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드럼 완결 감상. (약한 누설?)
2011.12.27 10:26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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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이 좋은 애니는 아닙니다. 에노키도 요우지가 얼마나 뛰어난 각본가인지 새삼 깨닫게 한달까요. 대사는 인공적이고 플롯 배분이나 템포는 이상하고, 몇몇 심리 묘사는 모호합니다. 시퀀스나 각 논리 간의 연결은 매끄럽지 못하고요. 다른 분들이 지적했듯이 이쿠하라는 좋은 각본가는 아니에요. 주제 묘사도 좀 파편화된 느낌이 있고요. 각본의 상황을 말하자면 균형을 잃었다, 가 정확한 말인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쿠니는 시나리오 쓸때 주제에 맞는 장면을 먼저 만들고 그걸 말이 되도록 연결한거 아닐까 싶습니다. 장면장면은 인상적인데 연결은 어딘가 매끄럽지 못한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져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애니가 가지고 있는 꿈과 동화의 성격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원래 꿈과 동화라는게 설명 대신 디테일함 대신 단순강렬함과 비논리적인 신비함이 매력을 삼는 존재 아닙니까.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펭귄드럼의 지금 같은 균형을 잃은 상태는 애니의 꿈과 동화하고 매우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각본이 문제가 많아도 주제의 방향을 잡고 꿈의 논리가 서게 하고 감정선 따라갈 정도는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떡밥도 적당히 풀어주고 있고요.
-한마디로 우테나는 질로 승부했다면 펭귄드럼은 양으로 승부하는 애니입니다. 이 애니에게 너무 매정하게 굴 필요는 없을것 같아요. 분명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하루카나님의 지적도 일리가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쿠니는 이 애니를 통해 뭔가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광폭하고도 금기위반의 불쾌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슬픈 '아가페적인 사랑'에 대한 시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할까요.
-이쿠니의 모든 매력을 보여주기엔 투박하고 거칠지만 반대로 이쿠니의 모든 것이 정제되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애니입니다. 남들에겐 쉽게 추천은 못하겠지만, 전 이 애니를 올해의 애니로 뽑고 싶습니다. 그 정제되지 않은 건 올해 나온 애니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심하게 유니크한 면모와 강렬한 정서적인 힘과 철학이 있어요. 다만 이쿠니가 이런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그건 태만으로 까야 되겠지만요.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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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팬티
2011.12.27 12:11
내 의견이랑 거의 동일 -
명작킬러
2011.12.27 23:23
난 이거보면서 우테나도 같이 봤는데..
뭔가 감독이 10년이란 세월동안 정체된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음...
연출도 그렇고 주제도 그렇고...
자신의 작품을 담을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을 기다렸지만 정작 본인은 그대로니 낡아버린 느낌이랄까...
두 작품을 같이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잘 정리가 안되네...ㅠ 오랜만에 이런데 글을 남기다 보니... -
czcz21
2011.12.28 12:28
이쿠니 영감 이제 나이도 자셨는데 좀 많이 만들어줘영 엉엉 -
무언가
2011.12.28 02:59
그런데 이쿠니 감독이 아무래도 다시 10년동안 잠적할 것 같은 예감(…) -
czcz21
2011.12.27 23:45
저도 우테나 보고 있는데 펭귄드럼이 이쿠니의 새로운 도약이라곤 생각을 안 합니다.
다만 전설 내놓자마자 잠시 떠나있다가 돌아온 복귀작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찌보면 매너리즘이라 할 수 있는데 이쿠니 정도라면 자기 스타일로 매너리즘을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쿠니 차기작이 여기서 정체되면 그땐 정말로 사고가 굳어버렸는지 의심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