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과 비.
2013.06.13 01:28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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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그 내용만을 놓고 보자면 신선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못해도 두어번은 봤을 듯한 지겨운 사랑이야기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언어의 정원을 좋게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를 깊게 끌어안고 그 담담한 이야기로 뛰어드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46분 내내라고 말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치지 않고 그려졌던 비가 바로 그것이다.
상징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의 기본적인 속성인 치유와 정화를 이용한 유키노의 진보적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고,
장치의 관점에서 다가서면, 두 사람의 만남에서부터 교제, 감정의 심화, 확인까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장치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고리타분한, 해석을 위한 해석이 아닌, 감각적이고 1차원적인 소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솨아아아아아 챠아아아아아 부슬부슬 뚝뚝.
모든 빗소리는 연속적이고 반복된다. 쉬이 빗소리의 범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다양한 빗소리가 있지만 모두 반복의 형태로 표현되는 이유이다. 일관성이고 안정이다.
이 지속적이고 무탈한 소리에 사람은 씻겨 나가듯 휩쓸리곤 한다.
그리도 담담한 이야기지만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다.
게다가 빗소리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웅덩이에 퐁당이는 소리, 화분의 흙에 부딪치는 소리, 이마를 때리는 소리...
빗소리는 근본적으로 작은 소리들의 집합이기에 프레임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어떤 소리로도 변할 수 있다.
극중에선 빗소리가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발맞춰 변주되었다.
만남에는 아무런 사건이 아니듯이 내리던 대로, 장마에는 소년의 마음을 대변하듯 조심스레 , 재회에는 속마음을 대변하듯이 세차게.
작품의 맥을 짚어내는 소리다.
마치며,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발상과 초절의 기교가 섞여들어간 작화가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라면
고전음악의 통주저음같이 흐름을 잡아주는 끊임없는 빗소리가 진정한 수훈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