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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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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건 오프닝과 선형적 연출

2013.04.06 02:49

뀨뀨함폭 조회 수:3139

덕계에 환멸을 느끼고 탈덕한지 어언 수십년이 흘렀음에도 나는 아직도 종종 초전자포 1기를 회상하곤 한다. "레일건" 미사카 미코토가 손을 앞으로 뻗어, 동전을 튕기고, 전류가 발생하는 순간 - 우리 시청자들은 마치 그 전기로 휘감긴 동전이 자신에게 날아온 마냥 찌릿찌릿한 전율을 느꼈더랬지. 뭇 덕후들이 다 함께 두 주먹 불끈쥐고 모니터를 향해 "하나떼!"를 외쳤던 4년전의 그 열기가, 흥분이, 그 환희와 눈물, 감동과 좌절, 기대와 실망, 삶과 죽음, 망가와 동인지, 음과 양 같은 것들이 잊혀지질 않아. 그만큼 레일건은 카와이하고도 즐거운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님 말고.

각설하고... 13년 4월 신작이 막 쏟아지려는 시점에서 09년 작품 이야기를 꺼내니 뜬금없고 새삼스럽기도 하지마는, 불현득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레일건 오프닝에 관한 시덥잖은 졸문 하나 적어 볼 요량이다. 이는 곧 방영될 2기를 감상하기 전에 심심풀이 땅콩으로나마 되새기자는 목적이다. 또한, 행여 레일건을 여태 보지 않은 무지몽매한 인간실격 야인이 있다면 어서 감상하게 하고저 할 따름이기도 하다.

본 글에서 다룰 주제는 레일건 두번째 오프닝인 LEVEL 5 -Judgelight-, 정확히는 그것의 오프닝 무비다.



굳이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으나 예의상 언급하자면 LV5의 연출 및 콘티를 담당한 것은 타치바나 히데키(橘秀樹)라는 애니메이터 양반으로, Only My Railgun과 금서목록의 오프닝들 또한 이 양반의 소행이다. 얼핏 보기에도 전체적인 작화 퀄리티와 후반부 액션씬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요 글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상 중반부까지의 장면 전환 연출이다. 장면 전환이 GA히 예술급, 한마디로 아트 클라스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오프닝 무비는 오프닝 본연의 목적 - 작품 요약, 캐릭터 소개, 배경 소개, 분위기 전달 등 - 을 쉽게 하기 위해 서로 무관하거나 시공간적 차이가 있는 장면들을 비선형적으로 짜집기 하기 마련이다. 반면 LV5의 영상은 각기 다른 시공간/다른 인물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서로 끊김 없이 선형적으로 연결된다. 


11.gif  22.gif 

이 무슨 개소리야!를 외칠 노인네들을 위해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코토가 도시를 향해 손을 뻗고 달려가며 그 방향으로 카메라가 확대(track up) 되는데, 바로 다음 쇼트에선 반대 방향으로 축소(track back) 되며 학교 안에 있는 사텐을 비춘다(좌짤). 그리고 사텐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순간 운동장에서 팔굽혀펴기 하며 위로 올라오는(↑) 우이하루로 쇼트가 전환된다. 또, 다크써클년이 차를 모는 장면이 나오다가, 로리선생년이 차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이런 식의 연출이 26초부터 1분까지 이어지며 주요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비춘다.

너무 난해하다고?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을 직접 보자. 마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노래 생각하면 편하다.

아무튼 이런 선형적인 컷을 줄곧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접합부나 컷 연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또 신박한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인위적임의 예 : 하루히 오프닝에서 초딩 하루히가 고딩 하루히로 바뀔 때의 오버랩). 그런 인위적 연출 대신 카메라워크, 캐릭터의 움직임, 사물의 움직임, 수평 구도와 수직 구도 등 '화면빨'을 완벽하게 써먹으며 한 프레임 한 프레임, 한 쇼트 한 쇼트를 낭비하지 않고 활용, 모두가 하나의 이어진 장면인 것처럼 꾸민다. 시청자가 "지금 장면이 바뀌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여지, 숨 돌릴 틈을 아예 주지 않는 것이다. 호옹이! 탁월하고 세심한 센스를 가진 애니메이터가 아니라면 나오기 힘든 결과물이렷다!



타치바나 히데키가 좀 더 과거에 만든, 스카이걸즈 오프닝 영상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발견된다. 00:25~00:32 부분을 주목하자. 비록 훨씬 짧긴 하지만 LV5에서 보여줬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첨언하자면, 이런 류의 연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바카노의 오프닝일 텐데... 혹자들에게 2000년대 애니메이션 오프닝/엔딩 무비 베스트중 하나로서 종종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군상극의 오프닝으로서 이보다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는 없을 것.

글이 길었는데 사실 영상만 봐도 된다. 요 쓸데없이 길면서도 속 알맹이라곤 전혀 없는 - 영양가 제로의 글을 읽느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나갈없 노인네들이 참으로 안타깝고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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