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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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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勃氣不傳(발기부 전)

2012.12.10 01:34

청록야광봉 조회 수:625


 옛날 옛적 한 왕국에 왕이 있었으니, 그 왕이 한숨을 푹 쉬더이다

 아따 그 사연 들어보니 참으로 기구한디

 왕에게는 끔찍히 사랑하는 '지'라는 이름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더라

 "나의 아들子 지야....정녕 바로 설 수가 없더냐."

 그러자 지는 초췌한 몰골로 고개만 빼꼼거리더라

 "아이고 나라 방방곡곡 좋다는 약은 다 먹였는데 왜 바로 서질 못한단 말이냐, 응 왜 바루 서질 못해!"

 왕은 너무 상심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는디 아 그 눈물에서 요정 대모大毛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상심할지 말지어다 내 비책을 알려줄 터이니 그 즉시 따르라"

 이에 왕은 탄복하여 머리털이 하애질白 때까지 고개를 조아렸다 한다 하모 그 비책이라 하는 것이 앞으로 69일 후 한 나그네가 찾아올진데 극진히 대접하고 주는 것을 받으라 하였다

 왕은 그러하겠다 하고 69일을 기다리는디 아 글쎄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왕자 지의 안색이 나빠져 그 근심걱정을 덜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디 '나쁜 기운을 이기기 위한 제사' 라는 뜻에서 기승위(氣勝位)를 올렸다 그렇게 공양을 드리는새 날이 지나 어느덧 69일째를 맞았다

 동이 트자 요정 대모大毛의 말대로 궐 내에 허름한 나그네가 한 명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왕은 그 즉시 그 나그네를 들이라 하고 그 나그네를 융숭히 대접하는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그네가 뭘 내놓지 않아 이에 안달이 난 왕은 한 가지 묘책을 내놓았다

 "이보오, 사해진미를 2시진동안 윗입으로 맛보았으니, 이제 배부른 윗입은 두고 아랫입으로 뭘 들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물으니 나그네는 그저 껄껄 웃더라

 "여봐라 궁녀들을 들이라!"

 아 글쎄, 이런 장관이 있나 가히 경국지색이라 불릴 처자들이 온몸에 현란한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쌀뜰물에 씻어놓은 고운 얼굴은 도자기색처럼 청명한 빛을 내었고 한 두겹으로 몸을 싸낸 옷은 귀한 꿩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여 기모치(奇毛雉)라고, 아주 최고급품이었다

 "자, 어떠오 맘에 드시오" 하고 물으니 나그네는 또 껄껄하고 웃기만 하더라

 반응이 신통찮은 것 같아 왕은 아랫것들에게 귀빈이 아직 성에 안 차시는 것 같으니 궁녀들을 내보내고 다시 진미를 들이라고 하자 나그네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올리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보오 윗입으로 먹은 음식들이 위에 쌓여 그런데 이제 정상 위로 되돌려야하지 않겠소"

 이를 본 왕은 껄껄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나그네는 궁녀의 옷을 풀던 손을 잠시 멈추고 말하였다

 "아 이것이 만병통치약인데 아픔을 덜어주는 약이라 하여 로손損이라 한다오" 나그네는 그리 말하고선 다시 허겁지겁 궁녀의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로손을 들고 한걸음에 달려가 아들子 지의 몸에 바르니 아 글쎄 왕자 지가 벌떡 일어난 것이 아닌가

 왕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들子 지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니 아 글쎄 왕자도 힘이 올랐는지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쁨을 잠시 미루고 나그네에게 감사하러 돌아가보니 

 아 글쎄 나그네는 간 데 없고 궁녀 31명만 쓰러져 있더라

 왕은 이를 기이하게 여겼으나 이내 건강해진 왕자子 지를 보고는 "골라 먹으라고 준 것인데 다 먹고 갔구려" 하고 그만 껄껄 웃을 뿐이더라

 후에 왕자가 완전히 병을 털고 일어나자 왕은 나그네를 위해 제를 올리고는 '아침에 온 남루한 손님'이라는 뜻에서 조루朝褸라 불렀다 한다

 경사로세 경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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