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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만듦

그 날 전학 온 그 선배는

2014.02.21 17:22

미유 조회 수:757

참으로 별난 날입니다. 늘상 아침임을 알려주던 알람시계는 고장나있었고, 뒤늦게 잠에서 깨어 부랴부랴 준비를 한 뒤에 학교로 나선 길. 힘껏 달리면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면서, 평소라면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걸었을 등교길이 이렇게 길었는가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서두르다보니 모퉁이 반대편에서 사람이 튀어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아마 알아차렸어도 피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으앗."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버리기도 전에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어버렸고, 이마를 문지르며 둔통을 참았습니다.

 

"미, 미안해!"

 

상대는 넘어지지 않았는지 웬지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들려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얼굴이라도 보려고 감은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더니 이미 저만치 멀어져있는 것을 보고 아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 거라 추측했습니다. 확실히 늦은 시간이니까. 이렇게 앉아있을 시간도 없으니 일어나려다, 자신이 밥을 먹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운 빵 냄새…."

 

지각했다면서 식빵을 입에 물고 달리는 학생의 모습을 생각했더니 기가 막히려고 했지만, 굶은 자신보다는 낫겠구나 생각하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아침부터 부리나케 달린 덕분에 지각은 면하게 되었습니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교실의 분위기를 살펴보자 평소와는 다르게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무슨 일이지 싶어서 아쉬운 대로 앞 자리에 있는 친구를 불렀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어라? 안 늦었구나."

 

방금 전까지 자리에 없길래 지각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면서 웃어주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친구에겐 조금 고맙지만…. 대꾸를 하지 않자 내가 먼저 말을 했었다는걸 떠올렸는지 헛기침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선배 중에 특이한 사람이 전학을 왔다는 것 같아."

"그렇구나."

 

'선배'라는 단어가 나온 시점에서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학년인 내가 선배의 일을 알아서 쓸 데도 없고. 

 

마침 HR시간이 되어 뒤돌아보고 있던 친구는 자연스럽게 앞을 보게 되었고, 얘기를 끊을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잘 됬구나 생각하며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침에 모퉁이에서 나오다가 부딪힌 사람이 조금 신경쓰였기에.

 

 

 

방과 후, 집에 가야 될 시간임에도 멍하니 앉아있다가 같이 돌아가자는 친구의 재촉에도 먼저 돌아가라는 말을 해서 보내고, 빈 교실에서 생각을 가다듬다 창 밖에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뜸해질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슨 변덕으로 그런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여러가지로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도 있는거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학교에서 나와 집으로 가려던 차에, 교문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누군가가 저만치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별 생각없이 집으로 향했겠지만, 오늘따라 평소엔 없던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터라 이렇게 되었으니 작정하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천천히 다가가자 두리번거리던 몸짓을 멈추고 가까워지는 제게서 시선을 고정한 상대는 얼핏봐도 저보다는 나이가 많아보였습니다. 적당히 가까워졌다 싶어졌을때, 거두절미하고 물었습니다.

 

"이런 시간에 뭐하고 계세요?"

"저, 그게…."

 

한껏 기대를 담고 있던 눈빛이 당황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수상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동안 말을 고르던 선배가 말했습니다.

 

"오늘 전학을 와서, 길을 헤매고 있었어."

 

예상치 못한 답에 조금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전학왔다는 그 선배인 모양입니다. 곤란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생각도 아니었고, 마침 다른 예정도 없던 터라 조금 시간을 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그게….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그만."

"괜찮다면 제가 교내를 안내해도 될까요."

"어머, 덕분에 살았네."

 

순진무구해보이는 미소로 '다행이다' 하는 그 모습에 왜 오전에 '특이한' 사람이 전학을 왔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만히보니 꽤 미인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같이 거니던 중, 누군가 이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선배가 먼저 오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손을 흔드는 모양을 보고, 상대는 아마 3학년 선배겠지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미안, 학생회 일이 많아서 늦었어."

 

학생회실에서 여기까지 쭉 달려온 것인지 가쁜 숨을 고르고 그 사람…. 학생회장님은 말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되자 1학년인 제가 뻣뻣이 서있기도 뭐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그 모습에 학생회장님은 제게도 말을 걸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제대로 안내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할 일을 후배에게 떠넘긴 꼴이 됬네."

"그렇지는 않아요."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학생회장님은 어지간히도 워커홀릭인 모양입니다. 책임감도 강하고…. 그래서도 인기가 좋다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고마워, 이제부터는 내가 길 안내를 해줄테니 이제 돌아가도 돼."

 

학생회장님이 그리 말해주셨으니 뒤가 캥기는 일은 없이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저를 지긋이 바라보시더니 바짝 붙어서 제게 한 마디 물어보았습니다.

 

"너, 몇 학년 몇 반이니?"

 

갑작스러운 물음에 무언가 잘못한게 있나 싶으면서도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선히 웃으며 선배도 자신의 반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별 일이 아닌 듯해서 괜히 긴장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학생회장님이 선배를 잡고 '1학년 애가 겁먹잖아' 라면서 길 안내를 명목으로 질질질 끌고가셨습니다.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할 일은 없어졌으니 집에 돌아가야겠다 싶어졌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날부터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들과 모여서 밥을 먹으려고 모이던 차에, 익숙치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리야, 밥 같이 먹자~"

"……."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본건 저 뿐만이 아니라 반에 모여있던 친구들까지 전부. 상황파악이 금방 끝낸 애들은 '그 전학생 선배가 왔다'면서 환호하거나 좋아했지만 이름을 불린 저는 멍하니 굳어있었습니다. 선배는 차분히 굳어있는 제게 다가오시더니, 터무니없는 말을 하셨습니다.

 

"밥, 같이 먹자."

"저, 저는…."

"나리야, 다음에 같이 먹자."

 

친구들은 분위기를 읽은 모양인지 자리를 피했습니다. 정작 나는 친구들과 식사하려고 자리를 잡아놓았는데…. 한숨을 삼키고 친구들과 밥을 같이 먹으려고 돌려놓은 의자에 선배가 앉는 것을 무기력하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기, 혹시 화났니?"

"화 안 났어요."

 

굳이 말하자면 반 애들이 보고 있는 상황이라 창피한 마음이 더 컸고, 친구들과의 식사가 방해되서 기분이 나쁜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놓고 말하면 선배가 상처를 받을까봐 화를 꾹 눌러서 대답했습니다.

 

"그럼 자, 먹자."

 

어느 새 선배가 도시락을 전부 열어놓은 모양을 보며 씁쓸하게 저도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선배의 도시락을 보고 도시락치고는 호화로운 반찬들이 아닌가 싶어서 쳐다보자, 선배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먹고 싶니?"

"…아뇨."

 

이제 두번째 보는 사람의 도시락을 뺏어먹을 정도로 제가 염치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선배의 도시락에 든 반찬들이 탐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정말 맛있어보이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제 도시락이나 일찍 비우고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반 애들이 이 쪽을 보면서 웅성거리고 있었기에. 밥이 아니라 돌을 씹는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도시락을 어떻게 비웠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마치고, 선배가 하는 말을 건성으로 대답하다보니 점심시간이 끝나가게 되서 선배는 짤막하게 '이따가 또 봐'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가셨고, 겨우 한숨 돌렸다 싶어졌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학교에서 보내는 편안해야 될 시간이 선배 때문에 이렇게 되다니, 다음에 한 번 선배에게 따지던가 해야겠다 싶어졌습니다. 잠깐 엎드려있으려니, 아까 같이 밥을 먹으려했던 친구들이 돌아왔습니다.

 

"나리야, 잠깐 괜찮을까?"

"왜 그래?"

"저 선배하고는 어떻게 아는 거야?"

"그, 그게…."

 

이런 순간이 올거라고 선배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끼긴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기도 전에 이런 질문이 들어오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얘기해야되나 하는 차에, 친구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 선배님 너무 아름답지 않았어?"

"맞아맞아. 머릿결은 또 얼마나 부드러워보이던지."

"식사하실 때도 기품이 흘러보였던것 같아."

"그럴 밖에. 그 뭐라더라, 유수한 가문의 아가씨라고 들었는데."

"어쩐지, 이해가 되네."

"……."

 

다행히도, 제가 입을 열지 않았지만 자기들끼리 화제를 돌려서 다행이 되었습니다. 비록 오늘 점심에 같이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이 화제로 며칠간은 떠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신경쓰이는 단어가 있지 않았나…? 싶었지만 그로부터 금방 점심시간이 끝나서 수업에 집중하였습니다.

 

 

 

방과 후, 어김없이 찾아온 선배를 보자 힘이 빠졌습니다. 선배의 제안으로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와 같이 하교할 수도 없게 되어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저는 결국 입을 열었습니다.

 

"왜 하필 저와 어울리는 거에요?"

"응?"

"그야, 선배는 선배니까. 같은 학년 선배와 어울리시는게 낫지 않아요? 기껏 전학오셨는데 친구들 사귀셔야 되잖아요."

 

제 말에 잠깐, 가만히 멈춰서서 저를 바라보던 선배는 제게 말했습니다.

 

"너를 좋아한다…. 고 하면 정말로 화낼거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냐는 소리냐고 할 겨를도 없이, 선배의 표정을 본 저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담 같은거, 아니야."

 

 

 

그로부터 며칠 동안, 처음 선배가 점심시간에 들이닥쳤던 날처럼 선배와 함께 식사를 하는게 저희 반에서 당연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선배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모여앉아서 제 자리 주변은 북새통이 되기 일쑤였고, 이따금씩 이런 상황이 되는게 미안했는지 학생회장님이 오셔서 선배를 수거해가셨습니다. '1학년 교실에 오는건 민폐잖아.'라고 혼내시면서. 

 

저는 상관없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학생회장님이 선배를 데려가는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습니다. 문득, 다른 학생들은 그 선배에 대해 저렇게나 열렬히 좋아하는데, 나는 왜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선배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여전히 웅성거리는 교실. 그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저는 제 나름대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역시 신경이 쓰이는걸 알아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간단하게 교실 안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선배란 어떤 사람일까?'를 유추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이따금씩 밥을 같이 먹으러 오거나, 다른 사람의 간단한 일은 그냥 거리낌없이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우리 1학년 가운데에서는 더더욱 인기가 좋기도 하고…. 이따금씩 하교를 할 때는 아낌없이 먹을 것이든 악세사리든 사주곤 하였습니다. 말로 하지도 않고 길거리를 지나치다 지긋이 쳐다보았을 뿐인데 어떻게 제 마음을 알아차리고 사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뭐하러 이렇게까지 사주시나 싶을 정도로 잘 대해주시곤 했습니다. 

 

그야 이렇게 잘 대해주는게 싫을 사람은 없겠지만,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생면부지나 다름없던 사람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 이유가. 이런 저런 생각에 금방 시간이 흘러서 어느 새 다시 방과 후가 되었습니다. 

 

선배와 방과 후에 만나는데에 거부감이 없어져갈 무렵. 오늘은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배에게 말해서 같이 도서실로 향했습니다. 지정석이 없어서 선착순으로 앉아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온 것이 무색하게 자리는 꽤 많이 비어있었습니다. 

 

자리가 많으니 학년이 다름에도 자연스럽게 선배가 제 옆자리에 앉아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과제와 슬슬 얼마 남지 않은 시험 공부를 겸해서 할 생각이었지만, 농땡이를 피우다시피하는 선배의 모습을 확인하자 맥이 빠져버렸습니다.

 

"선배, 공부 안 하셔도 되요?"

"응. 상관없어."

 

조용히 물어보았지만 아무래도 공부할 생각보다는 그저 제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선배에 대해서 알려면 대화를 하는게 좋을텐데, 하고 생각해버리자 활자를 아무리 노려봐도 머리로 내용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선배와 만나고부터 전혀 공부가 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저는 결국 예상보다 훨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선배에겐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걱정 한 가득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집으로 향했습니다.

 

 

 

공부가 되지 않는 건 선배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었던 저는 그 날 이후로 선배를 피해다녔습니다. 점심시간에도 교실에서 나와서 따로 먹고, 방과 후엔 휑하니 집으로 가고. 

 

친구들이 선배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도망 아닌 도망을 다니던 저는 결국 선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선배는 제가 피해다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피해다니는거야…? 혹시 내가 싫은거니?"

 

울 것 같은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해져서 시선을 피하면서 모기 우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싫어하진 않아요."

 

꽤나 작게 말했지만 그 말을 들으신 건지, 선배의 표정이 화색으로 변해가는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표정이 굳어져서 제게 물었습니다.

 

"그럼 왜 그랬니?"

 

슬슬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의 시선이 느껴져서, 얼른 말하고 상황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집중해서 하고 싶어서…."

"응?"

 

선배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잠깐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 후에, 씁쓸하게 웃으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내게 상담해줬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말하시고는,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시선을 느껴서인지 이따가 방과 후에 다시 보자며 저를 보내주었습니다.

 

 

 

방과 후, 도서실에서 만난 선배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본 바로는 선배는 공부를 전혀 안할 것 같은 모습이어서 혹시나 하면서도 만약 공부에 방해가 된다면 집으로 돌아갈 핑계를 생각해야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선배가 존경받는 이유 중에, 성적 우수도 들어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도망칠까 고민하던 저는, 오히려 선배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셨으면 좋겠다고 절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도움으로, 그 전까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던 것이 무색하게 성적이 이전보다 올랐습니다. 그 일을 말해드리자 자기 일마냥 좋아해주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진 저는 시선을 피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어느 날 교실에 찾아오신 선배는 평소의 활기찬 모습은 간데 없었고 제 앞자리에 돌려앉으시더니 한숨만 연일 쉬셨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내 뒷자리에서 싸웠냐며 쿡쿡 찌르는 친구나,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서 마지 못해서라도 묻자, 선배는 역시나 풀이 죽은 모습으로 대답하였습니다.

 

"방학하면, 나리랑 못 보잖아."

 

참으로 선배답다면 선배다운 대답이었습니다. 확실히 방학을 하면 선배와는 못 보겠지만…. 어쩔 수 없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그렇게만 생각하시진 않은 모양입니다.

 

"나리도 슬프지 않니?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잖아."

"아."

 

제 자신이 1학년이다보니 눈치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선배는 3학년이고 올해가 지나면 학교에서 선배를 볼 수 없게 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선배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딱히 선배를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올해 동안 이 정도는 같이 있어드리는게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쓸쓸할 지도…."

"역시 그렇지?"

 

작게 중얼거린것 같은데 선배는 그렇게 작은 소리도 들으신 건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제 손을 맞잡으셨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정면에서 바라봐오는 선배의 모습은 아까까지 풀이 죽어있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습니다. 선배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얼굴이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했습니다.

 

"아, 맞다."

 

선배는 뭔가 생각이 나셨는지 순순히 제 손을 풀어주시고 조금 물러나시더니, 이번엔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방과 후에, 시간 내주지 않을래?"

 

 

 

방과 후에 교실에서 나서기 전에 선배에게 들은 말에 조금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고 하여서. 즉흥적으로 집으로 놀러오라는 상황인듯 했는데 '초대'한다니 조금 이상하게 느꼈지만, 순순히 선배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학교를 나서 걷기를 수 분,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걸리는 거리보다는 금방 도착하였고, 그 동안 말로만 듣던 선배의 집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주변이 주택가라 더더욱 두드러져보이는 저택의 크기에는 저도 모르게 압도되었습니다. 

 

선배는 제 기색을 아는지 모르는지 굳어있는 제게 집으로 어서 들어가자고 재촉하였습니다. 실내는 적당히 더워지는 바깥이 무색하게 서늘했습니다. 선배에게 나중에 물어보자 벌써부터 에어컨을 켜놓는 모양이었습니다. 

 

엉거주춤으로 선배를 따라서 2층에 있는 선배의 방에 들어갔고, 선배는 마실 걸 준비하겠다며 방을 나서셨습니다. 졸지에 선배의 방에 혼자 남겨진 저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무언가 눈에 띄어서 저도 모르게 책상 쪽에 다가갔습니다. 

 

책상 한 켠엔 작은 액자가 놓여있었고, 액자 위 벽에는 작은 사진들이 몇 개 붙어있었습니다. 액자와 사진들을 본 저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째서 내 사진이?!"

 

다름 아닌 제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제 사진을 찍어놓은 건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어느 새 갈아입으셨는지는 몰라도-사복으로 갈아입으신 선배가 방에 돌아왔습니다. 작은 쟁반에 담긴 주스 2잔과 과자에 눈이 갔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선배에게 다가섰습니다.

 

"선배, 저게 뭐에요?"

"응? 네 사진인데."

"그걸 몰라서 묻는게 아니에요!"

 

추궁조로 선배에게 목청을 올렸음에도 웃고 있는 선배. 한숨과 알게 모르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선배에게 묻자

 

"집에서도 네가 보고 싶어서 네 친구들에게 부탁했었어."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선배하면 꺼벅 죽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선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졌습니다. 아마 선배의 부탁이라면 그 어떤 일이든 하려고 했을 친구들이 떠오르고, 나를 몰래 촬영했을 거라는 생각에 야속해졌습니다.

 

"정말이지…."

 

생각이 선배 쪽으로 바뀌자, 선배가 말한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날 정말로 좋아하고 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피하자, 선배는 이제 그 화제는 아무래도 좋은 듯, 저를 자리에 앉히고 주스 잔을 방 가운데에 있는 탁자에 내려놓았습니다. 주스를 한 잔 받아마시고서야 진정이 되어서, 자신이 선배의 방에 와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선배의 말대로 온 것은 좋은데, 무슨 생각으로 절 집으로 부르신 걸까요.

 

"뭔가 할 말이라도 있니?"

 

참으로 태평한 말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하자, 선배는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했습니다.

 

"한번쯤 나리를 초대하고 싶었어. 집에서 나리를 본다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

 

집에서까지도 이렇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오히려 제 쪽이 당혹스러워졌습니다. 부끄러워진 저는 컵을 밀어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공부하는 척 했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그 다음 행동은 제 마음 속을 뒤집어놓기엔 충분했습니다.

 

"어머, 공부하니? 같이 봐줄까?"

 

그렇게 말하며 제 옆에 꼭 붙어앉으신 선배. 이전에도 같이 공부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밀착한 적은 처음이랄까, 이전에도 느꼈던 은은한 향이 몸을 휘감아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긴장해버렸습니다.

 

"…이건 이렇게 푸는 건데, 듣고 있는거니?"

 

그 말에 정신이 돌아온 저는 저도 모르게 선배에게서 도망치듯 사이에 사람 하나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내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신 듯, 선배는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던 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동안 묻지 않았던 일을 선배에게 물어보려 했습니다.

 

"선배는 어째서 저를…?"

 

선배는 제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검지 손가락을 제 입에 대면서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을 했습니다. 마치 이유야 어찌됬든, 자신은 나를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이, 선배는 말 없이 저를 끌어안았습니다.

 

"……?!"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랐지만, 선배의 품은 따뜻하고 편안해서, 굳이 빠져나오려고 저항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게 선배때문인지, 자신의 심장이 미쳐 날뛰는 것인지도 모른 채, 선배의 방 안에 단 둘이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이런 시간까지 붙잡고 있어서."

 

해는 이미 진지 오래고,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서야 선배의 집을 나섰습니다. 배웅나와준 선배는 자기가 말한 대로 미안한 듯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아요."

 

저도 즐거웠으니까요. 라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집어삼켰습니다. 아마 지금 거울을 꺼내서 보면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방학중에도, 놀러 올래?"

 

아무래도 선배가 저를 집으로 초대한 이유는 이게 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대답은 이미 나와있다는 생각으로 대답했습니다.

 

"선배 집은 에어컨이 빵빵하니까…."

 

그 말에 선배는 의외라는 듯이 쿡쿡 웃으시더니, 제가 그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기자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을 기다리면서, 지금은 에어컨도 없는 조금은 더울 집으로 향했습니다.



프롤로그 쓸 즈음만 해도 클리셰를 깨는 클리셰를 쓸 생각이었는데 어느 샌가 그런거 없어져서 이 모양이 됬습니다.. 부족한 글이라 죄송합니다.

요즘 대세(?)인 문장형 제목, 저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는 아니고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 지 고민하다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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