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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원작 안보고 애니부터 본 사람의 유정천가족 감상

2013.08.23 19:25

갓마미갓루카 조회 수:519

네타  
2083882376_8896755f_EC9CA0ECA095ECB29CEAB080ECA1B1.jpg : 원작 안보고 애니부터 본 사람의 유정천가족 감상
이번 분기에 시작된 <유정천가족>을 보게 되었다. 
시작부터 꽤나 불량한 느낌이 가득한 화면 구성이었다. 여학생 교복을 입은 짧은 커트머리 캐릭터가 자기 동생인 듯한 아이의 엉덩이에
튀어나온 꼬리를 쑤욱 밀어넣는 부분부터 해서, 첫 화부터 교복을 입은 오토코노코(!)의 흡연장면, 밤에 술집에서 벤텐을 만나는 장면, 갑작스러운 키스,
금요 클럽에서 몸을 파는 벤텐, 스승을 위해 했다지만 여고생 변장도 모자라서 아예 벤텐으로 변신하여 스승이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면까지ㅡ.

하지만, 나는 <유정천가족>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상당히 불편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벌레 한 마리가 온 뱃속을 설설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건 단순히 위에 열거한 장면들의 문제가 아니다. 저런 장면들보다 자극적인 장면들은 얼마든지 많다. 하다못해 <요스가노소라>라도 말이다.
일단, 시놉시스에 따르면, 이 애니는 <너구리>와 <텐구>와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즉, 서로가 서로를 보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는 상황도 아닐 뿐더러 인간으로 변장할 경우에는 얼마든지 서로 대화도 나누고 교류도 할 수 있다. 
또한 인간 여자인 벤텐의 능력으로 봤을 때, 인간 역시 텐구의 하늘을 나는 기술이나 너구리의 변신술법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세 종류가 공존하는 가운데 주인공은 가장을 잃은 4형제 너구리 가족의 셋째 아들이다. 이 가족은 본디 가장 생전에는 꽤나 권세를 떨치며 
<너구리협회>의 대표까지 지내던 집이지만 가장이 인간인 <벤텐>의 금요클럽에서 망년회 전골재료로 들어가면서 사망하게 되고, 
이후 급속하게 쇠퇴하고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파멸해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첫째만이 남아 간신히 명맥을 이으려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작은아버지 쪽 가족과 다른 가문의 방해와 협잡질로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둘째는 개구리로 변신하여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몇년 째 나오질 않고 있다. 주인공 셋째는 가족들의 위기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 이외에 가문이나 가족의 명예 따위는 <개나줘버려> 식으로 무시하고 인간처럼 산다.
넷째는 아직 초등학생 정도인 어린 아이이지만, 경쟁 가문의 술집에서 <수행>이라는 명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나가는 착실함을 보인다.
한편, 스승 아카타마 선생은 <텐구>로, 본디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허리를 다친 이후 기력이 쇠했다며 하늘을 날거나 
특별한 도술을 쓰지 않고 좌절해 살아간다.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소개를 한 이유는 바로 이 세 종족의 대표자들이 보이는 행동양식이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위에 길다랗게 나열해 놓은 세계관이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내가 보기에 이건 가부장제에 얽매인 부류와, 은퇴한 노인과, 현세의 사람을 표현하는 세계관이다. 
<너구리>, <텐구>, <사람>으로 우회한 것일 뿐이지, 이건 아무리 봐도 사람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람 모양새에 말도 하고, 실제로 식사하는 모습이나 어떤 것을 봐도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들이 보이는 행동 양식은 완전히 사람의 그것이다.
단지 셋은 나타내는 사람의 종류가 다른 것일 뿐이다. 
<너구리>는 가부장제도를 지켜나가려는 사람이다. 이러한 옛 것이 무너져 가는데도 자존심, 체면에 얽매여 아직도 지키는 상황이다.
<텐구>는, 쇠약하고 망가져 더이상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게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은, <너구리 가문들>의 모습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주인공의 가족을 통해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고, 그들을 나무라려 든다. 
<사람>은 말 그대로 사람이다. 현세의 사람, 변해버린 현실에 적응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속물>들. 벤텐은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가부장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는 너구리 가장들의 후예인 네 아들은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렇게 누군가는 또다른 
가장이 되기 위해, 누군가는 그런 고민에서 도망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허례허식 따위 집어치우고 즐겁게 살 생각이나 합시다'라며, 
마지막 누군가는 재빨리 살 길을 찾되 그 살 길 안에서 자아를 잃지 않는 연습을 하기 위해 각자의 행동을 취했다. 이는 한국의 현실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는가.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을 지나가며 가부장제는 빠르게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중이 존재하지 않는가.
또한 우리 아버지들의 형제자매를 보면, 요절하거나 일찍이 속세를 벗어난 사람들을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허례허식에서 
빨리 벗어나 신문물을 받아들이며 과거 따위 가볍게 던져버리고 "가부장? 거 먹는건가요?" 하며 무뇌하게 사는 일부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비교적 젊은 때에 자기 조상의 묘 찾기, 족보 해석과 같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도 있다.
텐구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은퇴한 사람들, 일찍이 그들은 우리의 가부장제에 대한 스승이었고, 가문과 핏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존재였지만, 현대사회와 핵가족화 속에서 가부장제는 서서히, 아니 급속히 힘을 잃어갔고, 그들이 설 자리는 이제 없다. 
중간에 오사카에서 온 아카타마 선생의 친구 역시 선생질은 관두고, 평소 취미였던 구식 카메라 가게를 연다.
아카타마는 대부였지만, 지금은 허리가 꺾여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노인에 불과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셋째같은 이들에게 옛 것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 정도 뿐.
벤텐과 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지금의 우리들도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벤텐은 도술을 익혔지만, 
그런 것 따위로는 돈을 벌 수 없다며 클럽에서 자신의 웃음을 팔고 있다.
옛것 따위, 옛것이라며 자기가 몰락시켜버린 스승 아카타마는 잊은 지 오래다. 편리함과 신속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스승의 옛 것은 너무나 불편하고 느린 방식으로 보이는 셈이다.

이렇게 <유정천가족>은 <너구리>와 <텐구>와 <사람>의 공존을 모티브로 실은 <사람>과 <사람>과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목의 <유정천>은, 둘째와 같은 <우물 안 개구리>와 관련된 단어이다. 우물 아래에 있으니 하늘은 우물 입구의 넓이 만큼만 있는 셈이다. 
주인공의 가족은, 우물 안 개구리마냥 오래 전 가부장제에 갇혀 일부는 그대로, 
다른 일부는 그 우물에서 빠져나가 <사람>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원작을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 그대로 그들은 아마 끝까지 우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유정천가족>은 그 상황에서 드러나는 온갖 부조리의 향연을 우리에게 맛보게 할 부조리극인 것이다.

얼마전에 유정천 3화까지 보고 일애갤에 
이렇게 글을 썼었는데 원작이 대체 어떻길래 
원작안읽었네 라고 반응이 나오는건지 모르겠다
그냥 애니만 본 나의 입장에선 이렇게밖에 안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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