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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네타  

이분 페제로 리뷰를 참 잘써주시던데 오랜만에 리뷰올라온게 싸이코패스 리뷰길래 퍼옴ㅇㅇ


작년 말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작품 ‘사이코ㅡ패스’는 명망있는 제작진과 작품의 내용 때문에 화제를 모았죠. 특히 갈수록 강력범죄와 성범죄를 비롯한 반윤리적 행위에 대해 법체계가 제대로 대응 못한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는지라,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울 만도 했습니다.

 

17화에 이르는 천기누설이 있으니 주의하시길.


이 작품은 인간의 감정과 사상마저 거의 정확하게 재단할 수 있기에 정신상태가 가장 강력한 사회지수로 통용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둘러싼 군상극답게 고찰할 구석도 많습니다. 감정을 통제하길 강조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충돌, 그리고 문화활동마저 자발적으로 제한해야만 하기에 외려 강조되는 문화서적의 가치를 보면 본작의 큰 모티브가 ‘화씨 451’ 그리고 ‘이퀼리브리엄’이란 의견에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형사물 혹은 범죄물로 봐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범죄자와 피해자, 그리고 체제의 수호자들이 제각각 선을 넘으며 입장이 바뀌곤 하는 회색지대를 배경으로 서로에게 집착하는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들이 거듭 부대끼곤 하니까요. 작품의 양대 벡터라 할 범죄기획가 마키시마 쇼고와 수사집행관 코우가미 그리고 감시관인 츠네모리 아카네는 각각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의 주역들인 한니발 박사, 윌 그레이엄, 클라리스 스탈링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많습니다. 기실 이들의 드라마는 굳이 SF가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삼아도 그럴싸하게 맞물려 들어가죠. 코우가미와 아카네의 대화에선 형사들 특유의 고뇌도 곧잘 드러나고요. 다만 본작의 배경설정과 맞물려 좀 더 큰 담론을 자아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코우가미와 마키시마는 전형적인 짝패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설정상 키가 딱 180cm이며 체격과 차림새(마키시마가 윗도리 반을 바지에서 살짝 빼놓은 것은 그가 체제와 반체제 중간에 걸쳐있다는 미장센 중 하나일 겁니다.), 외모, 머리 스타일까지 온통 정반대되는 요소로 점철돼있기에 외려 정신적이 교차점이 눈에 밟히곤 합니다.


코우가미는 마키시마의 존재가 확실히 증명되고 나선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인 ‘어둠의 심연’을 읽고 있는데, 그가 애서가인 마키시마처럼 이 시대에선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종이서적을 읽고 있다는 사실도 황당하지만 커츠 대령에게 반발하면서도 닮아가던 윌라드 꼴이 나고 있다는 암시라 할 수 있습니다. 늙다리 형사양반의 말마따나 범죄를 안 저지르는 형사들마저 정신적인 측면에서 범죄자들과 유사한 존재가 되가는 건 숙명이려나요? 실제로 프로파일링을 확립시킨 인물 중 한명인 FBI수사관 존 더글러스는 말년에 접어들어 가족들 앞에서 범죄자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무심코 내뱉은 게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하더군요.


마키시마가 ‘스위니 토드’마냥 면도칼을 쓰는 이유는 가장 날카로우면서도 제일 깨지기 쉬운 일상용 날붙이이자 시대가 변하면서 효용성을 잃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소품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인간의 속성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가 인간에 대해 논하며 날을 매만지는 게 이 때문입니다. 날이 깊지도 크지도 않기에 생명의 단말마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흉기이기도 하고요. 그는 인간의 진정한 광채를 보고 싶다면서 범죄자들을 거듭 부추기는데, 어쩌면 자신이 다른 인간들과 다른 감성체계 혹은 정신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데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닐지.

마키시마처럼 면죄체질보유자인 토우마는 배트맨 씨리즈에서도 나왔던 사이코패스들의 장광설을 거의 고스란히 읊조리더군요. 자신들이야말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써 선각자라 자처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저 현대 사회의 기준 즉 공동체 생활에 심히 부합되지 않는 찌그러기들에 불과하죠. 원시시대 혹은 중근세 시대에 잘 나갔던 부류들 중엔 이런 족속들이 많았을 거란 의견이 있습니다. ‘죄와 벌’에도 나온 영웅의 기준에 딱 맞는 자들이니까요. 인류는 이런 자들이 권좌에 앉아 어떤 참상을 빚어낼 수 있는지 숱하게 겪었고, 현대사회의 영웅상이 변하면서 겉절이들로 전락해갔죠. 물론 지금도 사회에서 주목받는 자들 중에 종종 이런 부류일 거라 추측되는 자들이 적잖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활개치진 못하죠. …아닌가요?



도매가로 스트레스를 삽니다

 

이렇게 되도록 만든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거울을 보십시오.

By V From V For Vendetta

마키시마는 최구성에게 이 도시가 필립 K 딕의 세계관과 흡사하다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작품을 권합니다. 그는 이 도시의 양상이 윌리엄 깁슨의 사이버 펑크물처럼 거칠거나 죠지 오웰의 ‘1984’처럼 지배체계만 도드라지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딕의 작품 속 세상은 일반인들 즉 대다수 시민들이 체제를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인 곳으로 묘사되곤 하죠.


사실 저는 본작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대중의 감정과 정신을 간접적으로 억압하는 시빌라 시스템이 현대인들 즉 본작의 시점에선 과거에 사는 제가 보기엔 황당한 시스템이긴 해도 이는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며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제 입맛대로 전횡을 부린다고 사회가 저토록 뿌리째 바뀌긴 힘들거든요. ‘브이 포 벤데타’ 혹은 ‘공각기동대’에서도 세계대전을 또 한 번 치르는 바람에 디스토피아가 조성됐다던데, 본작의 세계관에서도 전 세계적인 난리통을 치른 후 일본은 시빌라 시스템 덕분에 그나마 빨리 질서를 회복했다는 암시가 종종 나오곤 합니다. 물론 이런 배경 말고도 시스템이 알아서 개개인의 행보를 적절히 배치하며 소수의 범죄자들(표면적인 사회의 암적요소들)을 신속히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선 온갖 사회적 개인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도 나름 매력적인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일반인들 대다수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낸 요인이었을 테고, 이렇듯 절대다수에 가까운 상대적 다수들의 방관 혹은 소극적 동의야말로 가장 섬뜩하며 위력적인 법입니다.


2기 오프닝에서 코우가미는 기어이 구식 권총을 쓰던데요, 목표물의 처분마저 시스템과 기계에 의존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히긴 합니다만 생사람 잡을 여지는 그래도 줄인 셈이죠. 덕분에 구체적인 죄 안 짓고도 죽어나갈 사람이 늘어나긴 했지만요. 하지만 어쩌다 태어난다는 면죄체질보유자들로 인해 빚어진 난장판을 보다 보니, 시스템에만 의존하고 만사를 떠맡기면 골 때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고전적인 교훈을 곱씹을 수 있죠. 그리고 국장마님을 비롯한 감시자들은 대체 누가 감시한단 말입니까? 보아하니 각종 꼼수를 이용해 시빌라 시스템마저 뒤틀어놓는 기득권자들도 은근히 많은 것 같더만요. 더욱이 지나치게 시스템에 의존하다 보니 치안을 담당하는 인력들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필연적인 결과였죠. 소년법이 없어서 미성년범죄자들도 단칼에 쳐죽일 수 있으며, 사이코 패스 말종들을 즉결처분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도 있을 법합니다. 범죄자들 빵에 보내봐야 무슨 소용이냔 식으로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저 세계관의 수사기법을 보면 과학수사대 혹은 감식반이 할 일을 기계가 싹 처리하다 뿐이지 오히려 퇴화한 것 같더라고요. 마키시마가 부추겼던 범죄자들을 그냥 체포했다면 좀 더 일찍 진실을 알아낼 여지가 생겼을지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마키시마만 이 난장판의 배후에 있는 건 아닐테고 협력자들도 더듬어가야만 할 판이잖아요. 면죄체질보유자란 이유로 마키시마의 지원을 받았던 토우마의 처우도 공개하지 않은 바람에 괜히 수사에 혼선만 빚고 말입니다. 쯧.


물론 이런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마키시마의 말마따나 사람을 가축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겠죠. 이 체제의 문제점과 왜곡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뭔고 하면 친구인 유키가 마키시마에게 죽어나가는데도 아카네가 끝내 그를 못 쏜 거하며, 맞아죽는 여인을 그냥 구경만 하는 군중들의 작태입니다. 아카네가 마키시마를 못 쏜걸 보고 일본애들은 욕을 한바가지 날리던데요, 글쎄올시다. 후자의 일반대중들도 그렇고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재보기엔 좀 문제가 있겠죠. 저렇게 처신하도록 평생동안 길들여진 자들이니까요. 하긴 현대인들이라고 해서 그닥 나을 게 있을지…. 이놈의 방관자 효과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생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한 두 번이라야죠. ‘왓치맨’에도 언급됐던 키티 제노비스 사건만 해도 강도한테 살해당할 때까지 온갖 법석을 다 피웠지만 주변의 40가구에선 그냥 생깠다고 하잖아요. 어휴.



The Dominoes Fall

 

형사물에 가까웠던 본작은 17화를 기점으로 또 다시 방향을 살짝 틉니다. 끝판왕이라 추측됐던 마키시마가 자신의 위치를 재차 피로하면서 그에 대해 일종의 안티 히어로나 다크 히어로처럼 보는 견해도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작중의 가치관이 전복되기 시작하면서 인물들의 위치와 평가도 뒤집히기 시작한 듯합니다. 16화에서 아카네가 마키시마를, 그리고 17화에서 마키시마가 국장의 머리통을 들이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겹치기 연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이코 패스 범죄자가 엇나간 체제를 뒤엎을 영웅이기도 한 세상이라. ‘왓치맨’의 작가 앨런 무어도 자신이 만든 히어로들 특히 로어셰크 같은 부류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한결같았던 초인일지 혹은 미치광이라 봐야 할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고 표명했죠. 이 작품은 사실 관점을 좀 달리 하면 디스토피아를 무너뜨려가는 독선적인 테러범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15화에서 정신지수를 변조하는 헬멧이 퍼져가며 세상이 전복돼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브이 포 벤데타’가 떠오르더군요. 그 작품에서도 세상을 무너뜨리고자 마음먹은 괴인이 자신의 형상을 본뜬 가면을 퍼뜨려 대중의 봉기와 권력자들의 혼란을 부추겼듯 마키시마는 자기자신처럼 범죄를 저지르는데도 범죄지수가 내려가는 능력을 일부나마 갖춘 헬멧을 흩뿌려 아수라장을 조성하죠. 그리고 둘 다 혼란을 틈타서 자신들이 거스르는 세상의 핵심을 치러 가고요.


그밖에도 자잘하게 유사한 요소들이 적잖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도 터부시되는 문화의 향유, 테러범과 수사관의 거듭된 내적 교차, 면도칼을 구사하는 살인범이 나왔죠(원작인 만화에서요). 4화에서 용의자가 자신의 의상을 엄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착용시켜 유유히 자취를 감추는 기만전술 하며, 형사양반들이 범죄자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온갖 금기를 범하게 된 동기가 가까운 이의 죽음에서 비롯된 한이란 점마저 유사합니다.


한 번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니 12화에서 펼쳐진 쿠니즈카 야요이의 과거도 색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주인공 브이와 이비를 변화시켰던 레즈비언 배우 발레리에게 얽힌 에피소드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많아서 말입니다.


얄궂게도 당시 코우가미는 마키시마 못잖게 교활한 스카웃 방식을 구사하던데 야요이한테 거짓된 시험을 치르게 만들어 제 사람으로 만드는 거 하며, 예술에 심취하면서 만난 반려자에게 본의 아니게 배신당한 동성애자의 팔자하며…. 


다만 야요이는 발레리 혹은 이비와 달리 체제의 수호자가 되는 결말을 맞이했을 따름이죠.


‘브이 포 벤데타’에서 브이의 짝이자 제자이기도 한 이비는 자신과 비슷한 굴곡을 겪은 멘토와 닮아가면서도 그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며 막판에 이르러 종지부를 찍을 권리를 지니기에 이릅니다. 츠네모리 아카네야말로 그녀와 흡사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키시마와 코우가미에게 그들의 방식을 종용받았지만, 단호하게 제 할 일을 한 걸 볼 때 그녀야말로 이 두 사내의 운명을 판가름지을 디케라 할 수 있지 않을지.


근데 브이는 정의의 여신상이 박혀있던 형사재판소부터 날려먹으며 파괴의 서곡을 시작했단 말이죠. 어어?



흘러라 내 눈물. 그리고…

 

슬슬 잡상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키시마. 장장 16화에 접어들어서야 1화 서두와 이어지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든 생각은 ‘저렇게 입고도 안 춥나?’입니다.

최구성. ‘블레이드 러너’와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확실히 많이 다르긴 하죠. 영화가 정체성과 실존에 대해 논한다면 소설은 인간의 자가당착과 적응이란 명목하의 체념에 더 비중이 쏠려있거든요. 최구성은 대뜸 월리엄 깁슨부터 인용하면서 거듭 팬보이란 사실을 천명하는데, 마키시마 말마따나 진짜 해커가 컴퓨터에 그닥 밝지도 않았다던 작가양반의 작품에 푹 빠져있다는 것도 놀랍죠. 공장사건 때 보낸 프로그램 디스크에 월리엄 깁슨의 작품인 ‘Johnny Mnemonic’의 제목이 박혀있던데, 우리나라에선 '코드명J'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이라죠. 이 친구가 보낸 게 맞긴 맞나 봐요. 눈깔이 섬뜩하게 빛나곤 하는데, 혹시 기록능력을 지닌 의안이 아닐까 싶어요.


교수 양반. 코우가미조차 싸부님으로 깍듯이 모시는 분인데, 언행과 전공분야 때문에 모티브가 홈즈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러고 보니 셜록 홈즈 씨리즈를 리메이크한 요즘 드라마 ‘셜록’과 ‘엘리멘트리’에선 홈즈가 늘 목도리를 감고 나오던데, 음…


마사오카와 기노자. 전 이 부자를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더군요. 기노자는 범죄자가 다 되도록 왜 형사질을 안 때려치웠냐고 아버지한테 따지는데, 좀 극단적인 관점일진 모르지만 이 양반이 결과적으론 가족보다 직업을 우선시한 셈이니… 체제에 대한 저항감이 범죄자가 되는 요인이라. 마사오카가 자식에게 이 말을 털어놓은 시점과 기노자 자신이 국장에게 진실을 들은 바람에 딜레마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시점이 겹치니 여러모로 의미심장하죠. 기노자가 왜 나만 이렇고 아카네는 멀쩡하냔 식의 푸념을 늘어놓는 걸 보면 ‘마마마’의 미키 사야카 같단 말입니다. 그래도 기노자가 아버지의 회고를 들으며 웃는 순간은 짜했어요. 어렸을 적엔 그 역시 아버지를 제일 친근하면서도 존경스런 영웅이라 생각했겠죠. 자신과 어머니를 저버린 아버지가 가던 길을 또 달리 나아가고 있는 것도 결국…. 이 친구가 훗날 누구편을 들든 간에 결국 코우가미와 아카네에게 까다로운 난관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국장. ‘공각기동대’의 극장판과 TV판에서도 중요한 배역을 맡았던 사카키바라 여사께서 연기하시는 분인데, 거 참. 마키시마의 이름을 부르는 거 하며 머리털 색도 그렇고, 어머니 아닌가 싶었죠. 정체가 골때리긴 하던데, 아마 그녀가 대변한 시빌라 시스템이야말로 진정한 끝판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키시마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는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긴 해도 결국 감시망을 피해 다니며 당국의 조치에 대처하는 부류에 불과하거든요. 진정한 끝판왕은 이러한 시스템마저도 제 입맛에 맞춰 주무를 수 있는 존재여야 하는 법이죠. 마키시마와 코우가미, 아카네가 잠시나마 손을 잡고 같이 대항할 존재가 되지 않을는지.


유키. 거 작가 선생. 가슴 큰 여자랑 무슨 원수 진 거 있소? 왜 글래머가 나왔다 싶으면 이런대요. 게다가 또 또 또 목이 스걱! …말을 말아야죠.


 

아카네가 안 됐죠. 아끼던 친구와 끔찍한 엽기법의 기억이 하나로 이어지다시피 했으니. 업보로다. 그런데 이 지경에 이르고도 정신지수가 멀쩡한 걸 보면 본작의 사이코 패스들처럼 면죄체질이거나, ‘샌드맨’의 셰익스피어처럼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고체계를 타고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삶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지켜봤습니다. 아들이 죽었을 때 고통스러웠지만 난 내 고통을 지켜보며 은근히 음미하기도 했어요. 이젠 진짜 죽음, 진짜 상실에 대해 쓸 수 있을 테니까. 난 혼자 방에서 울면서도 저도 모르게 속으로 미소 짓곤 했습니다. 내 박살난 심장을 주워다 무대에 올려서 관객들에게 눈물바다를 선사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1화 서두의 나레이터가 아카네이기도 했고, 그녀야말로 두 시커먼 혹은 새하얀 짝패들의 팔자를 결정지을 운명의 여신이라 할 수 있죠. 오프닝에 나왔듯 두 사내와 공통점 및 교차점을 지닌 동시에 유일하게 경계선에 선 채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존재랄까요.16화 말미를 통해 그녀의 위치가 한층 확고하게 밝혀진 셈이죠.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마키시마같은 면죄체질보유자라면 막판에….

 

예전부터 시빌라 시스템의 정체가 인간의 육체를 이용한 결과물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는데, 범죄를 조기에 척결하는 소재를 다룬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시스템의 중추가 바로 인간들이었죠. 이것 봐라… 어쩌면 면죄체질 보유자들 또한 실제로 그런 체질을 타고난 게 아니라 시스템의 소체들이 모종의 이유로 그런 판정을 내려서 행동을 유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본작 역시 나름대로 흠이 있긴 합니다. 이런 류의 SF에선 늘 불합리한 체제에 거스르며 감상자들의 이입을 이끌어내는 매체로 지금도 존재하는 소산들을 언급하곤 하는데 본작도 그 같은 공식을 고스란히 유용하더군요. 흠. 글쎄요, 백년쯤 지났으니 가치관이나 감성도 많이 변했을 텐데 말입니다.


제작진들의 전작 역시 이래저래 반추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각본을 맡은 우로부치 대인의 전작에 출연한 성우분들이 많이 나오던데, 개중에 마키시마와 코우가미, 그리고 아카네의 성우들이 페이트 시리즈에서 맡은 역들과 비교하면 이래저래 재밌습니다. 남자 성우분들은 라이벌이라 할 원조 아서왕과 길가메쉬, 그리고 하나자와 씨는 이 둘에게 구애받는 주역으로 나왔는데 은근히 겹치는 구석이 있어요. 그리고 후카미 마코토 선생도 참가했던데, 주요악역인 한국계 범죄자 최구성과 레즈비언들이 나온 건 이 양반 덕분일 겁니다. 또한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의 감독님이 맡은 작품답게 전통적인 형사물 혹은 수사물을 표방하는 동시에 사이버 펑크 장르도 적절히 양립시키고 있죠. SF의 의무 즉 미래를 배경으로 하되 현재의 우리 삶을 돌아보게끔 만드는 담론도 충실하게 갖춘 작품인데, 최근 이런 애니 혹은 영상물을 좀체 찾아보질 못해 아쉽던 참이라 갈증이 해소되더군요.


성서에서 훔친 낡은 몇 마디 말로 벌거벗은 악행을 감추니 악마같은 짓을 하여도 성자처럼 보이는도다.

From V for Vendetta

다만 작중에서 귀담아들을 소리를 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잠재범 혹은 사이코 패스 범죄자들이란 게 거식하긴 해요. 뭐 하나같이 자신의 행위를 반추하는 듯한 결과를 맞이하곤 하지만요. 마키시마도 16화에서 저 놈의 헬멧에 두드려 맞고 뻗는 거 보세요.

정통파 SF애니를 보고픈 분들, 그리고 형사물이나 범죄드라마를 접하고픈 분들에게 본작을 추천하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명불허전. 꼼꼼히 리뷰해주시네
바로밑글에 18화 욕하는글이 있어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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