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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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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리뷰글을 그대로 올림.
// 고민고민해서 개념글에 올려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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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들이 바퀴에서 바퀴가 없는 자동차로 넘어가려는 우주의 여러 동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미래의 어느 때. 마음속에 수줍은 순정을 간직하고 있는 순정남 JP는 우주 최고의 유륜 자동차 대회인 레드라인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레이셔입니다. 레드라인의 예선이라고 볼 수 있는 옐로우라인 대회에서 마피아와 결탁해 승부조작을 취하고 있는 JP의 동료 프리스비때문에 아쉽게도 레드라인에는 진출할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레드라인의 결승전 장소가 공개되자 2팀의 기권자들이 나온 덕분에 운 좋게도 새로운 레드라인 대회의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우승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의 마음속 순정의 대상이었던 또다른 레이셔 소노시의 사랑도 얻을 수 있을까요.

  《애니매트릭스》 프로젝트에서 8분이 약간 넘는 단편 애니인 《월드 레코드》를 만들었던 메드 하우스 소속의 코이케 타케시 감독이 그 이후로 작년에 일본에서 개봉하기까지 약 7년동안 준비했던 단 하나의 극장 애니메이션이 이 작품입니다. 스탭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대표적으로 《녹차의 맛》과 《킬빌 Vol.2》의 단편 애니도 만들었던 이시이 카스히토)도 가득하고요. 재능있는 감독과 화려한 스탭들이 뭉쳐서 만든 결과물이 어떻나고 물어보신다면 '정말 끝내줬다'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화려하다고 하는 스탭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상당히 단순하고 명료한 진행을 보여줍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나온 레이싱이 있고 레이싱 중 여러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과 재미있는 조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어려운 것은 정말 없습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 그러면 그러한 스토리상에 존재해야하는 노력의 흔적들은 어디로 가 있나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모조리 연출과 작화로 가버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7년동안 엄청난 수의 셀 원화를 만들어서 그걸 한 장, 한 장씩 고전적인 방식으로 CG의 사용을 배제하고 만든 애니메이션이 우리 눈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가히 놀라울 따름입니다. 영국의 아트만 스튜디오(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이나 팀 버튼의 스튜디오(크리스마스 악몽, 유령 신부)와는 약간 방향성을 다르지만 정공법으로 승부를 본 것이었는데 레이싱 장면에서 완전히 황홀감, 아트레날린의 분출을 느꼈다고 해도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글거리고 닭살돋는 '그' 엔딩에는 많은 분들의 의견들이 갈릴 것 같네요. 저도 엔딩보고 어안이 벙벙ㅋㅋㅋ 그리고 레이싱 장면 사이의 이야기나 연출면에서는 특이하기 보다는 평이한 느낌이 많이 느껴져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단순하고 보편적인 스토리를 의도적으로 차용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거이긴 하지만요.

  커다란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셀 애니의 위대한 움직임 만큼이나 극장에서의 사운드도 너무 좋았습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왜 극장에서 봐야 하는것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픈 사실이기는 하다만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고수준의 작화와 빵빵한 사운드를 굳이 집에서 서라운드 시스템을 장만하지 않더라도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나 이 애니의 제작사인 매드 하우스에서 만든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도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그 감동들을 온전하게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극장에 가서 애니를 보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열약한 한국의 문화 환경속에서도 개봉이 되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많았는데 이 애니의 사운드는 레이싱의 그 느낌을 심장 깊숙히 넣어주니 그냥 느끼시면 됩니다. :)

  이 애니는 전문 성우가 아니라 일반 배우들이 차용되어서 더빙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머리를 하고 가죽 잠바를 입고 다니는 순정남 JD는 키무라 타쿠야, 늘씬하고 나이스 바디를 가지고 있지만 노력하는 숙녀 소노시는 아오이 유우, 그리고 마피아와 결탁해 순수한 레이싱에 뜻을 잃은 JD의 파트너 정비사 프리스비는 아사노 타다노부가 맡았습니다. 이렇게 일반 배우들을 기용해 더빙해서 그 더빙이 어울리는 것은 물론 제작진이 예전부터 그 배우를 점찍어놓고 만드는 캐릭터 디자인의 공로가 가장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배우분들의 연기력이 딸리는 것도 결코 아니고요. 배우분들은 솔직히 잘 모르기는 하지만 아오이 유우의 경우는 얼핏 뉴스로 들은 소식만 접해도 청순하고 연약한 이미지의 귀여운 배우로 인식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나이스 바디에 늘씬한 숙녀인 소노시를 더빙해줘서 좀 놀라웠네요. 다른 두 남자 배우분들의 연기는 솔직히 이 소노시 이상이었고요. 대사하고 캐릭터하고 정말 밀착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네요.

  국내에 오랜만에 정식으로 개봉되는 매니악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기에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빨리 보시길 권장합니다. 이거 스크린에서 못 보면 너무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되거든요. :)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의 엄청난 원화를 같이 만든 스탭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더군요. 매드 하우스와 신뢰감있는 하청 파트너인 DR Movie가 도와주어서 스탭롤에서 한국인들 이름이 주르르 나옵니다!)

레드라인_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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