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좆같을 인생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2013.07.20 06:22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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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주인공 중심으로 연출된 상황과 주인공의 투정을 모두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닙니다. 마지막에 와서는 결국 주인공이 요괴로 변해버리고, 오즈가 매번 하던 악당같은 대사를 직접 오즈에게 날려주니까요.
계속해서 힌트를 주던 '주인공은 오즈를 악역으로 말하지만 결국 둘은 같은 부류의 인간. 그런 생활을 즐겼다는 면에서는 오즈가 더 나은 인간.'이라는 추리를 이 작품은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을 굳이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죠. 다들 많이 해주셨을테니까. 내가 주목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열 개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처하는 상황을 잘 살펴보면 그 모든 일이 그저 이것도 저것도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이었지 하고 넘어갈만한 것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특히 다단계에 엮이는 에피소드 같은 건 대체 어떻게 탈출한 건지, 그 뒤로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걸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평행 세계의 주인공도 이 세상의 상태를 확인했다면 아마 긍정적인 말은 못 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 이야기는 이미지 한 장 아래에서 계속하죠.
'네가 유익한 학생 생활을 만끽할 수 있을리가 없어.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 같은 건 없는 거야. 왜냐하면 세상은 장밋빛이 아니라 잡다한 색을 하고 있으니까.'
히구치는 주인공에게 참 멋진 말을 해줬습니다. 말은 멋진데, 대상이 잘못 됐죠. 나름 괜찮은 가르침은 이후 펼쳐진 상황 덕분에 한 줄의 변명으로 퇴색되고, 주인공은 어떤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마냥 넉 장 반의 세계로 빠집니다. 지금까지 겪었던 아홉 개의 수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주인공을 최악의 상황에 던지는 거에요.
잠시 저런 세상이라도 인터넷만 되면 컴퓨터만 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티비도 안 나오니까 아마 세상 밖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건 저 세상에 못 들어가는 거겠죠. 역시 무섭습니다. 가고 싶다느니 이런 생각은 관둘래요.
다다미 지옥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게된 후 주인공은 각각의 방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모두 재밌어 보인다고, 장밋빛은 아니더라도 각각의 색이 있다고. 나에게도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걸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후회를 해요.
진정한 자신을 보지 못하고 허세를 부리던 주인공이 정신을 차린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쪽이 옳은 거겠지만, 난 이걸 다시 돌아본 다음에 도저히 그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의 투정은 타당했다고요. 오즈와 주인공이 비록 동류의 인간일지라도,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려서, 특히 오즈에게 휘둘려서 일어났잖아요.
호기를 붙잡지 못한 건 주인공이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순전한 자의가 아닌 구십퍼센트의 타의와 십퍼센트의 소심함이 뒤섞여 아예 호기 자체에 다가가지도 못한 경우도많았죠. 하지만 언젠가 주인공은 그 인형을 건내줬을 거에요. 마지막이 아닌 아홉개의 이야기 중 하나에서, 그 하나의 이야기의 나중 시간에 인형을 건네줬을 거에요. 다만 그게 고잔 불 보내기인가 뭔가 하는 그 축제의 날이 아닐 뿐. 여전히 오즈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투덜대는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일 뿐.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모든 걸 파악하고 인정했을 겁니다. 그 시간이 왔을 때 주인공은 진심으로 사실 모든 게 그럭저럭 즐거웠지, 당시에는 웃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즐거워, 라고 말했을 거에요. 다다미 세상을 일주한 건 그저 깨달음의 시간을 앞당겨준 거죠. 이렇게 마지막 화 이전 까지의 주인공을 옹호해도, 결국 문제의 책임은 주인공에게 있습니다. 좆같은 일이에요. 실제로 주인공의 입장에 있다면 한탄과 욕설이 튀어나올 거라고요.
이 정도까지 생각이 오면, 나는 작품에게 주인공 마냥 투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 알았어. 그 흔히 말하는 일반 소설이 원작이라는 애니메이션아. 마지막 마무리는 감동적이었고, 영상은 뛰어났고, 이야기에 섞여있는 비현실이 오히려 이야기를 설득력있고 감동적으로 만들기는 하는데, 그래서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은 뭐니? 이걸 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만큼 뒤틀려 있거든. 그래서 밤새 이걸 보고 돌려보고 해도 네가 말하는 진짜 무언가를 모르겠거든. 좋다, 네가 굉장히 멋지고 재밌고 꼭 한 번은 봐야하는 좋은 작품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내 멋대로 네가 말하고자 한 결론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겠다. 그렇게 밝고 깔끔한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네가, 이 작품이 말하는 건 이 작품안에 있는 대사 그대로다.
어차피 당신은 어떤 길을 고른다고 해도 지금 같은 꼴이 돼버리지. 주인공이나 오즈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걸 보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방에 쳐박혀 있다가 다다미 따위 없는 방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을 날을 기다리거나, 뭘 해도 좆같이 흘러갈 인생 그냥 무엇이든 하고 살아. 그게 네가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네가 보여준 다다미 바깥의 색은 잡스럽다 못해 더럽단 말이지. 마치 다다미 안의 세상처럼. 냄새가 코를 찌르는 우중충한 세상에서 장밋빛 좀 찾아보고, 못 찾았다고 투정 부리는 게 뭐 어때서. 어린 아이가 산타의 실체를 깨닫는 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 거야. 그걸 아버지나 아버지도 아닌 사람이 대놓고 알려주는 건 너무하잖아.
술 주정을 부리듯 나는 작품에게 마지막 투정을 부리고 DVD에만 들어있다는 특전 영상을 보러 갑니다.
지상 잠수함이라니, 이건 대체 무슨 발상인 걸까요. 어쩌면 수일 내에 나는 이 작품의 DVD를 사려고 가격을 알아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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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웨이
2013.07.20 12:03
원작은 안봄? -
사람사는곳
2013.07.20 14:20
그래서 작품을 통한 간접체험과 몸으로 굴러서 얻은 인생교훈은 그 무게가 다른 거임.
받아들이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무게감. -
밀리미터
2013.07.21 03:17
그러고보면 나도 다다미가 말하려는 거에 그렇게까지 크게 공감하는 바는 없었음.
내가 딱히 비슷한 상황에 있는것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거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난 뭣보다 그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함.
윗댓글처럼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이지만, 뭐 다다미정도면 개중에서도 꽤나 좋은 간접체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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