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n이 생각하는 마마마
2011.04.25 11:53
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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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정도의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메세지를 보내려 한것은 분명히 가학적인 의도가 첨가되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순진한 어린아이들에게 현실의 불합리함을 느끼게 함으로써 현실에 좌절하는것을 보려하는것일까요? 우리는 그러한 모습들을 애니로 그려낸것을, 중학생 정도의 어린 소녀들에게 현실의 불합리성을 느끼게 한것을 자극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마마의 스토리적 내용은 높게 평가해줄 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반드시 어린 아이들을 이용해야 할 필요성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이라는것은 괜히 자극적이라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을 마케팅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으나, 마케팅적인 요소가 강할 경우에는 역으로 반감을 가지게 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마마마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주는 애니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마마의 자극적인 요소는 폭넓은 감상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분명히 안좋은 효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마마마의 자극적인 요소들은 우리가 마마마를 감상하는데에 있어서 자극적인 요소들에 눈이 가게 만들며, 보다 섬세한 부분의 감상에는 해가 되기 쉽습니다. 토라도라같은 애니는 애니의 부분부분에 여러번 감상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을정도로 섬세한 연출들이 내포되어 있기에 재탕을 하더라도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으나, 마마마 같은 애니의 경우에는 자극성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재탕을 할 경우에는 그러한 자극적인 요소가 없기에 섬세한 연출을 느낄수는 있으나,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기에 흥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릴 때에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꿈을 잃는 모습을 그려내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현실의 불합리성만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어린 시절의 꿈을 잃지 않고 현실의 불합리성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것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꿈을 잃은 중학생의 어린 소녀들은 물론 자극적이며, 우리에게 있어서 현실의 비참함을 좀더 강조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게 사실입니다. 현실의 비참함을 강조하려 한 나머지, 너무나도 자극적이다 라는 평가를 받는 스토리가 되어버렸다는게 마마마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현실의 불합리성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현실의 불합리성에 굴복하고 자기 자신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그려낸다면, 우리가 애니를 통해서 얻어야 할 요소들에 대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애니를 보는 이유에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하여 애니를 보는것도 사실이나, 그보다는 애니를 통한 간접적인 세계의 체험이라는 의미로 애니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간접적인 세계의 체험이, 현실의 불합리성만을 강조하고 개인의 의지는 현실에 굴복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대체 샤프트에서는 마마마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납니다. 현실에 대해서 굴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존재하는것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물론 마마마를 보고 있자면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인하여 요즘 나오는 다른 애니들의 만들어진듯한 개성과는 달리 캐릭터들이 추구하는 바와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도 우리는 마마마의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공감을 느끼고, 현실의 많은 인간상들에 대해서 느낄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많은 인간상들이 결국은 현실에 굴복할 뿐이라는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요소에 대해서 덕구들이 자극성을 느끼고 그러한 것에 자주 관심을 갖는것은 요즘 덕후들이 NTR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서 빠지게 되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로 인하여 흥한것은 문제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의견입니다
마도카와 친구들이 그러한 불합리함을 이겨낸것은 결국 이상에 의해서 입니다. 마도카와 그 친구들은 자신의 이상에 의해서 파멸했으며, 다시 한번 그 이상에 의해서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상에 의해서 파멸한 경험이 있는 그들이, 다시 한번 이상에 의해서 파멸하지 않을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상에 의한 구원은, 이상에 의한 파멸보다도 옳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이라는것은 합리성에 의존한, 합리적인 권력에 의존해야만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것입니다. 결국 이상에 의존한 구원을 보여준 마마마는 현실의 불합리성만을 강조했다고 보는것이 옳으며, 그러한 모습들은 자극적이라고 말할수밖에는 없습니다. 현실의 근본적인 불합리성을 타개하려하지는 못할망정 그것에서 도피하는 모습이 옳다고는 못하죠
한 개인의 의지는 그 개인을 구원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무엇도 해주지 못합니다. 큐베와 마도카의 근본적인 차이는 개인에 의한 구원이냐, 아니면 사회적인 구조에 의한 구원이냐가 다를 뿐입니다. 사회적인 구조는 개인에게 있어서 그 무엇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사회적 구조는 사회를 구원할 뿐이며, 개인을 구원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기에 큐베는 개인의 감정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며, 오직 다수의 사회적인 구원만을 생각하는것입니다. 마도카와 큐베는 이미 서로 극단적인 모순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둘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통합될 수 없을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마도카의 구원은 파멸을 불러일으킬 뿐이지, 절대로 구원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것입니다
마도카에게 있어서 구원이라는것은 큐베와는 달리 매우 개인적인 구원입니다. 개인적인 구원은 사회적인 합리성에 의존하지 않은 이상, 어쩔수 없이 개인의 이상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이상에 의존하게 된 구원은 사회적 합리성에 기인하지 않았기에 개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구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것은 결국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적이며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구원은 파멸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파멸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예측 가능하며, 그렇기에 마마마의 결말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마마마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주는 애니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마마의 자극적인 요소는 폭넓은 감상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분명히 안좋은 효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마마마의 자극적인 요소들은 우리가 마마마를 감상하는데에 있어서 자극적인 요소들에 눈이 가게 만들며, 보다 섬세한 부분의 감상에는 해가 되기 쉽습니다. 토라도라같은 애니는 애니의 부분부분에 여러번 감상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을정도로 섬세한 연출들이 내포되어 있기에 재탕을 하더라도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으나, 마마마 같은 애니의 경우에는 자극성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재탕을 할 경우에는 그러한 자극적인 요소가 없기에 섬세한 연출을 느낄수는 있으나,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기에 흥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릴 때에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꿈을 잃는 모습을 그려내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현실의 불합리성만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어린 시절의 꿈을 잃지 않고 현실의 불합리성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것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꿈을 잃은 중학생의 어린 소녀들은 물론 자극적이며, 우리에게 있어서 현실의 비참함을 좀더 강조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게 사실입니다. 현실의 비참함을 강조하려 한 나머지, 너무나도 자극적이다 라는 평가를 받는 스토리가 되어버렸다는게 마마마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현실의 불합리성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현실의 불합리성에 굴복하고 자기 자신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그려낸다면, 우리가 애니를 통해서 얻어야 할 요소들에 대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애니를 보는 이유에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하여 애니를 보는것도 사실이나, 그보다는 애니를 통한 간접적인 세계의 체험이라는 의미로 애니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간접적인 세계의 체험이, 현실의 불합리성만을 강조하고 개인의 의지는 현실에 굴복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대체 샤프트에서는 마마마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납니다. 현실에 대해서 굴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존재하는것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물론 마마마를 보고 있자면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인하여 요즘 나오는 다른 애니들의 만들어진듯한 개성과는 달리 캐릭터들이 추구하는 바와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도 우리는 마마마의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공감을 느끼고, 현실의 많은 인간상들에 대해서 느낄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많은 인간상들이 결국은 현실에 굴복할 뿐이라는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요소에 대해서 덕구들이 자극성을 느끼고 그러한 것에 자주 관심을 갖는것은 요즘 덕후들이 NTR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서 빠지게 되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로 인하여 흥한것은 문제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의견입니다
마도카와 친구들이 그러한 불합리함을 이겨낸것은 결국 이상에 의해서 입니다. 마도카와 그 친구들은 자신의 이상에 의해서 파멸했으며, 다시 한번 그 이상에 의해서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상에 의해서 파멸한 경험이 있는 그들이, 다시 한번 이상에 의해서 파멸하지 않을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상에 의한 구원은, 이상에 의한 파멸보다도 옳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이라는것은 합리성에 의존한, 합리적인 권력에 의존해야만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것입니다. 결국 이상에 의존한 구원을 보여준 마마마는 현실의 불합리성만을 강조했다고 보는것이 옳으며, 그러한 모습들은 자극적이라고 말할수밖에는 없습니다. 현실의 근본적인 불합리성을 타개하려하지는 못할망정 그것에서 도피하는 모습이 옳다고는 못하죠
한 개인의 의지는 그 개인을 구원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무엇도 해주지 못합니다. 큐베와 마도카의 근본적인 차이는 개인에 의한 구원이냐, 아니면 사회적인 구조에 의한 구원이냐가 다를 뿐입니다. 사회적인 구조는 개인에게 있어서 그 무엇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사회적 구조는 사회를 구원할 뿐이며, 개인을 구원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기에 큐베는 개인의 감정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며, 오직 다수의 사회적인 구원만을 생각하는것입니다. 마도카와 큐베는 이미 서로 극단적인 모순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둘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통합될 수 없을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마도카의 구원은 파멸을 불러일으킬 뿐이지, 절대로 구원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것입니다
마도카에게 있어서 구원이라는것은 큐베와는 달리 매우 개인적인 구원입니다. 개인적인 구원은 사회적인 합리성에 의존하지 않은 이상, 어쩔수 없이 개인의 이상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이상에 의존하게 된 구원은 사회적 합리성에 기인하지 않았기에 개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구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것은 결국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적이며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구원은 파멸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파멸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예측 가능하며, 그렇기에 마마마의 결말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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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릉
2011.04.25 11:54
speakn다운 글이네 -
올릉
2011.04.25 11:54
speakn은 하극 영향을 많이 받은듯 -
올릉
2011.04.25 11:55
이거 은근 그럴싸하기도 한데 -
넷카마
2011.04.25 11:58
'떡밥을 이미 던졌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긴 한데 애당초 생각해보면 마마마에서 가장 먼저 억지성이 들어나는건 호무호무의 소원성취부분이다. 그때는 이미 능력자체는 예상하고 있었으니 별 생각없었는데 생각할수록 말도 안되는게 호무호무 소원 들어준 방법. -
넷카마
2011.04.25 12:08
시간조작이 아니라 평행세계이동이지만
마도카만 구원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마도카 하나만을 살려내든, 좀비로 만들든 하는게 큐베로썬 더 나았을거야 -
세인트윈터러
2011.04.25 12:05
그런데 어찌 보면은. 마도카는 모두를 구원하고 싶기에 소원을 빌어 마느님이 되었지만
호무호무는 마도카만 구원하고 싶기에 거기에서 가장 최대의 것을 빈 것이 시간조작이 아니였을까..
라고는 해도 역시 작가보정이구만 호무호무. -
넷카마
2011.04.25 12:02
그 이전에 큐베의 목적은 결국 세계의 유지인데 왜 자기가 지키려하는 세계의 균형이 깨질만한 소원을 들어주냐 이거야.
세계유지 드립치는 새끼들이 소원의 영향력을 생각도 않고 들어주는게 이상한거지.
마레기 소원 들어준거는 원래 큰 에너지를 갖고있었으니까 된다고 쳐도, 호무호무의 경우는 정말 작가보정이야. -
세인트윈터러
2011.04.25 12:00
하기야 시간을 되돌리는거 너무 큰 능력이지. 어찌보면 말야. 첫 루프라 인과력이 평범한데도 저런 힘을 바랬던 자체가 모순이겠지. 애초부터 호무라의 마력은 다른 애들보다 약한 편에 속했고. -
asdf
2011.04.25 12:11
정말 미안한 말인데..;; 항상 speakn 글은 별로 내용이 없어 보임.
논지도 명확하지 않아서 읽는 사람이 헷갈리고, 글이 좀 껄끄럽고 중구난방임.
뭐 어떤 식의 작문 방향성을 지향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분량만 늘이려고 하지 말고 질적인 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될 듯싶다.
한마디로 퇴고를 하면서 글을 쓰면 더 좋은 문장이 나올 거라고. -
올릉
2011.04.25 12:19
이거 보고 대각선드립 있나 해서 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ㅠㅠㅠ -
넷카마
2011.04.25 12:11
대각선으로 읽으라고 주는 글이잖아]
나도 대충대충 읽음 -
찐극 글인줄 알았네. 갤질이나 인터넷질 하면서 누누히 말하지만 글이라 함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하는게 중요하지 미사여구 잔뜩 바르고, 부풀린다 하여 좋은 글이 아니거늘. 아무튼 뭐 저리쓰는 것도 노력과 재주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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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
2011.04.25 12:20
그것도 맞는 말인데, 대조적으로 명료함과 전달의 미덕이 최우선시되는 과학 서적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이 문학적인 수사를 사용했다고 해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이유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음.
결국 What보다는 How고 문장과 표현의 질이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 -
순간 법률서적 디시체로 바꾸는 상상하고 풋 웃었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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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한 내용을 전달하려면 문체도 그만큼 고급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함.
법률서적을 디씨체로 쓰면 이상하잖아?
물론 저 글이 고급한 정보를 전달한다는건 아니겠지만 -
좀 삼천포로 가는 댓글인디..
"토라도라같은 애니는 애니의 부분부분에 여러번 감상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을정도로 섬세한 연출들이 내포되어 있기에 재탕을 하더라도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으나, 마마마 같은 애니의 경우에는 자극성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재탕을 할 경우에는 그러한 자극적인 요소가 없기에 섬세한 연출을 느낄수는 있으나,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기에 흥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 대목이 '보고 또 봐도 재밌는 애니' 와 '처음 볼 때는 재미있는데 두번째 볼 때는 별로 재미없는 애니' 이 두 종류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
asdf
2011.04.25 12:36
'반복해서 봐도 재밌을 것'이 뛰어난 작품의 필요충분조건인가 자문해 보면.. 아무렴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음;.. -
넷카마
2011.04.25 12:37
댓글보고 내용 알았는데,
나같은 경우엔 토라도라는 오히려 재탕할수록 까게 되고 마마마는 12화만 제외하면 볼 수록 설정 잘 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출 외에도 엔딩만 병신일뿐이지 우로부치가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대사들을 볼 수 있다.
마마마를 까기전에 재탕을 3번씩만 해도 깔 거리가 반은 줄어든다. -
올릉
2011.04.25 12:43
마마마는 9화까지는 진짜 수십 수백번 봐도 곱씹는 맛이 있는데.
물론 토라도라도 여러번 봐도 좋더라 ㅋㅋ -
모순나선
2011.04.25 15:05
웬지 하극의 분위기가 물씬난다 -
에밀
2011.04.26 18:33
논리적 비약이 중간중간 섞여있어서 좋은 글은 아닌데 받아들일 부분은 있다.
확실히 종교적 구원이지. 현실적 해답이 아니라. 결말 비판하는 건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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