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가 덕후질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드는 생각
2015.04.21 19:02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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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 하다가 뻘하게 생각나서.
내가 처음 보기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달빛천사였고 처음 완결을 본 애니메이션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였다. 전자는 EBS 중학 방송을 보고나면 바로 투니버스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한창 던파 엘미를 키우던 나에게 지나가던 다른 엘미가 "님 나노하라고 법미랑 되게 비슷하게 생긴 애 나오는거 있는데 혹시 보심?" 하길래 보기 시작했다.
달빛천사의 경우 일본이나 한국이나 주인공 성우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한 때 이용신이 갓 소리 듣던게 이해가 안 갈정도로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크게 흠 잡을 부분이 없었다. 작화도 안정적이고 오리지널 스토리도 당시 나에게는 원작 결말보다 더 납득가는 이야기였고.
나노하의 경우는 좀 달랐다. 포격 마법소녀물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과 나름 깔끔한 결말, 잘 만들어진 모에 캐릭터는 당시 뭣모르던 나와 내 친구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지만 작화는 확실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액션씬 그릴 힘을 남겨놓기 위해 일상 씬은 발로 그린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 하지만 이런 작화를 재미로 놀릴지언정 진지하게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작화만 빼면 이만한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나노하 시리즈는 이번 네 번째 시리즈부터 제작사가 바뀌었음에도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인양 작붕을 선사한다.. 나야 강산이 바뀌면서 "나노하 시리즈의 작붕은 그러려니 하고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박혀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어- 간만에 덕후짓좀 했네-" 하고 말았지만 비비드부터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
사실 비비드 나오기 전 부터 작화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Wake up, Girls의 TVA 방영본 라이브씬 작화야 WUG를 꽤 좋아하는 나도 쉴드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굳이 저런 것 까지 잡아서 까야하나…' 싶은 장면까지 프레임 단위로 캡쳐해서 까는걸 보면 살짝 놀랐을 정도.
그래서 난 얼마 전 까지 작붕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저쪽 일하는거 힘든거 너도 잘 알잖아. 예산도 한정되어 있고. 그냥 봐."
며칠 전,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왜 업계 사람도 아니면서 같은 이야기를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걸까?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기억 난다. 작붕 심한거 아니냐고 했다가 니가 애니메이터들 고생하는건 알고 하는 소리냐고 쌍욕 먹었을 때.
강산이 바뀔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512MB 램으로도 넉넉하던 나는 지금 8GB를 끼워두고도 램 부족에 허덕이고 있고, 영원할 것 같았던 경제 암흑기에도 한줄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분명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글이 경제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니 이해를 바란다.) 우리나라에 특별시가 하나 더 생겼다. 애니 업계라고 바뀐게 없을쏘냐, 그저 목소리 연기자에 불과했던 성우들은 어느새 앨범을 내고 팬싸인회를 하는 아이돌이 되었고 게임,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이 압도적으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찍어 누르고 있으며 시도니아의 기사,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낙원추방 처럼 3D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졌는지, 아니면 더 느려졌는지. 원화와 동화가 좀 덜 갈리는지 더욱 더 갈리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산업분야는 더욱더 기술적으로 진보한, 더욱 더 완벽한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사소한 실수 하나에 몇 백억 되는 돈을 날린다. 그런 세상이다. 하지만 애니업계는 아직도 시간 부족과 예산 부족이라는 단 여덟 글자로 소비자들에게 납득을 바라고 있다. 10년 전과 같이.
시간이 없다? 제대로 조직 관리 못 한 누군가의 탓이다. 예산이 없다? 투자자를 꾀지 못한 누군가의 탓이다. 여기서 프로 의식 운운하고 싶진 않다. 아직은 완벽한 완성물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프로가 대충 돈만 받으면 그만인 프로보다는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요구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먹고 사는 산업이다. 핑계를 대지 말자. 비호 해 주지 말자. 잘못 된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욕 말고 말을 하자. 그리고 연구를 하자.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완벽한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납득을 시키자. 트위터나 입이 아닌 영상으로.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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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이
2015.04.21 22:17
운영자는 뭐하나 이런글 추천에 안올리고 -
Elsa.de.Sica
2015.04.21 22:50
최근에는 종래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셀 애니메이션을 디지털화하여 작업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 즉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디지털로 수용한 것인데, 과거 동화를 제작한 후 수정 작업과 검사, 선화 등을 거쳐 셀에 복사하는 과정을 많은 인원이 수작업으로 수행한 데 비해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업은 동화를 스캔(scan)하여 한 장 한 장의 이미지를 데이터화한 후 채색과 수정을 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인원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셀 애니메이션 [cell animation]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요즘은 이렇게 만드는 거 아닐까..? 근데 이것도 11년 전에 나온 책이 출처네
어쨌든.
나는 작화보다 다른 부분에 더 관심을 두니 작화 1프레임 단위로 넘기면서 작붕 찾아 신나게 까대는 사람을 보면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그 열정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집요할 정도로 작화에 집착하는 사람은 솔직히 좀 키모이하다고 느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화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붓기 이전에, 작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들어갈 캐릭터, 이야기, 플롯, 연출 같은 부분에 먼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음. 무슨 대단한 프로파간다를 내걸라는 말도 아니고, 이해하기도 힘들고 팔리지도 않을 철학을 논하라는 것도 아니라, 최소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로서의 짜임새를 갖추는 게 먼저 아닐까. 나는 애니메이션이란 것이, 그저 완벽한 2차원 미소녀가 완벽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여줄 매체이기 때문에 재미있다고도 가치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니.
분명 작화는 애니메이션에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겠지만,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함. 광적인 집착은 역시 이해 안 된다. -
Elsa.de.Sica
2015.04.23 02:49
쿄애니에서 만드는 것들이나 최근 나온 페이트, 신격의 바하무트 같은 걸 보면 기술이든 예산이든 좋은 작화를 만드는 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나도 생각함.
다만 제작사마다 사정이 다를 테니, 모든 제작사가 균등하게 퀄리티 좋은 작화를 뽑아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떤 분야에서 뭘 하든 간에 좋은 성적을 내는 사람이 집단이 있는가 하면 하위권에 머무르는 집단도 있는 법이잖아?
그러니 좋은 성적을 내는 집단이 있으니 당연히 모든 집단에 좋은 성적을 기대해야하고, 설령 하위권에 머무르는 집단이라도 그 기대에 부응해야한다, 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성적이 좋지 않은 집단이 다른 강점을 가져야한다고 보는 거고.
그리고 아래 글을 읽고 한 생각인데, 쿄애니와 같은 방식으로 애니를 제작한다면 작화면에서 질적으로 향상되는 걸 기대할 수 있는데, 어째서 다른 애니 제작사들은 쿄애니를 비판하며 같은 수를 쓰지 않는 걸까?
같은 비용, 일원화된 관리로 향상될 작화는 애니 제작사로서도 분명한 이점일텐데.
오타쿠가 좋은 작화를 원하는 것, 엄청나게 좋은 작화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네타화되는 것, 이건 애니를 팔아야하는 애니 제작사에서도 잘 알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하지 않는 건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쿄애니 같은 식으로 경쟁하면 공멸한다, 는 말이 좀 신경쓰여서 해본 생각이야.
너무 실드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한데..
어쨌든 내 생각임미다^P^)/..! -
사람사는곳
2015.04.22 23:25
디지털로 바껴도 작붕은 여전하니까 제작기술적문제가 아닌 구조,관리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는건데 그게 본문글.
작화를 관리하는 것과 스토리적인 완성도를 높이는건 담당하는 사람(부서,공정)이 다름. 고로 양쪽은 동일한 파이를 가지고 싸우는 사이가 아님.
그렇기 때문에 작화퀄리티도 우수하고 작품성도 훌륭한 작품이 "당연히" 나와야 할것을 노력해야하고 기대해야함.
작화가 좋으니(혹은망이니) 스토리가 부실(혹은흥하는) 해지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기때문에.
결론적으로 애니에 대하여 작화와 작품성은 별도로 각각 평가해도 됨. 한쪽이 다른 쪽의 결과에 영향을 안주니까.
애초에 서로 타협을 하고 싶어도 조건교환 자체가 이뤄질수 없는 관계임. -
Elsa.de.Sica
2015.04.23 02:33
방법이 있는데 안 하는 이유가 뭐야?
처음에 환경 조성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들이면 이후부터 같은 비용, 적은 관리로 더 좋은 작화를 더 적은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애니메이터 수가 애니 제작사 수를 충분히 못채워서 지금 같은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 거고
쿄애니가 그 애니메이터를 독점해서 적대적으로 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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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곳
2015.04.22 23:37
옛날에 싼글이긴 한데 본문글과 같은 맥락이라 링크 달아봅니다 http://www.haganai.me/view/15420 -
간길
2015.04.22 01:49
분명 작화도 재미를 줄 수 있는 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단순히 작화 때문에 그 애니가 까인다고 하면.. 글쎄올씨다... 요즘 원펀맨 보면서도 느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