 마치 영혼을 먹는 괴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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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누구 죽는다고 해서 아무도 안 죽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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