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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네타  

 시험공부 하다가 뻘하게 생각나서.

 

 내가 처음 보기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달빛천사였고 처음 완결을 본 애니메이션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였다. 전자는 EBS 중학 방송을 보고나면 바로 투니버스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한창 던파 엘미를 키우던 나에게 지나가던 다른 엘미가 "님 나노하라고 법미랑 되게 비슷하게 생긴 애 나오는거 있는데 혹시 보심?" 하길래 보기 시작했다.

 

 달빛천사의 경우 일본이나 한국이나 주인공 성우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한 때 이용신이 갓 소리 듣던게 이해가 안 갈정도로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크게 흠 잡을 부분이 없었다. 작화도 안정적이고 오리지널 스토리도 당시 나에게는 원작 결말보다 더 납득가는 이야기였고.

 

 나노하의 경우는 좀 달랐다. 포격 마법소녀물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과 나름 깔끔한 결말, 잘 만들어진 모에 캐릭터는 당시 뭣모르던 나와 내 친구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지만 작화는 확실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액션씬 그릴 힘을 남겨놓기 위해 일상 씬은 발로 그린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 하지만 이런 작화를 재미로 놀릴지언정 진지하게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작화만 빼면 이만한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나노하 시리즈는 이번 네 번째 시리즈부터 제작사가 바뀌었음에도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인양 작붕을 선사한다.. 나야 강산이 바뀌면서 "나노하 시리즈의 작붕은 그러려니 하고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박혀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어- 간만에 덕후짓좀 했네-" 하고 말았지만 비비드부터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

 

 사실 비비드 나오기 전 부터 작화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Wake up, Girls의 TVA 방영본 라이브씬 작화야 WUG를 꽤 좋아하는 나도 쉴드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굳이 저런 것 까지 잡아서 까야하나…' 싶은 장면까지 프레임 단위로 캡쳐해서 까는걸 보면 살짝 놀랐을 정도.

 

 그래서 난 얼마 전 까지 작붕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저쪽 일하는거 힘든거 너도 잘 알잖아. 예산도 한정되어 있고. 그냥 봐."

 

 며칠 전,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왜 업계 사람도 아니면서 같은 이야기를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걸까?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기억 난다. 작붕 심한거 아니냐고 했다가 니가 애니메이터들 고생하는건 알고 하는 소리냐고 쌍욕 먹었을 때.

 

 강산이 바뀔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512MB 램으로도 넉넉하던 나는 지금 8GB를 끼워두고도 램 부족에 허덕이고 있고, 영원할 것 같았던 경제 암흑기에도 한줄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분명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글이 경제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니 이해를 바란다.) 우리나라에 특별시가 하나 더 생겼다. 애니 업계라고 바뀐게 없을쏘냐, 그저 목소리 연기자에 불과했던 성우들은 어느새 앨범을 내고 팬싸인회를 하는 아이돌이 되었고 게임,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이 압도적으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찍어 누르고 있으며 시도니아의 기사,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낙원추방 처럼 3D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졌는지, 아니면 더 느려졌는지. 원화와 동화가 좀 덜 갈리는지 더욱 더 갈리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산업분야는 더욱더 기술적으로 진보한, 더욱 더 완벽한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사소한 실수 하나에 몇 백억 되는 돈을 날린다. 그런 세상이다.  하지만 애니업계는 아직도 시간 부족과 예산 부족이라는 단 여덟 글자로 소비자들에게 납득을 바라고 있다. 10년 전과 같이.

 

 시간이 없다? 제대로 조직 관리 못 한 누군가의 탓이다. 예산이 없다? 투자자를 꾀지 못한 누군가의 탓이다. 여기서 프로 의식 운운하고 싶진 않다. 아직은 완벽한 완성물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프로가 대충 돈만 받으면 그만인 프로보다는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요구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먹고 사는 산업이다. 핑계를 대지 말자. 비호 해 주지 말자. 잘못 된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욕 말고 말을 하자. 그리고 연구를 하자.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완벽한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납득을 시키자. 트위터나 입이 아닌 영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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