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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뜬금없지만 나는 친구가 적다 감상

2013.09.26 08:32

Winial 조회 수:951

네타  

글을 쓰기전에 밝히자면, 이 글은 한창 난리였던 나는 친구가 적다 9권 전개가 너무하다는 내용의 글들을 보고 쓸 생각이 났다가, 아 나는 원작은 한 번도 안 봤고 애니메이션만 봤지 라는 생각에 관뒀다가, 그러면 아예 애니메이션 자체를 다시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쓰는 글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나도 다시 읽어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제목 그대로 나는 친구가 적다 감상인데 책 말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상이라는 겁니다.


나친적 1기.jpg

처음에 이걸 접할 땐, 유명한 작품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이야기에 집중해서 접근하는 태도 따위는 안 보이려고 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 있었는데요,

  • 지난 분기에 봤던 것들이 다 스토리 보다는 케릭터에 집중하는 부류였다.
  • 사람들이 전부 케릭터, 특히 요조라 vs 세나의 히로인 쟁탈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 오프닝이랑 엔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정도의 이유 때문에 나는 전파녀와 청춘남이 살짝 생각나는 마음에 드는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것 역시 그냥 그런저런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던 거죠. 그런저런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다는 말은 은근히 스토리가 좋아서 놀랐다는 뜻입니다.


에, 물론 그, 의견이야 갈리겠지만, 나는 요조라와 코다카가 과거의 우정을 기억해나간다는 스토리가 굉장히 인상깊었어요. 그냥 남자 한 명에 예쁜 여자들 여러명이 달라붙는 약간은 손발이 쪼그라들어서 꺄아 하는 그런 냐루코나 마요치키 같은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더니, 이게 왠 스토리인가 했다고요. 딴짓하면서 대충 훑어보고 오프닝이랑 엔딩은 마음에 안드니까 뛰어 넘기고 그러던 게 의외로 괜찮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놀란 거죠.


그렇다고 오프닝이나 엔딩이 갑자기 마음에 들게 된 건 아니고, 다시 봐도 중간중간 오글거려서 고평가하긴 힘든 부분이 산재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걸 방영중에 감상했던 태도가 너무 저평가하는 태도였다는 생각은 듭니다. 다시 감상하는 시간도 꽤 즐거웠고요.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많이 뛰어 넘기면서 봤지만.


나친적 2기.jpg

그리고 2기가 등장합니다! 아…나 이거 좋아해요. 막 다섯손가락에 꼽고 그런 거는 아닌데, 정말 정말 재밌는 애니다 이정도는 말할 수 있어요. 거의…방영중에 재밌다고 말하는 거에 재밌어하는 정도? 말 하기가 힘드네요. 봤던 애니 모아서 나만 쓰는 등급이라도 만들어야 할까요. 마리아 홀릭 기준으로 나누면 될 거 같은데….


어쨌든, 이게 그렇게 좋은 이유가 뭐냐, 오프닝이 좋으니까. 엔딩이 참 좋으니까. 이렇게 좋게 만들 수 있으면 진작에 이런 걸 1기에 넣던가요. 1기에 들어있는 건 삐로롱 뾰롱뾰롱이 심해서 듣다보면 아이고 손발이 좀 떨어지려고 하네요 헤헤 이런 느낌인데, 이건 아니잖아요. 얼마나 편하고 얼마나 신나고 얼마나 아름다워요. 이 악기와 소스의 사용을 보라고요. 이 가사 내용을 봐요. 딱 내가 애니메이션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수준의 곡들이에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음악 찬양은 그만하고, 내용으로 넘어가면, 뭐, 좋아요. 뭔가 묘하게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재밌거든요. 특히 초장부터 주역이 희한하게 리카로 넘어간 느낌이라 이게 뭐지 싶었는데, 이야, 그런 스토리가 숨어 있다니 놀랐어요. 내가 1기에서 스토리에 깜짝 놀랐다고 해도 기본적인 바탕은 가벼운 내용이다 이정도로 멈춰있었는데, 이정도면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거 같거든요.


실제로 스포일러 당한 내용을 잘 곱씹어보면 내가 잘 만든 작품의 주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활용'도 대단히 잘 되는 거 같고, 이야기도 점점 깊고 어둡게 진행되는 거 같고, 그렇더군요. 그 부분은 애니메이션으로 안 나왔으니 넘어가죠. 중요한 건 이게 정말 재밌는 작품이었고, 작품이라고 할 만 하다고 느꼈고, 다시 봐도 괜찮다는 겁니다.


요조라.jpg

어…그리고, 지난 번에 짧게 써놓고 다시 보면서 고민을 해봤는데, 역시 나는 이 이야기 안에서 제일 공감이 가능한 인물은 요조라라고 봐요.


자, 왜 그렇게 생각하나 설명을 해볼게요. 우선 지난번에 살짝 언급했던 걸 그대로 인용합시다. 완결을 보기 전에 한 말이지만, 딱히 감상이 변한 건 아니에요.


…원작 안 보고 모르고 애니메이션으로만 본 입장에서, 요조라는 제 생각에는 제일 현실적이고 공감가는 인물이었어요.

둔감 하렘 왕에, 사교성만 모자란 완벽 초인에, 천제 발명가에, 기타 등등 도저히 현실에서 못 본 거 같은 인간들만 판치는 와중에

예전에 친했던 소꿉친구가 돌아온 걸 기뻐하는 소녀라니, 얼마나 현실적이야.

게다가 이것저것 일들이 꼬이면서 모든 일이 의도대로 안 되는 모습이 진짜 얼마나 안쓰럽고 슬프던지..


둔감 하렘 왕, 이건 아니라고 판명이 났죠. 코다카의 둔감은 전부 관계를 지키기 위한 거짓이고 어쩌고 저쩌고. 근데요, 난 여전히 이 이야기의 화자에 해당하는 코다카가 그렇게 '현실적인' 매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얘가 처한 상황도 그렇지만, 케릭터의 배경 설정만 봐도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고요. 영국 혼혈에 아버지 연으로 좋은 학교 들어갔다는 기본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감해요. 평범하게 인기없고 친구없는 고등학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녀석이 절대 아니라는 거죠.


나머지 애들은 뭐, 긴 설명 필요한가요. 세나는 일상 만화에나 나오는 부자 케릭터 같고, 말이 과학적이지 결국은 오버 테크놀러지인 물건을 앞뒤 설명없이 꺼내오는 리카에, 초장부터 여자같더니 진짜 여자라는 유키무라, 공감 안 되는 코다카 동생인 코바토, 아즈망가의 치요가 생각나는 마리아.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어딘가에 이런 녀석들이 있겠지 하면서도 내가 보는 현실에 이런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말에는 직접 만나고 보기 전까지 고개를 흔들고 온 힘을 다해 그건 아니지 외칠 거라고요.


근데, 온갖 만화같은 인물들이 판치는 가운데 요조라만 희한하게 평범하다고요. 저 예쁜 얼굴에 성격 쓰레기면서 성적은 좋다고 묘사되는 애가 뭐가 평범하냐고요?


다시 보면서 확 느낀건데, 여기에 그려진 애들은 전부 예뻐요. 요조라만 예쁜 게 아니에요. 주연 조연 전부 예쁘고, 심지어 지나가는 단역1 같은 여자도 예쁘장해요. 모에도 모르는 까막눈이 이런 말을 해봤자 설득력 없지만, 그래도 난 요조라가 다른 애들이랑 비교해서 특출나게 예쁘다는 느낌 전혀 못 받았어요. 이웃사촌부 안에서 살펴봐도 세나가 예쁘다 리카가 예쁘다 이런 느낌은 확 오는데, 요조라는 뭐…그냥. 예쁘게 그렸네, 이정도더라고요. 코다카랑 엮이는 여자들 중에 요조라 이하가 어딨어요. 참고로 이하는 요조라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성적이 좋다, 이거 중간에 딱 한 번 본 거 같은데요. 그 시험 정답을 맞추고 어쩌고 하면서. 그마저도 세나가 등장해서 '내가 너보다 잘 본듯 ^^?' 이렇게 끝났던 거 같고.


성격이 쓰레기,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겉으로 보이는 성격이 이상해요. 작가가 애초에 노린 거 같아요. 요조라가 '뒤틀리고 어두운 성격'이라는 게 많이 부각되어 있고 그게 사실이라 그렇지 나머지가 제대로 된 성격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거든요.


세나,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길바닥에서 뒹굴거릴 꼬맹이 같아요. 다른 애들은 뒤에 뭔가 심각한 게 있을 거 같다 이런 느낌이라도 있지 얘는 그것도 안 보여요.

코다카, 화자라서 그렇지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아요. 되고 싶은 건 일상물 주인공이었는데 현실이 일상물이 아니라서 도망치다 딱걸린 애가 공감할 만한 정상인 인가요.

유키무라, 얘는 나중에 분명 이상한 소리 할 거 같아요. 얘는 다른 애들 보긴 하는 거에요? 코다카 말고는 딱히 애정도 없는 거 같은데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동생들은 넘기면 리카 하나 남았는데, 얘를 성격 구리다고 까는 건 무리겠죠. 코다카를 밀어서 잠금해제 한 게 리카 얜데 그걸 까면 안 되죠. 마무리도 리카랑 친구가 생겼다 이렇게 끝났고요. 요점은 성격이 어둡다는 게 요조라를 튀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뭔가 특출난 케릭터로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에게 요조라는 유난히 평범한 케릭터고, 그래서 나는 친구가 적다에서 공감이 제일 가는 인물이에요. 아니, 다시 보면서 내린 결론은 공감이 가능한 인물은 요조라 밖에 없다 입니다. 심한 거 같지만 진심이에요.


누구를 골라.jpg

사실, 현실성이라느니 공감이라느니 따지는 게 웃기긴 하죠. 왜 내가 이걸 영화화 한다는 말에 일본은 진짜 이상한 영화 만드는 시도를 많이 하는구나 했겠어요. 단순히 외모가 다르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기본 설정과 내용 전개가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친구가 적다는 묘하게 진지한 면이 있어서 그렇지 결국은 남자 한 명에게 여러 여자가 달라붙는 걸 보면서 하악하악 하면 그걸로 좋은 만화잖아요.


문제는, 나는 이게 자꾸 현실적인 문제를 끼어 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에요. 그냥 세나가 좋지 요조라가 낫지 이러면서 싸우다가 리카가 짱이네 이러고 넘어가고 싶은데, 이걸 만드는 인간들이 자꾸 거기서 한 단계를 더 나가려고 해요.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보이거든요.


그런 노력이 중2사랑처럼 개 병신 !#$@^%$@^%^ 같으면 욕이라도 실컷 하겠는데, 이건 희한하게 설득력까지 대단하단 말이에요. 어차피 꿈나라 안에서 생기는 이야기야 이런 말 못하겠어요. 2기 마지막에 코다카랑 리카가 나누는 대화를 보라고요. 이게 무슨 남자 하나 여자 여러명 하하호호 하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대사에요. 작가가 쓰다가 폭주해서 자기 경험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잖아요.


이런 감상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주고 싶어도, 막상 그런 진지한 시선에서 보면 또 온통 공감 못할 년놈들에 공감못할 상황 뿐이에요. 아무리 현실만큼 뒤틀린 인간이라도 결국은 만화같은 얼굴에 만화같은 배경으로 만화같은 행동과 상황만 전개하는데 거기서 무슨 공감이니 진지함이니 찾나요. 은수저 보면서 현실을 찾아 헤멘 건 은수저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이 그만큼 있을 법 하니까 그랬던 거죠. 이건 아니에요. 이건 그냥 흔한 만화에요. 이야기나 메시지 보다 케릭터에 집중하는 애니라고요.


너무하잖아.jpg

그래서, 나는 요조라에 집중합니다. 나는 친구가 적다를 보면서 현실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은 리카도 아니고, 코다카는 더욱 아니에요. 과거에 만남을 집착하고, 닥쳐오는 일은 불행 다음에 불행, 행복의 실마리는 불행이 되어 사라지고, 세상이 뒤틀리니까 나도 뒤틀리고, 이유가 있어서 뒤틀린 거지만 결국 뒤틀린 성격 모두 싫어하고, 집착하는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시당하고, 이런 케릭터가 이런 이야기 안에 들어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요.


동정에 불과하고 공감이 아니라 케릭터에 끌리는 거고 이런 걸 다 떠나서, 보는 내내 뭔가를 끓어오르게 하고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케릭터는 얘 하나밖에 없네요. 청춘 러브코메디 볼 때 하치만 갖고 그랬잖아요. 얘는 왜 이런 아름다운 세상에서 혼자 바퀴벌레 같이 있냐고. 요조라가 하치만처럼 멋진 케릭터는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이유는 비슷한 거 같습니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혼자 떨어진 애를 어떻게 애정없이 보겠어요.


왠지 기승전결이 '나친적은 의외로 재밌고 괜찮은 만화라 좋았음 ㅇㅇ → 요조라가 짱이다 새끼드라아아아'가 되버려서 기분이 이상한데, 더 할 말이 없으니 여기서 끝내죠. 나는 왜 쓸데마다 감상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걸까요.


PS.

감상을 며칠에 걸쳐서 썼더니 스토리가 좋아서 놀랐다고 말하다가 집중할 게 케릭터 밖에 없다는 말로 끝내는 이중인격 글이 되버렸네요. 헷갈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한 줄로 감상을 요약하면 의외로 인상깊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애니메이션. 하지만 집중하게 되는 건 결국 케릭터. 그래서 난 요조라가 좋다. 정도겠죠.


좀 더 강하게 '케릭터 생긴 거로 누구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공감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요조라 밖에 없거든!' 이러고 싶다는 마음도 있긴 한데, 나중에 요조라도 현실 따위 말아먹은 케릭터라는 거 나오면 어떡해요. 생각해보면 그 이 다음 얘기 스포일러 부분도 영…이상하니까.


PS 2.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다음에 펼쳐진다는 이야기 중에 애니메이션이랑 연결해서 생각해도 '존나' 이상한 부분이 있다니까요? 설정구멍 이정도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라 갑자기 확 달라지는 무언가가 있어요. 에초에 그런 걸 신경 안 쓰고 만든거면 모르겠는데 이런 짜임새를 보여주다 내용이 그렇게 되버리면 이게 뭐야 싶잖아요. 요조라 괴롭히기가 문제가 아니라 해주던 만큼은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나중에 잘 무마 되려나.


원작이랑 애니랑 비교해서 다른 부분 다른 묘사가 많다니까, 원작이 이상해도 애니는 칭찬할 퀄리티로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각본 표절 파트는 원작에서는 더 심각하고 요조라는 더 개같이 행동하고 그랬다는 말도 들었고요. 이랬는데 다음 애니메이션 그런 거 없으면…뭐, 이 평가 그대로 가겠죠. 애니는 봤고 원작은 안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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